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6

 

개의 설계사를 읽을 때만 해도 단요 작가의 전작을 다 찾아 읽을거라곤 생각지 않았는데 출간된 책 기준으로는 이제 다이브를 제외하고 다 읽었다. 근 2년 동안 이렇게 쏟아낸 작품들이 미리 써둔 원고라기보다는 2년간 쓴 작품이라고하니 앞으로도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건 내 고질적인 문제였다. 정의의 편이 되기에는 야심이 부족하고 악당이 되기에는 겁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희비극에 실컷 도취되기에는 또 자기객관화가 잘됐다.(36p)

 

 

존엄은 돈과 맞바꾸지 못한다지만 그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이미 팔린 낯을 돈으로 거둬들일 수는 없어도 돈을 받고 낯을 팔 수는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들은 방송에 나와서 집안사정을 털어놓은 다음 무료 상담을 받고, 도박중독자는 유튜브에서 회고록을 읊어 댄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그래야만 앞날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는데 돈에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50p)

 

 

돈을 벌면 앞으로 어쩌지. 잃으면 또 어쩌고. 막막하게만 들리는 문장이었지만 답은 어떻게 보면 단순했다. 그런 질문들은 내가 수익률의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만 유효했고, 월급의 세계로 떠나는 순간 금방 우스워졌다. 생산직으로 공장에 입사하거나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건 일반적인 삶의 조건 중 하나이며 다들 슬플 것도 없이 그렇게 살고 있으므로.

그러니까 나는 정장을 입지 못하는 미래가 두려운 게 아니었다. 견고하고 안정적인 삶의 미덕이, 내가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운 거였다. 돈이 풍선처럼 부풀다가 터지고 다시 부푸는 데에는 사라질 일 없는 월급이 적금통장에 차곡차곡 모이는 것과는 다른 역동성이 있었다. 사람을 매혹시키고 사로잡는 역동성. 나는 한때 풍선을 부풀린 다음 적당히 자리에서 묶는 법을 알았다. 그것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풍선 탑을 쌓아올렸다·····. 지금도 그게 그리웠다·····. 탑의 높이가 아니라, 내가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나한테는 현금 2,000만 원이 있다. 이것으로 ETN을 살 게 아니라,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크루드오일 매도를 잡으면·····.(68p)

 

 

경상도 농가의 맏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서울 사람이 될 만큼 부드러웠고 폭력의 대물림을 끊고자 결심할 만큼 이지적이었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진정성에 대한 숭배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쌍방이 대등한 관계일 때에만 성립한다. 그러나 모든 부모는 아이를 스무 해 이상의 제작 기간을 요구하는 수공예품처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공예품이 자신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제작자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소통은 허위와 폭력의 게임이어야만 했다. 진의를 다정함으로 감싸고 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밀어 가는 것이, 그러다가도 격렬한 거부 반응 앞에서는 압도적인 차이를 드러내 기세를 꺾고 복종시키는 것이 부모의 일이었다. 진정성과 정직의 힘을 동경하는 이들은 그 역학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악질적이었다.(71-72p)

 

 

메뚜기 떼와 코로나19는 하나님이 타락한 현대인에게 내리는 심판이라는 거였다. 심판. 또 심판이다. 그런 이야기를 기사에 옮겨 적는 걸 보면 편집국 일동도 목사에게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들은 이집트에 저주가 내리는 장면까지만 읽고 성경을 덮었나 보지.

나는 그 뒤의 내용도 알고 있다. 그중 하나는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이름은 욥. 친구들은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불행을 내린 것이라며 욥을 탓하고, 욥은 억울해한다.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욥은 잘못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에 어처구니없이 휘말렸을 뿐이다.

이야기의 교훈은 명확했다. 세상은 원래 까닭 없이 끔찍해지는 것이니까, 타인의 불행을 두고 욥의 친구처럼 굴지 말라는 거였다. 수천 년 전의 중동에도 그 교훈이 필요한 사람은 참 많았나 보다.(83p)

 

 

내 뷰가 옳기만 하면 얼마든지 나를 좋아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 조건부란 안정성의 다른 말이다. 이유 없는 것들은 그 이유 없음으로 인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147p)

 

 

승리의 트로피를 받아 들었을지라도 그 순간을 영원히 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충만감은 삶을 채우기에는 너무 짧고 욕망이란 이루어진 목표를 새로운 목표로 교체하는 부단한 과정이므로. 그러니까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사실 둘뿐인지도 모른다. 갈증 속에 내달리다가 때때로 주어지는 기쁨을 달콤하게 받아들이는 것. 혹은 갈증도 짜릿함도 내버리고 다만 평온해지기로 마음먹는 것.

후자가 마음의 문제인 이유는, 욕망하기 위해서는 투지가 필요한 반면 욕망을 멈추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둘 중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다가는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생각하지도 원치도 않았던 곳에 도달해 있기 마련이었다.(218-219p)

 

 

 

ㅡ 단요, <인버스> 中, 마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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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8

 

 

수연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노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수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온유에 사는 공헌자 노인들이 좀더 품위 있고, 친절하고, 대하기가 까다롭지 않은 고객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정말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전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수연은 덧붙였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63p)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성을 지녔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강하다는 것과 연결되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처음 대피소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 나와 아마라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무척 기뻤다. 내성이 있다는 말은 모두 죽어가는 저 바깥에서도 안전하다는 뜻이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 자매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절반 정도만 옳았다. 더스트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아마라도 그 망할 실험을 당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대신 다른 것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더스트가 아닌, 그 밖의 모든 것들이. 그래도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성종이 아닌 사람들, 그러면서도 어리고 약한 사람들은 더 많이 죽었다. 그 모든 것이, 나는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모든 현실이.(128p)

 

 

(...)

“모두 돔 시티 안에서는 답을 찾지 못해서, 돔 시티 밖에서 대안을 꿈꾸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결국 무너져. 돔 밖에는 대안이 없지. 그렇다고 돔 안에는 대안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야. 나오미 네 말대로 돔 안은 더 끔찍해. 다들 살겠다고 돔을 봉쇄하고, 한줌 자원을 놓고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지.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멍하니 지수 시를 보았다. 그가 나를 마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227p)

 

 

 

 

ㅡ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자이언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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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5

 

후반부의 김영총 씨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억해두었다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다큐멘터리가 완성된다면 꼭 봐야지.

 

 

한도현: 출생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굵직한 사건들은 다 얘기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까, 정말 인사이드 아웃이 돼버린 것 같아요. 좋으면서도 무섭네요. 우리 이야기 나눌 때 그런 모습은 별로다, 이런 얘기까지 나왔으니까. 당신은 지금 내 모습의 원인과 결과를 다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쟤 이상해, 하고 거리를 두진 않더라도, 굳이 가까이하진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내 모든 면을 다 보여줬으니 나한테 호감을 갖긴 어렵겠죠. 그런데 더 가까워져서 신기해요.

 

정성은: 상대의 안 좋은 모습까지 다 알게 되면 거리를 두기보다 오히려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을걸요. 카사노바도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부터 얘기한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의 맥락을 다 알게 되면 이해 못할 일이 없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면 세상은 뭐든 이해해줍니다.(176-177p)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면 어떤 기분이야?” 키스는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 초등학생을 달래듯 그는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연애한다고 해서 매일 신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야. 그냥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내 편이 생기는 거지.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재밌게 사는 거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인지 연애를 해보고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여행을 훌쩍 떠나도 그것만으로는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 또다시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193-194p)

 

 

ㅡ 정성은, <궁금한 건 당신> 中,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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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5

 

베스트는 배회하는 쥐.

 

 

조: 네 커피, 맛있냐고.

존: 아, 맛없어.

조: 왜?

존: 설탕을 안 넣었잖아.

조: 내 건 너무 달아.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흐른다.

 

존: 좋은 생각이 있어, 조!

조: 네가?
존: 그래, 내가.

조: 뭔데?

 

존은 물 잔을 하나 들더니 물을 바닥에 쏟는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을 물 잔에 붓고는 섞는다. 섞은 커피를 커피 잔에 각각 다시 따른 다음, 한 잔은 조에게 건넨다.

 

존: 맛을 봐!

조: 뭘?

존: 네 커피!

조: 아까 맛봤는데?

존: 다시 맛을 보라고!

 

조가 커피 맛을 본다.

 

존: 어때?

조: 뭐가 어때?

존: 맛이 있냐고.

조: 아니.

존: 하지만 이젠 너무 달진 않지?

조: 응, 너무는 아냐.

존: 그럼, 뭐야?

조: 아냐, 아무것도.

존: 그런데 왜 맛이 없냐고.

조: 나도 잘 몰라.

 

존도 자신의 커피를 맛본다.

 

조: 여전히 설탕 맛이 안 나나?

존: 아니, 설탕 맛은 나.

조: 그럼, 맛이 있나?

존: 아니.(19-21p)

 

 

ㅡ 아고타 크리스토프, <르 몽스트르> 中,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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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9

 

인버스도 읽어야겠다.

 

 

전기차가 경유 승용차의 친환경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전기차는 실제로 더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하지만 생산과정마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전기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LCO(리튬·코발트·옥사이드) 혹은 NCM(니켈·코발트·망간)을 사용한다. 리튬은 대량으로 퍼 올린 지하수에서 해당 광물을 추출하여 생산되는데, 이러한 채굴 방식은 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주변 농작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리튬의 주요 산지는 칠레와 페루 같은 남미 국가들이다. 선진국의 땅은 환경오염과 정화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너무 비싼 반면, 남미의 개발업자들은 군·경과 결탁해 약탈적 채굴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를 매달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기차는 희토류 채굴로 인한 환경오염을 제3세계에 떠넘기는 동안만 온전히 친환경적인 셈이다.(56p)

 

 

제본스의 역설이 지적한 것처럼, 세탁기와 청소기가 가사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란 전망과 달리 실제로는 가사의 기준을 높였던 것처럼,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수록 전력 사용량이 더불어 증가하는 것처럼, 발전과 혁신은 새로운 욕망을 빚어낸다. 그리고 이따금 욕망은 개선과 해결을 막는다.(58p)

 

 

사회에 기여하지 않거나 덜 기여하는 행위는 무가치한가? 도덕적으로 훌륭해지는 것 이외의 자향점은 없단 말인가?

수전 울프가 1982년 발표한 논문 <도덕적 성인>은 ‘모든 행위가 가능한 최대 한도로 선한 사람’을 도덕적 성인으로 정의한 후, “도덕을 최고의 기준으로 두고 판단할 경우, 우리의 가치들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논지로 끝을 맺는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도덕적 성인이 되려 한다면 세상은 훨씬 칙칙해질 게 분명하다. 이러한 논변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순수수학, 이론물리학, 천문학, 고생물학···.

그 모든 일은 분명히 인류의 문명에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안겨왔다. 수레바퀴의 기준과는 다른 가치의 체계에 속하는 아름다움일 뿐이다. 수억 광년을 통과해 다가오는 빛을 포착하기, 영어의 음성체계에 대해 고민하고 구조를 분석하기, 그리고 심플렉틱 다양체에 대해 생각하기.(116-117p)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기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애들보다 제가 살 만한 건 맞는데, 기분이 묘한 거죠. 내가 남 도울 입장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도움을 받을 만한 상황도 아니고. 애매하게 끼어서. 저한테 열심히 살았다고 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거기에 억하심정을 가져봤자 여기 말고는 말할 곳이 없으니까···.”(123p)

 

 

지난 11월, 어느 안티휠 만화가가 수레바퀴를 조롱하는 한 컷짜리 만평을 발표했다. 수레바퀴는 악당이 지을 법한 미소와 함께 이런 말풍선을 드리운다.

“내가 바라는 것은···어느 누구도 긍지를 가지지 않는 것,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믿지 않고 어느 무엇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 사랑과 따스함이 아니라 원칙과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가족을 내버리고 세상을 고민하는 것, 더디 기뻐하고 분노를 참고 돌처럼 무감각한 것, 더 적은 것을 누리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 너희를 이 땅에서 치워버리는 것.”

그런데 나열된 요건들은 악의적인 왜곡이기 이전에 건조한 사실이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치관만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스로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지 않고 항상 회의하는 것은 나쁜 일인가? 공정한 원리에 입각해 행동하는 것은 나쁜가? 얼굴 모르는 사람들을, 불행의 숫자를 눈앞의 가족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나쁜가? 감정적으로 초탈하는 것은 나쁜가? 물질적으로 검소한 것은 나쁜가? 인간이 모두 천국으로 떠나는 것은 나쁜가?

나쁘다라는 서술은 특정한 가치 체계 속에서만 정확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정의의 체계와 개인적인 만족감의 체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분명히 내가 만족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정의의 문제라면 반대할 이유가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것과 옳은 것을 곧잘 혼동한다.(173-174p)

 

 

 

ㅡ 단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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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8

 

칼럼 모음집이라 그런지 각 글들이 짧아서 조금 아쉽다. 너무 긴 글도 싫지만 이건 너무 짧은 걸.

 

 

 

“말하는 데 한 푼도 들지 않은 당신의 찬사가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는 먼저 생각해 보시죠.” 18세기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 박사가 한 말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칭찬이 모두 무가치하냐 아니냐가 아니고, 칭찬을 말한 쪽이 빠지는 고유의 착각이다. 그는 원가(=제로)와 무관하게 자신의 칭찬이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받은 쪽이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수표라도 써 준 것처럼 말이다.(43-44p)

 

 

중고생 시절, 미국의 ‘물질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처음 의심하게 된 계기는 히틀러를 피해 건너온 망명자들이 제공했다. 그들은 걸핏하면 자기들 ‘문화’를 우리 ‘천박한 물질주의’와 대비시키곤 했다. 들여다보니 그들의 ‘문화’라는 건 유럽 시절 하인을 부리고 살았다는 것과 그들이 황홀해하는 릴케, 슈테판 츠바이크, 브루크너, 말러에 대한 지식 정도가 다였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가 신세계에서 형편만 허락한다면 제대로 누리고 싶은 중산 계급식 물질주의와 감상주의를 뜻할 뿐이라는 걸 발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폴린 케일, 「나는 영화관에서 그것을 잃었다」, 1965)(53p)

 

 

우정의 다이내믹은 꽤 관대한 편이어서 가장 친한 친구의 순위 바꿈이나 연락의 휴지를 허용한다. 하지만 한번 금이 간 친구 관계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연애가 거의 무한정 누리는 사치, 즉 싸움을 우정은 한 번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친구 관계는 별로 질기지 않고, 한번 못 볼 꼴을 보면 바로 해소된다. 그런 오점만 없다면, 십 년간 겨울잠을 자던 밍밍한 친교도 나중에 잘 이어지곤 한다.(60p)

 

 

“그는 다른 작가들을 그들이 보인 업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들이 그를 평가할 때는 장차 달성할 업적을 가지고 평가해 주길 바랐다.” 나는 네 겉만 보겠으나 너는 내 속을 봐 줘야 한다는 이런 태도. 내면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태도.(71p)

 

 

 

「에지웨어로 뒷골목의 조촐한 극장」(1939)은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이 남긴 아마 단 한 편의 환상소설이다.

(...)

대영 박물관 열람실을 나와 저녁 거리를 쏘다니던 한 사람이 영화관에 간다.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지만, 돈은 없고 비는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들어선 꾀죄죄한 극장은 무성영화 전용관을 표방하고 있다. 즉 ‘고급문화도 아니고 싸구려에다가 임시적이고 욕구불만에 가득 찬 어떤 시대착오적 오락’이 이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의 손님이 없는데, 영화에서 자살 장면이 나오자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말을 건다. 아니 대놓고 귀에다 속삭인다. “엉터리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피가 많이 나오는데.” “뭐가요?” “사람을 죽이면.” “저건 살인이 아닌데요.” “나도 알아.” “뭘 안다는 거죠?” “저런······것을.” 사내는 혼잣말로 뭔가 불길하고 낯익은 거리 이름을 중얼거리다 나간다. 불이 들어오고 사내가 앉았던 곳 스쳤던 곳 모두가 피투성이다. 최근 뉴스에 난 살인 사건이 뇌리에 스친 주인공은 달려 나가 경찰에 전화를 건다. 틀림없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자는 살인범이다·····. 흥미롭게 듣고 있던 경찰이 대꾸하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온다. “아니요. 범인은 잡았습니다·····. 없어진 것은 시체뿐입니다.”(161-163p)

 

 

아마 한 조직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두목보다 착한 부하가 생존이 가능한지를 살펴보는 것일지 모른다.

(...)

그러나 잠자코 있으면 살릴 사람들을 굳이 죽이기 위해 그가 의식적인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선택을 평범함이나 복종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는 어렵다.(분명히 그는 복종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이히만은 이십 년 뒤 바로 평범함과 복종의 대표자로 부활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때문인데,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본 그녀는 그를 사악하기보다는 평범하고, 고지식하게 명령을 수행하려 애쓴 다소 머리가 둔한 공무원적 인물로 묘사했다.

(...)

아이히만이 평범한 인물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게다가 아렌트가 말한 평범함은 보통 사람의 특출하지 못한 면을 중립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녀가 견딜 수 없어 하는 모든 특성의 총합 같은 인상을 준다. 나중에 그녀는 좀 더 힌트를 주었다. “그의 특징은 천박함이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는 그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대중화될 수 없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부류에게 ‘평범하다’는 수식어를 부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렌트 같은 지식인 귀족이 아니라면 말이다.

(...)

내용이 없어진 개념들이 그렇듯 악의 평범성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적용해도 되는 말이 되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겁을 주는 말이기 쉬웠다. 악당들도 마찬가지로 겁을 먹으면 좋을 테지만, 그 개념이 그런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악당이 되는 것보다, 악당이 자신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는 것, 그게 훨씬 두려운 일이 아닐까.(190-193p)

 

 

 

ㅡ 김영준,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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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7

 

첫 감상은 무난하고 평범한 소설이었는데, 모임을 위해 이것저것 떠올려오니 제법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누구에게 권할 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겨우 몇 주가 아니라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하워드에게 자신의 좌절감과 괴로움을 털어놓았던 자동차 안의 대화 이후로 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또는 현명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182p)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자신의 속얘기를 털어 놓으면 상대와 급격히 친해졌다고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술 더 뜨면 상대방 역시 그런 얘기를 나에게 해주길 원하고 그러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진은 슬론 광장에서부터 걸어가면서 가게 진열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흘깃 보았다가 낡은 레인코트를 입은 구부정한 중년의 여성을 보고 당황했다. 유행에 뒤떨어지는 쥐털 같은 머리카락은 곧지도 곱슬거리지도 않고 군데군데 흰머리가 있었다. 진은 스스로 활기차고 착실한 직장 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어깨가 둥글고 칙칙한 모습은 정반대였고 평소에 그녀가 왜 거울을 피하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305p)

 

 

“잠깐, 움직이지 말아요.” 두 사람이 소파에 반쯤 앉고 반쯤 누운 채 진이 그의 무릎을 베고 있을 때 하워드가 말했다. “들어 봐요.”

레코드가 끝나서 바늘이 판을 긁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왜요?” 진이 말했다.

“행복이에요. 안 들려요?”(389p)

 

낯 간지러. 에릭인 줄...

 

 

“비키예요, 아프기 전이죠.”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사랑스런 아이였답니다.”

“그런 것 같네요.”

“비키를 괴물이라 생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비키도 그냥 아이였을 뿐이에요. 그 애가 무슨 짓을 했든,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파서 그런 거예요.”(444p)

 

진짜 무슨 개소리를 하는건지? 그냥 아이는 나쁜 짓을 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아파서였든 뭐든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보호자가 저렇게 얘기를 한다고? 범죄 행위에 대해 장애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할 수는 있을지라도 저렇게 얘기라면 곤란하지.

 

 

그녀는 틸버리 가족을 만나기 전에, 겨우 6개월 전의 삶이 어땠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그때는 감정의 정점도 바닥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계절마다 직장과 집에서 해야 하는 정해진 일들은 적당히 다양하고 보람이 있었기 때문에 몰두할 수 있었다. 작은 즐거움들ㅡ하루의 첫 담배, 일요일에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마시는 셰리 한 잔, 일주일 동안 쪼개 먹는 초콜릿 바 하나, 아직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서관의 새 책, 봄의 첫 히아신스, 단정하게 잘 다려서 개어놓은 여름 향기 나는 빨래, 눈 덮인 정원, 보물 서랍에 넣으려고 충동 구매한 문구ㅡ로 충분히 기운을 낼 수 있었다.

그녀는 몇 년이 지나야 이미 깨어난 갈망의 괴물을 잠재우고ㅡ잠재울 수 있다면 말이다ㅡ억제된 삶을 다시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랑에 빠져드는 여정은 너무나 쉽고 우아했지만,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여정은 너무나 길고 힘든 오르막길이었다.(456p)

 

“세상에, 무슨 일 있어?”

진이 열심히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 일도 없다고 하고 얼른 나갈 수도 있고 멜섬 부인이 내미는 동정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기억이 그녀를 쿡쿡 찔렀다ㅡ리밍턴 호텔에서 만났던, 진이 내민 우정의 손길을 거절했던 만신창이의 딸. 그녀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자랑스러움을 포기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날 밤 두 사람 모두 움츠러들었다. 늦었지만 눈부신 통찰 덕분에 진은 도움을 받아들이면 양쪽 모두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

이 만남으로 인해 진의 상황이 실제로 조금 더 나아졌다. 진은 최근 틸버리 가족 때문에 겪은 슬픔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연애가 끝나서 외롭고 후회된다고 내비쳤다.

(...)

물론 멜섬 부인은 진의 실연에 대해서 어떤 치료법도 제안할 수 없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서 깊은 방법들ㅡ인내, 기분전환, 일ㅡ뿐이었는데, 그런 방법이라면 진도 잘 알고 있었고 예전에 프랭크와 헤어졌을 때 기대기도 했지만, 지금은 떠올려 봐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예전의 경험은 고통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는다고ㅡ그러나 매끄럽게 점점 더 빨리 가라앉지도 않는다고, 무서운 파도를 연달아 일으키며 가라앉는다고, 몇 번의 파도는 그녀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458-460p)

 

 

 

ㅡ 클레어 챔버스, <스몰 플레저> 中, 다람

,

2023/8/28

 

 

등장인물을 바꿔가며 몰아치는 도입의 긴장감이 굉장히 좋았으나 중반부 양우라는 등장인물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며 긴장감도 함께 떨어졌다.

 

 

ㅡ 김희재, <탱크> 中, 한겨레출판

,

2023/8/29

 

 

감동적이고 좋은 책이었다. 근데 딱히 할 말은 없네.

 

 

ㅡ 루리, <긴긴밤> 中, 문학동네

,

2023/8/30

 

청소년 문학의 편견을 깨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현은 지금껏 침대에 누워서 텅 빈 머리로 했던 게 후회였음을 알아차렸다. 두 달 전에 이선이 죽었더라면, 우연이 추모에만 모든 슬픔을 바쳤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애도란 남은 사람들끼리 편할 대로 기억을 잘라 내서 소화하기 쉬운 부분만 남기고 그만 잊어버리는 일이니까. 죽음을 그 자체로 잊을 이유가 되니까. 하지만 이선은 계속 살았다. 그래서 우연은 결코 씹어 넘기지 못할 부분을, 세상의 뼈 같은 걸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고꾸라졌다.

그러니까, 이 일에서 가장 슬프고 웃긴 점은 거기에 있었다. 정말로 씹어 넘길 방법이 없었다는 것. 센스/네트를 찾아가더라도 어떤 사실은 여전히 속에 얹혔으리라는 것.(231p)

 

 

“우리가 아는 낱말들을 분류해 보자. 이해나 공감 같은 건 좋은 쪽이겠지. 냉담함이나 잔인함은 나쁜 쪽이고. 평범한 감각으로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짓누르듯이 이긴다고 믿게 될 거야. 뜨거운 주전자에 얼음 조각을 던지면 녹아 버리고, 반대로 얼음 덩어리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함께 얼어붙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한 사람의 따뜻함이 무한한 악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두려워하지. 또는 마지막 한 방울이 거대한 얼음을 쪼개는 장면에 희열을 느끼거나. 하지만 그런 장면은 순간에 불과해.”

“네.”

“정말로 남는 건, 이 세계는 고통과 기쁨이,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것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복잡하게 뒤엉킨 덩어리라는 사실뿐이야.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는 한 사악해 보이는 것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다정할 수도 없고 온전히 올바를 수도 없다는 사실이지.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닌 건 대개 환상이고 현실을 바꾸는 것들은 삶을 깎아내. 우리든, 우리 이웃이든, 아예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게다가 해결책을 떠올리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 봐.”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 그런 것들이 모두, 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라면요. 더욱이 가끔은 아예 탈출구를 상상할 수 없거나 남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해답만이 있다면요. 그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모르거나 알더라도 외면해 버리는 게 그 사람한테는 가장 나으니까, 세상은 더 좋아질 수가 없다는 건가요.”

“아니야. 거기에서 출발하는 거야.”

“출발, 이라고요.”

“가끔은 물러나기도 하고, 가끔은 도망치기도 하겠지만·····.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 있을 거야.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무언가를 해내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똑바로 보고 그 복잡함을 이해해야 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올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위치를 알아야 하니까. 또 아직 알지 못하는 걸 진심으로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답이 없다면요? 떠오르는 게 없으면 어떻게 하죠?”

“그래서 어려운 거지.”(258-260p)

 

 

 

ㅡ 단요, <마녀가 되는 주문> 中, 책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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