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1

 

올해 상반기 베스트.

이 책에 비해 더 늦게 쓰인 책이지만 먼저 읽었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 저자의 TED 강연을 바탕으로 훨씬 간명하고 핵심만 일러주는 책이라면 이 책은 풍부한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를 논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그리고 이해를 못할 것 같은 독자를 위해 비유를 많이 드는데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나는 모든 비유가 그렇듯 적절한 비유는 내용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비약이 심한 비유는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원론적인 생각 정도를 했다.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는 이처럼 확고한 지적 전통에서 탄생했고 우리 문화와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이 견해가 결코 진실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100년 이상의 과학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감정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는 신체 지문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피험자의 얼굴에 전극을 부착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동안 안면 근육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측정했던 과학자들은 어마어마한 다양성에 직면했을 뿐이며 거기에서 일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신체와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다양성을, 즉 지문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뿐이다. 당신이 분노를 경험할 때, 혈압의 급상승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당신이 공포를 경험할 때, 역사적으로 공포의 중추라는 이름표가 붙은 뇌 부위인 편도체가 관여할 수도 있고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 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한다.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다. 오히려 감정은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실재한다. 다시 말해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산물이다.

내가 구성된 감정 이론이라고 부르는 견해에 따르면 멀로이 주지사의 연설 중 일어난 사태를 매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멀로이 주지사의 목이 메었을 때, 이것이 내 안의 슬픔 회로를 촉발해 일련의 전형적인 신체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내가 슬픔을 느낀 까닭은 특정 문화 속에서 성장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한 신체 감각이 끔찍한 인명 피해와 동시에 일어날 경우 '슬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이다. 총기 사고에 대한 나의 지식, 그 피해자들과 관련된 나의 예전 슬픔 같은 과거 경험의 조각들을 사용해 나의 뇌는 내 몸이 이런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신속히 예측했다. 그리고 이 예측 때문에 내 심장이 두근거렸고, 내 얼굴이 붉어졌으며, 내 위가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예측이 내게 울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래서 내 신경계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슬픔의 사례로서 의미를 지니는 최종 느낌이 남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뇌가 나의 감정 경험을 구성했다. 나의 특정한 동작과 감각은 슬픔의 지문이 아니었다. 만약 뇌의 예측이 달랐다면, 나의 피부는 붉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위에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뇌는 이렇게 해서 생긴 신체 감각을 여전히 슬픔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원래 경험한 심장의 두근거림, 얼굴의 붉어짐, 위의 뭉치는 느낌, 눈물 등은 슬픔이 아니라 분노나 공포 같은 다른 감정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또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면, 예컨대 결혼식장이라면 똑같은 신체 감각이 기쁨 또는 감사의 감정이 될 수도 있다.(21-23p)

 

 

 

캄라스와 오스터가 보여준 것처럼 사람들이 주위 맥락에서 어마어마한 정보를 얻는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한 연구에서는 함께 부합되지 않는 얼굴과 신체 사진을 결합해 제시했다(예컨대 기저귀를 들고 있는 신체에 화가 나서 노려보는 얼굴을 결합해 제시했다). 그러자 피험자는 거의 언제나 얼굴이 아니라 신체에 적합한 감정을, 즉 이 경우에는 분노가 아니라 혐오를 지각했다. 그리고 당신의 뇌는 다른 많은 요인을(몸의 자세, 목소리, 전체 상황, 당신의 평생 경험 등을) 함께 고려하여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움직임이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낸다.(43-44p)

 

 

'공포'같은 하나의 감정 범주 안에 이렇게 다양한 안면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뜬 얼굴이 공포의 보편적 표현이라는 자연스러운 신념을 가지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문화 안에서 잘 알려진 '공포'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고정 관념 또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부터 "노려보는 사람은 화난 사람이고, 입을 삐죽 내민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고정 관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이런 고정 관념은 문화적 약식 기호 또는 관습이다. 우리는 각종 만화, 광고, 인형의 얼굴, 이모티콘 등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도형에서 이것을 보게 된다. 대학 교과서에서는 이런 고정 관념을 심리학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치료사는 이런 고정 관념을 환자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대중매체는 이것을 세계 곳곳에 전파한다.(46-47p)

 

 

수백 가지 실험을 요약한 네 가지 메타 분석을 통해 감정마다 일관되고 특수한 지문이 자율신경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감정이 착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신체 반응이 아무 규칙도 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우에 따라, 맥락에 따라, 연구에 따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한 사람 안에서도 동일한 감정 범주가 상이한 신체 반응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관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표준이다.(53p)

 

 

내게 찾아온 기회는 감정이 어떤 물체가 아니라 여러 사례를 포괄하는 범주이며, 어떤 감정 범주든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다양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밖의 깨달음이었다. 예컨대 분노는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로 예측 또는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누군가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당신은 고함을 치며 욕을 하는가 아니면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는가? 당신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괴롭히는가? 아니면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치켜 올리는가? 이런 동작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당신의 혈압은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으며 그대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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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는 이렇게 다양한 분노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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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도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다양한 사례를 포괄하는 감정 범주를 다루면서 생물학에서 다윈의 제안 이래로 표준이 된 개체군 사고라는 것을 적용하고 있었다. 예컨대 동물의 종과 같은 범주는 지문 같은 공통 핵심이 없는 유일무이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개체군이다. 집단 수준에서 범주는 오직 추상적이고 통계적인 용어로만 기술될 수 있다. 3.13명으로 이루어진 미국인 가족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령 평균 분노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정확히 일치하는 분노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노 사례가 존재도 불확실한 분노의 지문이라는 것을 닮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문이라고 불러 온 것은 그저 고정 관념일 뿐이다.

내가 개체군 사고의 관점을 받아들인 순간 나의 이론적 전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변이를 오류가 아니라 정상으로, 나아가 바람직한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54-55p)

 

 

뇌 손상 연구의 발전과 함께 편도체가 손상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수행됨에 따라 공포와 편도체 사이에 분명하고 구체적인 연관이 있다는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아마도 우르바흐-비테 병 때문에 편도체가 상실된 일란성 쌍생아의 사례가 가장 중요한 반대 증거를 제공했다고 본다. 이 두 여성은 12세에 우르바흐-비테 병 진단을 받았으나, 지능은 정상이었고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았다. 이 쌍둥이는 동일한 DNA와 동급의 뇌 손상을 가지고 있었고 공통의 환경 속에서 아동기와 성인기를 보냈지만 공포에 대해 매우 상이한 반응 특성을 보였다. 쌍둥이 중 한 명인 'BG'는 SM과 매우 비슷했다. 즉 그는 SM과 비슷하게 공포 관련 결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산화탄소가 추가된 공기를 호흡하면 공포를 경험했다. 반면에 쌍둥이 중 다른 한 명인 'AM'은 공포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AM의 경우에는 결핍된 편도체가 뇌의 다른 신경망을 통해 보충되었다. 이렇게 동일한 DNA를 가진 일란성 쌍생아가 동일한 뇌 손상을 겪었고 매우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한 명은 어느 정도 공포 관련 결함을 보인 반명에 다른 한 명은 그런 결함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발견은 편도체에 공포에 대한 회로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약화시킨다. 오히려 뇌에 공포를 만들어내는 복수의 방식이 존재할 것이며, 따라서 '공포'라는 감정 범주를 특정 부위에 한정할 수 없다는 가정에 무게를 더한다. 과학자들은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공포 외에 다른 감정 범주에 대해서도 연구했는데, 결과는 비슷하게 가변적인 것이었다. 편도체 같은 뇌 부위는 보통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부위는 감정의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다.(58-59p)

 

 

2008년에 우리 연구실에서는 신경학자 크리스 라이트와 함께 기본 감정 기법에서 사용된 공포 얼굴에 대한 반응으로 편도체 활동이 증가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있었다. 편도체는 공포에 휩싸인 얼굴이든 중립적인 얼굴이든 상관없이 피험자가 그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에 모든 낯선 얼굴에 대한 반응으로 활동이 증가한다. 기본 감정 기법에서 사용된 사진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공포에 휩싸인 듯한 안면 배치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기 때문에 뇌 영상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에게 낯선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 및 이와 비슷한 다른 결과들은 원래 실험에 대해 편도체를 공포의 뇌 부위로 간주하지 않는 대안적 설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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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어느 뇌 영역에도 감정에 대한 지문은 없다는 것이었다. 지문은 상호 연결된 분위를 하나로 간주하든(신경망) 아니면 개별 뉴런을 전기로 자극하든 상관없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른바 감정 회로가 있다고 주장되는 원숭이나 쥐 같은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감정은 뉴런들이 점화를 통해 발생한다. 그러나 오로지 감정에만 관여하는 뉴런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이런 연구 결과는 뇌의 개별 부분에서 감정의 자리를 확인하려는 시도에 종말을 고하는 최종 결정타였다.(62-65p)

 

 

시뮬레이션은 당신의 뇌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측하는 과정이다. 당신은 깨어 있는 매순간 눈, 귀, 코, 그 밖의 다른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잡다하고 애매모호한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 이때 당신의 뇌는 당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시뮬레이션) 이것을 당신의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불협화음과 비교한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뇌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잡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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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은 모든 정신 활동의 기본 모드다. 또한 이것은 뇌가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74p)

 

 

물론 이런 경계에 물리적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결코 산을 호수로 지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상대적이지는 안다.

당신이 가진 개념들은 당신의 뇌가 감각 입력의 의미를 추측할 때 사용하는 기본 도구다. 예컨대 개념을 통해 소리 압력의 변화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당신은 그것을 무질서한 잡음이 아니라 단어 또는 음악으로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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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개념은 맛과 냄새를 만들어내는 화학 물질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필크빛 아이스크림을 건네다면, 당신은 딸기 맛을 기대(시뮬레이션)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선 맛이 난다면, 당신은 어리둥절하고, 심지어 구역질나게 느낄 것이다. 반면에 내가 이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얼린 연어 크림이라고 미리 말해서 당신의 뇌가 적절한 사전 경고를 받았다면, 이번에는 똑같은 맛이 감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은 음식이 물리적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음식'이라는 개념은 매우 문화적인 것이다. 물론 몇몇 생물학적 제약이 있기는 하다. 당신은 면도날을 먹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몇몇 물질은 우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도 음식으로 지각하질 않는다. 예컨대 일본의 별미 음식 중에 벌의 유충으로 만든 하치노코라는 것이 있는데, 대다수 미국인은 이것을 아마 쳐다보지도 않으려 할 것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바로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76-77p)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당신은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당신 감정의 능동적 구성자이다. 당신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한다. 만약 당신에게 과거 경험을 표상하는 개념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감각 입력은 잡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감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으로 인해 야기됐으며, 이것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의 뇌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의미가 때로는 감정인 것이다.

구성된 감정 이론과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는 어떻게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세계 안의 사태가 우리 안의 감정 반응을 촉발한다. 매우 직관적인 이 이론에는 서로 다른 뇌 영역에 살고 있는 사고와 감정 같은 낯익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반면에 구성된 감정 이론은 당신의 일상적인 삶에 어울리지 않는 이론을 내놓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당신의 되는 감정을 포함해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은근슬쩍 구성한다. 이 이론에는 시뮬레이션, 개념, 변성 같은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며, 이것은 뇌 전체에 걸쳐 동시에 일어난다.(81-82p)

 

 

구성된 감정 이론에는 여러 종류의 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구성이라고 불리는 접근법에서는 우리가 세계 안에서 지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사회적 가치와 관심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한다. 예컨대 명왕성이 행성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천체물리학이 아니라 문화에 기초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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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심리적 구성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종류의 구성에서는 우리의 내면에 관심의 초점을 둔다. 여기서는 당신의 지각, 사고, 느낌 등이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19세기의 몇몇 철학자들은 마음을 커다란 화학 시험관처럼 보았다. 그들은 원자가 결합해 분자가 되듯이 단순한 감각들이 결합해 사고와 감정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마음을 레고 블록과 같은 다용도 부품 세트로 보았으며, 이런 부품들이 인지와 감정 같은 다양한 정신 상태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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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의 이런 원리는 놀랍게도 뇌의 물리적 구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이런 견해를 가리켜 신경 구성이라고 부른다. 시냅스로 연결된 두 개의 뉴런을 생각해보자. 분명히 이런 뇌 세포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뉴런이 '회로' 또는 '체계'라고 불리는 어떤 통일체의 일부인지 아니면 이 두 뉴런이 각각 별개의 회로에 속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절'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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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구성은 세포 수준까지 철저하게 적용된다. 뇌의 큰 구조는 많은 부분 미리 결정되어 있지만 미세한 배선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과거 경험이 당신의 미래 경험과 지각을 결정하는 데 기여한다. 신경 구성은 어떻게 인간 유아가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없이 태어나 생후 며칠 만에 이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어린 시절의 문화적 경험에 따라, 예컨대 당신의 보호자가 당신과 신체 접촉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그리고 당신이 아기 침대에서 혼자 잤는지 아니면 가족과 함께 잤는지 등에 따라 뇌의 배선이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구성된 감정 이론은 이 세 종류의 구성을 모두 포함한다. 사회적 구성의 관점에서 이 이론은 문화와 개념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심리적 구성의 관점에서 이 이론은 감정이 뇌와 신체의 핵심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본다. 그리고 신경 구성의 관점에서 이 이론은 경험에 따라 뇌의 배선이 달라진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84-87p)

 

 

머핀과 컵케이크의 구별은 사회적 실재다. 즉 물리적 세계의 물체가(예: 구운 제품) 사회적 협의를 통해 추가 기능을 떠안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도 사회적 실재다 심박수, 혈압, 호흡의 변화 같은 물리적 사태가 감정 경험이 되는 까닭은 문화 속에서 학습한 감정 개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감각에 추가 기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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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실재는 그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피부 속으로 파고든다.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동일한 구운 제품을 난잡한 '컵케이크'로 지각하기도 했고 건강에 좋은 '머핀'으로 지각하기도 했는데, 이에 따라 신체의 대사 작용도 달라졌다. 이처럼 당신이 문화 속에서 습득한 단어와 개념은 당신의 뇌 배선과 당신이 감정을 경험하는 동안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94p)

 

 

당신은 당신이 보는 것을 결정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당신은 당신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단순한 시각적 입력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은 인간 감정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우리 연구실에서 수백 번의 실험을 수행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한 수천 건의 실험을 검토한 후에 나는 완전히 비직관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공감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얼굴로부터 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 내부의 핵심으로부터 감정이 발산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분출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혁신을 통해 감정의 생물학적 지문이 기적같이 발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장된 채 그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을 인식 또는 확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체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우리 자신의 감정 경험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구성한다.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뇌의 동물적인 부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가공의 감정 회로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97p)

 

 

이런 감정은 특정 조건에서, 즉 고의든 아니든 사람들에게 서양식 감정 개념에 관해 아주 작은 양의 정보만 제공했을 때 보편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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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감정 기법을 사용한 많은 비교문화 연구에는 흥미진진한 다른 요소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심지어 의도하지 않고도) 감정 개념을 가르치기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119p)

 

 

당신의 뇌에 있는 860억 개의 뉴런은 거대한 신경망에 연결된 채 외부 시동이 걸리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자고 있지 않다. 당신의 뉴런들은 언제나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며 때로는 수백만 개를 한꺼번에 자극하기도 한다. 산소와 영양분이 충분할 경우 내인성 뇌 활동이라고 불리는 이 막대한 양의 다단계 자극 활동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 활동은 외부 세계에 의해 촉발된 반응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오히려 외부 촉매가 필요 없는 과정인 호흡에 더 가깝다.(127p)

 

 

당신의 뇌는 예측을 사용해 신체 움직임을 개시하기도 한다(예: 팔을 뻗어 사과 집기, 뱀을 피해 쏜살같이 달아나기). 이런 예측은 당신이 몸을 움직이려는 의식적 자각 또는 의도를 갖기 전에 일어난다. 신경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자유 의지의 착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착각'이라는 단어는 부정확한 면이 있다. 당신의 뇌가 당신을 속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곧 당신의 뇌다. 그리고 당신의 뇌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태는 뇌의 예측력에 의해 야기된다. 이것이 착각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움직임이 2단계 과정처럼(결정부터 하고 그 다음에 움직이기)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신이 움직이려는 의도를 자각하기 꽤 오래전에, 심지어 당신이 사과를(또는 뱀을) 실제로 접하기도 전에, 당신의 뇌가 운동 예측을 산출해 신체를 움직인다!

만약 당신의 뇌가 그저 반응만 한다면, 이것은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기에 너무 비효율적일 것이다. 당신은 늘 대량의 감각 입력에 노출되어 있다. 깨어 있는 매순간 1개의 인간 망막은 부하가 잔뜩 걸린 1개 전산망 연결과 맞먹는 양의 시각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제 거기에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감각 경로의 수를 곱해보라.(131p)

 

 

정동은 당신이 하루 동일 경험하는 일반적인 느낌이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며 두 가지 특징을 지닌 훨씬 단순한 느낌이다. 첫 번째는 당신이 느끼는 쾌감 또는 불쾌감에 관한 것인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유인성valence이라고 부른다. 피부에 와닿는 햇빛의 쾌감,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 선사하는 맛있는 느낌, 복통이나 심한 통증이 안기는 불쾌감 등은 모두 정동적 유인성의 예다. 정동의 두 번째 특징은 당신이 느끼는 평온 또는 동요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흥분도arousal라고 불린다. 좋은 소식을 기다릴 때의 기운 넘치는 느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후의 예민한 느낌, 오래 달리기 후의 피로, 잠을 못 자서 느끼는 피곤함 등은 흥분도가 높거나 낮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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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은 이미 말했듯이 내수용에 의존한다. 이것은 정동이 당신의 삶 전체에 걸쳐, 심지어 당신이 완전히 가만히 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도 끊이지 않는 연속적 흐름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신이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어떤 사태에 대한 반응으로 켜지거나 꺼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동은 밝음이나 시끄러움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당신의 뇌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의 파장을 표상하면, 당신은 밝음과 어두움을 경험한다. 당신의 뇌가 공기의 압력 변화를 표상하면, 당신은 시끄러움과 조용함을 경험한다. 그리고 당신의 뇌가 내수용성 변화를 표상하면, 당신은 쾌감과 불쾌감, 동요와 평온을 경험한다. 정동, 밝음, 시끄러움은 모두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있다.(150-151p)

 

 

정동의 원인을 모른 채 정동을 경험할 경우 당신은 정동을 세계에 대한 당신의 경험이 아닌 세계에 관한 정보로 취급할 확률이 높다. 심리학자 제럴드 클로어는 수십 년 동안 재치 있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매일 직감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연구했다. 이런 현상은 정동 실재론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세계에 관한 사실로 경험하는 것이 일부는 우리의 느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155p)

 

 

당신의 신체 예산에 대규모 예금 또는 인출이 발생할 때마다(예: 음식 먹기, 운동하기, 부상당하기) 당신의 뇌가 이것을 따라잡기까지 조금 기다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라톤 선수들은 이것을 잘 안다. 그들은 레이스 초기에 신체 예산이 아직 바닥나지도 않았어도 일찌감치 피로를 느낀다. 그래도 계속 달리다보면, 불편한 느낌이 사라진다. 이렇게 그들은 에너지가 바닥났다고 주장하는 정동 실재론을 무시한 셈이다.

이것이 당신의 일상생활에 의미하는 바를 잠시 따져보자. 당신은 신체로부터 받는 느낌이 신체의 실제 상태를 언제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방금 배웠다.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 허파에 공기가 차는 느낌 같은 낯익은 감각과 전반적인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 같은 정동은 실제로 당신의 신체 안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에서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한마디로 말해 당신은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정동은 기본적으로 예측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이미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당신이 보게 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것이 바로 정동 실재론이다. 그런데 당신이 살면서 경험하는 대다수 느낌도 마찬가지다. 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느낌도 뇌의 감각 부위에서 구성되고 감각 입력(실제 맥박)을 통해 수정되는 시뮬레이션이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은 당신의 지식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수행된 예측에 기초한다. 당신은 진실로 당신 경험의 설계자다. 믿는 것이 곧 느끼는 것이다.(160-161p)

 

 

그러나 이런 '특정 조건'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이 합리적 의사 결정자라는 것이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실험 연구를 발표하면서 사람들이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왔다. 당신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감정을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신체 예산 상태가 모든 사고와 지각의 기초이며 내수용과 정동이 당신의 매 순간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합리적 존재로 경험할지 모르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당신의 신체 예산과 이에 연결된 정동이 꿈틀거리고 있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 합리적이라는 견해가 경제에 그렇게 해로운 것이라면, 그리고 이것이 신경과학의 뒷받침을 받지도 못한다면, 어째서 이런 견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버티는가? 그 이유는 동물의 왕국에서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합리성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일 것이다.(165-166p)

 

 

당신의 지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세계 자체를 경험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당신이 경험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구성한 세계다. 당신이 외부 세계로서 경험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당신의 머리 안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얼룩들 안에서 꿀벌을 지각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개념을 사용해 범주화할 때 당신은 당신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넘어선다.

이 장에서 나는 당신이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각할 때마다 당신이 또다시 개념을 사용해 범주화하면서 내수용과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성된 감정 이론의 핵심 주제다.

"당신은 범주화를 통해 감정 사례들을 구성한다. 이 얼마나 특별한 현상인가?"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지각, 사고, 기억, 기타 정신 사태가 범주화를 통해 구성되며, 따라서 감정 사례도 당연히 똑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174p)

 

 

실제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아기는 단어 없이 물리적 유사성으로 정의된 개념보다 단어를 제시했을 때 목표에 기초한 개념을 더 잘 학습한다.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경이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하게 생긴 물체들을 보면서 이것들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동물은 무수하게 많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는 생김새도 다르고 소리도 다르며 촉감도 다른 물체들을 제시해도 여기에 단어 하나만 추가하면 이런 물리적 차이를 넘어서는 개념을 형성한다! 아기는 물체들이 오감을 통해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심리적 유사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이 유사성이 바로 우리가 개념의 목표라고 부른 것이다.(195p)

 

 

"내 뇌에서 나의 과거 경험을 사용해 주위 환경에 알맞은 '공포' 개념의 사례를 구성한 뒤 뱀이 길 앞에 나타나기도 전에 시각 뉴런의 점화를 변화시킴으로써 내가 뱀을 지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도록 준비를 갖추었으며, 내 예측이 확증되자 내 감각도 범주화되었고, 그래서 나는 내 감각을 목표에 맞게 설명해주는 공포 경험을 구성했고, 정신적 추론을 통해 뱀을 내 감각의 원인으로 그리고 도주를 이것의 결과로 지각하게 되었다."

(...)

지금 이 순간 이 단어들을 읽는 당신의 뇌에는 이미 감정에 대한 강력한 개념 체계가 배선되어 있다. 처음에 당신의 뇌는 순수하게 정보를 얻는 체계로 시작하여 통계적 학습을 통해 당신의 세계에 관한 지식을 획득했다. 그리고 단어 덕분에 당신의 뇌는 당신이 학습한 물리적 규칙성을 넘어 다른 뇌들과 협력하는 가운데 당신 세계의 일부를 발명했다. 당신이 창조한 강력하고 순전히 정신적인 규칙성은 당신의 신체 예산을 통제하여 생존하는 데 기여한다. 이런 정신적 규칙성의 일부가 바로 감정 개념이며, 이것의 기능은 당신의 심장이 마구 뛰고, 당신의 얼굴이 붉어지고, 특정 상황에서 특정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심리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상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그리고 범주화에 사용되는 개념들을 서로 동기화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지각하고 이에 관해 소통할 수 있게 된다.(215-216p)

 

 

소피아의 뇌에 생겨난 174가지 예측들의 개체군은 '레게머리를 한 사람'이라는 개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이 하나의 개념으로 '분류'된다고 말하곤 했지만, 실제로 소피아의 뇌 어느 곳에도 이렇게 분류된 '집단'이 따로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념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단 하나의 특정 뉴런 집단에 의해 표상되는 것이 아니다. 개념은 다수 사례의 개체군일 뿐이며, 이런 사례들은 매번 다양한 뉴런 패턴으로 표상된다(이것이 변성이다). 개념은 매순간 즉석에서 구성된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례 가운데 패턴 일치의 측면에서 소피아의 현재 상황에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우리가 '최종 사례'라고 부른 것이 된다.(227-228p)

 

 

감정은 사회적 실재의 전제 조건인 두 인간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실재가 된다. 우선 '꽃', '돈', '행복'같은 개념이 존재한다고 동의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지식은 흔히 집단지향성이라고 불린다. 모든 사회의 토대는 사람들이 굳이 관심을 갖지 않는 집단지향성으로 이루어진다. 당신의 이름조차 집단지향성을 통해 실재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감정 범주는 집단지향성을 통해 실재가 된다. 당신이 화가 났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려면 두 사람 사이에 '분노'에 대한 공유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만약 안면 움직임과 실현관 변화의 특정 조합이 특정 맥락에서 분노를 의미하려면 사람들 사이에서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이런 동의에 대해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심지어 당신은 특정 사례가 분노인지 아닌지에 대해 동의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특정 기능을 지닌 분노가 존재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이 개념에 관한 정보가 사람들 사이에 효율적으로 전파되어 분노가 마치 타고난 것처럼 보이게 될 수 있다. 만약 특정 맥락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분노를 나타낸다는 동의가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가 눈살을 찌푸린다면, 나는 당신과 효율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내 움직임 자체를 통해 분노가 당신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공기 진동 자체를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개념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내 움직임은 당신의 뇌에서 예측을 개시하게 만드는 단서가 된다. 이것은 인간이 부리는 독특한 종류의 마술이다. 이것은 협동 행위로서 이루어지는 범주화다.(256-257p)

 

 

이제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하는 가장 도전적인 견해 중의 하나에 도달했다. 당신은 감정 개념이 있어야만 관련된 감정을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다. 이것은 필요 조건이다. '공포'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공포를 경험할 수도 없다.

(...)

몇몇 과학자는 감정 개념 없이도 감정 자체는 존재하며 당사자가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감정 상태가 의식 밖에 존재할 수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이런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는다. 만약 당신에게 '꽃'의 개념이 없는데, 누가 당신에게 장미를 보여준다면, 당신은 식물을 경험할 뿐이며 꽃을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꽃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2장에서 본 얼룩 이미지 자체에 꿀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꿀벌을 지각한 것은 오직 꿀벌에 대한 개념적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똑같은 추론을 감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범주화에 사용할 '리제트', '슬픔', '칩 부재감'같은 개념이 없으면 감정도 없으며 오직 감각 신호 패턴이 있을 뿐이다.(268-271p)

 

 

유전자가 당신에게 선사한 뇌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어울리게 배선될 수 있으며, 이런 환경은 당신의 문화 속에 있는 다른 구성원과 당신이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 이상의 뇌가 있어야 마음이 창조된다.

구성된 감정 이론은 개인의 책임에 대해서도 완전히 새로운 사고 방식을 제시한다. 당신이 상사에게 화가 나서 상사 상사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그를 멍청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고 가정해보자. 고전적 견해에서는 가설상의 분노 회로가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당신의 책임이 일부 면제될지 모르지만, 구성의 관점에서는 책임의 범위가 가해의 순간 너머까지 확장된다. 이때 당신의 뇌는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다. 뇌의 핵심 체계에서는 바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끊임없이 추측하며,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당신은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과 이런 행동의 출발점이 된 예측은 바로 이 순간까지 이어진 당신의 모든 과거 경험에(개념으로서 작용하는 과거 경험에) 기초한다.

(...)

"당신이 가진 개념들에 대한 당신의 책임은 무엇인가?"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당신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아기였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머릿속에 넣어주는 개념을 선택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당신에게는 당신이 무엇을 접할지, 그래서 무엇을 학습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개념들이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행동을(그것이 의도한 행동으로 느껴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291-292p)

 

 

만약 당신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사회에서 성장했다면, 당신이 관련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당신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성인이 된 당신은 자신을 교육하고 또 다른 개념을 추가로 학습하는 기회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내가 "당신이 당신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라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당신은 당신의 행동에 대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적 반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해치는 행동을 삼가도록 예측을 통해 당신을 인도하는 개념을 학습할 것인지는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개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이런 행동들을 통해 어떤 환경이 조성되는가에 따라 다음 세대의 뇌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의 뇌 배선을 좌우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실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막연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뇌 배선의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다.(294p)

 

 

전체적으로 볼 때 구성된 감정 이론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생물학적인 지식에 기초한 심리학적 설명을 제공한다. 이 이론은 진화와 문화의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 당신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몇몇 뇌 배선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몇몇 유전자는 환경에 따라 활성화되기도 하고 비활성화되기도 하며, 이를 통해 당신의 뇌는 당신의 경험에 맞게 배선될 수 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 실재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여기에는 사람들 사이의 합의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세계도 포함된다. 비록 당신이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거대한 공동 작업의 산물이다. 구성을 통해 당신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얼룩진 꿀벌 사진을 보면서 그랬던 것처럼 당신 자신의 필요와 목표와 이전 경험의 렌즈를 통해 세계를 지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독특한 능력을 지닌 매우 흥미로운 종류의 동물일 뿐이다.(297p)

 

 

또한 본질주의는 반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본질은 관찰 불가능한 속성일 수 있으므로 본질이 발견되지 않아도 그것의 존재를 믿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어째서 실험을 통해 본질이 확인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유를 붙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우리는 아직 모든 곳을 살펴보지 않았다." "이 복잡한 생물학적 구조의 내부는 우리가 아직 들여다볼 수 없다." "오늘날 사용한느 도구는 본질을 찾아낼 만큼 강력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희망적인 사고가 진심이 담긴 말일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반증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렇게 본질주의는 반대 증거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

그런가 하면 본질주의는 인간이 타고난 심리적 소질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5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순전히 정신적인 유사성을 생각해냄으로써 범주를 창조하고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애완동물'이나 '슬픔'같은 한 단어가 수많은 사례에 적용된다. 단어는 인간의 놀라운 업적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뇌에게 있어서 파우스트의 거래와도 같은 것이다. 한편으로 '슬픔'같은 단어가 다양한 지각에 적용될 때 우리는 눈에 띄는 차이 너머로 근저에 깔린 동일성을 찾으려는(또는 발명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다시 말해 '슬픔'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럴싸한 물체와도 같은 한 가지 감정 개념이 창조된다. 또한 단어는 동일성의 근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긴다. 깊숙이 놓여 있어 관찰 불가능한,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 어떤 성질에 대한 믿음, 등가성의 근거가 되고 다양한 사례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성질에 대한 믿음을 부추긴다. 한마디로 말해 단어는 본질에 대한 믿음을 부추기며, 이런 과정이야말로 본질주의의 심리적 기원일 것이다.

(...)

우리가 개념을 학습할 때 도움이 되는 바로 그 단어의 속임수에 빠져 우리는 단어가 가리키는 범주가 자연에 원래 있는 경계를 반영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기 쉽다.(306-307p)

 

 

그러나 현대 신경과학은 변연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뇌 진화의 전문가들은 더 이상 변연계에 관한 주장을 진지하게 취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이것이 과연 통일된 체계인가 하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변연계가 뇌에 자리 잡은 감정의 소재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감정에만 전문화된 뇌 부위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317p)

 

 

오늘날 있지도 않은 감정의 실체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망각 때문에 그만큼 더 가난해진 셈이다. 오늘날 마이클 마이크로소프트는 감정을 인식하겠다는 목표 아래 얼굴 사진을 분석한다. 애플은 최근에 인공 지능 기법을 사용해 표정에서 감정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이모션트라는 신생 기업을 인수했다. 몇몇 회사에서는 표정에서 감정을 탐지하는 프로그램을 구글 글래스에 적용해 자폐아를 돕는 장치를 개발 중이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정에서 투표 선호도를 읽어낸다는 이른바 신경정치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업가와 과학자가 여전히 본질주의에 몰두하는 동안 감정에 관해 가장 긴급한 몇몇 물음은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고, 중요한 물음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324-325p)

 

 

골먼의 책들은 실제적이고 그럴 듯한 조언을 많이 제공하지만, 그의 조언이 왜 효과가 있는지를 적절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골먼의 주장은 시대에 뒤진 '삼위일체 뇌' 모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른바 감정적인 내면의 짐승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면 감성지능을 높일 수 있다는 식이다.

감성지능은 개념의 관점에서 더 잘 규정될 수 있다. 당신이 아는 감정 개념이라곤 '기분이 아주 좋다'와 '기분이 더럽다'라는 두 개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각할 때마다 오로지 이 거친 붓으로 범주화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감성 지능이 높을 수 없다.

(...)

'기분이 더럽다'의 50가지 뉘앙스를 안다면, 당신의 뇌는 예측과 범주화와 감정 지각의 훨씬 더 많은 옵션을 갖게 될 것이다.

(...)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감정 입자도, 즉 감정 경험을 얼마나 섬세하게 구성하는가의 문제다. 감정 경험을 고도로 섬세하게 구성하는 사람은 감정의 전문가다. 이런 사람은 구체적인 상황에 적절하게 맞춘 듯 미세하게 조정된 예측을 내놓고 감정 사례를 구성한다.(335-336p)

 

 

자, 이제 당신은 균형 잡힌 신체 예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생활 방식을 뜯어 고쳤고 감정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개념 체계를 보강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여전히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사랑이 요구하는 양보와 타협, 사회적 삶의 애매하고 다의적인 측면, 불안정한 직장, 변덕스러운 우정,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말을 듣지 않는 몸 등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순간에 당신의 감정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방법이어서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동물은 움직임을 사용해 신체 예산을 조절한다. 동물의 뇌에서 신체 수요보다 더 많은 포도당을 내놓으면, 잽싸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에너지 수준을 다시 균형 상태로 돌릴 것이다. 반면 인간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순전히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해 신체 예산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동물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당신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마음에서 내키지 않더라도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여라.(347p)

 

 

당신은 정동적 느낌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가 되도록 놔두는 대신에 이런 느낌을 단순한 신체 감각으로 해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은 불안을 빨리 뛰는 심장으로 해체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신체 감각으로 해체했으면, 당신이 가진 풍부한 개념을 사용해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재범주화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의 가슴이 뛰는 것은 불안이 아니라 기대나 설렘일지 모른다.

(...)

더 많은 개념을 알고 더 많은 사례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재범주화를 통해 당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시험을 앞두고 흥분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것을 해로운 불안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고("아, 시험을 망칠 것 같아!") 아니면 유익한 예상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다("힘이 솟는다. 나는 준비되었다!").

(...)

이런 종류의 재범주화는 당신의 삶에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 같은 시험 성적을 살펴본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불안을 신체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는 신호로 재범주화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350-351p)

 

 

나는 신체 예산 적자가 모든 정신질환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산 조절이 최상의 치료법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덕분에 신체 예산이 전통적으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된 질병의 공통 요인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

젊은 사람이 신체 예산의 만성 초과 인출 상태에 빠지는 수많은 방식을 이제 잠깐 상상해보자. 명백한 남용과 부주의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작은 사태들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들이 텔레비전, 영화, 동영상, 컴퓨터 게임에서 목격하는 폭력의 지속적인 흐름이 있다. 그들이 대중음악에서 듣는 모멸적인 언어와 "야이, 새끼야"라고 또래에게 인사할 때 무심코 흉내 내는 것들이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조크 형태의 약자 괴롭힘이 증가하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끔찍한 말을 내뱉으면 녹음된 관객 웃음 소리가 뒤를 잇는다. 이 밖에도 부족한 수면 및 운동, 문자 메시지와 몇몇 형태의 사회적 미디어가 제공하는 거의 무궁무진한 사회적 거부의 기회, 영양가가 의심스러운 불량 식품의 범람 등은 만성 신체 예산 불균형에 시달리는 한 세대의 성인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문화적 요리법과도 같다.(397-398p)

 

 

배심원과 재판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들은 독심술사가 되거나 거짓말 탐지기가 되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상해를 야기하려고 했는지 결정해야 한다. 법률 제도에 따르면 의도는 피고 얼굴의 코만큼이나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측하는 뇌에 있어서, 누군가의 의도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당신이 탐지한 사실이 아니라 피고의 행동을 근거로 당신이 구성한 추측이다. 감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도에 대해서도 지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기준이 없다. 70년간의 심리 연구는 이런 판단이 심리 추론, 즉 추측임을 뒷받침한다. DNA 증거가 피고를 범죄 현장으로 연결해줄지라도 이것은 피고가 범죄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재판관과 배심원은 보통 자신의 신념, 고정 관념, 현재 신체 상태에 따라 의도를 추론한다.(426p)

 

 

재판관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재판관은 감정을 자각해야 하고 분명히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감정을 현명하게 이용하기 위해, 나는 재판관들이 높은 입자도의 감정 경험을 배울 것을 제안한다. 불쾌감을 느끼는 재판관이 분노를 짜증이나 배고픔과 다른 것으로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한 범주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직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445-446p)

 

 

8장에서 논한 것처럼, 예측성 뇌는 자기 통제의 지평을 행동 순간 너머로 확대하고, 따라서 당신의 책임을 복잡한 방식으로 확대한다. 당신의 문화는 특정 피부색의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 쉽다고 당신에게 가르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이런 신념이 야기할 수 있는 상해를 경감시키고 다른 방향에서 당신의 예측을 연마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피부 색이 다른 사람을 친구로 삼을 수도 있고 이들이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반면에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 고정 관념을 강화하는 텔레비전 쇼를 안 볼 수도 있다. 또는 당신 문화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를 수도 있고, 당신에게 부여된 정형화된 개념을 수용할 수도 있으며, 특정 사람을 나쁘게 대하는 기회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성경 연구 모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회원을 쏘아 죽인 딜런 루프는 백인 우월주의 상징으로 자신을 둘러싸기로 했다. 분명히 루프는 인종주의에 젖은 사회에서 자랐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의 성인도 그렇게 자랐지만 대다수는 돌아다니며 사람을 쏘아 죽이지 않는다. 따라서 뉴런 수준에서, 당신과 당신의 사회는 당신 뇌에서 더 가능성이 있는 특정 예측을 공동으로 야기한다. 그러나, 당신은 해로운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 더욱 난감한 진실은 최종적으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예측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법에는 이렇게 예측에 기초해 책임을 이해하는 판례가 있다. 예컨대 만약 음주 운전을 하다가 차로 누군가를 치었다면 당신은 음주 상태에서 팔다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더라도 당신이 야기한 상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모든 성인은 음주 상태가 잘못된 의사 결정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그 후에 딜어난 사고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법에서는 이것을 예견 가능성 논거라 한다. 당신이 상해를 가할 의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책임이 있다.

(...)

어쨌든 뇌는 자신이 발견하는 사회적 실재에 그 자신을 배선한다. 이 능력은 우리가 종으로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진화 이익의 하나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 세대의 뇌에 배선될 개념에 약간의 책임을 진다.(451-453p)

 

 

이제 우리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동물은 수용성으로 신체 예산을 조절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동물은 동물의 왕국 전체가 아니라 쥐, 원숭이, 유인원, 개 같은 포유동물이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꽤 안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은 정동을 경험하는가? 이번에도 나는 몇몇 생물학적 단서와 행동적 단서를 근거로 꽤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은 개념을 학습할 수 있고 이런 개념을 이용하여 예측하면서 범주화할 수 있는가? 분명히 그렇다. 동물은 행동에 기초한 개념을 학습할 수 있는가? 분명히 그렇다. 동물은 단어의 의미를 학습할 수 있는가? 어떤 환경 하에서, 뇌가 상징들을 포착하여 나중에 사용하려고 저장할 수 있는 통계적 패턴의 부분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몇몇 동물은 단어 또는 다른 상징 체계들을 학습할 수 있다.

그러면 동물은 단어를 사용하여 통계적 규칙성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는가? 다르게 보이거나 다르게 들리거나 다르게 느껴지는 물체 또는 행동을 결합하는 목표에 기초한 유사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동물은 단어를 안내장으로 사용하여 정신적인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가? 동물은 세계에 대해 필요로 하는 정보가 그들 주위의 다른 동물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가? 동물은 행동을 범주화하여 이를 정신 사태로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인간이 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못한다. 유인원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 자신의 범주화와 비슷한 범주화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지구상의 인간 아닌 동물이 인간이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감정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다. 우리만이 감정 개념을 포함한 사회적 실재를 만들어내고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성분을 가지고 있다.(483-484p)

 

 

동물 감정을 연구한 몇몇 연구자들의 유튜브 동영상과 테드 강연에서 심리 추론 오류를 여전히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몇 가지 행동을 대표하는 동물 영화 또는 사진을 당신에게 보여준다. 쥐를 간질일 때 쥐가 얼마나 행복한지 보라. 개가 낑낑거릴 때 얼마나 슬픈지 보라. 쥐가 꼼짝 않을 때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보라. 그러나 감정은 관찰되지 않고 구성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2장에서 임의의 얼룩이 꿀벌로 바뀌는 과정을 자각하지 못하듯이 동영상을 볼 때 당신은 개념적 지식을 이용하여 추론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당신에게 동물은 감정적인 것처럼 보인다.(495p)

 

 

 

 

ㅡ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中, 생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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