2023/6/2
또또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으면 한 순간도 견디지 못했다.(111p)
그러나 대충 줄거리는 그랬고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죽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빨리 더 많이 죽는다고, 그건 우연이고 팔자이지만, 형편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어머니는 했다. 형편이 안 좋으면 다 안 좋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야겠노. 어머니의 형편은 경제 사정이나 계급이 아니었고 성격이나 가족 관계도 아니었으며, 운명, 사주도 아닌 그것들이 어찌 어찌 돌아가는 형세 같은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걸 좋게 만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느 정도여야 좋은 건지, 어머니는 이 정도면 당신의 형편이 좋은 거라고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형편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형편은 비교라는 걸,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사람에겐 형편이랄 게 없고, 사회가 형성되고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룰 때 존재한다는 걸.(184-185p)
ㅡ 정지돈, <인생 연구> 中,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