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6

 

 

움베르토 에코가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서 웃기다고 언급하길래 도서관에서 찾아봤는데, 소설은 없고 그래픽 노블로 있길래 이걸로 읽음. 카프카스러운 책

 

 

프란츠 카프카, 레알 고부, <아메리카(실종자)> , 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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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15

 

 

작가의 책을 재밌게 읽었던지라 궁금한 책이었는데 별로 재미없음. 작가마다 거의 한 페이지 내외로 답변을 하니 재밌을 수가 있나. 미셸 우엘벡과 움베르토 에코 정도가 기억난다. 그리고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이나 돈키호테를 평상시에 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수아 아르마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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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18

 

결혼을 향하여와 ax에게는 읽다가 말았다. 킹도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읽지 않았으니 이 책이 존 버거의 그 많은 책 중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 됐다. 97p는 오래 읽은 그 어떤 문장보다 좋다. 읽을수록 아름다운 문장이다. 다음에는 행운아를 읽어볼까.

 

 

 

이러한 이주가 과거의 것들과 구분되는 점은 이번의 것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일단 건너온 나라 안에서 영주권이 허락되는 노동자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 계약은 보통 1년 동안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2년이다. 이민노동자들은 노동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팔러 온다. 그는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그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없으며,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은, 돈도 받고 숙소도 제공된다. 더 이상 그것을 안할 때에는, 그는 처음에 출발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인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이것이 임시 이주의 의미일 뿐이다. 인간(남편·아버지·시민·애국자)으로 재생되려면 어떤 이민이든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는 아무런 장래가 없어서 그가 떠나왔던 고향으로.(62p)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64-65p)

 

 

이민을 가는 노동자들은 원래 태어난 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이 실직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나라 그 사회가 그들의 양육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변경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학자들은 가끔 자본 수출로서의 이민이 생산의 다른 요소들이 수출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집계된 바로는, 한 이민노동자들의 양육, 그가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그의 조국의 국민경제가 부담하는 액수가 약 2천 파운드에 이른다. 한 명 한 명의 이민이 도착할 때마다, 저개발된 경제권에서 개발된 경제권에 대해 그만한 액수를 희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공업화된 나라가 차지하는 저축액은 또 훨씬 막대하다. 그곳의 좀 더 높은 생활 수준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의 조국에서 열여덟 살짜리 노동자를 생산해 내는비용은 1인당 8천 파운드에서 16천 파운드는 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서 온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시화된 국가가 매년 8백억 파운드 이상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이다.(72-73p)

 

 

그 일이란 닦아야 할 마룻바닥, 뚫어야 할 구멍, 들어올려야 할 주물, 두들겨야 할 금형, 맞추어 넣어야 할 톱니바퀴 상자 같은 것들이다. 그 일을 다 하고 나면 똑같은, 아니면 거의 똑같은 작업이 대신 나타나고, 똑같은 일이지만 다른 마룻바닥, 다른 구멍, 다른 주물, 다른 금형, 다른 톱니바퀴 상자가 나타난다. 그것이 다른 것이라는 건 그가 이미 그 일을 해 버렸기 때문인데, 이제 그는 그것을 다시 해야만 하고, 그것을 마치면 다시, 또다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다른 것들인데 보기에는 같아 보인다. 그것들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도시 전역에 걸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침대가 있는 방 모퉁이의 한쪽 벽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모든 것은 같은 사물의 한 부품이다. 그 한 부품 안에서 그는 일하고, 또 한 부품을 따라서 걸어가고, 또 한 부품 속에서 잠자고, 테이블 모양으로 되어 있는 또 한 부품 앞에서 밥을 먹으며, 그가 먹고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는 한 부품이다. 그 모든 부품들은 그가 지금 들어가 있는 똑같은 것의 각 부분들이며, 그 속에서는, 만약 그가 몸을 잘못 움직이거나 발을 헛디디면, 당장 으스러져 버리고 만다. 그 속에서 그에게 허용되는 것은 간신히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장소뿐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자기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 빼고는.(91-92p)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어떤 세계의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 세계의 모습을 해체하여 자기 시각으로 재조립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행한 일정한 선택을 이해하려면, 그가 부닥쳤거나 거절당했던 다른 선택들의 결핍 상태를 상상 속에서 직시해 보아야 한다. 잘 먹는 사람들은 못 먹는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서툴게나마 남의 경험을 파악할 수 있으려면 그 세계를 분해해서 재조립해 봐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의 주관 속에 들어가느니 하는 얘기는 오해에 이를 여지가 있다. 남들의 주관이란 똑같은 외부적 사실들에 대해서 단순히 내부적인 태도만이 다른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중심부에 놓여져 있는 사실들의 별자리 자체가 다른 것이다.(97p)

 

 

도시 중심지역에서는 그런 주장이 일반적으로 신봉되고 있다. 거기서는 착취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은 지구 반대쪽 끝의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쪽이라는 개념은 지리학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해당된다. 파리시 교외의 판자촌같은 것은 거기에 속한다. 지하실에 파묻혀서 잠자고 있는 이민들도 거기에 속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102p)

 

 

찍고, 구멍 뚫고, 누르고, 두들기고, 수력 기계들의 비명소리, 물질이 물질을 때리는 충격, 어느 한 물질이 다른 물질을 긁는 삑삑거리는 소리. 그가 그런 소음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 소음 자체가 더 많은 물질을 때리고 긁어대는 것이다. 그 반향음 속에는 모든 메아리가 끝까지 가기 전에 중단되도록 만드는 지속적인 리듬이 들어 있다. 어떤 음도 저절로 스러져 죽어 가거나 새롭게 시작되는 것은 없다. 만약 그 소음이 좀 느슨해지거나 그가 공장을 떠나더라도, 그 소리의 중지가 곧 정적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와 똑같이 지속적이고 단편적인 리듬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가 그것을 느끼면서도 귀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귀가 멀어 가는 것과 같게 된다.(110p)

 

 

현지 출신 노동자들은 이민들이 열등한위치에 있다고 보는데,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은 언제나 이민들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얘기뿐이다. 아무리 애써도 서로 알 수조차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 두 가지 특성은 하나로 융합된다. 이민노동자들은 알 수가 없는 대상이라는 데에서부터 알 만한 가치 이하의 존재들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질서가 없고 무기력하며 사악한 존재들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열등한이란 단어 양쪽에 붙어 있던 인용부호마저 사라지게 되고, 이민노동자들의 본질적 열등성의 증거가 곧 그들이 처해 있는 열등한 처지라는 식이 된다. 그가 받는 임금이 곧 그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융합은 이미 발생했다.(150p)

 

 

자기가 그 작업에 필요한 지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터널 노동자치고 자기 저축 목표액을 달성하기 전에(그것은 대개 3년에서 5년쯤 걸린다) 터널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대다수 자기 동포들에 비해서 자기가 자리를 잘 잡았다는 것을 안다. 해마다 9개월의 노동기간이 끝나면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계약회사는 대개 그가 다시 지원할 경우에 다시 써 준다. 그러나 그가 다시 스위스에 입국할 때면 그는 맨 처음 또는 몇 번째로 입국하는 다른 이민들과 똑같이 정해진 건강진단을 거쳐야만 한다. 매번 되풀이되는 그의 두려움의 하나는 다음번에 이런 일을 당할 때 그의 폐 엑스레이에 나타난 그림자를 근거로 하여 입국이 거절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181p)

 

 

그 마을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두 번 다시 그것을 자기가 떠나기 전의 것처럼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전과 다르게 보이고, 그도 전과 다르게 본다.(238p)

 

 

존 버거, <7의 인간>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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