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9
 
저자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건 없었고, 이미 아주 많은 심리학 교양서에 등장해 식상한 인지 편향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자신의 사례를 곁들인 정도였다.
 
 
 
그러나 유명인들은 때로 그들 자신을 '연기'한다. 게다가 온라인에서는 그 쇼가 매일 24시간 방송된다. 우리는 유명인들이 자신의 '실제' 페르소나를 조각조각 디지털로 방송하던 레이건 시대 할리우드 우상숭배보다 더욱 방향감각을 잃고 그들이 전부를 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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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틱톡, 인스타그램, 패트리온 등의 플랫폼을 통해 스타의 개인적 정보에 이전보다 월등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술적 과잉공유의 시대에는, 유사사회적 거리가 줄어들고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스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텔레비전과는 달리 테일러 스위프트가 실제로 당신의 인스타그램 댓글에 직접 반응할 가능성이 있긴 하니 말이다. 전능하신 성인이 신자의 기도, 혹은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다.(36-37p)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영웅이 조금은 우리와 비슷하기를 바란다. 미세하게 인간적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팝 스타가 자기 노래 첫 소절을 깜빡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 대통령이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울 때. 휴가 중에 어머니가 알딸딸해졌을 때. 불완전함이라는 고명은 초콜릿 칩 쿠키 위의 소금 조각처럼 스타들의 성스러움을 한층 더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나 동상처럼 숭상받는 사람들이 온전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면 우리는 때때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군다.
지난봄 한 영국 소설가와 점심을 먹으며 서로의 유년 시절을 비교하던 중, 그가 '충분히 괜찮은 어머니'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영국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이 1953년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이들을 실망하게 하는 게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만든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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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완벽한 어머니가 되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아주 작은 실망감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하고 취약한 아이가 될 것이다. 충분히 괜찮기만 하다면, 우리 대부분이 그러리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대체로 옳은 선택을 하고, 가끔 틀린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우상을 흠결 없는 어머니의 형상으로 덧칠하는 스탠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예술적 우상들이 충분히 괜찮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48-49p)
 
 
현실화 박사의 성장세는 독보적이지만, 그 내용은 그렇지 않다. 박사의 메시지는 음모론의 기본 조건을 속속들이 충족한다. 그 바탕이 되는 논거는 현대 정신 건강 위기에 맞게 각색된 고전적인 선악 이야기로, 전통적인 치료법과 약 들이 사람들을 계속 아프게 하지만 여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저 우주가 당신을 굽어살피게 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아픈가? 가난한가? 최선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가? 그렇다고 당신의 못된 상사나 착취적인 전 연인을 탓하지 말라. 그것은 피해자나 하는 일이다. 고혈을 빨아먹는 상류층을 탓하지 말라, 그것은 실제 음모론자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 대신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탓하라. 그러고 나서 이 '자기 역량 강화 사이클'에 등록해, 전통적인 치료 비용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인 월 26달러로 당신에게 걸맞은 삶을 현실화하는 법을 배우라.
이런 내용은 현실화 박사뿐 아니라 2020년대 초 시장으로 물밀 듯 몰려든 뉴에이지 정신 건강 유명 인사 전부가 기본적으로 주창하는 바다. 국민의 심리 상태가 집단으로 급격히 악화하고 정신 건강 담론이 증가하면서 이전까지는 심리치료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도 자신의 불안을 과민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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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 박사가 명성을 얻을 즈음에는 치명적인 전염병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마땅할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철저하게 무너졌고, 수많은 시민이 전통적인 정신과 의사조차 찾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관공서의 기나긴 줄과 보험 정책, 2000달러짜리 양복을 빼입은 우유부단한 고위급 의료 자문단에 질려 버렸다. 대신 이들은 자신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비용 없이 휴대전화로 접근할 수 있으며, 사람마다 다른 여러 작은 이유가 무작위로 뭉쳐 기분이 엉망이고 세상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목적이 분명한 단 하나의 거대한 원인이 있다고 특별한 용어로 설명해주는 친숙한 포퓰리스트를 원했다.(56-59p)
 
 
남성의 음모론 취향은 보통 UFO나 사탄 비밀결사로 향하지만, 교육받은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도 달빛 샤워, 크리스털 힐링, 끌어당김의 법칙을 비롯한 현실화 기술 등 뉴에이지 개념을 열렬히 받아들인다. '조절장애' '신경회로' '후성유전학' '혈관미주신경반응' 등 다음절 DSM 용어와 신비주의를 결합해 이용하는 이런 가르침은 타로점과 의학 진단의 달콤한 만남처럼 느껴진다. 언뜻 보기에 자기 치유의 약속을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외적인 힘을 탓하는 전통적인 음모론에서 통제 소재가 전적으로 추종자 외부에 위치한다면, 현실화에서는 다시 개인이 통제 소재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향 전환이 한층 음험하다고 생각한다. 음모론 대부분은 불가사의한 외부의 악이 당신을 통제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음모론적 치료에서는 그 악한 힘이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 치유'는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창조한다는 티베트불교의 가르침을 상품화한 추상적인 뉴에이지 개념이다. 본래의 교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통제할 수 없더라도 우리 자신의 반응을 통제함으로써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인스타그램용으로 멀끔하게 포장된 버전은 개인의 책임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만들 수 있기에 문제적이다. 음모론적 치료가 내세우는 핵심 메시지의 중심에는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치유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둔갑한 '트라우마'의 보편적인 위험성이 있다.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와 질병 사이 연관성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인플루언서들도 있다. 고통을 대하는 이런 납작한 태도는 의료계의 인종차별이나 세대 간 빈곤 같은 구조적 요소뿐 아니라, 무작위로 닥쳐와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불운 역시 간과한다. 운 좋은 결과가 있을 때 개인의 노력 역시 마찬가지로 과대평가된다.
복잡다단한 질문을 형이상학적 교리로 해명해 내는 경향은 때로 '영적 우회'라고 불린다. 이런 관점은 명상이나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의 지지와 같은 외부적인 돌봄을 추구하지 말라고 은근하게 종용한다. 불행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것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라는 메시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67-69p)
 
 
2021년 버지니아대학교 심리학 연구자 두 명은 참가자 91명에게 특정 패턴을 제시하고 색깔 블록을 더하거나 빼서 대칭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 20퍼센트만이 블록을 빼서ㅡ감산 위주의 접근법으로ㅡ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여겼다. 이처럼 뭔가를 더하는 해결책을 선호하는 편향은 흔히 나타나며, 배낭 씨와의 관계에 나를 가두었던 손실 회피와도 관려이 있다. 대부분 사람은 문제가 제기되면 자연스럽게, 뭔가가 불필요하거나 잘못 놓여서가 아니라 빠져서 그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가산 편향은 최근에 내가 수면 습관을 개선하겠다고 오후에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고 침실에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가지 않는 대신 라벤더 베개 스프레이와 아답토젠 파우더 한 통, 일출 알람 시계에 100달러를 쓰기로 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색깔 블록 여섯 개를 추가하려 한 셈이다. 걸리적거리는 두 개만 제거하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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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 행복해지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뭔가를 치워버리는 일이다.(101-102p)
 
 
마치 낮이 밤에 자리를 내어 주는 모습처럼, 자신의 몸이 허약해지는 것과 동시에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죽음은 웹상의 존재감에 왜곡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뇌종양을 이겨 낸 코트니는 수많은 전문적인 메이크업 영상을 올렸는데, 그럼에도 조회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실어증 수술 후의 질의응답 "업데이트: 말하기는 어려워"다. 조회수 500만이 넘는 이 영상의 섬네일에는 반짝이는 분홍색 배경 속, 방사선 헬멧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코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1년 뒤 코트니가 완치를 선고받자 조회수는 수천 건씩 추락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생생하게 죽어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을 흥미로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이 나빠지는 데도 한계가 있고, 인터넷에서 관심을 끄는 데 관해서라면 완치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144p)
 
 
최신성 환상은 그저 내가 새로 접했다는 이유로 어떤 대상이 객관적으로도 새로우며, 따라서 위협적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위급하지 않은 추상적인 '위험'이 당장 자신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릴 것처럼 반응해 본 적이 있다면, 끝없이 발생하는 최신성 환상을 탓해도 된다. 이 편향은 어떤 현상이 단지 우리 눈에 우연히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 현상이ㅡ사실은 몇 시간, 수개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고 해도ㅡ지금 막 발생했다고 믿도록 속인다.(170p)
 
 
전염병은 우리 두뇌를 바다로 휩쓸어 가 버렸고, 시간은 지독히 느릿느릿 흘러갔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어디로 가 버렸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사랑에 빠지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케이시와 나 사이의 모든 새로움이 우리를 온전히 현재에 머물도록 했고, 시간은 시게 위에서보다 100배는 늘어났다. 유년 시절이 그토록 길게 느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에게는.(186-187p)
 
 
주목할 점은 꾸며 낸 자신감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앤더슨은 진정한 자기 확신은 자주 먼저 나서서 낮고 편안한 톤으로 말하는 등 특정한 언어적, 신체적 표지를 단서로 측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구경꾼들은 이런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허튼소리에는 속지 않지만,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 자신도 자기 말을 믿지 않을 때만 그렇다. 2014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과신을 조장하는 것은 "자기기만적 허세"다. 자기기만적 허세는 단순히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인 양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는 일종의 심오한 기만을 말한다.(203-204p)
 
 
이런 현상의 많은 부분이, 특정 진술을 단순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인 환상 진실 효과로 인해 발생한다.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만드는 반복의 힘이 핵심인 환상 진실 효과는, 가짜 뉴스 헤드라인부터 해서 마케팅을 위해 들먹이는 주장, 루머, 잡다한 상식, 인터넷 밈까지 아우르는 여러 '자극제'에 의해 증명되었다. 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껌 한 덩이를 삼키면 소화하는 데 7년이 걸린다고 굳게 확신했던 이유도 환상 진실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이 편향은, 엑스액토 칼이 포장지를 가르는 것처럼 너무나 쉽게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퍼져 나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환상 진실 효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중세 신부에게서 실제보다 더 악취가 났다는 믿음처럼 소박할 수도 있지만, 복지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신화처럼 사회를 좀먹기도 한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 유형 전체가 환상 진실 효과를 통해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전파되고, 의심 없이 믿어진다. 최악의 경우, 이런 편향을 지배하는 자는 폭군이 될 수 있다. 공적인 인물들은 반복과 압운 같은 아주 오래된 스토리텔링 전통을 정치 무대로 가져와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대량 퍼뜨려 편견을 조장하고 이로써 권력을 강화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언어적 기술은 진실을 깨우치는 즐거움을 불어넣는다. 또 무작위적인 일회성 일화보다는 여러 출처에서 확인된 정보를 중시하도록 우리를 일깨운다.(227-228p)
 
 
이번 세기 만들어진 신조어 중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아네모이아anemoia'로, 경험하지 않은 시절에 대해 느끼는 향수를 의미한다. 이전까지 이름이 없던 감정을 가리키는 신조어를 모아 놓은 매혹적인 해설집 「슬픔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존 케니그가 만든 단어다. 해당 책에는 좋은 책을 다 읽은 뒤 찾아오는 상실감을 듯하는 "루스레프트looseleft", 자신의 심장박동을 의식하는 불안감을 의미하는 "루바토시스rubatosis"등이 등장한다. '아네모이아'는 '바람'을 의미하는 'anemos'와 '마음'을 뜻하는 'noos', 두 고대 그리스어 단어와 관련이 있다.(270p)
 
 
만드는 과정에 우리의 도움이 들어간 물건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은 이케아 효과로 알려진 인지 편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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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효과는 2011년 아이비리그 연구자 세 명이 직접 조립한 제품의 가치를 부풀리려는 인간의 내재적 충동을 입증하면서 문서상 최초로 언급되었다. 하버드대학교 행동과학자 마이클 I. 노턴이 주도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레고를 조립하고, 종이를 접고, 이케아 상자를 조립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참여자가 DIY 취미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 때도,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걸 본 참여자는 곧장 만족감으로 부풀었다. 참여자들은 객관적으로 더 나은 미리 조립된 제품보다 자신이 조립한 제품에 더 많은 돈을 내겠다는 의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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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얘기로는 1947년 제너럴밀스에서 처음부터 직접 만든 케이크와 사실상 맛이 똑같은 새 베티크로커 케이크믹스를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처음에는 인기를 누렸지만, 곧 판매가 추락해 생산이 중단되기 직전이었다. 당황한 제너럴밀스사는 프로이트파 심리학자에게 분석을 요청했고, 그 심리학자는 판매 부진이 죄책감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업주부들은 자기가 한 일이 고작 물 붓기밖에 없다면 케이크가 진정으로 자기 것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두 손으로 직접 폭신폭신한 간식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자 제너럴밀스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마케팅을 전환했다. "달걀을 더하세요"라는 표어를 더해 케이크믹스를 재출시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기 쉬우면서도 너무 쉽지는 않은 케이크가 탄생했다. 베티크로커 판매는 급증했다.
이 달걀 전설의 세부 사항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우선 신선한 달걀을 더하는 것은 단순히 마케팅 술책만은 아니다. 그러면 실제로 인스턴트 케이크가 더 맛있어진다),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뭔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우리 손이 개입한 결과물을 그렇지 않은 결과물보다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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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보면 케이크믹스에는 추가 재료나 노동,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달걀이 '효능감', 즉 어떤 일이 잘 돌아가게 했다는 영적 만족감을 찾으려는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한 것이다. 달걀 먹분에 사람들은 자기도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298-301p)
 
 
 
 
ㅡ 어맨다 몬텔, <합리적 망상의 시대>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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