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미크로메가스와 캉디드 2편을 포함해도 200p 남짓한 짧은 분량의 책이다. 모든 텍스트는 컨텍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말이 하나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 그 시대의 모든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제한된 범위 하에서라도 글쓴이의 개인적 배경, 책이 쓰인 시대적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책을 읽는 게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정확한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도 그 시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책을 쓴 저자는 죽고 없으나 불멸의 고전이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이유를 들며 반대 사례를 늘어놓겠지만 그 메커니즘이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고전이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 정보, 지식 때문일 텐데 이때 그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제반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자.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톰 소여의 모험”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온당한 비판인가. 그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은 당연할 것이고 빛나는 지성을 가진 석학이나 시대적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라도 시대의 한계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가 살았던 당대의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고 오히려 지금 당연시 되며 논의되는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 비하 등에 대한 논의가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시대를 미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그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판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다음으로 글쓴이의 개인적 배경을 살펴보자. 미크로메가스는 그냥 읽어도 낄낄거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풍자극이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있으면 다른 식으로 읽을 수가 있다. 미크로메가스의 거인 미크로메가스가 저자 본인인 볼테르를 비유한다는 것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분명 독자들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볼테르는 한 귀족 청년과의 다툼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명국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 사례가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이 비유적으로 표현된다.
“유년 시절을 벗어나서 사백오십 살쯤 되었을 때 미크로메가스는 지름이 100피에도 안 되어 보통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벌레를 수없이 많이 해부했다. 그는 그걸 바탕으로 아주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썼는데 그로 인해 몇 가지 골칫거리가 생겼다. 그 나라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트집 잡기 좋아하고 대단히 무식한 어떤 교리해석가가 그의 책에서 의심스럽고 무례하고 경솔하고 이단적인 교리들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이단이라는 감을 잡고 열심히 그 흔적을 추적했다. 시리우스에 사는 벼룩의 실체가 달팽이의 실체와 그 성질이 같은지를 알아내는 것이 쟁점이었다. 미크로메가스는 재치 있게 자신을 방어했고 여인들을 자기편으로 삼았다. 소송은 이백 년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교리해석가는 그 책을 읽을 적도 없는 법률가들로 하여금 책에 유죄를 선고하게 했고, 책의 저자는 팔백 년간 궁정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11p)
또한 캉디드는 볼테르가 살았던 시기에 팽배했던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풍자하는 소설이다. 본문의 이 부분을 보자.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p)
이처럼 어떤 텍스트라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법은 없으며 특정 시대의 영향 아래에 있는 한 개인이 썼다는 것을 인지하고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입부에서 “모든 텍스트는 컨텍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거창하게 말한 바 있지만 기실 모든 책을 각 잡고 그 책이 나온 배경부터 저자의 이력까지 조사하며 공부하듯이 읽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텍스트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정답은 없으며 텍스트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도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조차도 모든 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읽어나가지는 않는다. 다만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 기본이자 오독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 그 책이 쓰인 상황과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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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는 여러 곳을 돌아다닌 훌륭한 관찰자이다. 하지만 나는 둘 중 누구의 말도 반박하고 싶지 않다. 미크로메가스는 이 별 저 별을 일주한 다음 토성에 도착했다. 미크로메가스는 새로운 사물을 보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천체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우월한 자의 미소가 떠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잘난체하는 그런 미소는 현명하다는 사람들도 가끔 억제하기 힘든 법이다.(12p)
“우리 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천 개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알지 못할 어떤 막연한 욕망, 알지 못할 어떤 불안이 남아 있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하찮은 존재이며 우리보다 훨씬 더 완전한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행을 좀 하면서 나는 우리보다 훨씬 열등한 필멸의 존재들도,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 않거나 만족할만한 양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15p)
“우리는 늘 얼마 못 산다고 한탄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인가봅니다.”
“저런! 우리는 태영을 오백 번 공전할 동안밖에 살지 못합니다(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만오천 년쯤 된다). 태어나는 ㅡ순간에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아시겠지요. 우리 존재는 한 점이고 우리의 지속은 한 순간이며 우리 천체는 원소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좀 배우려고 하면 경험을 채 쌓기도 전에 죽음이 찾아옵니다. 나로서는 감히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드넓은 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신 앞에 서니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어 부끄럽군요.”(16p)
“천오백 년 동안 뻗대다가 마침내 비로소 당신을 따르게 되었는데, 당신 품에서 겨우 이백 년을 보냈을 뿐인데 당신이 나를 떠나 다른 세상에서 온 거인과 함께 여행을 가다니요. 가세요, 당신은 한낱 호기심 많은 사람에 불과할 뿐 사랑은 한 번도 못했던 거라고요. 당신이 진정한 토성인이라면 마음이 변하지 않으련만. 어디로 가는 거지요? 뭘 원하는 건가요? 우리 다섯 개 위성도 당신보다는 덜 떠돌아다녀요. 우리 토성 고리도 당신보다는 덜 변덕스러워요.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철학자는 그녀를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천생 철학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마음을 달랜답시고 그 별의 어느 젊은 멋쟁이 녀석과 함께 사라져버렸다.(19~20p)
“당신 발꿈치만 한 커다란 진흙 더미 몇 개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서로 목을 치는 수백만 명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이 진흙 더미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차지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가 술탄이라는 사람 편인지 아니면 이유는 몰라도 황제라는 다른 사람 편인지 그것이 문제일 따름입니다. 어느 쪽도 문제가 된 작은 땅 구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결코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로 목을 베어 죽이는 이 짐승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들이 어느 짐승을 위해 목을 바치는지 그 짐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36p)
“사물들이란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반드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쓰는 겁니다. 두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입는 것이지요. 돌멩이는 다듬어져서 성을 쌓기 위해 그런 모양이 되었고, 그렇기에 영주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남작은 가장 훌륭한 곳에서 사셔야 하니까요.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으니 우리는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48~49p)
그녀는 성병에 걸려있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죽었을 게야. 파케트는 꽤나 학식 있는 성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지. 역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네. 왜냐하면 그 수사는 늙은 백작 부인에게서 그 병을 옮았고 백작 부인은 기병대장에게서, 기병대장은 후작 부인에게서, 후작 부인은 어느 시동에게서, 시동은 한 예수회 수사에게서 옮았다니까. 그는 수련 수사 시절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 중 한 사람에게서 직접 그 병을 옮았다네.(61p)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p)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너무나 즐겁고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당신은 노래를 불렀고 자연스럽게 호감을 보이며 테아토 수사를 애무하고 있었지요. 당신이 불운하다고 말할 때 못지않게 당신은 행복해 보였는걸요.”
“아! 나리.” 파케트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이 직업의 비참한 일면입니다. 어제는 한 장교에게 돈을 뺏기고 매를 맞았는데 오늘은 한 수도사를 기쁘게 해주려고 기분 좋은 척 굴어야 하지요.”(170p)
“베네치아 총독에게는 총독의 근심이 있고, 곤돌라 사공에게는 사공의 근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체를 고려할 때 곤돌라 사공의 운명이 총독의 운명보다 좀 낫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며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172p)
바보들은 존경받는 작가라고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찬탄하죠. 나는 나를 위해서만 읽고 내 방식에 맞는 것만 좋아합니다.(177p)
인간은 불안의 격동 속에 살거나 아니면 권태의 혼수상태 속에서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결론지었다. 캉디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확신하지는 못했다. 팡글로스는 자신은 언제나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겪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변한 이상 계속 그것을 주장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202p)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일합시다. 그것이 인생을 견딜만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에요.”(206p)
ㅡ 볼테르,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