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0

 

카레르가 3주만에 쓴 데뷔작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계속 읽으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여러 번 끊어 읽었다. 책의 완성도는 나무랄 데 없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아가는 책이라 힘들었다. 왕국이나 리모노프도 언젠가는...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사무실이나 집에서 그를 정신병자 수용 시설에 처넣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면서 전처럼 다시 시작하자고 암묵적인 합의를 하면, 아마 삶은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영원히 망가져 버릴 것이다. 이 일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대화 도중에 이 끔찍한 일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는 위험, 사건의 후유증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그가 두 사람의 공통된 기억,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아무 뜻 없이 언급할 때 아네스가 창백해지면서 입술을 깨물고 한참 말이 없는 것만 봐도 <또 시작이구나>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다시 와해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지뢰밭 위에서의 생활, 언제 다시 우르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채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는 생활, 이런 생활을 어느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을 상대로 음모가 꾸며졌다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도망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ㅡ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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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6

 

 

'자기만의 방'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그때도 느꼈지만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 자체가 사건 중심의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읽으려고 하면 쉽게 지치는 것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 소설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등장 인물의 내면에 감정이입을 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에는 가독성 높은 번역의 덕도 있을 듯하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덜 낯설어서일 수도 있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도', '등대로', '세월' 중 한 권 정도는 더 읽어봐야지.

 

 

 

 

군중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원한 국가의 상징인 국왕과 말을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 존재가 누군지는, 후에 시간의 잔해들을 면밀히 조사하는 호기심 많은 골동품 연구가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그때 런던은 풀이 웃자란 오솔길일 것이고, 이 수요일 아침 인도를 따라 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결혼반지를 낀 뼈다귀와 금이빨밖에 남지 않은 채, 먼지에 덮여 있으리라. 그때서야 자동차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 알려지게 되리라.(27p)

 

 

하지만 흐르는 시간이 두려웠다. 브루턴 부인의 얼굴, 그 무표정한 돌 같은 얼굴 위에서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해 한 해 베어져 나간 그녀의 인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남은 시간도 젊은 시절처럼 삶의 색과 맛과 분위기를 만끽하며 보낼 순 없으리라. 젊었을 땐 어느 방에 들어가면 그 방이 자신으로 가득 차는 듯했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 문턱에서 잠시 머뭇거릴 때면, 종종 황홀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발아래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잠수부처럼, 무언가를 부술 듯 위협하다 부드럽게 표면 위로 솟구치는, 진주빛 수초를 뒤집었다 덮었다하는 파도를 내다보는 심정으로.(47p)

 

 

지금까지 수백만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봤지만, 그럴 때마다 늘 얼굴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입술을 오므렸고, 그러면 날카롭고, 화살같이 뾰족하고, 명확한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은 자신의 바람을 그러모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양립할 수 없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존재인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세상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라도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찬란한 빛을 제공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 젊은이들에겐,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다른 면모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결점이나 질투심, 허영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찬에 초대받지 못해 들끓는 감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정말 비열하다고 (마침내 머리를 빗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옷은 어디 있지?(57p)

 

 

"내게 진심을 말해줘, 진심을." 그가 아무리 계속 그렇게 말해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돌처럼 굳어버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심을 말해달라고." 그는 되풀이해 말했다. 그때 갑자기 <타임스>지를 든 늙은 브라이트코프가 불쑥 나타나더니, 입을 벌린 채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냥 가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심을 말해줘." 그는 되풀이해 말했다. 딱딱한 것에 부딪혀 으스러지는 심정으로. 그녀의 표정은 온화하지 않았다. 강철 같고, 부싯돌 같았다. 뼛속까지 뻣뻣해 보였다. 그는 몇 시간이나 눈물을 흘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침내 그녀가 "소용없어요, 소용없어. 이게 마지막이에요"하고 말했을 때,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떠나버렸다.(94-95p)

 

 

늙는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바로 이거야. 열정은 여전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을 천천히 불빛 아래 돌려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존재에 최상의 향기를 더해주는 힘이지.

끔찍한 고백이지만ㅡ그는 다시 모자를 썼다ㅡ쉰세 살이 되고 보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필요치 않았다. 인생 그 자체, 인생의 순간순간, 그것의 방울방울, 여기, 이 순간, 지금 이 햇빛 속에, 리젠트 공원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힘이 남았다 해도, 인생의 참맛을 보기에는 남은 인생은 너무 짧을 것이다. 그 남은 세월 동안 생의 기쁨을, 생이 지닌 그늘을 미묘하게 추출해내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것들이 전보다 더욱 견고해 보이고,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라리사가 준 고통도 예전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115-116p)

 

 

언제나 똑같았다. 하루가 지나면 다른 하루가 찾아왔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야만 했고, 하늘을 쳐다봤고, 공원을 거닐었고, 휴 휫브레드를 만났고, 그러고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피터가 찾아왔다. 또 리처드가 저 장미를 가져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러다가 죽음이 온다니, 언젠가는 끝이 오고야 만다니,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가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순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178p)

 

 

그녀는 아픈 사람들으 좋아했다. 킬먼 양이 당신 세대 여성에게는 모든 직업이 열려 있다고 했으니, 의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장주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동물들도 종종 아프니까, 1천 에이커쯤 되는 땅을 가지고 사람을 부리는 농장주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사는 오두막에도 찾아가볼 것이다. 이게 서머실 하우스구나. 나는 아주 훌륭한 농장주가 될거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은 킬먼 양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전적으로 서머싯 하우스 때문이었다. 그 커다란 회색 건물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장중했다.(198-199p)

 

 

그는 혼자 있어야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야 울 수도 있었다. 이런 묘한 감수성 때문에, 그는 인도의 영국인 사회에서 파멸했다. 적당한 때에 울거나 웃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런던의 우체통 옆에 서 있는 그는, 지금도 자기 안에 울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 그리고 오늘 하루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클라리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 오늘 하루의 무게가 강렬한 더위로 더욱 무거워졌고, 뒤이어 런던에서 받은 이런저런 인상이 한 방울, 한 방울,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지하실 바닥에 괴어 그를 피곤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완전하고 침범할 수 없는 은밀함 때문에, 인생은 깜짝 놀랄 만한 구부러진 길과 후미진 곳으로 가득 찬 비밀의 정원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놀래키고 숨 막히게 만드는 것이다. 대영박물관 건너편 우체통 곁에 서 있을 때도, 그는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은 것이었다. 즉 앰뷸런스로 인해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그는 마치 감정의 세찬 흐름에 빨려 높은 지붕 위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그리고 빨려가지 않은 남은 몸뚱이는, 하얀 조개들이 흩어져 있는 해안가에 벌거벗은 채 남아 있는 듯했다. 바로 그런 감수성이, 인도의 영국인 사회에서 그가 파멸하게 된 원인이었다.(220-221p)

 

 

그녀는 또한 섀프츠버리 거리를 올라가는 그 버스에 앉아서, 자신이 모든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의자 등받이를 탁탁 치며 '여기, 여기, 여기'가 아니라 모든 장소에 내가 있는 것 같다고 손을 휘두르며 말했었다. 저 모든 것이 나 자신이라고, 때문에 나를, 아니 그 누구라도 제대로 알려면, 그를 완성시켜준 사람들이나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거리를 지나가는 여인이나 카운터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심지어는 나무들이나 헛간 같은 것에서도 이상한 친근감을 느낀다고 했었다. 그것은 결국은 초월적인 이론이 되었고, 거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작용하여 그녀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을 (회의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믿게 되었다. 혹은 믿는다고 말하게 되었다. 우리의 외양, 즉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덧없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부분만이 널리 퍼져 나가 계속 살아남아서, 죽음 뒤에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라붙거나 어떤 장소들에 출몰하게 될 것이라고. 아마도, 아마도.

거의 30년 동안 그녀와 우정을 유지했던 그에게, 그녀의 그런 이론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떠나 있기도 했고 여러 일들로 방해도 받았기에(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도 그가 막 클라리사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을 때, 다리가 긴 망아지 새끼같이 날씬한 엘리자베스가 말없이 들어왔었다) 그들의 실제 만남은 짧고, 파편적이며, 때때로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만남들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신기할 정도로.(221-222p)

 

 

사실 그는 가끔 나타나서 맴돌다가 쏜살같이 내려와서 단숨에 먹이를 잡아채는 매나 솔개처럼, 즉 스스로 자족하는 고독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여러 개의 열쇠들과 서류들을 분류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물론 그는 어느 누구보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었다(조끼의 버튼을 채웠다). 그것이 그의 파멸의 원인이었다. 그는 흡연실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고, 대령들과 어울리긴 좋아했고, 골프와 브리지 게임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여자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과의 교제는 아름다웠고, 그들의 사랑은 성실하고 대담하고 위대했다. 비록 장애물들이 있었지만(봉투들 위에는 머리카락이 까만,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삶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귀하고도 눈부신 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조차 전적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언제나 상황을 살폈다(클라리사가 그에게서 무언가를 영원히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데이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기질상 그는 질투심으로 크게 화를 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한 헌신에 아주 쉽게 싫증을 냈고, 다양한 사랑을 원했다.(230-231p)

 

 

샐리의 목소리는 그 옛날처럼 황홀한 울림도 없었고, 눈빛도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그래도 클라리사의 눈엔 시가를 피우던 샐리가, 스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가지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복도를 가로지르던 샐리가 눈에 선했다.

(...)
그냐는 대담하고 무모해서 모두를 집중시키며 야단법석을 떠는 타입이었기에,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순교자처럼 죽을 거라고, 끔찍한 비극으로 인생의 막을 내릴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놀랍게도 결혼식 때 상의에 커다란 꽃 장식을 달았던, 맨체스터에 큰 방직 공장을 가지고 있는 대머리 남자의 부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다니!(264-265p)

 

 

우리는 계속 살아가겠지(그녀는 다시 손님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붐볐고, 새로운 손님도 계속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하루 종일 부어턴을, 피터를, 샐리를 생각했었다) 계속 늙어가겠지. 그녀에게도 지켜내고 싶은 중심의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쓸데없이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잡담에 파묻히고 거짓말에 더럽혀지기도 하며 녹아 없어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중심을 지켜냈다. 죽음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저항이었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신비하고도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삶의 중심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점점 더 그 중심에서 멀어져가, 거기에 접근하면서 느꼈던 황홀감도 잊어버린다. 그렇게 황폐해져가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믿을 수 없이, 클라리사는 요즘처럼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의자들을 바로 놓고 책꽂이에 책을 꽂으며,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상실한 채, 일상에 파묻혀 자기 자신을 잃으며 살아가다가, 문득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큰 희열에 휩싸였다. 부어턴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떠들고 있을 때, 혼자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런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하늘을 보려고 창가로 걸어 나갔었다.(269-271p)

 

 

 

ㅡ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中,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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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4

 

 

사이비 교주 취재 담당 기자로 30년을 일한 기록을 모은 취재 무용담. 현상에 대한 분석이나 통찰은 없고 그냥 자신이 경험한 취재 에피소드 나열에 그쳐 식상하다.

사이비 교주나 사이비 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이라니 참으로 기독교인다운 발상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사람들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질까? 나는 강의할 때 그 이유의 핵심을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도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 때문에 사이비에 빠지게 된다.(214p)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그게 저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비 교주들을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사기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 이상자'다.

사기꾼 교주는 말 그대로 사기를 친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돈이나 여자다. 결코 진리가 아니다. 사기꾼 교주의 가장 큰 특징은 주 자신이 스스로 신이 아닌 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직 신의 이름을 이용할 뿐이다. 반면에 정신 이상자 교주는 정말 자신이 신이거나 신과 같은 존재인 줄로 착각한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교주의 수는 많지 않다. 또 오래 존립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돈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이다.(232-233p)

 

 

요즘 교주와 과거 교주 사이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먼저 자체 교리로 무장하고 있느냐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요즘 교주들은 과거에 비해 이론(교리)으로 무장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요즘 교주들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교리를 구성해 놓았다. 신도들에게도 교리공부를 강조한다. 기독교 옷을 입고 있는 사이비는 <성경>을 사용하고, 불교 계통의 사이비는 <격암유록> 등을 주로 많이 사용한다.

(...)

둘째는 사이비 교주들의 반대 세력 대응 태도다. 20~30년 전만 해도 교주들은 신도들을 동원해 자신을 비판하고 연구하는 기관이나 신문, 방송 언론사 등을 직접 찾아가 물리적으로 실력 행사하는 일이 잦았다. 출입문을 부수거나 책상을 뒤엎고, 심지어 연구원과 기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공영 방송국을 점령하여 방송에 차질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한 사이비 이단 연구가가 모 신도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교주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설픈 물리적 행동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또 개인 휴대전화가 언제든 녹음과 영상 촬영으로 동원될 수 있는 시대다.

그 대신 법적 고소 사건이 대폭 늘었다. 언론사를 상대로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것이 요즘 교주들의 특징이다. 따라서 기자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취재할 때 심증보다 물증 중심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이비 교주들 중 어떤 이는 신문 방송에 자신을 비판하는 보도가 나올 경우 무조건 소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법정 싸움을 하면 자신이 패소할 것이 뻔한데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법적 승소가 아니라, 내부 단속용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비판하는 신문 방송 보도로 인해 동요되는 신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게 주된 목적이다. 교주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고, 또 증인들도 돈 때문에 사주받은 것이라고 떠든다. 신도들을 대거 동원하여 교주 결백을 증명한다는 집회를 갖기도 한다.(251-256p)

 

 

 

ㅡ 장운철, <나는 교주다> 中,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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