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유안 씨, 그거 알아요? 그곳의 귀환자들은 아예 치료도 거부하고, 움직임도 포기하고 침상에만 누워 살아간대요. 구호단체들이 그렇게 지원을 많이 보냈는데도, 좀처럼 나올 생각이 없다고요. 그에 비하면, 유안 씨는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해요. 도와주겠다는 손길이 그렇게 많은데, 다 포기하고 게으르게 누워만 있다니. 정말 너무 한심하지 뭐예요. 그런데 유안 씨, 세상에는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아무리 돕겠다고 해도 일어나질 않아요. 자기 몸을 책임지고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인데도, 나 몰라라 하고 스스로를 포기한 거지. 어쩜 그렇게 살 수가 있을까? 난 이해가 안 돼. 이해를 할 수가 없어."(169-170p)

 

 

한나가 허전한 내 허벅지를 쓰다음을 때, 그러면서 "금속 다리로 구두를 신고 춤추는 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걸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지"하고 속삭일 때, 나는 고통을 기꺼이 견디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럴 때면 한나가 나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비참함마저도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한나가 내게 바란 것은 완성된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강인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어떤 나아감의 방향, 지향점이었다. 불안정한 지면 위를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춤을 지속하는, 그 춤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한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이 되면 나는 알 수 있었다. 고요와 적막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깊은 밤이 되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머물러야 할 자리라는 걸. 흔들림도 뒤척임도 없는 부동의 장소. 움직임이 없는 몸. 모든 것이 멈춰 선 몸.

그 몸 안에서 나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자유로웠다.(171-172p)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삶을 거부하는가. 왜 비이성적으로 스스로를 해치려 드는가.

단 한 번 므레모사에 직접 간 적이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나는 놀랍고 끔찍한 것을 보았다.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배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복종했다. 이미 죽어 버린 존재들을 위해. 그 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왜 가능한지는 지금까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나 믿음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듯했다. 그것은 몹시 기이한 풍경이자 종교적인 풍경이었다.

므레모사에서는 삶의 권력을 고정된 것들이 쥐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었다.

 

그 의사의 회고를 읽고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바라왔는지 비로소 알았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174-175p)

 

 

 

 

 

ㅡ 김초엽, <므레모사> 中, 현대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