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6
일단 이까지 정리
채굴 과정은 19세기 채굴업자들의 기술을 그대로 답습한 방식으로 간단한 편이었다. 단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만 달랐다. 땅속의 암반층을 폭파하여 작은 바위로 쪼개고,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시안화물 용액과 혼합해 금을 추출했다.
이것이 21세기에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현장의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암석을 작게 쪼개 화학적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탄을 자아냈지만, 동시에 심란한 장면이기도 했다. 추출 과정에서 사용한 시안화물과 수은이 주변 생태계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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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해보니, 골드바 표준 중량인 400트로이온스(약 12.4킬로그램) 하나를 만들려면 5,000톤의 흙을 파내야 했다. 이는 세계 최대 여객기인 A380 10대가 만석일 때의 무게와 비슷하다.
어쩌면 당신은 금이 오늘날 이런 식으로 채굴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에 금덩어리가 묻혀 있다거나 대자연 속 금맥에서 그대로 채금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혹자는 금이 독성 혼합물을 사용한 화학 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단순히 땅속에서 캐내는 것이 아니라 산 전체를 폭파하여 얻어낸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내가 순진한 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12-13p)
연필에 쓰이는 나무는 미국 서부에서 자라는 삼나무이다. 용광로에서 만든 강철로 삼나무를 베고 작업장에서 마무리한다. 그러고는 다시 잘라서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건조하고, 염색한 뒤 또 말린다. 작은 조각에 홈을 낸 뒤 서로 이어 붙여서 고정한다. 연필의 핵심인 연필심은 스리랑카에서 채광한 흑연에 미시시피주의 흙, 동물성 지방과 황산으로 만든 화합물을 섞어서 만든다. 피마자 씨앗에서 추출한 피마자 유로 만든 액체로 연필의 나무와 심을 코팅하고, 수지를 써서 라벨을 붙인다. 연필 끝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채광한 구리와 아연으로 만든 놋쇠를 붙인다. 지우개는 인도네시아의 유채씨유, 그리고 염화황부터 황화카드뮴에 이르는 수많은 화학물을 사용하여 만든다.
연필처럼 매우 간단한 물건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자들로부터 제조 공정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발전소 근무자들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나(연필)의 탄생에 참여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라고 리드는 썼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상용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토록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집필된 <나, 연필>은 특히 두 번째 교훈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에세이를 예로 들면서 소련 경제학자들이 주장, 즉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다고 반격했다.(20-21p)
여기에 매우 중요한 아이러니가 있다. 단기적·중기적으로 환경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전기차, 풍력발전 터빈, 태양광 패널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물질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앞으로 수십 년간 이전보다 지표면에서 더 많은 물질을 추출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나긴 이야기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일 뿐이다. 이런 일은 그 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인류 역사 초창기부터 1950년까지 캐낸 물질의 총량보다 더 많은 물질을 우리는 2019년에 채광, 채굴, 폭파를 통해 얻었다. 단 한 해만에 인류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채굴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채굴한 셈이다. 광산업 초창기부터 산업혁명,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이후 시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을 말이다. 비단 2019년 한 해에 그친 단발성 사건이 아니었다. 2012년 이래로 거의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원자재를 얻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나서 2019년에는 2.8퍼센트나 상승했고, 광물업 전 분야, 그러니까 모래, 금속, 석유, 석탄 분야에서 단 하나도 감소하지 않고 계속 상승했다.
아마도 당신에게는 낯선 소식일 테다. 만약 이야기를 들어봤더라도 화석연료라는 프리즘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여전히 채굴 중인 탄화수소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지하에서 엄청난 양의 석탄과 석유를 캐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지하에서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그래서 광물에 대한 광범위한 욕구 역시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지하에서 채굴하는 천연자원의 전체 양에서 적은 부분만 차지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1톤을 기준으로 모래, 돌, 금속, 소금, 기타 화학물질 같은 다른 물질들은 6톤을 채굴한다. 비물질 세계의 시민들은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대신 다른 물질에 대한 소비를 몇 배나 늘렸던 셈이다. 실상이 이런데도 우리는 그와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26-27p)
모래알의 주성분은 실리카이다. 이산화규소나 석영으로 알려져 있다. 더 좋은 표현이 있으면 좋겠지만, 유리는 녹인 모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리카는 유리의 기본 요소가 된다. 유리는 종류에 따라 실리카 함량이 매우 다른데, 물컵이나 유리창에 들어가는 유리는 통상적으로 약 70퍼센트의 실리카를 포함한다. 흑요석은 65퍼센트, 텍타이트는 80퍼센트이다. 반면에 리비아사막유리의 실리카 함량은 놀랍게도 98퍼센트이다. 리비아사막유리는 자연에서 발생한 유리 중에서 가장 높은 순도를 지니며,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유리보다 더 순수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47-48p)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할수록 장벽 건설이나 홍수 방지에 쓰이는 모래를 구하려는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21세기 내내 해수면이 상승하면 물밑으로 가라앉으리라고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몰디브는 수도 말레 주위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모래와 바위를 사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간척이야말로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수자원 고갈에 대비한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선언했고, 그리하여 세계 최대 모래 수입국의 자리에 올랐다. 국토는 10년 동안 26제곱킬로미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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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래를 거의 무제한으로 존재하는 흔한 물질로 생각한다. 만약 모든 모래가 똑같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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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가장 간단한 답은 어떤 모래가 다른 모래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모래 바다에는 엄청나게 많은 실리카 결정이 있지만, 로칼린이나 퐁텐블로의 모래 순도에는 미치지 못한다.(87-89p)
모로코와 사하라 서부 일대의 기다란 해안 지역이 모래를 준설하는 바람에 사라졌다. 여기서 나온 모래는 유럽과 카나리아 제도로 운반되어 관광 명소로 유명한 해변의 모래를 보충하는 데 사용됐다. 유럽의 해변이 실제로는 수입 모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신은 크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수천 년에 걸쳐서 자연적으로 조성된 폭풍우 방파제가 모래 준설로 다 깎여 나간 셈이다.(91p)
모래는 중요한 비즈니스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모래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모래를 흔해 빠진 천연자원이 아니라 전략적 광물로 여겨야 한다. 그러니까 리튬 같은 배터리 원료 또는 구리 등과 비슷한 수준의 광물 취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한 걸음 물러서서 모래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래가 없다면 건설 환경도 경제 성장도 성립할 수 없다. 모래는 수백만 명의 사람을 결핍과 가난으로부터 구해내어 함께 잘 살도록 돕는 물질이다.(93p)
중국은 유령 도시와 유령 마천루가 잔뜩인 데다가 콘크리트 생산량이 더는 기하급수적인 증가율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용량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진다. 당신이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중국에서는 손수레 12만 대 분량의 콘크리트가 타설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중국이 타설한 콘크리트 양은 미국이 콘크리트를 발명하여 지금까지 타설한 양보다 더 많다. 그러니까 조지프 애스피딘이 특허를 낸 포틀랜드시멘트의 발명 이래로 미국에서 후버 댐 건설, 고속도로 완공, 맨해튼 지구 및 기타 중요한 시설물을 짓는 데 사용한 콘크리트 보다 더 많은 양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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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시공의 문제는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콘크리트의 또 다른 저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물질 중 하나라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항공업과 삼림 파괴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시멘트 산업은 이 두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시멘트 산업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무려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시멘트 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량 중 60퍼센트는 백악이나 석회가 가마에서 시멘트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고, 나머지 40퍼센트는 가마를 가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차지한다.(103-105p)
ㅡ 에드 콘웨이, <물질의 세계> 中, 인플루엔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