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30

 

청소년 문학의 편견을 깨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현은 지금껏 침대에 누워서 텅 빈 머리로 했던 게 후회였음을 알아차렸다. 두 달 전에 이선이 죽었더라면, 우연이 추모에만 모든 슬픔을 바쳤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애도란 남은 사람들끼리 편할 대로 기억을 잘라 내서 소화하기 쉬운 부분만 남기고 그만 잊어버리는 일이니까. 죽음을 그 자체로 잊을 이유가 되니까. 하지만 이선은 계속 살았다. 그래서 우연은 결코 씹어 넘기지 못할 부분을, 세상의 뼈 같은 걸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고꾸라졌다.

그러니까, 이 일에서 가장 슬프고 웃긴 점은 거기에 있었다. 정말로 씹어 넘길 방법이 없었다는 것. 센스/네트를 찾아가더라도 어떤 사실은 여전히 속에 얹혔으리라는 것.(231p)

 

 

“우리가 아는 낱말들을 분류해 보자. 이해나 공감 같은 건 좋은 쪽이겠지. 냉담함이나 잔인함은 나쁜 쪽이고. 평범한 감각으로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짓누르듯이 이긴다고 믿게 될 거야. 뜨거운 주전자에 얼음 조각을 던지면 녹아 버리고, 반대로 얼음 덩어리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함께 얼어붙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한 사람의 따뜻함이 무한한 악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두려워하지. 또는 마지막 한 방울이 거대한 얼음을 쪼개는 장면에 희열을 느끼거나. 하지만 그런 장면은 순간에 불과해.”

“네.”

“정말로 남는 건, 이 세계는 고통과 기쁨이,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것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복잡하게 뒤엉킨 덩어리라는 사실뿐이야.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는 한 사악해 보이는 것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다정할 수도 없고 온전히 올바를 수도 없다는 사실이지.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닌 건 대개 환상이고 현실을 바꾸는 것들은 삶을 깎아내. 우리든, 우리 이웃이든, 아예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게다가 해결책을 떠올리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 봐.”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 그런 것들이 모두, 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라면요. 더욱이 가끔은 아예 탈출구를 상상할 수 없거나 남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해답만이 있다면요. 그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모르거나 알더라도 외면해 버리는 게 그 사람한테는 가장 나으니까, 세상은 더 좋아질 수가 없다는 건가요.”

“아니야. 거기에서 출발하는 거야.”

“출발, 이라고요.”

“가끔은 물러나기도 하고, 가끔은 도망치기도 하겠지만·····.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 있을 거야.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무언가를 해내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똑바로 보고 그 복잡함을 이해해야 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올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위치를 알아야 하니까. 또 아직 알지 못하는 걸 진심으로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답이 없다면요? 떠오르는 게 없으면 어떻게 하죠?”

“그래서 어려운 거지.”(258-260p)

 

 

 

ㅡ 단요, <마녀가 되는 주문> 中, 책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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