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9
좋다. 좋아. 굉장히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는 책인데, 술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중독에 대한 분석에 크게 공감하며 읽을 책이다. 술을 먹는 이유에 대한 탁월한 분석인 아래의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AA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우리는 방향 감각도 잃고 발 딛고 선 땅에 대한 안정감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 사항들(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느낌과 싫어하는 느낌,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필요한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술에 젖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찾아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113-114p)
'그런데 뭐가 문제였지?‘
내 이력은 모범 시민이나 초망받는 젊은이의 것이지, 술주정뱅이의 것이 아니었다. 교육과 학문의 도시 케임브리지가 고향으로, 집은 하버드 대학 근처다. 학력은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 대학 81년 졸업으로, 마그나 쿰 라우데(우등 졸업)이다. 부모는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두 분 모두 헌신적이며 통찰력과 지성을 고루 갖췄다.
다시 말해서 나는 안정적인 상류층 가정의 모범 자녀였다. 나는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
물론 간단한 답은 없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공기를 묘사하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단정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크고 오묘하고 곳곳에 편재해 있다. 인생의 모든 굽이에 알코올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존재를 느끼면서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하나, 알코올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평범한 술꾼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구체적인 선을 넘어 버리는 것은 어떤 단순한 이유, 어떤 한순간, 어떤 단일한 심리적 사건을 통해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느리고 점진적이며 집요하고도 불가해한 형성의 과정이다.(22p)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은 주변에 아주 흔하다. 이들은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식품점 계산대에 얌전히 줄 서 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정치인, 화가, 심리치료사, 증권거래인, 건축가 등 전문 직업인도 많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 다시 말해서, 이들이 밤마다 술에 빠지고,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들이 '진짜'주정뱅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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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헬레나는 술을 끼고서 생물학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지니는 쟁쟁한 로펌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사라는 유력 환경단체를 창립하고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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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아주 전형적인 예에 불과하다. 강하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은(알코올이 자기 인생에 미치는 수많은 무형의 영향을 외면한 채 술을 부어 넣는) 명확하게 강하고 똑똑하고 유능하다. 내가 아는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알코올 중독을 끌어안고서도 그만한 성과를 이루었다는데, 또 자신들의 위장 노력이 그토록 기막힌 효과를 발휘했다는 데에.(28-29p)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항상 자신보다 더 심한 사례를 찾는다.
"진짜 알코올 중독자란 바로 저런 경우야"라고 말할 만한 사람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 지하철에서 술을 병째로 들이켜는 부랑자, 싸구려 호텔에서 술에 젖어 비틀거리는 붉은 얼굴의 세일즈맨.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열 단계, 스무 단계 아래에 떨어져 있으니 우리가 음주 때문에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그들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아무 문제 없고 안전해보였다. 우리의 통제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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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까지는 안전하고, 바로 그다음 자리에 선 사람들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50-51p)
"그럴게. 나도 너무 취하고 싶진 않아."
물론 말할 때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내가 마시는 술의 양을 조심스럽게 헤아렸다. 30분 동안 와인 한 잔, 그리고 다음 30분 동안 또 한 잔, 이런 식으로. 그런데 중간에 어떤 신호가 탁 끼어들면 그때부터 통제 불능의 과정이 시작된다. 2~3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여섯 잔째인지 열 잔째인지 알 수 없는 술을 마시고 곤죽이 되기 일쑤였다. 그 과정을 설명도 해명도 할 수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술은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의지를 잠재우며, 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일정량의 술에 만족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마셔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코올 중독의 질병 이론(알코올 중독자의 몸은 생리학적으로 술에 비중독자와 다르게 반응한다는)을 지지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 온몸에 강렬한 결핍감이 들어차서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들지 않는다. 내 친구 빌은 알코올 중독이 질병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굳은 의지만 있으면 술 따위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어머니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다음에 설사가 찾아오면 그걸 한번 조절해보세요."
거칠지만 의미 있는 비유다.(86-87p)
이런 느낌은 늘 내 마음속에 존재했다. 이런 식의 '갈망 대상', 이것만 있으면 너는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을 거라는 영혼의 유혹물은 언제나 바깥에서 내 눈을 현혹시켰고, 나는 그런 유혹을 쉽게 잊지 않았다. 어린 시절 오랫동안 파티 구두와 승마 부츠에 목을 매던 나는, 커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알코올에 매달리게 되었다. 의도도 동기도 같았다. 다른 것은 대상뿐이었다.(92p)
알렉스라는 남자는 자신을 '군집성 내향자'라고 불렀다. 그는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혼자 가만히 앉아 자기 생각에 휘말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낯가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교 시절 술과 처음 만났을 때, 술은 그에게 하늘의 영약이 되었다. 맥주 몇 잔을 마시면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간을 쪼그라들게 하던 것, 손을 멈칫거리게 하던 것, 아무리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증 같던 것이 스르르 씻겨 내려갔다. 그의 전 존재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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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내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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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술은 그런 효력을 발휘하고, 그 효력이 발취되는 동안 술은 우리에게 자기 발견의 길처럼 느껴진다. 우리를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켜주는 수단, 아니면 내부에 깃든 진정한 모습을 찾아주는 그런 수단처럼. 어떻게 보면 술의 행로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순간까지 알코올은 모든 것을 개선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그리고 아직 개선 도정에 있는 동안 술이 우리를 다른 자아로 고양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놀랍다.(100-101p)
AA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우리는 방향 감각도 잃고 발 딛고 선 땅에 대한 안정감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 사항들(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느낌과 싫어하는 느낌,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필요한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술에 젖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찾아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113-114p)
알코올 중독자들은 거의 자동으로 인간관계가 엉망이다. 우리는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당당하게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술에 취해 질척질척 흘러 들어간다.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우리 자신의 핵심 버전, 그러니까 우리가 본래 가지고 나왔고,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버전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극도로 불편해하는데 여기서 알코올은 그런 불편함을 막아주는 한편, 그것을 진실로 극복하는 길 또한 막아버리는 이중적 작용을 한다. 우리는 감정을 솔직히 대면하는 것보다 거기서 한 발짝 물러서는 데 훨씬 더 익숙하다. 갈등을 느끼는가? 마셔라. 불안한가? 마셔라. 울화가 치미는가? 마셔라.(131p)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라 해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156p)
그 무렵 나는 끊임없이 마셔대는 맥주와 와인이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에 대한 뼈저린 의식을 막아주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감당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163-164p)
게다가 술을 끊기까지 나는 알코올 중독은 병리적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인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알코올 중독에 관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이고도 심각한 오해 중 하나다. 우리는 술 때문에 문제를 빚는 것은 의지박약의 증거고, 자제력 부족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쁜 것이다.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정신분석가의 딸로 자란 나는 그 해결 방법도 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재활센터에 들어가기까지 그것을 직접 실행해보기도 했다).
'왜 술을 마시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라. 숨겨진 분노와 두려움, 네 심리적 뿌리를 밝혀내라.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열심히 생각하면 정신이 건강해질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너를 맡겨라.'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자기기만이다. 결국 재활센터에 들어간 나는 음주 문제에는 생리학적 근원이 있다는 강연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의 강연자들은 내가 수많은 밤 그토록 비이성적으로 술을 마셔댄 것은 강력한 물질적 메커니즘이 작용한 탓이라고 역설했다.
(...)
"두뇌 기능이 손상되어 좋은 기분을 전해주는 물질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술을 끊는다면 그러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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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연구는 왜 알코올 중독의 재발 비율이 그렇게 높은지도 설명한다. 신경의 보상 회로는 기억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의 메시지(알코올은 쾌락이다)가 두뇌에 저장되면, 그 메시지는 무기한 남는다. 와인 잔을 본다거나, 진의 냄새를 맡는다거나, 좋아하는 술집 앞을 지나가는 등 환경적 요인도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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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비율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통계는 랜드 코퍼레이션이 1980년 1월에 발표한 보고서 <알코올 중독의 경로 : 재활치료 후 4년>인데, 이는 지금까지 나온 동일 분야 연구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알코올 중독 남자 900명을 4년에 걸쳐 조사·연구한 것인데, 그들 가운데 오직 28퍼센트만이 재활치료를 받고 18개월 후와 4년 후에 알코올 문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15퍼센트만이 4년 동안 지속적인 완화 경향을 보였다.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고 나면, 확률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다시 안전하게 술을 마실 길, 정상적이고 사교적이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음주로 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런 일을 설명할 때 오리와 피클이라는 비유를 든다. 알코올 중독자는 피클이 된 사람들이다. 오이가 피클이 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만, 피클이 된 것을 오이로 되돌릴 수는 없다.
(...)
AA 모임에서 만난 한 남자는 3년 동안 술을 끊고 나서 다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 사연을 말했다. 그는 '이제 절제된 음주를 실험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스카치 한 병을 샀다. 한 잔을 마셔보니 별일 없었다. 그 자리에 거꾸러지지도 않았고, 광기도 폭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 잔 더 마셨다. 그리고 또 한잔······ 그렇게 저녁나절이 흐르고 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탄했다.
"실험은 실패야."
스카치 병은 남김없이 비워졌다.(182-185p)
그러나 윌슨은 그곳에서 어떤 가능성 있는 해결책에 맞닥뜨렸다. 그것은 다른 알코올 중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다양하기도 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어쨌거나 그 핵심 요인 하나는 AA 모임이 갖는 집단적 희망과 자발적 지원과 관련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기억이 매우 선별적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숙취를 겪었어도, 아무리 수치스러운 실수를 저질렀어도, 음주운전을 하다가 아무리 위험한 고비를 넘겼어도, 술을 대하면 그런 상황들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술을 마시고픈 욕망이 극도로 강렬해지면, 그러한 기억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의지력은 자취를 감추고, 결단력은 해체되고, 방어력은 무너진다.
AA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AA의 공감 활동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서로 도와 선별적 기억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게 해주고,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생활이 술을 끊고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준다.(186-187p)
우리가 진실로 거식증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거식증 아니라 유사한 어떤 중독도) 그밖에 달리 대안이 없을 때뿐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느낌이 커지고, 우리가 겪는 고통(처절함, 지겨움, 불행함)이 너무 커졌을 때뿐이다.(203p)
나는 안심했다.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 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
최악의 순간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비밀을 누설했는지, 친구를 두고 무슨 험담을 했는지, 무슨 자랑을 늘어놓았는지를 기억하려고 머리를 쥐어짤 때다. 때론 술에 취하면 평소에 지닌 사회적 행동 규범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
'미건이 짐이랑 같이 잔 거 알았어? 그래, 헬렌이랑 사귀고 있을 때 말이야. 그래, 그리고 헬렌이 그러는데 짐은·····'
그런 다음 날 아침 후회로 몸을 움츠린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정보와 힘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접근할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리고 싶었다.
(...)
다음 날 후회할 짓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가치를 갉아먹는 짓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쨌건 그 일을 저지르고, 다음 날 아침 그 사실을 기억한다.(226-227p)
많은 알코올 중독자가 평범한 과음 수준을 벗어나 고삐 풀린 폭음의 단계로 넘어갔을 때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일은 외부의 사건처럼 우리에게 그냥 닥쳐온다.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어요.'
AA 모임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다.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를 더 열심히 기억한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 마신 때를, 집에 안전하게 돌아온 때를, 자기 침대에서 깔끔하게 깨어난 때를. 그리고 불미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거나 지난밤의 일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뭔가 변명을 둘러댄다.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는다. 스트레스, 힘든 인생, 호르몬.(231p)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나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줄리안뿐이니, 이 세상에서 나를, 진정한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오직 줄리안뿐인 것 같았다. 자기혐오가 들끓으면서, 그를 잃을 거라는 두려움도 함께 끓어올랐다.
(...)
그 싸움이 있고 나서 나는 집을 보러 다녔다. 내 처지는 참담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셨다. 누구라도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나에게는 술이 필요했다. 숙취가 악화하면 그만큼 내 인생도 악화하였다.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일과 후에 술을 마셔야 한다는 집착도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겼다. 어려움이 걷히면 술을 줄여야지. 술 마실 이유가 줄어들면 반드시 줄이고 말 거라고 다짐했다.
"너라도 나 같은 처지라면 술을 마셨을 거야. 나는 술 마셔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하니까 마시는 거라고."
이것이 바로 지상의 모든 알코올 중독자가 되뇌는 논리다.
이런 패턴이 고착될수록 음주는 지속하고 증대한다. 시간은 흐르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냥 기다릴 뿐이다. 기다리면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동안 우리의 두 발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259-260p)
리넷도 그랬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꾸려놓고도 남자친구 제이슨을 탓했다. 그녀는 로버트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눈길에 닿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탓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줄리안이 줄리안다운 것에 화를 냈다. 그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에 화를 냈다. 그리고 마이클이 내게 매우 친절한 것에, 내게 화를 내지 않는 것에, 나더러 자기에게만 마음을 쏟으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에 화를 냈다. 그렇게 줄리안이 변하기를 바라면서, 마이클이 변하기를 바라면서, 줄리안이 다른 도시로 이사 가기를 바라면서, 이런저런 수많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모든 일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면서 몇 년이 흘러갔다.
존과 앤드리아처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는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것, 그들 또한 이따금 자신들의 관계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는 것, 상대의 한계를 받아들이려고 고투한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실망감을 이겨내며 산다는 것, 이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289p)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아직은 말이다.
'아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직은'의 행렬이 이어졌다. 나는 아직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아직은 직장도 잃지 않았어, 아직은 교도소에 가지도 않았어, 차로 전봇대를 들이받지도 않았고, 총을 빼앗아 술집에서 사람을 쏘지도 않았어, 또 술에 취해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당하지도 않았어, 아직은.
이렇게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계속 술을 마시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AA에서는 'yet'이라고 불렀다. 이런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손짓 한 번, 발검을 한 번 잘못하면 내 무릎 대신 어린 소녀의 머리가 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은.
YET은 AA에서는 'You're Eligible Too당신도 예외가 아니다'의 약자로 해석한다.(318-319p)
우리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개의 목에 걸린 줄처럼 우리를 끌어 내리고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모멸감, 이 모든 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찔함.(330p)
술을 끊고 2~3주가 지났을 때였다. 퇴근 후 마이클의 집에 가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술이 마시고 싶었다. 백포도주 한 잔이면 될 것 같았다. 그 욕망이 너무도 강해서 울었다. 그리고 이를 악문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엌에서 와인 잔에 술을 따르고, 그 잔을 들고 거실로 나오고, 소파에 앉아 첫 모금을 들이켜는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와인의 맛이 혀 끝에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주유 판매점으로 달려나가 술을 사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첫 잔은 바로 둘째 잔으로 이어지고, 둘째 잔은 다음 잔, 또 다음 잔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한 잔도 마시지 않거나, 한 잔을 마시고 한 병 혹은 그 이상을 갈망하는 것. 이러한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렇게 첫 잔 이후의 일을 있는 힘껏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딱 한 잔'이란 없었다는 것은.(349p)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알코올 중독자든 아니든 간에)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ㅇ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 것처럼. 아버지나 줄리안 같은 남자들이 소량의 세련미와 자신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이란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며 중독을 벗어나는 것은 이런 오해를 뒤집어서 성장은 안에서 뻗어 나오는 것이며,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360p)
ㅡ 캐롤라인 냅,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中,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