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9

 

 

은주와의 대화 이후, 그제야 기본을 다 갖춘 삶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밥벌이해 먹고사는 데야 이 월급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꾸려나갈 건가.

(...)

또 기계처럼 일했고 공장에서 열두 시간을 보냈다. 힘들진 않았다. 다만 허무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영화 한 편이나 애니메이션 네 편 보면 또 회사. 맘놓고 쉴 수 있는 날은 고작 하루. 그나마도 야간에서 주간 전환 시엔 반나절 남짓. 이 굴레 안에 청춘을 계속 가두어놓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47p)

 

 

그제야 나 자신의 안일함을 깨달았다. 내가 누린 일상이란 그저 불행이 닥치지 않았기에 유지됐을 뿐. 나 또한 언제든 다칠 수 있으며, 사고로 인해 삶이 끝날 수 있단 생각이 들자 온갖 나쁜 미래상이 그려졌다. 일상이 무너진 현실을 상상하니 두려워졌다. 누가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는 공론은 허상일 뿐.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211-212p)

 

 

냉소는 인간의 가장 나쁜 감정입니다. 분노나 증오마저 마음먹기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냉소는 그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뿐이에요. 대상을 이해할 생각도 없고 공감하지도 못하니 무슨 발전이 가능하겠습니까.(272p)

 

 

ㅡ 천현우, <쇳밥일지>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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