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것들을 무시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떤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깊이 몰입한 나머지 옆에 앉은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집중의 힘을 뒤집어서 말하면 다른 것들을 지우는 힘이다. 결핍이 ‘집중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고 결핍이 사람들로 하여금 터널링을 하도록, 즉 임박한 결핍을 제어하는 데만 오로지 모든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끔 유도한다고 쉬운 말로 말할 수 있다.(60-61p)

 

 

결핍도 사람의 정신적인 프로세서에 비슷한 짓을 한다. 다른 처리 사항들을 정신에 끊임없이 짐 지울 때 정신은 긴급한 과제를 수행할 여유가 적어진다. 이로써 우리는 이 장의 중심적인 가설인 ‘결핍은 대역폭을 직접적으로 축소한다.’에 도달했다. 개인이 처음부터 타고난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이냐가 중요하다.(94-95p)

 

 

그렇다면 무엇이 결핍에 대해서 그렇게 특별할까?

결핍은 기본적인 속성상 여러 중요한 근심거리가 다발로 한 데 뭉친 것이다. 어느 곳 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부부싸움과 다르게, 돈 문제나 시간 문제와 관련된 몰입은 가난한 사람과 바쁜 사람 주변에 꼬여서 좀처럼 떠나지를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끊임없이 돈과 관련된 근심거리와 씨름해야 하고, 바쁜 사람 역시 시간과 관련된 근심거리와 씨름해야 한다. 결핍은 다른 근심거리들보다 우선되는 짐을 추가로 생성한다. 그리고 당연하게 지속적으로 대역폭에 세금을 부과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부자든 빈자든 자기 배우자와 싸울 수 있고, 또 자기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풍족함을 경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일부만 이런 문제에 사로잡히는 반면에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이런 문제에 사로잡힌다.(123p)

 

 

패스트푸드 가게의 매니저는 자기 직원들이 보이는 행동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숙련된 기술이 부족하다거나,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손님 응대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거나 하는 등의 일상적인 대상으로 눈을 돌린다. 사실상 세금이 부과된 대역폭은 실제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 즉, 회사일로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프레젠테이션 작업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딸에게 퉁명스러운 말을 쏘아붙일 때 이 사람은 나쁜 아버지로 보인다. 돈에 쪼들리는 대학생이 시험에서 쉬운 문제 몇 개를 틀렸을 때, 이 학생은 게으르거나 무능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업무에 숙련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부주의한 것도 아니다. 단지 무거운 대역폭 세금에 짓눌려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결핍이다.(127p)

 

 

덜 바쁜 사람의 경우, 느슨함은 실수를 흡수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최소화한다. 이에 비해서 바쁜 사람은 실수의 부정적인 결과를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추가되는 시간만큼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대가를 훨씬 더 크게 치러야 한다. 우리는 조금 전에 느슨함이 얼마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우리는 한 번도 쓰지 않을 물건을 사며 돈과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느슨함에 감추어져 있는 어떤 유효성을 발견할 수 있다. 느슨함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만회할 수 있는 여지, 실패를 해도 괜찮을 여유 공간을 제공한다.(157-158p)

 

 

 

ㅡ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결핍의 경제학> 中,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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