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0

 

 

 

“우정은 우정이고 자선은 자선이지.” 프리다가 말했다. “할머니가 어릴 때 독일에 살았던 거 너도 잘 알지, 얘기 많이 들었을 테니 또 하진 않으마.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는데, 너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절대 네 친구가 될 수 없어. 친구한테 적선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하거든.”(47p)

 

 

<솔루션>의 요체는, 게이머가 무작정 장치를 만드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고 간간이 질문도 하고 정보도 얻으면 점수는 낮아지지만 자신이 독일 제 3제국에 공급되는 기계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입수하고 나면 게이머는 생산량을 낮출 수도 있다. 제국이 감지하지 못하는 선에서 최소량만 만들어낼 수도 있고, 부품 생산을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게이머는 ‘선한 독일인’으로서 태평하게 최고점을 얻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공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독일식 활자체 문구가 화려하게 화면을 수놓는다. 축하하오, 나치당원! 귀하는 제 3제국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 했소! 귀하는 진정 효율화의 달인이구려! 미디로 손본 바그너가 울린다. <솔루션>의 핵심은 게임을 점수로 이기면 윤리적으로는 진다는 점이다.(59-60p)

 

 

여기에, 난관이 있었다. 샘과 세이디는 둘 다 게임에 관한 한 자신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금방 구별할 수 있었다. 세이디의 입장에선 그 지식이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도브와 함께 보낸 시간과 게임을 공부했던 세월이 뭘 보든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어떤 게임을 갖다줘도 잘못된 점은 콕 집어 말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지는 꼭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모든 풋내기 예술가들에겐 취향이 제 능력치를 앞서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과하도록 세이디를 밀어붙인 샘(이나 샘 같은 누군가)이 없었다면, 세이디는 지금과 같은 게임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116p)

 

 

샘은 자신이 무척 성숙한 줄 알았지만, 그 반응은 민망하리만치 유치했고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었다. 한번은 그때의 절교를 마크스한테 설명하려고 해봤는데, 마크스는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지금 이해를 못하는 거야. 그건 원칙에 관한 거라고. 세이디는 내 친구인 척했지만 사실은 봉사활동 때문에 그랬던 거잖아. 마크스는 멍하니 샘을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동정심만으로 뭔가에 수백 시간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샘.(264p)

 

 

 

ㅡ 개브리얼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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