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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ㅡ 필립 로스, <전락> 中, 문학동네 2015.01.05
  2. ㅡ 이언 매큐언 <토요일> 中, 문학동네 2015.01.05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25~26p)


"아니요.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난 스스로에게 정말 솔직해질 때면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 맞아. 난 약간은 재능이 있어. 아니면 재능 있는 사람인 척할 수 있거나.' 하지만 그런 건 둘 다 요행이에요, 제리. 재능이 주어진 것도 요행, 빼앗긴 것도 요행이라고요. 이놈의 인생은 시작부터 끝까지 요행이에요."(42p)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리라는 생각을 하면 때로 놀랍기도 해. 내가 죽었을 때도 그럴 테지."(63p)


'내가 뭘 걱정하는데? 난 그 사람이 하루하루 더 늙어간다는 게 걱정돼.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예순다섯에서 예순여섯이 되고, 그다음엔 예순일곱이 되고, 그런 식으로 계속돼. 몇 년 후에는 일흔이 되겠지. 넌 칠십 먹은 노인이랑 살게 될 거고.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란다.' 어머니가 계속 말했어요. '그 다음에 그는 일흔다섯 노인이 될 거야. 절대 멈추지 않아. 계속 돼. 노인들한테 으레 생기는 건강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할 텐데, 어쩌면 상황은 그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그 뒤치다꺼리는 네 책임이겠지. 그 사람을 사랑하니?'(86p)


남자가 가는 길에는 수많은 덫이 갈려 있었는데, 페긴이 그 마지막 덫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그 덫에 발을 들였고,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포로처럼 미끼를 물었다. 파국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마지막에야 알았다. 있을 법하지 않았냐고? 아니, 예측 가능했다. 한참 후에 버림받았다고? 분명 그녀에겐 그가 느꼈던 것만큼 긴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를 매혹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때가 되자 그것은 그녀가 "이제 끝내요."라고 말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살고자 하는 욕심도 비운 채 혼자 그 막대 여섯 개만 지니고 그의 굴로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페긴은 차를 몰고 떠났다. 붕괴 과정은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자초한 몰락으로 인한, 이제 결코 회복할 길 없다는 사실로 인한 붕괴.(140p)



ㅡ 필립 로스, <전락>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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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의 사항을 떠올리는데 짜증이 치민다. 볼 필요도 없다. 차 한쪽이 망가졌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가 눈에 훤하다. 몇 달 동안 서류 절차, 보험 소송과 반대 소송, 전화에 매달려 살 테고, 정비소는 약속 일자를 미뤄대겠지. 그의 차는 본디의 참모습을 잃었으며, 아무리 감쪽같이 수리한들 결코 원래로 돌아가지는 못 할 것이다. 앞 차축, 축받이에도 충격이 갔고, 장기적인 고문의 핵심이 될, 비밀에 싸인 부속 장치, 즉 랙 앤드 피니언 방식의 조향장치도 충격을 받았다. 이 차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차는 처참하게 달라졌으며, 그의 토요일도 그렇다. 시합은 글렀나보다.(139~140p)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를 둘러싼 육지며 바다에서 기계나 다름없는 생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존재라고 믿던 편리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물고기조차 고통을 느낀다. 확장되는 도덕적 연민의 범위, 이것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적 조건이다. 머나먼 곳에 사는 사람들만 우리의 형제자매가 아니다. 여우도, 실험실 생쥐도, 그리고 이제는 물고기까지도 우리의 형제자매다. 퍼론은 낚시 한 것을 직접 먹거나 바닷가재를 산 채로 펄펄 끓는 물에 던져넣은 적은 없지만, 언제든 식당에서 주문해 먹을 의향은 있다. 늘 그래왔듯이,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다. 이렇게 통찰력을 발휘해 떠들어봐야 가까이에 있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당해낼 수 없는 힘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것은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이 잔잔한 메릴본에서 세계가 그토록 온전히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다.(209~210p)


그들은 앞으로의 운수를 믿을 수 없으며,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한다. 그들은 또한 모든 것이 끝난 뒤, 서로를 되찾고 난 뒤에는, 망각의 약속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448p)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는 표면적인 차이점일 뿐이다. 그것은 그저 계급이나 기회만의 차이는 아니다. 술꾼과 마약쟁이 들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출신은 다양하다. 최악의 폐인 중에는 사립학교 출신들도 있다. 직업 환원주의자 퍼론은 그것이 결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분자 단위의 암호로 기록된 성격적 결함의 문제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생계를 꾸릴 수 없는, 혹은 '한 잔 더'를 뿌리치지 못하는, 혹은 오늘 하리라고 어제 결심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암울한 운명이다. 사회 정의를 제아무리 강력하게 실현한다 해도 모든 도시의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심성 허약한 집단을 치유하거나 사라지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헨리는 목욕 가운 앞섶을 바짝 여민다. 악운을 보면 바로 알아차려야 하며,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중독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지만, 어떻게든 마음이나 편하게 해주고 비참한 상태를 최소화시켜주는 것밖에는 해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451p)


그는 약하고 무지하며, 하나의 행동이 결과를 빚는 과정에서 자신은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또다른 사건, 또다른 결과를 낳아, 결국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결코 자진해서 선택할 리 없는 지점ㅡ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ㅡ에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 무서울 따름이다.(460p)



ㅡ 이언 매큐언 <토요일>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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