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8

 

낄낄거리며 읽었다. 재밌고 솔직한 친구의 일기를 훔쳐본 느낌.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한테 매일 혼났다. “너는 언니가 돼가지고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철이 없다고? 와, 진짜 내가 얼마나 똥을 잘 참는데!’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똥을 참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철이 없다’는 뜻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51-52p)

 

 

“경미는 그냥 운동 부족이다. 줄넘기라도 좀 해라.”(62p)

 

 

같은 입장이 아닌 사람에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바라진 않는다. 마음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나도 사람인지라 살다보니 나쁜 줄 알면서 싫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티 내진 말자 이 말이다. 마음 깊이 우러 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진짜 싫은 상대를 위해 이 불타는 싫은 마음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75p)

 

 

꿈에서 깼는데도 감정은 계속됐다. 어릴 적 늘 느끼던 패배감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많이 노력해야 남들 절반이나 겨우 따라잡을 수 있다고 느껴왔던 시간들.(95p)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113p)

 

 

올해의 결심.

별로인 것을 두려워 말고 쓸 것.

정말 간절히 원하면, 원하지 말 것.

나나 잘할 것.(137p)

 

 

아빠는 결국 실패했다. 난 지금도 식탐 많고, 너무 크게 웃고, 밤늦게 쏘다닌다. 그렇게 극장 출입을 금했지만 영화감독이 됐다. 그리고 나는 진짜 잠이 많다. 자식은 절대 부모 뜻대로 안 된다.

(...)

모든 자식은 부모를 부정하고 일어서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야 발전하고 성숙한다.(187-188p)

 

 

필수는 쓰레기통을 부엌 싱크대에서 닦는다.

자기네 가족은 원래 그런다고 한다.

 

나는 쓰레기통을 욕실에서 닦는다.

요리하는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닦다니 말도 안 된다.

 

필수는 얼굴을 닦는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닦다니 토 나온다고 한다.

 

어렵네.(227p)

 

 

시나리오를 쓰면서 경계하는 점.

나를 무고하고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습관.

어려운 장애물을 대출 피하고 싶은 습관.

인물을 통해 남 탓하고 싶은 습관.(252p)

 

 

ㅡ 이경미, <잘돼가? 무엇이든>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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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9

 

 

윤현은 눈을 들어 거실 쪽을 쳐다보았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다니다 말고 어디서 아비모를 아이를 임신해다가 둘이나 낳아놓은 여동생과, 게임 중독인 남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이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골목 밖으로 나서면, 온통 그런 이들 천지였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는, 그저 오늘 하루하루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한 이들.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이 마을 밖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책을 읽고.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골라내고 글을 쓰고. 그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어릴 때 보았던 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이 싫구나.”(80p)

 

 

상관없었다. 윤현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태어나서 자란 동네에서 보고 들은 모습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박식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먹고 자고 놀고 쉬는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세상에 접속할 권한을 원했다.(90p)

 


 

ㅡ 파출리 외,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中, 온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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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4

 

 

이렇게 용인된 사람들은 코무네가 도서관 하나 허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잊힌 변두리, 특히 브로치와 피아제 외곽 구역에 정착했다. 피렌체와 피사를 연결하는 철도와 극도로 오염된 아르노 강 사이에 끼어 고양이만큼이나 큰 쥐들과 함께 사는, 프란츠 파농이 외쳤듯 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자신들의 막사를 짓고 바퀴마저 떨어져나간 캠핑카를 설치해, 말하자면 코무네가 너그러이 그들에게 베푼 이 관용, 서서히 죽어가는 하층민의 고뇌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수도나 전기, 하수 시설, 응급조치 등 어떤 형태의 시설이나 원조도 없다. 종종 그들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줄 서류조차도 없다.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가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허용한 것은, 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협소한 이 황무지에 살고 있는 인간임을 증명해준 것은, 오직 그들의 육신뿐이다.(37-38p)

 

 

피렌체 시민 여러분, 용기 있는 행동으로 그들 자리에 변두리 집시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들은 교활하고 사악한 도둑들입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여러분의 지갑을 훔칠 것이고, 운이 좋으면 이 오래된 거리 교차로에서 적선을 요구하며 귀찮게 하는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부를 빼앗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덜 예민하고 덜 긴장하고, 더 즐겁고 여유 있게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일흔 살이나 잘 해봤자 여든 살 이상은 살기 힘든 모든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피렌체 시민들이여, 교환상품이 되고 싶지 않다면, 여러분의 인간적 정체성 생존을 위한 이 호소문에 서명하십시오.(75p)

 

 

 

안토니오 타부키, <집시와 르네상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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