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3

 

나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상당했다. 공산당에 투표하던 노동 계급이 왜 우파 혹은 극우파에게 표를 주는 일이 발생하는지를 프랑스의 맥락에서 논한 3부가 제일 힘들고, 나머지는 사회학적인 지식이 조금 부족해도 중간중간 이해가 안 되면 적당히 넘어가도ㅡ물론 맥락을 다 알면 좋겠지만ㅡ내용에 파악에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그는 아버지가 심하게 편찮으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병을 최대한 미루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덧붙였다. "어머니에게는 내가 아버지를 증오했기에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내가 그를 증오했었고 그 증오를 계속 간직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나는 폐허로 변해버린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증오했던 것은 폐허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더욱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증오의 감정에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증오가 사라지고 나면 고통에 직면할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32-33p)

 

 

학업에서의 도태는 마치 스스로의 선택과 요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 양, 많은 경우 자발적인 도태의 과정을 거친다. 학업 기간의 연장은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형편이 되는'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사람들과 결국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능성의 장ㅡ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은 고사하고, 단순히 구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조차ㅡ은 계급 위치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된다. 마치 각각의 사회세계가 거의 물샐틈없이 가로막혀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54-55p)

 

 

사회적 운명은 일찌감치 결정된다. 모든 것이 미리 작동된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 선고문이 우리 어깨에 낙인처럼 새겨지고, 우리가 차지할 자리도 우리에 앞선 것들, 그러니까 우리가 속한 계층과 가족의 과거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57p)

 

 

실제 가족은, 법적인 가족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가족과도 겹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혼합'가족은 1990년대에 와서야 생겨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부부와 가족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고 나쁨을 떠나 복잡성, 다양성, 절연, 잇단 선택, 재구성 등으로 특징지어져 왔다('동거하는'남녀, '배다른'아이들, 이혼하지 않은 채 각각 다른 여자, 다른 남자와 사는 유부남, 유부녀 등등). 외할머니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는 결혼하지 않았다.(77p)

 

 

누군가가 내게 외할머니가 레지스탕스였다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고, 혹은 그저 자기가 일하던 공장의 설비를 일부러 파손했다고, 아니면 그 밖에 우리가 뽐낼 만한 또 다른 무언가를 알려주었더라면 물론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영예로운 가족을 꿈꾼다. 그 영예의 이름이야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뿐이다.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역사와 맺는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87p)

 

 

수프를 준비하면서 사용하고 있던 전기 믹서기 손잡이를 아버지에게 던진 것이다.

(...)

어머니의 관점에서 그것은 그녀가 결코 "호락호락 끌려다니는"스타일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이러한 분위기를 매일매일 살아내는 것은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아니,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부부 전쟁의 풍토, 반복되는 말싸움 장면, 고함, 아이들을 증인으로 삼는 이 두 사람의 광란은 아마도 주변 환경과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내 의지를 굳히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91p)

 

 

"난 어머니의 사랑과 그 부당성을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플라톤 강의를 들으러 대강당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감자와 우유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오늘날 어머니를 볼 때면, 나는 사회적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무슨 의미를 띠는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는 거의 15년 동안 이어온 고된 작업에서 비롯된 고통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신다. 그녀는 오전 오후 각각 10분씩 화장실에 가기 위한 교대시간 말고는, 계속 조립 라인 앞에 서서 유리병에 뚜껑을 끼워야 했다. 내겐 '불평등'이라는 말조차, 착취라는 적나라한 폭력의 실상을 현실감 없게 만드는 완곡어법처럼 비친다.

(...)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절 공장의 세계를 지배하는 무자비한 노동 강도는 추상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문화와 문학, 철학의 발견에 너무나 매료되어 있었던 나머지, 내가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조건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내가 꿈꾸던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혹은 반 친구들 몇몇의 부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녀의 좋은 대화 상대가 아닌 그냥 부모일 뿐이라는 것을 많이 원망했다.(95-97p)

 

 

나는 이 시절의 이미지들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듬성듬성하고 흐릿하며 불확실하다. 내 머릿속을 끈질기게 괴롭힌느 정확한 하나의 이미지만 제외하면. 아버지가 2~3일 동안 사라졌다가 술에 취해 거의 실신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발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서, 기름병, 우유병, 포도주병 등 병이란 병은 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씩 쥐고서 반대편 벽을 향해 던져 깨뜨리기 시작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왜 장례식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함께 이 장면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어머니는 깜짝 놀란 듯했다. "너 그걸 기억하니? 너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그렇다.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원초경'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106-107p)

 

 

그보다는 내가 사회적인 거울 단계라고 일컫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기에 대한 의식, 그리고 일정한 유형의 행동과 실천이 펼쳐지는 환경에 대한 소속 의식이 확보된다. 하나의 자리와 정체성을 지정하는 계급의 사회학적 상황을 발견함으로써 일어나는 사회적인ㅡ심리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ㅡ호명의 장면. 우리가 되어야 하는 타자에 의해 되비쳐진 이미지를 매개로 한, 우리의 현재 모습과 미래 모습에 대한 자기 인지··· 내게 예정된 미래를 거역하려는 완고하고 집요한 의지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출신의 흔적이 내 정신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었다. 장차 나라는 존재가 겪을 어떤 전환도, 어떤 문화적 학습도, 어떤 가면이나 책략도 지워내지 못할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라"는 주문.(108-109p)

 

 

"사회학 교육을 받기 전에 내가 어떠한 '계급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떠올려보려고 해도, 나는 거기에 어렴풋하게만 다다를 수 있을 뿐이다. 시간적인 간격 때문에 대상이 명료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근대 사회의 개개 구성원이 전체 사회에 내재하는, 계급이라는 이름의 명확히 규정된 집단에 소속 의식을 가진다는 사실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계층화된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현실이지만, 자의식을 가진 계급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계급 소속감의 부재가 부르주아의 유년기를 특징짓는다는 점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이는 백인이나 이성애자가 스스로 백인이나 이성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언급은 있는 그 자체 명백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면서 사회학을 하고 있다고 믿는 어떤 특권층 인사가 내놓는 순진한 고백인 것이다.(112-113p)

 

 

우리 가족의 사회적 동질성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

그 중 세무서에 취직한 사촌 여동생이라든가 비서로 일하는 제수씨 등이 사회적 상승을 체현한 인물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과거의 비참한 생활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었다. "얘네들은 불행하지 않지" "얘는 잘 벌어." 어머니는 내가 가리킨 사람들의 작업을 알려준 뒤에, 확실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사회 공간 안에서 우리는 동일한 위치로 되돌아간다. 가족집단 전체의 상황과 계급 구조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는 조금도 이동하지 않았다.

(...)

예술에 대한 취향은 학습되는 것이다. 나는 배워서 얻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세계, 다른 계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리고 내 출신 계급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수행해야 했던, 나 자신에 대한 거의 완전한 재교육의 일부였다. 예술적·문학적 대상에 대한 흥미는 언제나,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에 접근 기회가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자기-구성적인 간격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구별짓기'를 함으로써, 타인들ㅡ'열등한''교양 없는'계급ㅡ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정의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나중에 나는 '교양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전시회나 음악회, 오페라 공연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가장 '고상한'문화적 실천에 열심인 사람들이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자신에 대해 엄청난 만족감과 우월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수없이 자주 확인했다. 그러한 사실은 그들의 입을 결코 떠나지 않는 사려 깊은 미소와 몸가짐, 전문가로서 말하고 여유로움을 드러내는 방식 속에서 그대로 읽혔다. 이 모든 것은 '세련된'예술의 향유를 뽐낼 수 있는 특권적인 세계에 속해 있다는 데서, 또 그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서 비롯하는 사회적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119-121p)

 

 

이후 나는 이런 질문들에 직면했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그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더라면? 그들이 책 읽기에 흥미를 갖도록 해주었더라면? 공부의 당위성, 책에 대한 애정, 독서 욕구는 보편적으로 분포된 성향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개인이 속한 환경과 사회적 조건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회적 조건들이, 나와 같은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일종의 기적이 나를 추동하는 쪽을 향해 가는 것을 거부하고 포기하도록 부추긴다. 나는 그런 그런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했을까? 우리 가운데 한 명이 이미 그것을 성취했으니, 그 한 명ㅡ바로 나!ㅡ이 그를 뒤따르는 이들에게 그가 배운 것, 배우려는 욕망을 전수해주는 일도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족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인내와 시간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교육 제도에서의 탈락에 내재하는 무자비한 논리를 저지하는 데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사회적 재생산 메커니즘에 맞서 싸우는 일이 우리에게 허용되었을까? 그 메커니즘의 효능이 대부분 계급 하비투스의 관성에 기초해 있는데도? 나는 어떤 면에서도 동생들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그 이후로ㅡ때늦은 일이긴 하지만ㅡ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웠다.(132-133p)

 

 

어쨌든 우리는 투표가 대개 우리가 표를 주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담론 혹은 프로그램에 대한 부분적이거나 삐딱한 지지에 지나지 않는다ㅡ그리고 이는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다ㅡ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머니가 낙태한 적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나는, 르펜에 투표함으로써 그녀가 낙태의 권리에 결사반대하는 정당을 지지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대답했다. "아! 그건 아무 관계없어. 내가 르펜에 투표한 건 그래서가 아니야." 이 경우에 우리가지지 결정에 고려하고 영향을 끼친 요인들과 의식적으로 한쪽에 제쳐둔 요인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핵심은 개인적으로 혹은 집합적으로, 비록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할지언정,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받고 대표된다는 것을 알거나 그렇게 믿는 감정에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의 이러한 몸짓과 단호한 행동을 통해, 정치적 삶에서 존재감과 중요성을 인정받는다는 감정 말이다.(157-158p)

 

 

학교에서 "모종의 문화적 특징들"을 발견하고 불편하게 여겼던 베아른 시골 마을의 소년이, 파리 제일의 엘리트 그랑제콜 입시 준비반에 들어가고 윌므 가의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변환은 왜, 어떻게 일어났을까?(183p)

 

 

우정도 역사라는 중력을 벗어나지 않는다. 두 친구는 공존을 시도하는 두 개의 체화된 사회적 역사이다. 얼마나 친밀하든 간에, 관계가 진행되는 동안 하비투스의 관성 효과에 의해 두 계급이 맞부딪힌다. 태도나 발언은 엄밀한 의미에서 공격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무례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나 평범한 중산층 정도의 환경에서 지내다보면, 우리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는 추정에 맞부딪힌다. 이느느 이성애자가 자기와 대화하는 상대가, 자신이 조롱하고 비방하는 낙인찍힌 종에 속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도 않고 동성애자에 관해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교분을 나누는 사람에게, 마치 그 역시 예전부터 자신과 동일한 실존적·문화적 경험을 해왔다는 듯이 말한다. 그들은 바로 그렇게 전제함으로써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195-196p)

 

 

그랑제콜 입시 준비반이라든가 고등사범학교 선발시험을 치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입시 준비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최종반일 때도 그러한 준비반의 존재조차 몰랐다.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아마도 미래에는 한층 더 그렇게 될 텐데, 이러한 기관들에 들어갈 가능성은 (나아가 그러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단순한 지식조차) 민중 계급 출신이 아닌 학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주어져 있다. 따라서 내게는 질문의 여지조차 없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에도 대입자격시험에 붙은 뒤에도 [그랑제콜 입시 준비반에 들어가] 고등학교의 틀 안에서 계속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상해 보였고, 그들에 대해 우월감까지 느꼈다ㅡ얼마나 순진했던가! 내 눈에는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모든 학생이 마땅히 열망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교육의 위계서열 구조에 무지하고 선발 메커니즘에 숙달되어 있지 못한 학생은 가장 역효과를 내는 선택, 가장 나쁜 결과가 예정된 경로를 고르도록 이끌린다. 미리 알고 있는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 것에 다가가는 스스로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빈곤층은 이전에는 배제되었던 것들에 비로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그들이 어느 위치에 접근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 위치가 체계의 이전 단계에서 갖고 있던 위상과 가치를 상실한 뒤다. 유배는 더 느리게 이루어지고 배제는 더 나중에 일어나겠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격차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자리를 옮겨가며 재생산된다. 부르디외는 이를 "구조의 평행이동"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가리키는 것, 그 변화의 외양 바깥에서, 경직된 구조는 전과 다름없이 유지, 영속되며 평행이동을 한다.(203-204p)

 

 

나는 어떤 유형의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 사회적 위치에 의해 추동된 결과였다. 내가 파리의 대학생이었더라면, 혹은 이론과 사유의 새로운 노선들이 정교화되는ㅡ또 높이 평가받는ㅡ중심 가까이에 있었더라면, 내 선택은 사르트르가 아닌 알튀세르, 푸코 또는 데리다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르트르를 경멸적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중에 알게 된 파리 지식사회의 규칙대로 말이다.(211p)

 

 

모욕은 과거로부터 나온 인용이다. 그것은 이전에 수많은 발화자에 의해 반복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장 주네의 시구가 잘 표현하고 있듯, 그것은 “시대 깊숙이에서 온, 현기증 나는 단어"이다. 그런데 모욕어는 또 그것이 겨냥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들과 거기 담겨 있는 폭력이 그들이 살아가는 내내 따라붙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감. 게이가 된다는 것은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전에, 즉 그러한 의식을 갖기도 전에, 그동안 숱하게 들어왔고 오래전부터 그 모욕적인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그 어휘를 통해 스스로가 이미 잠재적인 표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에 앞서, 낙인찍힌 정체성이 있다. 우리는 그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신체를 부여하며, 그것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과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할 테지만, 거기엔 하나같이 모욕하기의 구성적인 힘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사르트르는 주네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경구에서 동성애는 누군가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창안한 출구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보다 동성애는 누군가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출구를 발견하도록 강제한다. 나는 내 사회적 환경과 나 사이에 만들어진ㅡ내가 애써 정초한ㅡ거리,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나의 자기-창조가 모두 내가 되어가고 있던 존재[즉 동성애자]를 맞이하기 위해 창아한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발명하지 않고서는 내가 되어가고 있던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226-227p)

 

 

'규범'에 편입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이 시공간에 의해 부분적으로 그 존재를 규정당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게이나 퀴어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차라리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 하나의 시간성에서 또 다른 시간성으로 (비정상의 세계에서 정상의 세계로, 또 그 반대로) 계속해서 옮겨갈 수 있는 능력ㅡ혹은 그래야 할 필요성ㅡ일 터이다.(244-245p)

 

 

절대적인 '전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방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언가를 전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특정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살짝 이동하고 옆으로 한 보 옮겨 편차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푸코식 용어로 말해, 불가능한 '해방'을 꿈꾸지 말아야 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제도화되어 우리 존재에 속박을 가하는 몇몇 경계를 돌파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주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내겐 핵심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세 내 존재의 원칙을 구성했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으로서 수행의 원칙.

그런데 이 문장은 내 삶에서 이중적 의미를 띠었으며, 성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에서 서로 모순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즉 성적 영역에서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모욕당한 성적인 존재로서 자기 주장을 했다면, 사회적 영역에서는 나 자신의 계급적 출신 조건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 본래 모습대로 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되어야 했을 모습을 거부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작동했다.(258-259p)

 

 

 

ㅡ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 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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