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6
이 말을 하기에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SNS시대다. 페이스북을 위시한 SNS사이트를 훑어보면 어떤 것에 대해 좋다고 칭찬하고 찬양하는 경우는 볼 수 있으나, 어떤 것이 구리다고 적극적으로 구림을 표출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왜 자신의 에너지를 그런 부정적인 곳에 써야 하냐고? 세상에 많고도 많은 구림을 감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면 왜 안 되나. 나쁜 것을 넘어 형편없는 것들이 버젓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말할 가치가 없다고 내버려두니 그 형편없음이 계속해서 존재하고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제발 모든 취향은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PC한 말은 하지말자. 그렇게 모든 걸 개인 기호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면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에는 형편없는 기호와 취향이 수두룩하고 그것을 이용해 이지성, 김난도 같은 자들이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전부는 무시해도 사는데 아무 문제 될 게 없으며 오히려 그 돈을 친구와 술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데 사용하는 것이 사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데 내 손모가지라도 걸 수 있다.
이 얘기를 왜 하냐고? 이 글의 제목으로 써놓은 책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이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자기계발서 따위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자기계발서로 계발이 되는 사람은 그걸 읽는 사람이 아니라 그 책을 사주는 사람으로 인해 돈을 버는 자들이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이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하면 된다.’ 이거 아닌가? 하면 되기는 개뿔 되면 하겠다. 이딴 식의 긍정주의를 사회에 만연하게 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불합리한 것들은 도외시하고 네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이고, 열심히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헛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책이 자기계발서 아닌가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또 얼마나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께서 친히 양비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중용의 미덕을 설파하시겠지.
ㅡ 하야마 아마리,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中,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