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




요즘 너무 소설을 안 읽은 것 같아서 찜해 뒀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음. 




한 번도 과자 회사같은 곳에 진지하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었다. 과자라는 건 그냥, 슈퍼마켓에 가면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 혹은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포장해서, 진지하게 파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 십 년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24p)

 

 

지금도 기억나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새로 산 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비인지 눈인지 모르는 것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뭐랄까,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느낌? 그런 게 몰려오더라고요. 가족들과는 사이도 좋고 집도 여전히 안락한 곳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제가 가야 하는 세계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거긴 이렇게 앞도 잘 안 보이고 가족이 이해 못 하는 외로운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곳을 향해 걸어가겠다. 열일곱 살이 진지하니까 엄청 우습죠? 그곳이 어딘지, 어떤 곳인지는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이 시계와 함께.(62p)

 

 

그래도 엄마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수술하지 않고도 깨끗이 나을 수 있다니 기적 같아. 이제 열흘 후면 연수도 끝나니까 그때까지 더 건강해져야 해. 그럼,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하고 있지. 엄마, 아빠, 누나들이 있는 한 나는 무적함대야.”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만약에 저렇게 서로서로 열심히 쌓아 놓은 이야기 중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 나는 게 있다면비유하건대 방금 짓다 온 빈터의 그 집들처럼꼬마는 어떻게 될까. 저 귀여운 세계가 흔들린다면.(84p)

 

 

제 말은 단순한 구경꾼이었다는 뜻이에요. , 구경꾼도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가 구경꾼이라는 걸 모른 채로 평생 살 수 있다면. 하지만 자기가 구경꾼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엔 밖으로 뛰어나와야죠.(103p)

 

 

인간은 본래 자기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좋은 것은 덜 좋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상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안전해질 수 있다.(136p)

 

 

형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이마에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고개를 젓는다.)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거······. 나를 이해한다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228p)

 

 

 

박지리,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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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공공의 역할까지 가족에게 떠넘겼고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족 총력전’이 되다시피 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의 자율성은 간단히 무시됐으며 가족주의의 극단이라 할 마음가짐, 즉 아이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고 통제하는 행동은 여전하다. 가족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배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됐다. 그러는 동안 국가는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저만치 물러나 각 가족의 ‘각자도생’만 부추겼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9p)

 

 

버릇을 가르치느라 때렸다는 주장은 나중에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로까지 발전한 ‘의도적’학대를 위장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를 죽이거나 해를 입힐 ‘의도’를 갖고 시작하는 학대는 없다. 서현이의 경우도 한두 번의 체벌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면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뼈가 폐를 찔러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평소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학대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양육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도 학대를 치닫는 경우가 없었다. 도구를 갖고 엉덩이를 자주 때리는 부모들이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학대를 할 가능성이 9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6-27p)

 

 

상황에 따라 부모는 자녀에게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강한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체벌은 엄연히 별개인 인격체에 대한 구타이고 폭행인데도 아이의 관점이 아닌 성인,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미숙한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열등한 상대에 대한 교정 목적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오래된 논리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적 연구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에게도 반성보다 공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28-29p)

 

 

‘체벌 덕분에 오늘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논리 역시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체벌금지가 사회적 의제가 될 때마다 등장하는 체벌 옹호의 논리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통신」에서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라고 말했다.(35p)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성폭력을 밝혀내려 분투하던 인권변호사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맥락에선 마을 전체의 침묵, 방조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표현이지만 나는 이 말을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부모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듯 부모 혼자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체벌을 쉽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태도, 폭력에 관대한 정서, 공적 개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자잘한 구멍이 사방에서 생겨나고 결국 어디에선가는 아이가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부모의 체벌에 관대한 한국 사회는 마을 전체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40-41p)

 

 

성인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호와 교양 목적의 징계’라는 말로, 상대에게 의도적인 해를 끼쳐도 된다고 법이 허용하는 유일한 대상이 아이들이다. 아이도 한 개인으로서 자율적 존재이고 어른처럼 생명과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이를 법의 언어로 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가족의 사생활 영역에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 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가정폭력, 부부강간을 금지하듯 아이들에 대한 체벌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관심과 보호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가 어려우므로 성인과 동일하게 아이들도 신체의 온전성을 보존할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법에 문외한이지만 부모의 권리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정의를 독일의 법에서 보았다.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 제6조 제2항은 “자녀의 보호와 교양은 자연적 권리이자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부과되는 의무이다. 그의 행사에 관하여는 국가 공동체가 감독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한국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친권이 지나치게 강한 나라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56-57p)

 

 

다만, 우려되는 점 하나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아이가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가정우선의 원칙, 그리고 양육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에 대한 강조가 자칫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128p)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다. 중앙입양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까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사람은 총 16만 6,512명에 이르며, 이는 같은 기간 국내입양(7만 9,088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보낸 나라다.(133-134p)

 

 

이 장의 서두에서 소개한 현수, 은비, 김상필 씨의 공통점, 이들이 불행한 죽음으로 증언하는 한국 입양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입양절차와 제도 운영의 책임을 공적 기관, 즉 국가가 아니라 민간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오랫동안 채택을 유보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비판받던 항목이 있다. 바로 21조 (a) 항인데 이 조항은 책임 있는 공적 기관, 즉 정부가 입양을 결정하라는 것이다. 입양제도를 운영하면서 이 조항을 유보했던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낸 나라인데도 여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을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았다.

2012년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입양의 마지막 단계에서 법원이 허가하는 제도를 갖춘 뒤 정부는 2017년 8월, 21조 (a) 항의 유보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입양절차의 시작이 민간기관들에 맡겨져 있는데, 마지막 단계의 법원 허가제만 갖고 입양이 공적으로 관리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소개한 현수와 은비의 죽음은 모두 법원 허가제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입양절차가 공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되지 못해 벌어졌던 일이다. 여전히 해외든 국내든 친생부모가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는 뜻을 밝히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전적으로 민간 입양기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된다.(138-139p)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위험을 타자와 관련짓는 반응은 근대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온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 헬렌 조페의 「위험사회와 타자의 논리」에 따르면 매독이 유럽을 휩쓸던 15세기에 매독은 영국에선 ‘프랑스 두창’으로 프랑스에선 ‘독일병’으로, 플로렌스인 들에겐 ‘나폴리병’, 일본인에겐 ‘중국병’으로 불렸다. 매독뿐 아니라 콜레라, 흑사병, 나병에 이르기까지 집단적인 불치의 질병은 늘 ‘타자’와 연관되어 왔다.(157-158p)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은 거꾸로다.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232p)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행위자의 처벌을 위한 조사뿐 아니라 가족이 다시 복원될 수 있도록 돕는 가족 보존과 재결합 지원 서비스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담원들은 학대 행위자 처벌과 가족 보존 지원이라는, 매우 상반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늘 ‘가치의 갈등’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심각한 학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신고 접수 이후 아동학대로 판정한 사례의 경우에도 가족 보존을 위해 가급적 고소고발보다 서비스 제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학대 행위자의 재학대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고소고발 등 공권력 개입 요청보다 사례 개입 서비스 제공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는 데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이와 반대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 이후로는 신고 대응과 조사의 부담이 커져 가족 보전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위축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친권에 개입해야 하는 신고조사의 영역은 공공기관이 맡고,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은 가족보전과 치료, 재결합 위한 전문적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체계를 이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아이가 부모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정위탁, 시설 입소, 입양 등의 여러 대안적 양육방식 중에서 어떤 방식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지를 공적 권력이 결정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는 판단이 선다면 입양의 절차를 시작할 때부터 공공기관이 이를 맡아야 한다.(250-251p)

 

 

차별과 배제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공감능력의 향상이다.

하지만 공감을 실천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공감은 편협하다. 혈연, 인종, 국적, 유사성, 가치의 공유 등으로 금을 그은 집단의 경계, ‘내 편’의 울타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한다.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은 사람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그들’과 ‘우리’를 나누고 신속하게 ‘그들’을 차별할 표지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

또 권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공감력이 낮다. 다른 사람 처지에 서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통의 경험도 꼭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현재 그 일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덜 공감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공감의 한계 때문에 심리학자 폴 블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래의 위험을 예방하는 정책을 세우려면 공감을 제쳐놓고 생각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 등에 대처하려면 미래의 추상적인 혜택을 위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과해야 하는데, 대체로 사람들은 막연한 대중의 고통, 미래의 큰 비극보다 특정한 개인, 눈앞의 아픔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공감의 능력이 확대되는 건 아름답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익혀야 하는 일이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공감의 확대는 어쩌면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발휘해야 도달 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치 자신이 겪는 양 느낀다 해도 고통의 원인을 잘못 인식하면 행동이 엉뚱해지듯, 그릇된 인식이 공감을 왜곡하는 일도 잦다.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 갈등의 해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역지사지의 확대, 공감의 향상을 핵심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

핑커는 공감은 이타성을 촉진할 수 있고,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면 그 계층에게 공감이 확대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입의 문명’을 추구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족벌주의처럼 감정이입과 공정성이 상충되는 예도 많기 때문이다. 핑커가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보다 더 낫다고 추천한 이상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배타적 가족주의의 폐해 극복과 관련해서도 나는 핑커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 그것이 제2의 본성이 되어 감정이입에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감정이입의 확대보다 권리의 범위 확대가 더 중요하다.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253-256p)

 

 

ㅡ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中,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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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24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신파극인지 알면서도 눈물이 나고 눈을 꼬집히면 눈물이 나기 마련인 것처럼, 별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유독 엄마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다. 한국에서, 아니 나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 개인이 자신의 여행기를 책이라는 출판물의 형태로 남겼다는 개인적인 보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와의 여행기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이 책은 목적지인 인도도 중요하지 않고, 이모는 물론이거니와 무얼 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방점은 ‘엄마’와 자식이 함께 무언가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유달리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다룬다거나, 생애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엄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특장점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책은 흔하다. 모르긴 몰라도 서점의 매대에 꽂혀 있는 여행 에세이 중 이와 같은 테마의 여행기가 수십 권은 있을 것이다. 다만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나는, 이런 책을 처음 읽었고 그게 나름의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말이다. 같은 테마의 다른 여행기를 읽었어도 아마 비슷한 감상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타 여행에세이에 비해 큰 차별점이나 특정 집단에 소구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책이므로 인도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보자. 인도에 처음으로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던 계기는 고등학생 때 읽었던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때문이었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류시화의 인도에 대한 또 다른 에세이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얘기하며 저자의 인도에 대한 첫 기억이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럴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들이 특별한 어느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으로 남기에는 너무 많이 팔렸다. 예전 같지는 않아도 위의 두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고 당시에도 이미 충분히 팔리며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그런 이유로 해외여행에 로망이 있는 사람치고 당시에 소위 ‘인도 뽕’을 맞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그 책에서 접했던 인도는 그야말로 신비한 곳이고 살면서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조차 인생의 삼라만상을 꿰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영성으로 충만한 곳으로 묘사했으니 고등학생이라면 혹할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더 이상 류시화의 책을 읽지 않지만 그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늘은 기차역에 대한 새로운 추억도 생겼다. 기차역 소음과 어우러진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 말이다.

“캘커타에서 참 많은 것을 봤어. 살면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 것 같아.”(111p)

 

 

스물한 살, 대학 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밤이었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에선 누구도 날 서울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은 딸을 데려다주는 것보다 딸이 서울로 가기 위해 필요한 차비를 버는 일이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해 ‘캐리어’라는 것을 샀고, 그 가방에 옷 몇 벌과 필기도구, 기숙사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불 꺼진 방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옆에 슬그머니 누워 내 손을 꼭 잡았다.

“선영아, 혼자 서울 보내서 미안하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생생한 그 말.(227p)

 

 

“선영아, 난 항상 딸을 믿어. 서울 가서도 우리 딸이 당당하게 잘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부터 딸은 이 집에 손님처럼 오게 될 끼다.”

“내가 왜 손님이야?”

“그냥. 이제 가면 니가 1년에 몇 번이나 집에 오겠나. 그러니깐 이제부턴 손님이지.”

나는 정말 엄마가 말한 대로 1년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갔다. 자주 찾는 손님도 아닌, 드문드문 찾는 손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화가 나서 3년 동안 집에 내려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전화도 없고 집에도 안 오던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선영아, 니 뭐하고 사나?”

“왜? 왜 전화했는데?”

“보고 싶어서.”

난 엄마의 그 말에 그날 당장 짐을 싸들고 집으로 내려갔고, 3년 만에 엄마를 봤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엄마는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젊고 건강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228p)

 

 

 

ㅡ 윤선영,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中,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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