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2

 

 

하지만 믿음의 힘은 늘 위대하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믿음은 모든 믿음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세상에서 제일 참혹한 일을 벌였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이 바로 자신은 착하고 항상 착하다는 믿음이었다. 그 사람들은 양민을 칼로 총으로 베고 쏴 죽이면서도 생각했다.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오로지 선행을 베푸는 것뿐이라고. 오, 세상에 정말!

 

 

 

ㅡ 이혁진, <관리자들>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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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영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고 들어서 관심이 가서 읽었다. 겉멋인지 불필요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특정 단편에서만 그런 게 아닌 걸 보면 그냥 작가의 문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걸 문체라고 할 수 있을지. 정말이지 왜 이렇게 적는 걸까?

 

 

그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오지 않다가, 결국 오지 않아 버린다. 그는 오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아서, 나는 걷기 시작한다. 걷기 시작하다가, 걷기 시작했다.(35p)

 

그들의 모습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카메라 안에 그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그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느끼면서(80p)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았고, 결혼하게 될 줄 몰랐다.(232p)

 

 

 

ㅡ 서이제, <0%를 향하여> 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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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

 

 

반짝하고 떠오른 몇 개의 단상을 엮어서 써낸 소설. 대단치 않고 역시나 우리의 젊은 작가님은 요즘 이슈가 되는 것들은 다 늘어놓고 있다. 관건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일 텐데 조금도 흥이 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보험금 보상 청구를 둘러싼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보험금 청구 과정이 유도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만 겨우 돈이 될까 말까 한 영역들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이제는 지난 시대에 버려두어야 할 것들, 그게 바로 예단예물이라는 것을 보험 청구 과정을 통해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이다.(169p)

 

 

우리는 그날 가슴 깊은 곳에 있던 비밀을 돌다리 놓듯 털어놓다가 거기까지 도달한 거였는데, 굉장히 심각한 안나의 반응 때문에 나는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한강공원이고 저만치 다리 위를 통과하는 지하철 한 대와 다음 지하철 한 대 사이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 비밀 털어놓기를 하다가 갑자기 현실의 모서리 같은 걸 인지하게 되었다는 말인데, 누구나 접어두고 싶은 모서리를 갖게 마련이고 그때 중요한 건 모서리를 접었다는 행위이지 접힌 페이지 속의 내용을 다시 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나의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안나는 기꺼이 그 페이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이다.(240p)

 

 

 

ㅡ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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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17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문장도 없고,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눈물이 많이 났다. 꼬집어서 울리는 게 아니라 불쾌하지도 않았다. 근래에 가장 많이 울면서 읽은 듯.

 

 

 

‘그래도 김서방은 참 착해.’ 엄마는 늘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남자는 여자 때리지 않고 도박 안 하고 바람만 안 피워도 상급에 든다고,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전남편은 그런 의미에서 엄마에게 착한 남자였다. 그가 바람피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는 남자와 사는 삶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리어 엄마야말로 남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때리지 않고 도박하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만 되어도 족하다니, 인간 존재에 대한 그런 체념이 또 어디 있을까.(17p)

 

 

허영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사람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60-61p)

 

 

엄마는 나를 보며 무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엄마가 예전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 또한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136-137p)

 

 

무거웠던 집안 분위기가 드물게 환기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신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

돌이켜보면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199-200p)

 

 

ㅡ새비야.

ㅡ응.

ㅡ내레 아까워.

ㅡ뭐가.

ㅡ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ㅡ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고, 충분하다고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ㅡ······

ㅡ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디 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258p)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힌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313-314p)

 

 

 

ㅡ 최은영, <밝은 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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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31

 

상은 그냥 상이다.

 

 

 

이제야 요나는 제대로 된 무이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요나가 5박 6일간 본 무이는 일부에 불과했다. 진짜 무이는 그 5박 6일에 서너 배의 그림자를 더 붙인 것이었다. 카메라 속에는 그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5박 6일 동안 찍힌 것과 그 이후에 찍힌 것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재난은 두 세계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미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163-164p)

 

 

이 계획에서 직업 누군가를 칼로 베거나 구덩이에 밀어 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희생되는 사람은 정보에서 소외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매몰할 것이었다. 그 일에 대해 사람들은 침묵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학살의 한 형태였으나, 학살의 책임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했다. 요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수정된 계획을 듣고 요나는 놀랐지만 며칠이 지나자 충격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했다. 요나는 가끔 이 일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 생각하곤 했지만, 그 생각 끝에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건 이후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 것뿐이라는 자위 혹은 변명이 따라붙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밀어서 구멍에 던져 넣으라고 요구했다면 요나는 단숨에 이 일을 거절하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요나는 가만히 있었고,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이 일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둔감해졌다.(182-183p)

 

 

 

 

ㅡ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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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

 

끈질기게 묘사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나 엉뚱한 지점에서 그 파고듦은 문학성을 생성해낸다.(71p)

 

ㅋㅋㅋㅋㅋㅋ

 

 

ㅡ 오한기, <인간만세> 中,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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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0

 

 

그냥 정지돈이 정지돈 했네.

 

 

소년 윌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알게 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이삭 바벨은 말했다. 나는 새로운 장르를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침묵이라는 장르입니다.(16p)

 

 

선우학원이 처음 소개했을 때 정웰링턴은 그녀를 유쾌하지만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10년을 넘게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깊이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윌리는 헬레나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병은 사람을 매혹한다는 사실도.(54-55p)

 

 

다시 말해 진실은 기능하지 못한다. 기능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인정된 형식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진실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악명 높은 진실의 상대성,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 트루스? 그렇지 않다. 하셰크의 잘 알려진 소설 「착한 병사 슈베이크」역시 그렇듯 「정신의학의 신비」에도 진실은 명백히 존재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후리흐 씨도 그를 구하는(?) 이발사도 경찰관도 제도도 아니다. 책을 읽는 독자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독자 앞에 명확히 상연되고 오직 독자만이 진실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모호한 것은 없다. 그리하여 하셰크의 세계는 풍자가 되고 계몽이 된다. 반면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독자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ㅡ왜 오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건 독자다. 「시학」에서부터 동시대 영화까지 서사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율 중 하나는 등장인물은 속이되 관객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카프카는 이 기율을 위반했고 국민 작가가 된 하셰크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건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역사가 그를 구제하기 전가지 단지 조금 이상하고 실패한 작품일 뿐이다.(145-146p)

 

 

”동지! 스탈린이 그 모든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때 지도부였던 당신은 뭐 하고 있었습니까?“ 흐루쇼프는 연설을 중지하고 연방 각지에서 모인 1,355명의 열성당원을 쳐다봤다. ”누가 말했습니까?“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서기장은 회중 시계를 꺼내들었다. ”1분의 여유를 주겠습니다. 누군지 일어나서 다시 말해보시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기다리는 동안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흐루쇼프는 시계를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저는 스탈린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 아까 소리를 지른 동지가 한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177p)

 

 

 

 

ㅡ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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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다 읽어 봤는데, 젊은 작가상 작품집에서 이미 읽었던 ‘우리들’이 여전히 베스트. 그 소설의 한 대목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책의 세 작품을 묶어 해설한 신형철의 글도 좋았음.

 

 

그녀는 내게 며칠 전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유명한 해안 절벽에 올랐는데, 지나온 삶이 너무 허망해서 거기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거품이 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막상 정말 그렇게 있다보니 자기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이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

나는 진심으로 어머니가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그녀가 정말로 바란 삶이 그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 같은 사람을 바란 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남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날 모질게 마음을 먹고 병원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더라면 이영선이 살았을 삶에 대해서는 이제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렸던 인생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이번에는 끝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고, 그녀의 말대로 시골에 근사한 집을 짓고 호박이나 고추 같은 거 말고, 라일락과 해바라기를 가꾸고 살았으면,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가 그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그녀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지켜봐야 했던 그 많은 불행한 장면들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후 서울에 올라온 그녀가 예정대로 법원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지닌 채로 온전한 자유 속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결과가 자신을 또다시 전형적인 고난과 불행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해도, 스스로 상상해낼 수 없는 삶을 선택하지 못한 그녀를 누가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210-211p)

 

 

이 모든 것은 화자가 그들과 보낸 한 시절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들이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냥 화자가 배운 것이다. 애초 나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지만, 그들에게서 스승을 발견한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와는 종류가 다른 사람이라는 강렬한 발견은 그 시절의 나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스승을 우리가 원하는 시절에 만난다. 기적처럼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내기 때문이다. 정은과 현수가 정말 ‘어른의 삶’ 혹은 ‘진정한 삶’을 살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이럴 땐 가르치는 자의 실패까지도 가르침이다. 성숙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배우면서 화자는 한 걸음 더 성숙해졌을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219-220p)

 

 

이 소설에서도 역시 스승은 가르친 게 없다. 선애는 자신에게 닥쳐온 인생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저 살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스승은 낯선 자가 되고, 삶의 낯선 부분을 보여주는 자가 된다. 덕분에 나는 자신이 모르는 게 있음을 알게 됐고, 삶에는 배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배웠으니 된 것이다. 가르칠 수 없음을 가르치고 배울 수 없음을 배운다는 것,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이야기가 우리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앎(지식)은 쉽게 말로 전달되지 않는 비명제적 지식에 속한다. 비명제적 지식을 배우는 일은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을 겨우 배우는 데서 멈추는 일이다.(223p)

 

 

 

ㅡ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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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7

 

 

이게 2018년에 나왔으니 요즘과는 스타일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쓰고 보니 로맨스 조가 생각나네.

 

 

 

ㅡ 정지돈, <팬텀 이미지> 中,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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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4

 

 

페이지가 줄어드는 걸 아쉬워하며 읽었다. 칙칙하지 않고 산뜻하니 좋다.

 

 

 

심시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근사한 섹스의 가치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핸들링에 그만큼 도움되는 것도 잘 없습니다. 제법 괜찮은 섹스는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게 하니, 그림일기를 쓰고 싶어질지 몰라요.

질문자: 육체적 관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은요?

심시선: 사흘에 한 번씩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21p)

 

 

현장에서 순순히 자수하여 삼 개월간 구금 생활을 한 기민철은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고, 희석한 염산을 사용했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이 년에 집행유예 삼 년을 받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 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 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110p)

 

 

21세기 사람들은 20세기 사람들을 두고 어리석게도 나은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지만, 누구든 언제나 자기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 상태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렇게 방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된다고, 기억을 애써 메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111p)

 

 

“억울해? 억울해 죽겠어?”

최근의 쉬는 시간에 한빛은 규림을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규림도 억울했다. 만약 그날 일찍 메신저를 잘 확인했으면 규림도 도영에게 화를 냈을 것이고, 한빛도 규림이 한빛의 편이란 걸 오해없이 알았을 것이다. 한빛에 대한 억울함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그러나 한빛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규림은 억울함을 잃었다.

“매번 멍한 얼굴이었잖아. 걔가 깽판을 치게 내버려뒀잖아. 남자애들끼리 방을 만들었을 때 초대를 수락했잖아. 뛰쳐나온 적 없다고, 너. 다른 애들이 알려줄 때 너는 아무것도 안 했어. 김도영은 원래 그런 새끼지만····· 아, 못 봤다고? 산에 있었다고? 그렇다 치자. 그냥, 나는 지난 몇 년간 너희랑 이 좁고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있었던 게 너무····· 더러워. 더러워 죽겠어.”

한빛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규림은 자신의 해명이 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음을 이해했다.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방전된 배터리와 나쁜 타이밍 이전에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173-174p)

 

 

어떤 말들은 줄어들 필요가 있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의 억울해하는 말 같은 것들은.(175p)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 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178p)

 

 

“그 모든 걸 꿰뚫어보던 사람이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소화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렸지?”

“그야 그렇잖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할머니는 몰랐을거니까.”

“이름들?”

“가스라이팅, 그루밍 뭐 그런 것들.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 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182p)

 

 

특별히 어느 지역 사람들이 더 잔인한 건 아닌 것 같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겐 기본적으로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어. 함부로 굴어도 되겠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걸 인정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한 집단의 역겨움 농도가 정해지는 거고.(235p)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269p)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288-289p)

 

 

그 점은 나도 싫은데 외부의 충격에 영향받지 않는 인생이 어딨겠어? 그렇지만 내가 그날 이후로 곱씹고 있는 건 내 불행, 내 상처가 아니야. 스스로가 가엾고 불쌍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보다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는. 어떤 건지 이해가 가?(305p)

 

 

 

 

ㅡ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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