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7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지역은 사회적이고 다른 지역은 자연적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긴다. 극단적인 폭력, 대량 실업과 투옥, 소비 문화는 사회적 문제이고 사회적 불의다. 기후, 생물 다양성, 자원 고갈은 자연의 문제이고 생태의 위기다. 사람들은 세계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와 '자연'이 따로 작동하는 것처럼, 생명망이 인간의 권력관계와는 접촉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세계를 그렇게 만든다.
우리 저자들은 '자연'과 '사회'라는 두 단어를 이러한 일상적인 용법과는 다르게 쓰려고 한다. 우리가 '자연'과 '사회'라고 강조해 표기하는 것은 이 두 단어가 세계를 묘사하는 것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인간과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개념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학자들은 이런 개념을 '실질적인 추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추상은 존재론적 질문(그것은 무엇인가)과 함께 인식론적 질문(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도 제기한다. 실질적인 추상은 세계를 묘사하는 동시에 세계를 만든다. 실질적인 추상은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우리는 세계 생태계라는 아이디어를 활용해 폭력의 숨은 형태인 '자연'과 '사회'를 독자들에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 둘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리고 실질적인 추상은 결백하지 않다. 실질적인 추상은 권력층의 이익을 반영하고 그들이 세계를 조직하도록 허용한다.(72-73p)
나는 신의 도움으로 우리가 (너희 나라로) 강력하게 진입할 것임을 너희에게 확언한다. 우리는 또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전쟁을 벌여 너희를 복종시키고 교회와 폐하들의 신민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는 너희와 너희 부인들과 아이들을 취해 노예로 삼고 폐하들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팔고 처분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너희 소유물도 취하겠다. 주군을 받들어 모시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부인하는 신민에게는 모든 괴로움과 손상을 가할 것이다. 그에 따른 죽음과 손실은 너희 잘못이지, 폐하들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또는 우리와 함께 온 사람들 탓도 아니다.(129p)
임금노동은 인간의 지능, 힘, 기술을 취한 뒤에 또 다른 '현대 발명'을 활용해 규율 속에서 만들어낸 생산적인 노동이었다. 여기서 현대 발명이란 시간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식을 가리킨다. 토지 생산성보다 노동의 실행이 자본주의 생태를 형성한다면, 이 과정에서 불가결한 것이 기계식 시계다. 돈이 아니라 시계가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핵심 기술로 등장했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흔히들 임금을 위한 노동이 자본주의의 표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13세기 잉글랜드의 경제활동인구 중 3분의 1이 이미 생존을 임금에 의존했다. 임금이 삶과 공간과 자연을 조직하는 결정적인 방식이 된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시간 모형 덕분이다.
14세기 초에 이르면 새로운 시간 모형에 따라 산업 활동이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현재 벨기게에 속한 이프르 같은 지역에서 직물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계절이나 활동의 흐름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선형적이고 반복적인 새로운 종류의 시간에 따라 규율되었다. 이프르에서 노동시간은 종소리로 측정되었다. 각 근무조의 작업 시간이 시작되고 끝날 때 종이 울렸다. 16세기에 이르면 꾸준히 째깍대는 분과 초로 시간을 측정했다. 노동과 놀이, 수면과 기상, 신용과 화폐, 농업과 공업, 모든 것은 이 추상적인 시간에 따랐다.
(...)
그러므로 아메리카 정복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주민에게 주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유럽인이 침략한 곳마다 '게으른' 토착민이라는 이미지가 함께 들어갔다. 토착민이 예수와 시계의 가르침에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시간 정책의 실행은 자본주의 생태에서 중심에 놓였다. 이미 1553년부터 스페인 왕은 주요 식민지 도시마다 공공 시계를 적어도 한 대씩 설치해나갔고, 다른 뭉명들도 스스로 정교한 시간 규칙을 만들어 활용했다. 이 새로운 노동 체제가 토착민의 속도, 비인간과의 관계를 대체했다. 마야 캘린더는 시간과 천문 판독의 복잡한 위계에 따른다. 그래서 우주 속에 놓인 인간의 질서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런 질서를 존중한 것은 오로지 마야 캘린더의 신성한 시점에 맞춰 식미지를 공격할 때뿐이었다.(134-135p)
산업혁명과 관련해 화석연료가 18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상상하곤 한다. 사실 화석연료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긴 16세기의 산물이었다. 최초의 대규모 산업화는 1450년 이후 1세기가량 진행되었다. 산업화는 거대한 설탕공장과 은 광산의 프런티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본 것처럼 조선, 양조, 유리 제조, 인쇄, 직물, 철·구리 제련에서도 펼쳐졌다. 그리고 이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했다.(225-226p)
ㅡ 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中, 북돋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