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7

 

 

희박한 마음, 재, 전갱이의 맛 이렇게 세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돌아오면서 디엔이 예전에 어느 공원에 갔다가 데런이 새로 산 단화가 맞지 않아 발을 절다가 갑자기 폭발했던 일을 환기시켜줬다. 데런도 당연히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어디론가 나가자고 해놓고 나가서는 늘 그런 꼴이 되곤 했지, 하고 데런이 사과하자 디엔은 늘 이유가 있었잖아, 늘, 하고 말하며 또 그 야릇한 고갯짓을 했다.

가끔 예고 없이 출현하는 그것은 데런의 고질병이었다. 데런은 늘 그것을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지만 그 의지가 생겨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튀어나온 후였다. 언젠가 디엔은 데런이 화가 나서 이성을 잃기 직전의 표정에 대해 얼음이 타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데런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만히 바라본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평온해 보이는데, 그때 아마도 데런 너는 곧 진행될 폭발에 대해 섬광처럼 짧게 숙고하는 것 같다고, 폭발 이후의 미래를 일별하고 그 혹독한 대가를 예감하면서도 그 무서운 미래가 실현되고 말리라는 것을 아는 얼굴이라고,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려는 분신자가 마치 먼 행성의 폭발을 기다리는 천문학자처럼 냉철한 눈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내부의 심연이 균열되는 걸 최후로 관조하는 눈이라고 디엔은 말했다.(102-103p)

 

 

남학생이 끄라고 했다. 데런과 디엔 둘 중 누군가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던 것 같고 둘 중 누군가가 묵묵히 담배를 빨았던 것 같다. 남학생이 다시 끄라고 했다. 못 끄겠다는 디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학생은 끄라고! 끄라고! 끄라고! 소리치며 팔을 드러올려 디엔의 뺨을 내려쳤다.

(...)

데런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싹하면서도 불구덩이에 들어앉은 듯 후끈한 기운을 느꼈다. 끄라고! 데런은 그때였다고 생각한다. 디엔의 꿈속에서 오래전에 죽은 걸로 등장한 자신이 오래전에 죽은 순간은 바로 그때였을 거라고. 끄라고! 디엔이 얻어맞은 직후에 자신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건 그때 자신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는 걸, 완전무결하게 무력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끄라고! 그 주문은 담뱃불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 그들의 사랑을 향한 것이었다고. 끄라고!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던 자신의 내부에서 고요히 작열하던 무력감이 정신의 어떤 연결 퓨즈를 태워버렸을 거라고. 끄라고! 그 분노와 절망과 공포가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응결시켰으리라고. 끄라고! 못 끄겠다고 말한 건 디엔이었지만 아직도 꺼지지 않는 잉걸이 자신의 내부에 남아 있다고. 끄라고! 끄라고! 끄라고! 꺼지지 않는 그것이 어둠 속에서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두르는 거라고!(108-109p)

 

 

저는 잘 모르지만····· 처형이 보시기에 그때까지 민지한테 무슨 문제는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그전까지는 정말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처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과연 단호하게 없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시점까지는 단호히 아무 문제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해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레고르처럼 민지가 변신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자해인 줄 알았는데 피해 학생이었던 혁준이라는 아니처럼, 민지의 문제 또한 완벽하게 위장되거나 은폐되어 있다 터져버린 걸까.(205-206p)

 

 

간단히 정리하자면 힘든 건 크게 두 종류였어, 라고 그는 말했다.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과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

“그게 달라?”

“달라. 못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차이니까.”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편함이었다.

(...)

내 복잡한 심사와 상관없이 그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은, 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말 비슷한 걸 해서 성대를 울리게 될까봐 주의해야 하는 불편함이었어.”

(...)

“그런데, 사람은 또 적응을 하게 되더라고. 말을 못해서든 하지 말아야 해서든, 모든 게 익숙해지니까 견딜 만했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 정작 힘든 건·····”

(...)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나는 잠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새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237-241p)

 

 

 

ㅡ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中, 문학동네

,

2023/6/16

 

 

읽기 시작 한 초반부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시점인지 헷갈려서 더듬더듬 읽어나갔는데 점차 익숙해졌다. 소설 내내 적당한 의외성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아귀가 맞게 진행되어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근자에 읽은 책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들키고 나니 알겠더군요.” 보일 씨가 자조했다. “제 취미는 여장이 아니라 사생활이었다는 걸요.”

보일 씨가 원했던 건 여자 옷을 입는 게 아니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모르는 어떤 것,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어떤 것을 원했다. 사생활을 원했다. 여섯이 살기에 집은 좁았다.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보일 씨는 은협과, 아니면 대연과, 아니면 중연과, 아니면 소연과, 아니면 민희와 끊임없이 마주쳐야만 했다. 회사에서 지쳐 돌아와도 쉴 수가 없었다. 일하고 돌아오면 또 일이 기다렸다.(156p)

 

 

 

ㅡ 장진영, <취미는 사생활> 中, 은행나무

,

2023/6/15

 

 

아무리 차근차근 생각해보려 해도 추모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내 정신은 급격히 혼탁해지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36p)

 

 

엄마, 나는 미래완료라는 말이 그렇게 슬퍼. 언제부턴가 난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는 걸. 엄마가 나간 다음에 나 혼자 엄마 없이 살 거라는 걸. 나 고2 때 엄마가 진짜 이혼하고 나갔잖아? 내가 상상한 그대로 미래완료가 된 거야. 나 혼자 집에 있고 엄마는 집에 없고. 그렇게 될 줄 다 알면서 모른 척 살아온 거 같았어.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더 나쁜 미래완료가 생겨난 거야. 아직 안 일어났지만 일어난 것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미치겠어. 어느 날 엄마가 죽고 없는데 나 혼자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거야. 어떤 때는 캄캄한 방에 누워 있는데 엄마는 죽고 없는거야. 그러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숨을 못 쉬겠어.

(...)

알아. 엄마 보면 날 사랑하는 거 맞아. 날 사랑해서 힘든 게 보여. 나도 엄마 사랑해. 그래서 힘들어. 근데 엄마, 내가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는 거야? 사랑하는 게 왜 좋고 기쁘지가 않아
?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미워하면 되는데, 왜 우린 사랑을 하고 있어? 왜 이따위 사랑을 하고 있냐고.(77-78p)

 

 

무엇보다 마리아가 말하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숨결 냄새가 지독해 베르타는 토할 것 같았다. 시큼하고 구린 구취에 베르타는 엉겹결에 마리아를 밀쳤고 마리아는 뒤로 밀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

거기까지였다고 베르타는 생각했다. 그날 저녁까지만이었다고. 남편이 죽고 나서 자신이 제법 철이 들고 너그러워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때는, 불안과 초조와 결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기쁨에 젖어 기도를 올릴 수 있으리라는 섣부른 믿음을 품었던 때는 봄 바자회에서 마리아를 만나 함께 태극기를 팔러 갔던 그날 저녁까지만이었다고. 불과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잠깐 동안뿐이었다고. 눈을 찌른 여자의 양산이 싸구려가 아니었다면, 마리아의 구취가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오심과 구토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베르타는 비웃듯이 입가를 비틀었다. 조금 전 성당 안뜰에서 그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빅토르의 병원에 달려가 봉사할 듯이, 앞다투어 소피아의 입양을 주선할 듯이 떠들어댔지만 내일이 되면 그들 중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믿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해 그런 허튼소리들을 내뱉은 것일까.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113-114p)

 

 

지도교수인 박선생은 오익이 논문에서 간과한 부분을 오익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자신이 알아챘다면 간과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오익은 오숙이 얼마만 한 분노가 있었기에 자신을 ‘너’라고 부르며 의절을 통보하는 문자를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이 딸이었다면, 모든 걸 희생하고 차별받고 살아온 그런 존재였다면 오숙처럼 무섭게 돌변할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그는 한없이 억울했고 뭔지 모를 어떤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199-200p)

 

 

자다 가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날 때가 있다.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경서와 내가 멀어지게 된 데 특별한 이유나 계기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어느 순간 번쩍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이 뜻밖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내 정신은 깊은 어둠과 무지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230p)

 

 

 

ㅡ 권여선, <각각의 계절> 中, 문학동네

,

2023/6/2

 

 

 

또또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으면 한 순간도 견디지 못했다.(111p)

 

 

그러나 대충 줄거리는 그랬고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죽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빨리 더 많이 죽는다고, 그건 우연이고 팔자이지만, 형편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어머니는 했다. 형편이 안 좋으면 다 안 좋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야겠노. 어머니의 형편은 경제 사정이나 계급이 아니었고 성격이나 가족 관계도 아니었으며, 운명, 사주도 아닌 그것들이 어찌 어찌 돌아가는 형세 같은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걸 좋게 만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느 정도여야 좋은 건지, 어머니는 이 정도면 당신의 형편이 좋은 거라고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형편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형편은 비교라는 걸,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사람에겐 형편이랄 게 없고, 사회가 형성되고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룰 때 존재한다는 걸.(184-185p)

 

 

ㅡ 정지돈, <인생 연구> 中, 창비

 
,

2023/5/10

 

밋밋하다. 단편집을 읽어봐야 할지 생각 중.

 

 

인류의 비극이란 모두 의미를 찾는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의 의미를 찾다가 자기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고,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사랑이라는 착각을 발명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공동체를 만들고, 사랑을 혐오로 바꾸고, 혐오를 증오로 바꾸며, 그걸로도 모자라 대의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의미라는 것 자체가 우주엔 없다. 그런데 왜 인간은, 아니 나는, 여전히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흩뿌려진 수천수만의 점을 자꾸만 이어보려 하는가?(70p)

 

 

이야기에는 늘 아이러니 팩터라는 게 존재하고, 이야기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생각도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데 있다. 내가 직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입력하며 얻은 교훈은 그것 하나다. 이야기는 늘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버지의 인생도, 예측도, 내 현재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96p)

 

 

 

ㅡ 문지혁, <비블리온> 中, 위즈덤하우스

,

2023/4/22

 

 

규가 남편의 핸드폰에서 남편과 지경의 섹스 동영상을 발견한 건 여름이었다. 지경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합의하에 촬영된 것 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평소대로 일하고 저녁 차리고 애들 숙제를 봐줬다. 그러다 김이 술에 곯아떨어지면 음소거를 하고 섹스 동영상을 봤고, 몸을 뒤척이면 화면을 끄고 숨을 죽였다. 반전으로 복수를 준비해둔 건 아니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그저 둘의 섹스가 눈에 익기를, 고통에 담담해지기를 기다렸다. 그게 아니면 뭐. 싸우고, 이혼하고, 재산분할하고, 주말마다 상대의 집에 애들 라이딩해주고, 이따금 그래도 집에 남자가 있을 땐 이런 무시는 안 당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불 보듯 뻔한 일을 겪어나갈 에너지나 있나? 내일 발표할 PPT 자료 만들 여력도 없는데····· 그렇게 규는 현실감각과 현실도피가 섞인 괴로운 상태로 여름을 버텨내고 있었다.(48p)

 

 

규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원래 규는 말을 절대 안 놓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끝까지 알겠습니다, 하는 사람이었다. 규가 보기에 반말은 관계를 무리하게 좁혔다.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서 반말하는 게 아니라 반말을 하고부터 예의를 잊었다. 멀리서 정중히 목인사를 하던 사람도 남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게 되는 것이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바라면 안 될 것을 바랐다.(62p)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회피하는 사람들. 실눈 뜨고 사는 사람들. 구지경도 눈꺼풀을 바짝 내리고 사는 거죠. 집에 수북이 쌓인 단수 경고장을 볼 때도. 피임을 안 하고 했던 섹스를 떠올릴 때도. 후회할 때. 살기 싫을 때도. 위아래로 떨리는 눈꺼풀 안쪽 어둠 사이로 세상을 흐릿하게 보는 거죠. 그래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를 똑바로 보면 모두를 똑바로 봐야 하니까요. 걔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

세간의 기준으로, 규는 지경에게 한참 더 함부로 굴어도 되었다.

그러나 규는 그만 지경을 더 괴롭힐 새도 없이 자신이 싫어져버렸다. 과거에 규는 사람들이 지경에게 너무 모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자기 일이 되자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경이 더 미웠다. 지경은 겹으로 잔인했다. 배우자의 배신을 보게 했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지킬 수 있었을 규 자신의 자부심을 파괴했다. 그리하여 규도 살짝 내디뎌보았다. 말을 놓고 사생활을 캤다. 내가 이래도 네가 어쩔 건데, 하는 낯두꺼움으로, 상대의 콧구멍을 꿰고 끌고 다니는 힘의 쾌감으로.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에는 남이 나에게 한 잘못 때문에 잠 못 이루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남에게 한 짓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65-66p)

 

 

그럼에도 그날 ‘악하다’는 말이 나온 까닭은 소설이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악하다는 말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창작반에서는 뜬금없이 어떤 말이 유행했다. 복기나 오독처럼 평소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유행했고 그러면 너도나도 아무 때고 그 말을 썼다. 악하다, 도 그런 말 중 하나였다. ‘되짚다’보다 ‘복기’가, ‘잘못 읽다’보다 ‘오독’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듯, ‘생각이 짧다’ 정도면 족했을 텐데도 사람들은 기어이 초롱의 소설에 대해 악하다는 표현까지 썼고 거기에는 ‘아’ 해도 될 것을 ‘악!’ 하고야 마는 문학의 낯간지러운 과장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부당한 환기가 맴돌이치고 있었다. 초롱도 그 점을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74-75p)

 

 

예전부터 초롱은 궁금했다. 삶에 어떤 위기가 닥쳐야 소극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는 사람이 설사가 나온다고 화장실에서 앞사람을 밀칠 수 있을까? 배우자의 불륜 상대에게 물을 끼얹거나, 의료 사고로 가족을 죽게 한 병원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수 있을까? 자의식을 이기는 시련이란 무엇일까?(83p)

 

 

초롱이 선생에게서 소설을 배울 무렵 선생은 극히 드물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씨앗만 심고 빠지는 스타일로 학생들이 서로의 소설을 물고 뜯다 올려다보면 그제야 한두 마디 던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혹은 십 년 뒤, 선생이 심은 씨앗이 잭의 콩나무처럼 학생들의 머리에서 솟구치곤 했다. 그제야 학생들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선생의 악담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나. 그러나 파종은 십 년 전의 일이었다.(89p)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제3의 원은.”

두 사람은 허공에서 돌아가는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소설에서 친구를 그리지 않았어. 친구의 고문도 그리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떳떳했어. 설사 친구를 떠올리며 어떤 것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변형이면 아무도 그게 친구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본인은 알아보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랑 나는 알았어. 내가 친구에 관해 한 자도 적지 않은 채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너도 작가니까 알겠지만. 큭.”

선생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곤 다시 올라와 손을 흔들었다. 선생의 손이 이발소 회전 간판처럼 끝없이 돌아갔다.

“소설을 쓸 때 옆에서 이런 게 오르내리지 않니? 소설을 쓰다 고개를 돌리면 제3의 원이 보이지 않니? 물론 내가 친구만 생각하며 소설을 쓴 것은 아니야. 친구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는 바뀌고 바뀌어 친구도, 친구가 아닌 것도 아닌, 제3의 원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소설을 썼어. 하지만 그 제3의 원에는 친구의 삶이 들어있지. 친구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들어 있지. 그 미묘한 뉘앙스를 친구는 감지했던 거야. 이제는 알겠어. 친구는 괴로웠던 거야. 내가 소설에 쓰지 않았지만 쓰는 내내 보고 있던 것, 소설에 담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대전제였던 것, 친구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의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아닌, 제3의 원. 그 알 수 없는 구멍을 종일 노려보다 결국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친구는 단지 내가 인정하기를 바랐어. 내가 실은 자기에 대해 썼다는 것을.”(98-99p)

 

 

“나왔다! ‘이상한’ 사람.”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나는 그 말보다 비겁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차라리 위험한 사람이 낫지. 이상한 사람은 위험한 사람의 완곡어잖아?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위험하다고 말하는 위험은 감수하기 싫어서 이상함의 두 가지 측면, 두려움과 매혹 중 매혹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거지. 여차하면 ‘튀려고’.”(132p)

 

 

“너 동대학은 아냐?”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얼마 전까진 동대학이 동국대 말하는 건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왜 다 대학원을 동국대로 가나 했지. 동이 동국대 동이 아니라 같을 동이란다. 너도 어디 가서 기 안 죽으려면 알아둬.”(156p)

 

 

그럼 어쩔 텐가. 누워만 있을 텐가. 누워서 상상만 할 텐가. 상상은 안전하니까. 나쁜 상상과 나쁜 행동은 다르니까. 상상 ‘속’에서 죽이고 강간할 수는 있지만, 상상‘으로’ 죽이고 강간하지는 못하니까. 택시 기사의 목을 뒤에서 조르는 ‘상상’을 하는 것은 괜찮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 서기 하는 사람을 밀어버리는 ‘상상’을 하는 것은 괜찮다. 사고행위융합오류는 오류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상상이 우세할까. 상상이 끝나고 행동이 시작되는 시점, 작은 불씨가 확 번져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되는 순간, 결국 칼을 들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 서게 하는 격발의 타이밍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누가 감히 보장할 수 있는가. 상상이 커지고 커지다 퍽 터져 현실의 발치까지 줄줄 흘러들길 내심 기대한 적 없는가? 상상을 믿지 마라.(186p)

 

 

모기와 인간은 다르다? 모기를 때려잡듯 인간을 때려잡을 수는 없다? 휴머니즘이라는 견고한 경계가 있다? 심장의 차가운 부분ㅡ노인이 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는 부분ㅡ을 지속 확장하고, 심장의 따뜻한 부분ㅡ서점에서 가장 헐한 책을 골라 사는 부분ㅡ을 지속 축소하면, 우리도 금세 유씨를 따라잡을 수 있다. 휴머니즘을 극복할 수 있다.(191p)

 

 

적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이다.(196p)

 

 

우리는 사장의 호의가 헤퍼서 싫었고, 그러느니 차라리 호의의 각을 좁혀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베풀어주길 바랐다. 사장이 창 너머로 근사한 술을 건넬 때 우리는 우리의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느끼기 싫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런 기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이 품은 마음 때문에 스스로 다쳤고, 초라해지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써야 했다.(197p)

 

 

사장은 과거 자신이 주최한 책 모임을 돌아보며 사람들의 수동성에 대해 짜증을 부리곤 했다. “다들 그저 떠먹여주길 바라. 더 똑똑한 사람이 혼자 커리큘럼을 짜고 양질의 독서 목록을 제공해주길 바라. 독서는 그것과 정확히 반대로, 자치 정신을 기르기 위함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강제성을 띤 자발성으로 매주 책을 가져왔고,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보이는 사장의 은근한 장악을 싫어했다. “사장 새끼는 취지가 너무 많아 짜증나.” 언젠가 보이는 말했다. 사장은 우리에게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늘 골치를 썩어가며 책을 골랐다.

보이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부침개가 먹고 싶다면 부침개가 다 부쳐질 때까지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와인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보이가 우리끼리 있을 때 “사장 새끼 책 점 치는 거 진짜 짜증나”라고 했던 바로 그 행동을 했다. 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이 책에선 어떤 부분이 제일 좋았어?”

보이는 그걸 ‘책 점’이라고 불렀다. 사장이 독후감을 빙자해 우리의 수준과 사연을 알아내려는 수작이라는 것이었다.

(...)

나는 보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사장이 우리에게 책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과 구절을 물어 그것으로 우리의 내면을 부당하게 읽는다 한들 뭐 그리 대순가 싶었다. 그러나 보이는 프라이버시에 예민했고, 보통 사람보다 프라이버시의 범위가 넓었다. 나는 정말 신경이 쓰이면 제대로 된 신호 대신 소음을 보내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보이에게는 책에서 어디가 좋았다는 신호뿐만 아니라 대놓고 아무 말이나 하는 소음도 프라이버시에 속했다.(205-206p)

 

 

우리가 부모를 원망하자 율 리가 말했다.

“맞아, 어른들은 나쁜 짓을 해. 너희의 가슴을 찢어놔. 하지만 슬퍼 마. 억울해 마.”

(...)

“너희는 클 거야. 자랄 거야. 그럼 너희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어. 어릴 적의 일은 뒤로하고, 우리는 죽는 날까지 죄의 항상성을 향해 나아간단다.”

(...)

당신도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하는가? 나는 요새 자주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한다. 오래전에 들은 별 것 아닌 말이 멀쩡히 몸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내장을 찢는다. 그러면 나는 시간차공격을 당한 배구 선수처럼 속수무책이다. 상대편 공격수가 뛰어서 나도 뛰었는데, 어느새 공격수는 사라지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음 공격수가 스파이크를 때려넣는 것 같다. 말의 강타. 나는 그저 당할 뿐이다. 도끼날 아래 장작처럼. 게다가 배구와 달리 말의 이차 공격은 수년, 심지어 수십 년 후에 비로소 시작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남이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색무취였던 말이 뒤늦게 악취를 풍겨 때늦은 앙심을 품게 했다. 그러다 다행히ㅡ계속됐다가는 유치원 시절 문방구 아주머니를 ㅡ수소문해 칼을 들고 찾아가게 된다ㅡ점차 내가 남에게 했던 말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오묘하다. 오묘하게 치사한 것이다. 분명 내가 남에게 한 악담인데 마치 내가 들은 악담처럼 느껴진다. 과거로 돌아가 이번에는 내가 상대가 되어, 어린 내가 하는 나쁜 말을 꼼짝 못하고 듣는 것이다. 내가 한 말에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격으로.(232-234p)

 

 

“있잖니, 사람이 응? 너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잖아? 그것도 꼴사납다. 자기를 미워하는 짓 같지만 실은 자기가 좋아 죽겠는 짓거리거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242p)

 

 

한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의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그 일을 대신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목경과 무경의 부모가 밖으로 돌았을 때, 자식을 굶겨 죽일 만큼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애들을 돌보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때, 놓아지지 않는 정신이, 최소한의 양심이 저주처럼 느껴졌을 때, 차라리 불능이길 바랐을 때, 그럴 때 나타난다는 것이, 게다가 아무 설명 없이 생색 없이 철없는 가출의 형식으로 나타나 상대가 가장 바라는 것을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좋은 마음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목경은 생각했다. 메리 포핀스처럼 날아다니며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빠진 사람들 앞에 짠, 나타나는 고모에게는 오만한 고약함도 있었다. 그러나 목경은 무수한 의도 중에서 실오라기 같은 악의를 건져올리려는 결벽증을 버린 지 오래였다. 고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결코 하고 싶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하기 싫은 일로 바뀔 때까지 숨 돌릴 틈을 얻었다.

목경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언니가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알았다는 사실이었다.(308-309p)

 

 

 

ㅡ 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中, 문학동네

,

2023/4/7

 

 

우리 부모는 커다란 세상을 결박한 음모나 신경 쓰지, 자기 집 지붕 아래의 애들 얼굴은 안 궁금해한다는 걸. 왜냐? 그건 ‘큰일’이 아니니까.(71p)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보이는 것만 진짜 세상이라고 믿고 살죠. 자기가 생각하는 비현실이 어딘가에서는 극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못해요.(76p)

 

 

기쁨의 순간은 짧아요. 고난의 기간은 끝이 없고. 저한테만 그런 건 아니겠죠. 고난이, 혹은 자기가 고난받는다고 단단히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도구라는 걸 저는 이미 알아요. 김흥수가 줄곧 써 온 방법이니까.(83p)

 

 

증마 사람들은 아예 반응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안경이 공들여 편집해서 여러 커뮤니티에 올린 스크린샷 모음을 보고 증마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대체 이게 뭔가, 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 안경은 몰랐던 거예요. 증마를 말려 죽이는 방법은 철저한 무관심밖에 없단 사실을. 욕먹더라도 주목받는 게 증마가 세를 키우는 주요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욕하면서 증마의 계정을 찾아간 후에 몇 가지 영상을 보곤 생각한 거죠.

‘···내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리는 것도 모종의 음모 때문이었나?’

‘아, 정말 그랬던 것 같은데?’

‘맞잖아? 맞아, 그때 그 새끼들이···.’(113p)

 

 

ㅡ 설재인, <사뭇 강펀치> 中, 안전가옥

,

2023/3/30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거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만약 큰 기쁨을 항상 누릴 수만 있다면 태어나는 게 이득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휴먼매터스의 연구자 집에서 태어나는 것 같은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분명 당신은 행복과 안전이 약속된 것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용소에 갇히고,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앞날은 알 수 없습니다. 기쁨과 고통을 마치 장부상의 흑자와 적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임계점을 넘어가는 극한의 고통은 나중에 그 어떤 기쁨이 주어지더라도 장부상의 숫자처럼 간단히 상계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고통을 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생존을 도모하고 번식에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를 살려서 이제 더는 겪지 않아도 될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게 할 것인가요? 그게 정말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요?”(148-150p)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275-276p)

 

 

ㅡ 김영하, <작별인사> 中, 복복서가

,

2023/3/29

 

 

조금만 기다리면 해결책이 찾아지고 그때가 되면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멀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는 것을.

완전한 사랑에 이르렀는데, 비로소 사랑의 삼각형을 완성했는데, 이 사람들한테 찾아온 게 뭔가요? 뭘 알게 됐나요? 고통입니다.

완전한 사랑이 시작된 순간, 순전한 기쁨이 아니라 복잡한 고통이 찾아온 거예요.

과연 이들에게만 그럴까요?

(...)

소설이라는 실험실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93-94p)

 

 

 

ㅡ 문지혁, <중급 한국어> 中, 민음사

,

2021/8

 

 

읽음.

 

 

 

ㅡ 문지혁, <초급 한국어> 中, 민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