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6
읽기 시작 한 초반부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시점인지 헷갈려서 더듬더듬 읽어나갔는데 점차 익숙해졌다. 소설 내내 적당한 의외성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아귀가 맞게 진행되어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근자에 읽은 책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층간 소음이 괴로운 건 소리 때문이 아니다. 소리에 시각적 정보가 누락되어서다.
“들키고 나니 알겠더군요.” 보일 씨가 자조했다. “제 취미는 여장이 아니라 사생활이었다는 걸요.”
보일 씨가 원했던 건 여자 옷을 입는 게 아니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모르는 어떤 것,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어떤 것을 원했다. 사생활을 원했다. 여섯이 살기에 집은 좁았다.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보일 씨는 은협과, 아니면 대연과, 아니면 중연과, 아니면 소연과, 아니면 민희와 끊임없이 마주쳐야만 했다. 회사에서 지쳐 돌아와도 쉴 수가 없었다. 일하고 돌아오면 또 일이 기다렸다.(156p)
ㅡ 장진영, <취미는 사생활> 中,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