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4

 

 

아무리 주거비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도 1997년 이후로 밀워키와 다른 거의 모든 지역의 복지수당은 동결되었다. 이미 수년 동안 정치인들은 복지수당만으로 생존 가능한 가정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00년대 내내 임대료와 각종 제반 비용이 치솟기 전에도 그랬으니, 그 후로는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88p)

 

 

한 건의 퇴거는 퇴거당한 가족이 원래 살던 구역뿐 아니라 마지못해 옮겨가야 하는 새로운 구역까지 여러 도시 구역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강제 이주는 이주의 속도를 높이고 원망과 투자 회수의 속도를 훨씬 더 빠르게 가속화하여 제이콥스가 말한 "영구적인 슬럼"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영구적인 슬럼의 핵심 고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그곳으로 흘러들어가고 그와 동시에 거길 빠져나가겠다는 꿈을 꾼다는 데 있다." 도린이 퇴거당하면서 32번가는 꾸준히 존재하던 한 사람(동네를 사랑하고 여기에 정성을 쏟음으로써 안전한 동네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사람)을 잃었지만, 라이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103p)

 

 

임대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보니 세입자 가족들은 때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장소로 이사 갈 돈을 충분히 모으면서 퇴거를 먼저 유발하기도 했다. 이쪽 집주인의 손실이 저쪽 집주인의 소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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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밀워키에서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의 임대료 중간 값은 600달러였다. 480달러 이하에 임대되는 집과 750달러 이상에 임대되는 집이 각각 10퍼센트였다. 270달러 차이로 밀워키 시에서 가장 싼 집과 가장 비싼 집이 갈렸다. 이는 가장 열악한 동네의 임대료가 그보다 훨씬 나은 지역의 임대료보다 크게 싸지도 않다는 뜻이다. 가령 최소한 40퍼센트의 가정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밀워키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의 임대료 중간값은, 밀워키 시 전체의 임대료 중간 값보다 겨우 50달러 적었다. 셰리나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방 두 개짜리는 다 그게 그거야.“

오래전부터 그랬다. 1800년대 중반에 뉴욕 시에서 공동주택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최악의 슬럼가 임대료는 시 외곽보다 30퍼센트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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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들이 슬럼에 모여드는 건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곳이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흑인들은 더욱 그렇다.(109-110p)

 

 

가난한 흑인 동네 출신 남성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투옥이었다면, 여성들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퇴거였다. 가난한 흑인 남성들은 잠긴 문 안에 갇혀 살았고, 가난한 흑인 여성들은 잠긴 문밖으로 내몰렸다.(140p)

 

 

하지만 러레인에 관한 한 대릴 목사는 사람들이 많은 고난을 자초하기도 한다고 믿었다. "그 여성은 자기 돈을 허투루 쓰면서 몇 가지 어리석은 선택을 했죠··· 잠시 좀 없이 지내보는 게 그녀에겐 최고의 상태일지 몰라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날 수도 있겠죠. '아, 내가 멍청한 선택을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구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이야기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이름과 얼굴과 역사와 많은 필요를 가진 어떤 가난한 한 사람을 돕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판단 착오를 범했는지를 아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였다.(179p)

 

 

스콧은 팸과 네드가 퇴거통지서를 받고서 소파와 침대·서랍 같은 큰 물건들을 놔두고 급하게 집을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어울리며 약에 취하곤 했다. 스콧은 네드와 팸이 당연한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전이었다면 그는 좀 더 동정심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동정을 일종의 순진함으로, 미숙한 중산층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드러내는 감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이동 주택단지에서 살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동정할 수 있는 건 자기들한테는 다른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지." 네드와 팸의 경우, 스콧은 이들의 퇴거는 간단히 말해 크랙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헤로인 수지 역시 스콧과 같은 생각이었다. "모든 퇴거에는 공통분모가 있지." 그녀가 말했다. "나도 거의 퇴거당할 뻔 한적이 있었어. 돈을 다른 데 썼거든.“

이동주택단지 거주민들은 이웃이 퇴거당할 때 그 사람이 소문난 약물중독자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의 법석을 떨지 않았다. 퇴거는 개인의 실패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누군가는 퇴거가 "쓰레기들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가난을 당연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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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정의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중 저항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킬 집단 역량이 있다고 믿을 때만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스스로를 피억압자로 여겨야 하는데, 대부분의 이동주택단지 거주자들은 절대로 그럴 의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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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거주자들에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스콧에게 목표는 그곳을 뜨는 것이지 뿌리를 내리고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 거주자들은 스스로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자신들이 거의 평생 동안 스쳐 지나기만 하고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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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를 궁핍과 부덕이 넘치고 '모든 종류의 부서진 인간'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정치적 역량에 관한 자신감을 잃게 된다. 동네의 트라우마 수준이 높다고 인식한(즉 동네 사람들이 투옥과 학대·중독 등 끔찍한 일을 겪었다고 믿는) 밀워키의 세입자들은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낮았다. 이 같은 신뢰 부족은 동네의 실제 빈곤 및 범죄율보다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인지한 밀도 있는 고난의 수준과 더 관계가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지역공동체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감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토빈의 세입자들은 종종 토빈이 남기는 이윤에 관해 지나가는 말을 던지거나 그를 탐욕스런 유대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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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입자들은 불평등에 높은 관용을 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난과 토빈의 부유함을 가로지르는 널찍한 계곡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어째서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낡은 트레일러의 임대료를 내느라 소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지 따지지도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그보다 더 작고 더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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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에서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집주인을 존경했다. 딸내미가 다시 발이 빠지기 전에 썩어서 구멍 난 마룻바닥을 때워야 하는 데 누가 불평등에 저항할 시간이나 있겠는가? 내가 다시 자립할 때까지 집주인이 나에게 일을 시켜줄 의향이 있는데 누가 집주인이 얼마나 버는지 관심을 가지겠는가?(249-253p)

 

 

새미나 대릴 목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러레인이 가난한 것은 돈을 막 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건 그와 정반대였다. 러레인이 돈을 막 쓰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러레인이 퇴거당하기 전에는 월세를 내고 나면 164달러가 남았다. [유료] 케이블 텔레비전과 월마트를 멀리하면 이 가운데 일부는 모을 수 있었다. 러레인이 월세를 내고 난 뒤 남는 소득의 3분의 1에 달하는 50달러를 어떻게든 남기며 1년이면 600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이 돈이면 한 달 치 임대료를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엔 상당한 희생이 뒤따랐다. 때로 그녀는 온수나 옷 같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케이블로 지출되는 돈을 아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자가용도 없이 도시에서 외따로 고립된 이동주택 단지에서 사는 나이 든 여자에게, 인터넷 사용법도 모르고, 전화도 가끔만 쓰고, 일은 없고, 때로 섬유근육통 발작과 군집형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이 든 여자에게 케이블은 소중한 친구였다.

러레인 같은 사람들의 삶에는 복합적인 제약이 워낙 많아서 좋은 행동 혹은 자기통제를 얼마나 많이 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헤어날 수 없는 가난과 어느 정도 안정된 가난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어쩌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자린고비처럼 굴어도 가난에서 헤어날 가망이 거의 없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린고비처럼 굴지 않기로 선택한다. 돈 한 푼에 벌벌 떠느니 고통에 즐거움이라는 양념을 곁들여 화려한 생존을 시도한다. 마약에 약간 취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사기도 한다. 식료품 구매권으로 랍스터를 살 수도 있다.

러레인이 현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돈을 쓴다면 그건 수당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였다. 러레인은 랍스터 정찬을 먹기 위해 구매권을 써버렸다. 이제 남은 한 달은 얻어온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 언젠가 허기를 느낄 수도 있다. 그건 그렇게 감당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내가 한 짓에 만족해."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남은 한 달 동안 국수만 먹는다 해도 기꺼이 감당할 거야."(298-299p)

 

 

하지만 아무리 평등한 대우를 해도 사회가 불평등한 이상 여전히 불평등을 양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투옥의 경험은 흑인 남성들에게, 퇴거의 경험은 흑인 여성들에게 기형적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최근 범죄 기록이나 퇴거 기록이 있는 사람의 주거 신청을 균등하게 거부하는 경우라도 여전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과도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털과 바네타 역시 어포더블렌탈로부터 자신들의 체포와 퇴거 이력 때문에 신청이 거부되었다는 답을 들었다.(343-344p)

 

 

집주인들이 부동산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든지 간에(땀·지능·독창성의 덕을 본 사람도 있겠고, 유산이나 운·사기의 덕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임대료 상승은 집주인들에게는 더 많은 돈을, 세입자들에게는 더 적은 돈을 의미한다. 이들의 운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해관계는 배치된다. 도시 임대없자들의 이윤이 변변치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가 않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가난한 도시의 가장 열악한 이동주택단지를 소유한 임대업자의 연소득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전일제로 일하는 그의 세입자보다 서른 배가, 복지 수당이나 SSI를 수령하는 세입자보다는 쉰다섯 배가 더 많다. 여기서 두 가지 자유, 즉 임대료에서 이윤을 얻을 자유와 안전하고 적정한 가격의 주택에서 살 자유는 상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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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자유의 균형을 재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저소득 가구가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주택바우처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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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일정한 소득 수준 이하의 모든 가정에 주택바우처를 받을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마치 식료품 구매권이 있으면 사실상 아무 데서나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듯, 이 바우처가 있으면 주택이 너무 비싸거나 크거나 호화롭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허름하고 황폐한 경우가 아닌 이상 원하는 어디서든 살 수가 있다. 이들의 집은 대단하지는 않아도 품위 있고 가격이 적정해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 관리인들은 민간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알고리즘 등의 수단을 차용하여 정교한 분석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집주인들이 너무 높은 집세를 매기거나 저소득 가정들이 필요 이상의 큰 집을 선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바우처를 소지한 가구들은 소득의 30퍼센트만 주거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바우처로 부담한다.(416-417p)

 

 

 

 

ㅡ 매튜 데스몬드, <쫓겨난 사람들> 中,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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