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3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지만 반복 서술이 너무 많다. 절반 정도로 추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경제 불평등이 시작되는 단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면,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체결이다. 한·중 수교는 중국경제의 부상이 한반도에 상륙한 의미를 가졌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사를 바꾸는 사건과 한국경제사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노동연구자들은 1987년 민주화가 미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1987년 체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미친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1997년 체제'라는 신조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지식인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은 '1992년 체제'였다. 1992년 체제는 1987년 체제와 1997년 체제에 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많은 지식인이 1997년 체제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의 상당수는 1992년 체제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의 불평등 확대, 대기업·중소기업으로 갈라지는 기업 규모의 양극화, 중화학공업·경공업의 양극화, 수출·내수의 양극화, 제조업·서비스업의 양극화, 노동시장 불평등, 경제적 이중구조, 노동시장 이중구조, 자본의 이중구조,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 감소, 중간 허리층 기업의 정체 및 약화, 상층 10%의 소득집중도 급증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79-80p)

 

 

나라마다 시차는 있지만 미국,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이 증가한다. 국내적 요인을 뛰어넘는 '글로벌 차원의' 환경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의 자본주의와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는 크게 3가지가 달라졌다. 첫째,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소 냉전 체제가 해체됐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미국의 유일 헤게모니 시대가 시작됐다. 둘째, 붕괴된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합류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시장 규모를 변화시키고, 노동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셋째, 1980년대부터 진행된 정보통신기술(ICT)혁명이 생산의 국제화를 급진전시켰다.(81p)

 

 

한국인들은 경제위기=불평등 확대 등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불평등 개념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정의하면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다. 불평등에 대한 중립적 표현은 '격차'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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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이처럼 재정의할 경우,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은 다음 3가지 중 하나다. 상층 소득이 올랐거나, 하층 소득이 떨어졌거나, 중간층이 얇아진 경우다. 1994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중간층이 얇아진 경우'였다. 세계경제사에서 중국경제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의 저기술·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량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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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어디에 해당했을까? 정답은 '상층 소득이 떨어진' 경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왜, 어떻게 한국의 상층 소득을 떨어뜨렸을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터졌다. 이후 유럽의 금융기관으로 전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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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선진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무역은 급격히 위축됐다. 세계무역이 위축되자 한국에서 수출·제조업·대기업에 종사하는 한국 고임금노동자들의 소득이 하락하게 됐다.(109-110p)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끝난다.

이후 1978년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크게 4단계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①1978년 이후, ②1992년 이후, ③2001년 이후, ④2014년 이후다. 1978년 개혁개방은 농촌개혁이 중심이었다. 농촌 인민공사 중심의 집단농장 체제를 가족농 중심체제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 1980년대 초반에 경제특구들을 추진한다. 1992년을 분기점으로 수출 중심 공업화 노선이 전면적으로 채택된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사건을 겪고 혼란에 빠진다. 이후 공산권이 붕괴한다. 덩샤오핑은 1992년 1~2월에 걸쳐 남순강화를 한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4차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정식으로 채택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은 총 3번에 걸쳐 중국경제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1994년 불평등 미스터리는 1992년 개혁개방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앞서 2부에서 살펴봤다. 2001년 중국의 변화와 2014년 중국의 변화 역시 한국경제 불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123-124p)

 

 

정리하면, 2018년 고용 쇼크는 2가지 원인이 결합해 발생했다. 하나는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다.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을 지나치게 상회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쇼크를 주게 된다. 다른 하나는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과도한 감축이다. SOC 예산의 과도한 감축 역시 이념적 요인이 작용했다. SOC 자체를 '적폐'로 보는 생각이 작동했다.(190p)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대상 집단이 다르다. 소득 대상도 다르다. 경제활동인구 관점에서 성인 인구는 크게 네 덩어리로 구분된다. 임금노동자, 자영업자 집단,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노동자+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그렇다면 실업자는 임금 불평등 대상자일까, 아닐까? 당연히 아니다. 실업자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다. 실업자는 임금을 받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 집단도 임금 불평등 대상자가 아니다. 어르신과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도 임금 불평등 대상자가 아니다. 오직, 현재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노동자만 임금 불평등 대상자다. 2020년 12월 기준, 임금노동자는 약 2,000만 명이다.

소득 불평등은 다르다. 가구 단위 조사다. 가구 구성원 전부의 소득을 합산한다. 임금 불평등과 구분되는 소득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취업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소득 불평등은 어르신, 주부, 학생을 포함한다.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충돌하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 임금 불평등 축소가 반드시 소득 불평등 확대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용 쇼크'를 초래하는 임금 불평등의 급진적 축소는 소득불평등 증가로 연결된다. 왜 그런지 단순모형을 통해 살펴보자. 결제활동 대상 인구는 총 100명, 임금노동자는 총 60명, 저임금노동자는 6명이라고 가정하자. 미취업자는 40명이 된다. 자영업자는 없다고 사정한다. 경제활동인구는 변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고용률은 60%이고,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0%가 된다.

만약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인상해서 저임금노동자 6명이 전부 해고됐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취업자(임금노동자)는 54명이 되고, 미취업자는 46명으로 늘어난다.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은 각각 어떻게 달라질까? 임금 불평등은 축소된다. 임금노동자의 총 숫자는 54명이 된다.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0%가 된다. 임금 불평등도 개선되고,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개선된다. 둘 다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사람만을 대상으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구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미취업자를 포함하는 소득 불평등은 증가한다. 취업자 대비 미취업자가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도 더 증가한다. 바로 이것이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 이후에, 고용통계와 불평등 통계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불평등의 관점에서,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은 5가지 현상으로 귀결된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과 SOC 예산을 대폭 축소했을 때, 실제로 5가지 현상이 발생했다.

①노동시장의 최하단에 있는 저임금노동자가 퇴출됐다. 저임금노동자가 많은 직종을 중심으로 미취업자가 증가하고, 취업자 증가 수준이 급감했다.

②저임금노동자가 줄었다.

③임금불평등이 줄었다.

④비경제활동인구(미취업자)가 늘어났다.

⑤소득 불평등은 늘어났다.

(...)

정리하면,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인상하면 임금 불평등은 줄어들고, 소득 불평등은 늘어난다.(200-202p)

 

 

바로 이분들이 하층의 진짜 실체다. 바로 이분들이 한국 빈곤의 가장 중요한 실체다. 한국의 빈곤=미취업자=65세 이상 노인=초등학교 이하 졸업자=1930~1940년대 출생한 여성=불평등의 하층은 사실상 동의어다.

(...)

2018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작동하지 않은 근본 이유는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다.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오히려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 진보정당을 포함한 한국의 진보세력은 노동운동 요구에는 관심이 많지만,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206p)

 

 

한국적 현실에 맞는, 불평등과 계급의 통합적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노동'의 재발견이다. 한국 사회에서 비노동은 하나의 계급이다. 이들이 불평등의 최하단이고 우리 사회 하층의 진짜 실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비노동은 누구인가? 바로 노인이다. 다르게 말하면, 불평등과 계급의 통합적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적 과제는 노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다.(218p)

 

 

기업별 노조가 정착되어감에 따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기업별 생산성과 기업 단위 노동조합의 투쟁력에 의해 결정됐다. 대기업일수록 생산성이 더 높았다. 대기업일수록 실제로 지불 능력이 더 좋았다. 대기업 노조일수록 전투력도 더 강했다. 대기업 노조일수록 더 많은 임금 인상을 쟁취하게 된다.

(...)

그 결과 대기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임금 인상을 이루게 된다. 임금 격차와 임금 불평등이 커지게 된다.(247-248p)

 

 

우리는 1997년 이전의 평등했던 경제체제로 돌아갈 수 있는가? 1997년 이전처럼 외주화가 적고 정규직이 더 많던 경제체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보기에는, 현재 한국의 노동 체제는 재벌 편향, 신자유주의 편향, 비정규직 남용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 경우, 해법이 선명하다. 재벌 개혁, 국가 개입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하면, '1997년 이전의, 평등한 노동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 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주52시간제), 노동 존중 사회, 소득주도성장은 모두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이었다.

이런 입장은 아름다운 주장이지만, 복고적이며 낭만적이다. 현재와 같은 노동 체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 아니다. '4가지 충격'으로 인한 환경 변화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271-272p)

 

 

한국경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2가지 변인을 꼽으라면, 상층 소득은 수출이고 하층 소득은 고령화다. 수출이 잘 되면 불평등이 커진다.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고령자가 늘어나면 불평등이 늘어난다. 노인 일자리를 늘리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기초연금 인상 등 고령자에 대한 소득 보장 정책을 강화하면 불평등은 줄어든다.(284p)

 

 

 

 

ㅡ 최병천, <좋은 불평등> 中,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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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13

 

 

이렇게 보면 오젬픽과 그 후속 신약들은 광기의 시대를 대변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독살할 식품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 질낮은 식품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또 다른 잠재적 독극물을 내 몸에 주사하기로 결심한다. 이제는 모든 음식을 멀리하게 만들 잠재적 독극물 말이다.(16p)

 

 

노보 노디스크의 대변인은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임상 시험) 결과, 위고비 치료를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보 노디스크가 자문을 구했던 임상 전문가들은 비만을 만성 질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처럼 관리 필요한 것이죠."

이 약이 효과가 있으려면 영원히 투약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번 맞고 치료가 되는 말라리아 치료제와는 다르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복용하는 스타틴이나 혈압약처럼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약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

노보 노디스크는 현재 두 가지 형태의 세마글루타이드를 제조 판매하고 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오젬픽을, 비만 환자들에게는 위고비를 판매한다. 같은 약이지만 목적이 달라서 위고비가 더 높은 용량으로 처방이 가능하다.(54p)

 

 

미국 국립보건원 소속 과학자들에 따르면 1970년대 후 반부터 이게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만은 20세기가 출발할 때부터 조금씩 증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갑자기 급발진했다. 내가 태어난 해부터 스물한 살이 된 해까지 미국의 비만율은 2배가 됐다. 15퍼센트에서 무려 30.9퍼센트로 뛴 것이다. 특히 고도 비만의 증가율이 충격적이라서 내 스물한 번째 생일과 마흔 번째 생일 사이에 거의 2배가 됐다. 미국 성인의 평균 체중은 1960년대에 비해 10킬로그램 증가했고 미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다. 영국도 비슷한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 1980년대에는 남성의 6퍼센트만이 비만이었지만 2018년에는 27퍼센트가 비만이다.(66p)

 

 

우리 식단의 변화와 관련해서 내가 인터뷰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개념을 언급했다.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는 느낌, 즉 포만감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두 가지 상황에서 계속 등장했다. 첫째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식품의 원리를 설명할 때였다. 알고 보니 가공식품은 포만감을 손상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둘째는 신종 비만치료제의 원리를 설명할 때였다. 왜냐하면 신종 비만 치료제는 포만감을 높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뒤늦게야 둘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게 됐다.

'물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음식을 더 먹게 되고 이런 행동이 지속되면 살이 찐다. 각종 연구 결과를 읽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가공식품이 포만감을 훼손하는 방법이 '일곱 가지'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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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이 포만감을 훼손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이상하리만치 단순하다. '덜 씹기 때문'이다. 스펙터는 설명했다. "(가공식품은) 보통 아주 부드러워요. 말하자면 성인용 이유식 같은 거죠." 거의 씹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초가공식품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진짜 음식을 먹을 때보다 훨씬 짧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몸은 음식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고 충분히 먹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음식을 제대로 씹는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고 제때 이 신호가 작동해서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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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감을 훼손시키는 두 번째 방법은 설탕과 지방, 탄수화물의 강력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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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법으로 가공식품은 우리의 에너지 수준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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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어릴 떄 먹던 음식은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식사 시간쯤에만 혈당이 떨어지게 했고 그때만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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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프링글스(감자칩) 한 통을 흡입하고 30분 정도 배가 부르다가 이내 허기가 져서 음식을 더 먹어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프링글스가 급작스럽게 높여준 에너지와 혈당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배가 다시 고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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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가공식품에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두 가지가 결핍되어 있다. 바로 단백질과 섬유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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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법은 음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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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칼로리 음료가 어떻게 고칼로리의 설탕 음료보다 더 살이 찌개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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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는 이들 화학물질이 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달콤한 것을 마시면 몸은 설탕을 통해 에너지가 들어올 거라고 기대한다. 진화 과정에서 모든 조건이 우리 몸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으면 뇌는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더 배고프게 만드는 것으로 대응한다. 그래야 기대하던 그 에너지가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갑자기 케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비만 연구의 신기원을 이룬 실험 이후 스위더스는 인공감미료가 비만 위기의 큰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여섯 번째 요인은 나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내용이다. 가공식품은 전례 없는 일을 하나 저질렀다. 바로 식품의 근본적인 질과 '향'을 분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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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로 가공식품은 장 기능에 이상을 일으켜서 포만감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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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조상들에 비해 다양성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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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형의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 일주일에 대략 30가지 정도의 채소를 먹어주는 게 이상적이다. 그러나 가공식품과 정크 푸드는 극히 적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가공식품의 80퍼센트는 단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옥수수, 밀, 콩, 육류예요." 스펙터의 설명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공식품을 먹기 시작하고 며칠만 지나도 장 건강이 급속히 바뀌기 시작한다.(91-100p)

 

 

신종 비만 치료제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카렐 르 루는 그 분야 사람들이 종종 GLP-1을 비롯해 장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포만감 호르몬'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신종 비만 치료제가 환자들에게 되찾아주는 게 바로 포만감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지난 40년간 철저하게 포만감을 훼손시키는 음식을 먹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포만감을 되찾아줄 약을 원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았다.(103p)

 

 

911테러 직후 미국의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미국이 직면한 위험을 몇 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먼저 '알려진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체가 잘 알려져 있는 위험이죠. 다음은 '알려진 모르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는 위험입니다. 문제는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것들'이에요. 우리가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위험들 말입니다." 신종 비만 치료제의 경우에도 이미 '알려진 모르는 것들'이 있다. 갑상선암, 근육 손실, 영양실조처럼 위험의 정확한 크기를 모르는 위험 요소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것들'도 있다. 지금처럼 수천만 명이 동시에 어떤 약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

그는 중단기적으로 이들 신약에 아주 크고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꽤나 확신했다. 수많은 당뇨병 환자가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서서히 진행되어 발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작용"이 있다면 우리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모를 수 있다고 했다.(157-158p)

 

 

과학자들은 체중도 비슷하리라 여겼다. 몸이 정해진 체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체중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무게를 유지하도록 몸이 알아서 작동한다고 보았다. 체중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몸은 온갖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원래의 체중으로 돌려놓는다. 설정값보다 몸이 마르면 지독한 허기를 느끼게 한다. 설정값보다 뚱뚱해지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서 음식을 끊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만이라는 유행병에 걸렸어요. 이 유행병은 설정값이라는 개념에 완전히 어긋나요. 평균 체중이 계속 올라가고 있잖아요.“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대체 어떤 식으로? 여러 증거를 수십 년간 연구한 결과 마이클로는 "설정값은 분명히 있지만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습득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살이 찌면 생물학적 설정값(뇌가 유지하려고 하는 체중)은 계속 올라간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체온의 설정값도 그에 맞춰 함께 올라간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

"예를 들어 5년간 14킬로그램이 쪘는데 그 상태를 몇 달간 유지한다면, 몸은 이제 늘어난 그 체중을 생물학적으로 방어해야 할 새로운 설정값으로 취급합니다." 몸은 증가한 새 체중을 마치 태어날 때 정해진 체중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려 하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173p)

 

 

의지력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 중에 한 조각일 뿐이다. 체중 조절에 의지력이 무관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러나 의지력이 전부라고 혹은 대부분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똑같이 틀린 얘기다. 크고 복잡한 그림 속에서 의지력은 가느다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이는 마치 고약한 폭ㄷ풍 속 우산 한 자루와 같다. 우산이 조금은 비를 막아줄 것이다. 어쩌면 우산 한 자루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사람도 몇몇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산은 더 큰 힘 때문에 박살나고 만다.(178p)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아이슬란드의 아이들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뚱뚱한 축에 속했다.

왜 그럴까?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런 결과는 운동과 관련된 광범위한 여러 증거와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연구팀은 81명의 여성을 석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러닝머신을 걷게 하면서 체중 변화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55명은 체중이 늘었다. 3분의 2는 지방량이 늘었다. 운동이 지속 가능한 체중 감량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14킬로그램이상 감량해 12개월 이상 유지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운동만으로 그런 결과를 달성한 사람은 2퍼센트에 불과했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결과를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는 운동량을 늘려서 몇 칼로리를 태워봤자 음식을 통해 끝없이 들어오는 칼로리에 금세 묻히고 만다. 비만의 수많은 측면을 연구한 팀 스펙터는 단호하게 말했다. "형편없는 식단을 이길 방법은 없어요." 운동으로 태울 수 있는 칼로리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운동을 했으니 이만큼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빅맥으로 거하게 식사를 해놓고 운동으로 그 칼로리를 다 태우려면 대략 두 시간 동안 수지 않고 달려야 한다. 스니커스 초콜릿바를 딱 하나만 먹어도 20분 정도를 고강도로 뛰어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는 운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일까?

(...)

운동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에서 조기 사망까지 온갖 문제를 예방하는 데 믿기지 않을 만큼 효과가 있다. 운동이 효과를 잘 내지 못하는 영역은 (안타깝지만) 체중 감량 분야다.(185-186p)

 

 

대략적으로 말해서 비만 대사 수술을 받은 사람 10명 중 한 명 정도는 나중에 알코올, 도박, 쇼핑, 약물 등에 중독된다. 흔히 이를 '중독 전이'라고 부른다. 음식에서 위안을 얻으려던 집착이 다른 강박적인 행동에서 위안을 얻는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

이 사람들에게는 많이 먹는 게 무언가 심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비만 대사 수술 이후 "보상 영역에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공간, 구멍이 생겨 버린 거예요."(242p)

 

 

나는 이제 신종 비만 치료제를 투약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과식이, 비만이 내게 해주었던 역할은 무엇인가? 거기서 내가 얻었던 긍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식을 없애고 나면 바로 그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전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과식을 하는 주된 이유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환경적 혹은 생물학적 것인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심리적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문제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247p)

 

 

어쩌면 오젬픽의 효과가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성이 생겨서 더는 식욕을 억누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신종 비만 치료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신종 비만 치료제는 평소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크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어줄 수도 있다. 신종 비만 치료제를 영원히 사용할 수 있을지 어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단기간만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미래에 내가 이 약 없이도 견딜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준비시키고 싶다.(269p)

 

 

로넌은 이 문제를 분명히 이해하려면 여자와 남자가 다른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남자들은 ‘아빠 몸매’에서 ‘곰돌이 몸매’에 이르기까지 받아들여지는 몸매의 범위가 넓다. 몸매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남자는 보통 더 남자다운 몸매가 되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반드시 쉬운 일만은 아니고 극단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 자체로는 쫄쫄 굶는 것처럼 건강에 나쁘지는 않다. 여성들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길은 훨씬 더 험난하다. 여성들은 식욕을 억누르고 작은 몸집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수천 년간 받아왔다. 이제 오젬픽이 생긴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배고프지 않아. 식욕도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은 몸집을 유지할 거야. 그게 제일 중요해. 내 건강을 유지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해.” 이건 스스로를 삭제하는 일이다.(279p)

 

 

 

ㅡ 요한 하리, <매직필> 中,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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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7

 

근 한 달 만이네? 뭘 하기가 너무 귀찮다.

 

 

중요한 것은 '무성애'라는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자체보다도, 성적인 것을 중심에 두지 않는 수많은 실천과 관계의 양상들로서의 '무성애적인 것'이다. 이렇게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무성애"를 통해, 무성애자라는 '정체성'과 무관하게 섹스중심사회 속 수많은 실천들을 무성애적인 것으로 '오염'시키는 사유를 계속할 때 섹스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강제하는 규범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체할 수 있다. 만약 우진에게 섹스가 아닌 수많은 다른 상호작용이 친밀성의 경로로 제공되었다면, 그러니까 그가 살아가는 곳이 섹스중심사회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여자-사랑-연애-섹스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닐 수 있다면, 연애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성과의 진정한 친밀성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성애적인 것은 새로운 친밀성의 발견 혹은 발명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다.(69-70p)

 

 

우리는 "늪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빈곤의 늪, 우울의 늪, 중독의 늪···. '늪'은 강력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고,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의 특성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몸으로 와닿게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서 발생한다. 늪에 빠진다는 표현이 우연한 사고, 혹은 늪으로 걸어 들어간 개인의 잘못을 함축한다면, 이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방치된 결과인 사회적 문제에는 적합하지 않다.

"덫에 걸렸다"라는 표현이 여기서는 더 적합하다. 사냥꾼은 잡고자 하는 동물의 습성, 동선, 입맛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덫을 섬세하게 디자인한 뒤 사냥감이 걸려들때까지 기다린다. 덫은 사냥감이 자기 자신을 죽이도록 '설득한다.' 굶주린 사냥감이 허기를 채우고 싶다는 생존의 욕구를 자살이라는 행위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덫은 우연적이지도, 강압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설득적이다.

도시에서의 중독과 범죄, 건강 문제를 다루는 인류학자 탈리 지브는 형사 보호관찰 제도를 '덫'이라고 설명하면서, 덫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소모적이고, 절망적이며, 종종 위험한 물질적 조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형사 보호관찰 제도는 실제로 생명을 구하지만, 이러한 '구원'은 개인이 자신의 상황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의 구조적 불평등을 부인해야만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범죄를 둘러싼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은 모조리 개인의 범죄성으로 물신화된다. 단기적으로 생명을 구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형사 보호관찰 제도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구원받은 이를 위험에 처하게 했던 바로 그 사회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늪에 빠진 게 아니라 덫에 걸렸다. 우리를 죽이는 것이 동시에 우리를 살리고 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덫의 작동 방식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256-257p)

 

 

문득 떠오른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떤 방식에서든, 우리가 미래라는 것을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쩌면 미래라는 말이 생겼을 때 이미 시작된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미래'는 왜 필요했을까? 시간이라는 관념이 하나의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이해되기 시작하고, 앞으로 '다가올' 혹은 우리가 '나아갈' 시간이 '미래'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거기에는 이미 어떤 종류의 의미가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말들 속에서 미래가 언제나 밝거나 어두운 것이며, 어둡다는 판단조차 미래가 밝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종류의 '발전'과 그 결과로 따라오는 '행복'에 대한 믿음이 미래에 투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 한 명의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행복, 그리고 이러한 결합을 통해 계속될 아름다운 미래. 무언가가 올 것이라고, 무언가가 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미래라는 관념을 통해 약속과 기대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미래'는 어디까지나 '지금'존재하는 것이다.

미래는 현재로부터 출발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현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미래가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것이다. 미래에 엉겨 붙어 있는 의미들을 잠시 걷어내자. 행복한 미래든 불행한 미래든, 밝은 미래든 어두운 미래든. 그리고 현재를 보자.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자. 잡히는 듯하면 달아나버리는 행복의 약속 대신, 다가올 좋은 삶에 대한 애착이 주는 좋은 느낌을 통해 나를 죽이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만드는 잔인한 낙관 대신, 나의 후손들이 살아갈 좋은 세상을 명분으로 현재를 희생시키는 미래 대신,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자.(266-267p)

 

 

한 마디만 더 붙이고 인사하겠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비교는 본능이며, 필요한 감각입니다.

남과 비교를 많이 하시고, 질투와 좌절로 끝내지 마세요.

남들과 비교하시면서, 단일한 기준으로 비교가 어려운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세요.

그런다고 당장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다만 1년 정도는 더 살아볼 마음이 생깁니다.

제 말이 맞을 겁니다.(288-289p)

 

 

 

ㅡ 안희제, <증명과 변명> 中,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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