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3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지만 반복 서술이 너무 많다. 절반 정도로 추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경제 불평등이 시작되는 단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면,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체결이다. 한·중 수교는 중국경제의 부상이 한반도에 상륙한 의미를 가졌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사를 바꾸는 사건과 한국경제사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노동연구자들은 1987년 민주화가 미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1987년 체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미친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1997년 체제'라는 신조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지식인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은 '1992년 체제'였다. 1992년 체제는 1987년 체제와 1997년 체제에 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많은 지식인이 1997년 체제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의 상당수는 1992년 체제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의 불평등 확대, 대기업·중소기업으로 갈라지는 기업 규모의 양극화, 중화학공업·경공업의 양극화, 수출·내수의 양극화, 제조업·서비스업의 양극화, 노동시장 불평등, 경제적 이중구조, 노동시장 이중구조, 자본의 이중구조,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 감소, 중간 허리층 기업의 정체 및 약화, 상층 10%의 소득집중도 급증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79-80p)

 

 

나라마다 시차는 있지만 미국,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이 증가한다. 국내적 요인을 뛰어넘는 '글로벌 차원의' 환경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의 자본주의와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는 크게 3가지가 달라졌다. 첫째,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소 냉전 체제가 해체됐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미국의 유일 헤게모니 시대가 시작됐다. 둘째, 붕괴된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합류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시장 규모를 변화시키고, 노동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셋째, 1980년대부터 진행된 정보통신기술(ICT)혁명이 생산의 국제화를 급진전시켰다.(81p)

 

 

한국인들은 경제위기=불평등 확대 등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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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불평등 개념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정의하면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다. 불평등에 대한 중립적 표현은 '격차'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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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이처럼 재정의할 경우,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은 다음 3가지 중 하나다. 상층 소득이 올랐거나, 하층 소득이 떨어졌거나, 중간층이 얇아진 경우다. 1994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중간층이 얇아진 경우'였다. 세계경제사에서 중국경제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의 저기술·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량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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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어디에 해당했을까? 정답은 '상층 소득이 떨어진' 경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왜, 어떻게 한국의 상층 소득을 떨어뜨렸을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터졌다. 이후 유럽의 금융기관으로 전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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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선진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무역은 급격히 위축됐다. 세계무역이 위축되자 한국에서 수출·제조업·대기업에 종사하는 한국 고임금노동자들의 소득이 하락하게 됐다.(109-110p)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끝난다.

이후 1978년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크게 4단계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①1978년 이후, ②1992년 이후, ③2001년 이후, ④2014년 이후다. 1978년 개혁개방은 농촌개혁이 중심이었다. 농촌 인민공사 중심의 집단농장 체제를 가족농 중심체제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 1980년대 초반에 경제특구들을 추진한다. 1992년을 분기점으로 수출 중심 공업화 노선이 전면적으로 채택된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사건을 겪고 혼란에 빠진다. 이후 공산권이 붕괴한다. 덩샤오핑은 1992년 1~2월에 걸쳐 남순강화를 한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4차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정식으로 채택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은 총 3번에 걸쳐 중국경제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1994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1992년 개혁개방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앞서 2부에서 살펴봤다. 2001년 중국의 변화와 2014년 중국의 변화 역시 한국경제 불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123-124p)

 

 

정리하면, 2018년 고용 쇼크는 2가지 원인이 결합해 발생했다. 하나는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다.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을 지나치게 상회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쇼크를 주게 된다. 다른 하나는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과도한 감축이다. SOC 예산의 과도한 감축 역시 이념적 요인이 작용했다. SOC 자체를 '적폐'로 보는 생각이 작동했다.(190p)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대상 집단이 다르다. 소득 대상도 다르다. 경제활동인구 관점에서 성인 인구는 크게 네 덩어리로 구분된다. 임금노동자, 자영업자 집단,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노동자+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그렇다면 실업자는 임금 불평등 대상자일까, 아닐까? 당연히 아니다. 실업자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다. 실업자는 임금을 받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 집단도 임금 불평등 대상자가 아니다. 어르신과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도 임금 불평등 대상자가 아니다. 오직, 현재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노동자만 임금 불평등 대상자다. 2020년 12월 기준, 임금노동자는 약 2,000만 명이다.

소득 불평등은 다르다. 가구 단위 조사다. 가구 구성원 전부의 소득을 합산한다. 임금 불평등과 구분되는 소득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취업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소득 불평등은 어르신, 주부, 학생을 포함한다.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충돌하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 임금 불평등 축소가 반드시 소득 불평등 확대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용 쇼크'를 초래하는 임금 불평등의 급진적 축소는 소득불평등 증가로 연결된다. 왜 그런지 단순모형을 통해 살펴보자. 결제활동 대상 인구는 총 100명, 임금노동자는 총 60명, 저임금노동자는 6명이라고 가정하자. 미취업자는 40명이 된다. 자영업자는 없다고 사정한다. 경제활동인구는 변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고용률은 60%이고,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0%가 된다.

만약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인상해서 저임금노동자 6명이 전부 해고됐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취업자(임금노동자)는 54명이 되고, 미취업자는 46명으로 늘어난다.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각각 어떻게 달라질까? 임금 불평등은 축소된다. 임금노동자의 총 숫자는 54명이 된다.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0%가 된다. 임금 불평등도 개선되고,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개선된다. 둘 다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사람만을 대상으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구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미취업자를 포함하는 소득 불평등은 증가한다. 취업자 대비 미취업자가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도 더 증가한다. 바로 이것이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 이후에, 고용통계와 불평등 통계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불평등의 관점에서,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은 5가지 현상으로 귀결된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과 SOC 예산을 대폭 축소했을 때, 실제로 5가지 현상이 발생했다.

①노동시장의 최하단에 있는 저임금노동자가 퇴출됐다. 저임금노동자가 많은 직종을 중심으로 미취업자가 증가하고, 취업자 증가 수준이 급감했다.

②저임금노동자가 줄었다.

③임금불평등이 줄었다.

④비경제활동인구(미취업자)가 늘어났다.

⑤소득 불평등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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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인상하면 임금 불평등은 줄어들고, 소득 불평등은 늘어난다.(200-202p)

 

 

바로 이분들이 하층의 진짜 실체다. 바로 이분들이 한국 빈곤의 가장 중요한 실체다. 한국의 빈곤=미취업자=65세 이상 노인=초등학교 이하 졸업자=1930~1940년대 출생한 여성=불평등의 하층은 사실상 동의어다.

(...)

2018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작동하지 않은 근본 이유는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다.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오히려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 진보정당을 포함한 한국의 진보세력은 노동운동 요구에는 관심이 많지만,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206p)

 

 

한국적 현실에 맞는, 불평등과 계급의 통합적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노동'의 재발견이다. 한국 사회에서 비노동은 하나의 계급이다. 이들이 불평등의 최하단이고 우리 사회 하층의 진짜 실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비노동은 누구인가? 바로 노인이다. 다르게 말하면, 불평등과 계급의 통합적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적 과제는 노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다.(218p)

 

 

기업별 노조가 정착되어감에 따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기업별 생산성과 기업 단위 노동조합의 투쟁력에 의해 결정됐다. 대기업일수록 생산성이 더 높았다. 대기업일수록 실제로 지불 능력이 더 좋았다. 대기업 노조일수록 전투력도 더 강했다. 대기업 노조일수록 더 많은 임금 인상을 쟁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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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대기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임금 인상을 이루게 된다. 임금 격차와 임금 불평등이 커지게 된다.(247-248p)

 

 

우리는 1997년 이전의 평등했던 경제체제로 돌아갈 수 있는가? 1997년 이전처럼 외주화가 적고 정규직이 더 많던 경제체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보기에는, 현재 한국의 노동 체제는 재벌 편향, 신자유주의 편향, 비정규직 남용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 경우, 해법이 선명하다. 재벌 개혁, 국가 개입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하면, '1997년 이전의, 평등한 노동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 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주52시간제), 노동 존중 사회, 소득주도성장은 모두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이었다.

이런 입장은 아름다운 주장이지만, 복고적이며 낭만적이다. 현재와 같은 노동 체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 아니다. '4가지 충격'으로 인한 환경 변화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271-272p)

 

 

한국경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2가지 변인을 꼽으라면, 상층 소득은 수출이고 하층 소득은 고령화다. 수출이 잘 되면 불평등이 커진다.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고령자가 늘어나면 불평등이 늘어난다. 노인 일자리를 늘리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기초연금 인상 등 고령자에 대한 소득 보장 정책을 강화하면 불평등은 줄어든다.(284p)

 

 

 

 

ㅡ 최병천, <좋은 불평등> 中,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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