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6
이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없고, 그저 마지막 반전을 실어 나르기 위해 330페이지를 낭비한다. 얼마 전에 나온 십계도 이런 식일 것 같아서 그냥 패스하기로.
"그거, 우리 가운데 제일 나쁜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거잖아. 그런데 범인을 알아냈다고 치고 만약 그 사람이 스스로 모두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하면, 정말로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세.“
그렇게 된다면 범인은 나머지 일곱 명의 목숨을 구하는 셈이다. 우리는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데.
"반대로 범인이 죽기 싫다는데 억지로 닻감개를 돌리게 하면 우리가 범인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모두 살인범이 돼버리는 거야.“
"그건, 그렇지.“
우리 일곱 명이서 범인을 죽이는 셈이다. 안 그러면 모두 죽는다고는 하나, 틀림없이 살인이다.
그때 우리 각자가 죽이는 건 7분의 1명, 범인은 이미 두 명을 죽였다. 그러니 범인이 죽는 게 옳다. 어쩐지 묘하다. 이 계산법은 정말로 올바른 걸까?
마이가 힘없이 웃었다.
"궤변이라는 건 나도 알아. 이 사건의 범인은 체포되면 사형당하겠지? 어차피 죽어야 할 범인의 목숨을 이용해 모두를 구하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이 한 명 죽는 셈이잖아.
그래도 절대로 살인범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닻감개를 돌리겠다고 자원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
"아, 여기서 말고. 왜, 경찰은 위험한 임무에 독신 경찰관을 투입한다는 이야기 못 들어봤어?“
"아아, 알아.“
알 뿐만 아니라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픽션이라면 가족이 있는 사람을 위해 고독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 뇌리를 스친 생각이다.
"슬퍼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 좋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살 가치가 없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마이는 씁쓸한 듯이 말했다.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인권이 있다지만, 개중에서 희생자를 뽑는다면 제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뽑히겠지?
그건 데스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지혜나 체력이 모자란 사람이 탈락하는 데스 게임이 있잖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228-230p)
ㅡ 유키 하루오, <방주> 中, 블루홀식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