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9

 

 

20세기 초 여론조사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래 미국에서 목격된 중대한 변화의 약 절반이 동성 결혼에 대한 여론 변화처럼 단기간에 일어났다. 낙태, 베트남전쟁, 인종차별 및 여성차별, 투표권, 흡연, 마리화나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들 사안에 대한 논쟁은 작은 집단에서 큰 집단으로, 가정에서 의회로 퍼져나갔고, 그러다 갑자기 여론의 정체 상태가 깨졌다. 여론이 너무나 빠르게 반전돼서, 만일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흥분하면서 과거의 자기 자신과 논쟁을 벌일 것이다.

나는 끊임없는 논쟁과 뒤이어 일어나는 변화를 단속평형설 관점에서 보았다. 생물학 이론인 단속평형설은 생물이 변화할 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그럴 만한 자극이 없을 때는 오랜 기간 거의 변화가 없다가 환경에 적응할 필요성이 커지면 진화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오랫동안 진화하지 않는 평형 상태가 유지되다가 간간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패턴이 나타난다. 나는 사회적 변화와 혁명, 혁신의 역사에도 동일한 패턴이 나타난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현상 뒤에 깔린 인간 심리를 더 깊이 알아보고 싶었다.(17-18p)

 

 

그러나 타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때 당신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쪽 모두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나는 왜 그들의 마음을 바꾸고 싶은가?’ 책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을 계속 상기하길 바란다.(22p)

 

 

“뛰어난 논거나 확실한 정보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고, 전에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던 측면을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스티브는 이젤 옆에 섰다. 거기에는 로라가 3단 케이크를 그려놓은 종이가 걸려 있었다. 원뿔처럼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케이크였다. 그는 케이크 상단에 초가 꽂힌 가장 작은 부분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라포르rapport’라고 적혀 있었다. 그보다 좀 더 큰 아래층에는 ‘나의 이야기’, 가장 큰 맨 아래층에는 ‘상대방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대화할 때 이 그림을 늘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고, 즉 친근함을 심어주고 뭔가를 강요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전달할 만큼만 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 이야기에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야 그들이 방어적 태도를 내려놓는다. 그는 케이크 2층을 가리키면서 ‘가끔 여러분 자신의 경험담이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했지만, 상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게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66-67p)

 

 

브룩먼과 칼라에게 딥 캔버싱의 심리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실마리를 알려달라고 청하자, 그들은 정교화라는 심리적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교화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지식과의 연결점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적극적 학습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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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습관적 사고 및 행동을 수행하거나 일상적 작업을 할 때 깊은 사고 없이 직관적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대부분 이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뇌는 정확성을 포기하고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특성 탓에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만일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과 직관적 판단에 스스로 중지 버튼을 누르고 자기 자신의 견해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뇌는 정교화 작업에 유리한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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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딥 캔버싱은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므로 뇌의 정교화 프로세스를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플라이셔는 대부분이 이처럼 깊은 사고를 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일상의 책무와 문제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점심값을 챙겨줘야 하고, 일터에서 성과 평가를 받아야 하고, 자동차를 누가 정비소에 맡길지도 정해야 한다. 내적 성찰과 숙고의 기회가 없으면,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그런 과도한 자신감은 확신으로 바뀌고, 그 확신을 토대로 극단적 견해를 지지하게 된다.(93-94p)

 

 

우리가 보는 내용을 확신하지 못하거나 낯설고 모호한 대상을 만나면 ‘사전 확률’을 이용해 모호한 요소를 제거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사전 확률은 원래 통계학 용어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현재 외부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뇌가 가정하는 내용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뇌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파스칼과 카를로비치가 말하는 ‘상당한 불확실성’에 해당하는 상황을 만나면 뇌는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 마땅한’ 것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새로운 상황을 만나면 뇌는 대개 자신이 보게 되라라고 예상하는 것을 본다.

파스칼은 이런 현상이 색각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스웨터가 어두운 옷장 안에 있는데도 초록색이라고 말하고, 구름 낀 밤하늘 아래 있는 자동차를 파란색이라고 말한다. 이는 달라진 조명 조건이 익숙한 사물의 외양을 변화시키면 뇌가 스스로 사물의 색을 보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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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빨간 딸기들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에는 빨간색 픽셀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사진을 보는 당신의 눈에는 빨간색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뇌는 이 사진이 파란색 빛에 과다 노출되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뇌 스스로 파란색을 덜어내고 약간의 색깔을 추가한다. 다시 말해, 당신은 딸기를 보고 빨간색으로 느끼겠지만 그 빨간색은 사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어릴 때부터 딸기를 먹어봤고 지금껏 살면서 본 딸기가 빨간색이었다면, 딸기라는 익숙한 형태를 본 순간 당신의 뇌는 그것이 ‘당연히’ 빨갛다고 가정한다. 이 사진에서 당신이 본 빨간색은 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험으로 형성된 가정이며, 시각체계가 사실이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당신에게 제공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다.(120-121p)

 

 

우리는 모호해 보이는 새로운 정보를 마주치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 경험을 토대로 모호함을 해소한다. 하지만 인생 경험이 다른 개인은 서로 매우 다른 방식으로 모호함을 해소할 수 있고 따라서 매우 다른 주관적 현실이 생겨난다. 그리고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런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우리는 현실 자체를 놓고 격렬하게 논쟁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그런 논쟁에 이르게 된 뇌의 프로세스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관점이 다른 상대편이 틀렸다고 믿는다.(124p)

 

 

파스칼과 카를로비치가 추측한 내용은 이랬다. 분홍색 크록스와 흰색 양말을 조합한 뒤 녹색 불빛을 비추면 크록스는 식물 재배실에서처럼 회색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흰색 양말은 녹색 빛을 반사하므로 녹색으로 보인다. 만일 양말이 녹색으로 염색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명에 별다른 특이점이나 문제가 없다고 추측하고 아무런 뇌 내 보정 없이 이미지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양말이 흰색일 것이라 예상하고 흰색으로 보는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가 과다 노출된 녹색 빛을 덜어내고 분홍색을 추가하는 식으로 이미지를 보정할 것이다. 만일 그들의 추측이 옳다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진을 다르게 볼 것이었다.(128-129p)

 

 

‘사람들은 모든 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틀렸다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아마도 그것은 본래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는 없고,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는 것은 항상 진실하기에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본래 틀릴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의 머리에서 나온 이유보다 자신이 찾아낸 이유에 더 잘 설득당한다.’

(...)

뇌는 불확실한 세계를 경험하고 처리하기 위해 수많은 가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파스칼은 설명했다. 보통 이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수백만 년 동안 그래왔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가정들을 과도하게 적용할 때 발생한다. 파스칼은 이를 타이핑할 때 자동 수정 기능의 제시어를 무조건 다 받아들이는 데 비유했다.

“우리는 그걸 넘어서야 합니다. ‘나도 당신도 SURFPAD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메타적 수준으로 올라섭니다.(138-139p)

 

 

파스칼과 카를로비치의 연구는 상대에게 반박 증거를 제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의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묻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이 나와 다른 사전 경험과 가정, 프로세스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동체에서 다른 문제와 목표, 동기, 관심사를 갖고 산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서로 다른 경험을 지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내가 타인과 같은 경험을 한다면 그 사람과 같은 의견을 가질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정 이슈가 논쟁적 이슈가 되는 것은 우리가 선택이 아닌 무의식 차원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모호함을 해소하는 탓이다. 이 사실을 알면 ‘인지적 공감’이 가능해진다. 즉 타인이 보는 진실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파스칼과 카를로비치에 따르면, 그보다 현명한 방법은 양측 모두 상대방이 결혼에 이른 과정, 즉 상대방이 ‘어떤’ 견해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140p)

 

 

뇌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과적 해설을 구축할 때 현실에 구멍이 생기면 임시 설명으로 그 구멍을 메운다. 문제는 그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뇌가 동일한 보완물을, 즉 당장은 유효해 보이는 설명을 똑같이 사용할 경우,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공유하는 임시 설명이 합의된 현실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과 거짓에 대한 상식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 탓에 수백 년간 모두가 공유하는 이상한 믿음이 생겨나곤 했다. 그것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합의된 현실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기러기가 나무에서 자란다고 믿은 것이 그 예다.(158p)

 

 

쿤과 피아제는 다른 용어와 메타포를 사용했지만 둘이 내린 결론은 유사하다.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는 과정과 과학에서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을 대체하는 과정이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일치하지 않는 실험 결과, 즉 기존 지배적 모델에 들어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과학자들은 그 변칙 현상을 임시 바구니에 담아 둔다. 그리고 기존 모델의 도구를 사용해 계속 문제를 연구한다. 나중에 변칙 현상이 쌓여 넘치면 그 ‘미결 바구니’로 돌아가 살펴보기로 한다. 기존 모델과 새로운 현상의 부조화가 관찰되는 초반에는, 모델에는 문제가 없지만 측정 방법이나 연구 도구에 오류가 있거나 과학자가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결 바구니에 변칙 현상이 쌓이기 시작해 어느 시점에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이 된다. 경험 법칙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는 것은 곧 규칙이 있다는 증거라는 말이 유효성을 상실한다. 변형 사례들이 변형 사례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낸다.(181p)

 

 

용어야 어떻든 사회과학 분야의 최신 증거는 인간이 옳은 행동을 하는 것보다 집단의 훌륭한 구성원이 된느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준다. 그래서 좋은 구성원이 되고 싶은 욕구를 집단이 충족시키는 한,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기꺼이 택하곤 한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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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견해가 새로운 견해에게 도전을 받으면 강한 위협감을 느낀다. 우리를 집단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주는 견해를 가질 때,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부족의 일원으로서 사고한다. 우리는 집단 내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지길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여겨지기 위한 평판 관리가 종종 많은 다른 관심사보다 중요해진다. 심지어 목숨보다 말이다.(244-245p)

 

 

그는 먼저 상대에게 틱택 한 통에 담긴 캔디의 개수가 홀수 아니면 짝수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고 답한다. 가끔은 둘 다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어느쪽이든 그는 어떤 방법을 이용해 캔디 개수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답변을 들은 뒤 이렇게 묻는다. ”만일 당신이 캔디 개수를 세어보고 홀수라는 결론에 내렸는데, 다른 누군가가 짝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이 ‘그 자신이’믿는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325p)

 

 

이들의 목표는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사고하는 법을, 확신이나 의심에 도달하는 더 나은 방법을 사람들이 발견하게 돕는 것이 목표다. 대화의 초점은 사람들이 ‘무엇을’믿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믿는지에 맞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사람들 각자의 인식론을 바꾸게 유도하는 과정이 실제로는 그들이 마음을 바꾸는 것 같았다. 이 기법은 그들 뇌 안의 무언가를, 믿음과 태도, 가치관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바꾸고 있었다.(329p)

 

 

ㅡ 데이비드 맥레이니,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中, 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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