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2

 

 

모든 에세이가 그렇겠으나 김초엽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글쎄...

 

 

 

나는 과학에 관해, 과학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을 존경하지 말자. 개인에게 기대를 걸지도 말자. 한 사람은 언제나 틀릴 수 있고 무수한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다. 어쩌다 충분히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가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가 검증을 멈추는 순간 다시 문제가 시작된다. 합리성은 뛰어난 개인에게 깃드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검증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열린 시스템에서 생겨난다. 과학이 우리가 지닌 많은 질문에 꽤 괜찮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놓은 잠정적 결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과학의 결론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그런 생각은 내 안에서 정립하게 됐다.

하지만 좀 더 근본으로 들어가서, 나는 과학이 갖는 합리성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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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과학으로부터 유래한 풍요와 안전만큼 위협과 불평등이 존재함을, 과학이 얼마든지 자본 및 권력과 영합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영역임을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과학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도 기여했지만 더 나쁘게 만드는 일에도 기여해왔다. 때로 과학은 무언가를 연구함으로써가 아니라 연구하지 않음으로써, 즉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대상을 배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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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술이 당대의 차별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디지털 알고리즘이 어떻게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반영하는지는 사피야 우모자 노블의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가 잘 다루고 있는데, 이와 같은 기술 분야의 데이터 편향은 이전부터 많은 과학기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온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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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가 합리성의 원천이라고 믿어온 과학의 지위에 균열을 내온 연구들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하는 근본적 틀이라고 여겨왔던 과학이 결국 단점과 오류투성이의, 특별할 것 없는 학문 체계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조금씩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 개인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시스템도 큰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과학도 인간이 실천하는 활동인 만큼 수많은 오류를 품고 삐거덕거리며 때로는 퇴보하고 이따금 힘겹게 나아간다는 것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과학, 그 자체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과학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과학이 불완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에도, 아직 나는 과학이 꽤 많은 영역에서 ‘우리가 가진 더 나은 도구’일 수 있다는 견해에 마음이 기울어 있다.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에서 과학기술학자 해리 콜린스와 로버트 에번스는 불완전한 과학의 가치를 옹호하려고 시도한다. 저자들은 과학적 지식이나 그 결과물보다 그것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과학자 공동체가 지지하고 열망하는 가치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정직성, 성실성, 명확성, 개방성과 같은 과학적 가치들이 과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다.(274-278p)

 

 

 

ㅡ 김초엽, <책과 우연들> 中,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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