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2

 

 

DFW에 다시 관심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아마 내년에 infinite jest가 번역 출간될 듯한데, 몇 꼭지 읽고 포기한 그의 다른 작품을 좀 더 끈기를 가지고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The End of the Tour도 빨리 챙겨봐야겠다.

 

 

 

나는 야심과 다다름에 대한, 영화와도 같은 미국적인 신념을 길잡이 삼아 살아왔다. ‘어느 장소에 이르는 최선의 길은 내가 이미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사는 것’말이다. 마법 같은 생각이자, 언어를 배울 때 사용하는 효과적인 공부 방식이기도 하다. 프랑스어만 듣고 말하면 마침내 프랑스어 실력이 는다.(대학에서도 이 방식을 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기둥들과 완만한 언덕, 학생들은 아테네인이 되거나 부자가 될 것이다.) 소설만 생각하고 소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다 보면, 마침내 세상이 날 둘러싼 서점이 된다. 눈을 낮추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 불운일 뿐 아니라 본격적인 침몰에 가까워지는 일이니. 나는 칠 년 동안 소설가처럼만 살았고 두 권의 책을 냈다. 그리고 이 방식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35p)

 

 

근래에 제 독서 취향이 꽤 현실적으로 바뀌었어요. 아주 실험적인 글은 읽기에 지독히도 재미가 없어서요.

 

아이디어가 우선이 되면 그런가요? 그런 경우에 글이 안 좋아지나요?

 

실험적인 글이 못쓴 글이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다만, 그런 글은 독자의 입장에서 수고를 들여 읽어야 하는데, 그 보상에 비해 들여야 하는 수고가 말도 안 되게 커요. 제가 그런 실험적인 글을 읽는다고 할 때, 여기서 실험적이라 함은 정말 실험적이고 따라가기 힘든 걸 말해요. 실험적인 출판사와 다양한 글을 작업 하기도 하니까 그런 걸 읽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전 어린애이고 어른들이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는 걸 듣는 느낌이에요. 그 책이 실은 다른 작가, 이론가, 비평가들을 위해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바람에 “와 이거 뭐지! 엄청 재밌네. 지금 밥 먹을 때가 아니야, 당장 읽어야겠어”라는 배고픔도 가시게 하는 마법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죠.(103p)

 

 

작가들이 가진 건, 자리에 앉아서 주먹을 불끈 쥐고 사람들이 대개는 어느 정도까지만 인식하고 있는 것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절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면허와 자유예요. 작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할 경우, 그가 기본적으로 하는 행위는 독자가 얼마나 명석한지를 독자에게 상기시키는 일이에요. 독자가 본인이 늘 인지하고 있던 무언가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이건 작가가 일반 사람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작가가 어떤 것으로부터 기꺼이 본인을 분리하고 발전하는···정말로 열심히 깊게 생각하는 문제예요. 누구나 그런 사치를 누리는 건 아니죠.(111p)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아닐까.

 

 

사람이 노력을 통해서 진실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진실되거나 아예 진실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애써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다.(151p)

 

 

기자님과 제가 삶에서 이른 시기에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면, 우린 궁극적으로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런 성공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남보다 이르게 꺠닫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무엇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일찍 시작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가장 흡족한 건 기자님이 정말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제는 기자님이 좋아지기 시작해서 이런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되었으니까요.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제가 지금 이렇게 유명해지게 된 상황이 제게는 큰 의미가 아니라서 흐뭇해요.(155-156p)

 

 

TV를 많이 보고서 공허함을 느끼는 한 가지 이유, TV를 유혹적인 존재로 만드는 한 가지 요소는 TV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환상을 제공한다는 거예요. TV는 방 안의 사람들이 말하고 즐기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저를 볼 수 없다는 얘기죠. 또 그들은 저를 위해 그곳에 존재하고, 저는 TV로부터 즐거움과 자극을 받아요. 뭔가를 도로 주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살짝 스칠 정도의 관심만 주면 되죠. 그 점이 무척 유혹적이에요.

문제는 역시나 공허하다는 거죠. 진짜 사람을 곁에 둘 때 다른 점은 제가 뭔가 행위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제게 관심을 주고, 저도 그 사람에게 관심을 주어야 하죠. 제가 그를 바라보고, 그도 저를 바라봐요. 스트레스의 정도가 높아지죠. 그렇지만 거기에는 자양분 역시 있어요. 한 생명체로서 우리 모두가 같은 방 안에 함께 있을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TV가 사탕 같다는 거예요. 진짜 음식물보다 더 즐겁고 먹기 편하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진짜 음식물과 달리 영양분은 없죠. 작가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책 속에 담아야 해요. 그래서 저는 제 주변 세상에 대한 감각과 타인에 대한 인식의 상당 부분을 기꺼이 TV에서 얻으려고 해요. 아니, 실제로도 그러고 있어요. 그렇지만 전 현실의 진짜 사람들을 대할 때 수반되는 스트레스와 어색함, 또 제게 닥칠지도 모르는 거지 같은 상황을 굳이 감당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인터넷이 발전하고 우리가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자님과 제가 이 인터뷰를 이메일로도 할 수 있겠죠. 기자님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고 그게 제게는 훨씬 더 편할 거예요. 그렇죠?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장치를 몸속에 만들어 두어야 할 거예요.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할 테니까요. 게다가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닌 우리의 돈을 원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화면 속 영상을 혼자서 바라보는 일이 점점 더 쉽고 편하고 즐거워질 거예요. 그것도 괜찮아요, 적은 양이라면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의 기본적인 주식이 된다면, 우리는 죽고 말 거예요. 아주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죽게 될 거예요.(179-180p)

 

 

제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아까와 똑같은 얘기예요. 며칠 전에 벳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조직 문화, 조직 정신,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그런 글을 전부 어떻게 쓴 거야?”기자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작가는 하나의 자질로서, 본인이 방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독자에게 보여야 하죠. 행에서든 행간에서든 말이에요. 어떤 소재를 잘 알고 그 소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 왔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해요. 작가는 독자의 신경 말단에 어떤 효과를 일으키길 원하니까요. 전 그런 걸 꽤 잘해요. 어떤 소재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어요. 실은 제가 아는 내용이 대개는 조금만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죠. 아주 전략적인 조사 방법이에요.(269p)

 

 

장담하는데, 기자님도 중독되듯이 좋아하는 게 서너 가지는 있을 거예요. 제가 재활시설에서 깨달은 건 열한 살 때부터 헤로인을 해서 에이즈로 죽어 가는 스무 살짜리 매춘부와 제가 다른 게 그저 우연이라는 거예요. 어떤 약물을 선택했는가, 어떤 행위에 중독되었는가, 중독 대상 외에 의지할 다른 자산들이 있었는가의 문제예요. 저는 책과 글쓰기를 무척 사랑해요. 그런데 저와 달리, 그 밖에 사랑하는 것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270p)

 

 

작가님이「블루벨벳」과 「브라질」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현실적이지 않은 영화에서라도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것인가요?

 

네. 어떤 초현실주의 작품이든, 그 작품의 99.9퍼센트가 전적으로 현실적이면 더 큰 효과가 발휘돼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분명히 설명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거든요. “이건 충분히 현실적이지 않아.” “그런데 이건 초현실적이어야 해.” “음, 그런데 넌 이해하지 못했구나.” 초현실주의는 효과를 내지 못해요.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대개 현실주의라는 거예요. 추가적인 현실주의라는 뜻이에요. 현실주의 위에 존재한다는 거죠. 린치의 프레임 안에 있는 한 가지예요. 그 밖에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 않고 완전하게 조직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요. 관객들에게 파급을 일으킬 수 없죠.(314-315p)

 

 

“악마가 어떤 줄 알아?” 이 영화를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절대로 잊히지 않아요. “붉은 망토를 두른 모습일까? 와우! 아냐. 악마는 마음씨 좋고 호감 가는 사람일거야. 그러고는 선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서서히 낮추게 될 거야. 그게 그가 하는 일이야. 그리고 그는···”(354p)

 

 

그런데 제가 좀 더 똑똑해질 수 있었던 건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똑똑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에요. 내지는 다른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더 똑똑한 면이 있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에요.

(...)

제가 보기에 글로 표현하는 자신이 현실 속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글을 쓸 때 초고를 여섯 번 내지는 여덟 번씩 써요. 제가 가장 똑똑한 작가는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런 면은 제 성격에 딱 들어맞아요. 정말 정말 열심히 하는 거요. 저한테 24시간만 줘 보실래요? 이 인터뷰를 메일로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전 정말, 정말, 정말로 똑똑해질 수 있어요. 전 그리 빠른 사람이 아니에요. 저를 많이 의식하기도 하고요. 더욱이 쉽게 혼란을 느껴요. 혼자 방 안에 있으면, 거기에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전 아주 똑똑해질 수 있어요.(379-380p)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사람들이 전부 거실에 앉아서 그 기사를 읽고 있었거든요. 기분이 굉장히 좋았고 좀 과장하자면 날아갈 듯 황홀했어요. 그런데 30초간은 그렇게 좋다가 굶주린 듯 그걸 더 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바로가 아닌 이상, 진짜 문제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이라는 걸 알겠죠. 그렇게 단 몇 초간 좋다가 그걸 더 많이, 그보다 더 나은 걸 갈망하는 굶주림이 생겨요.(436p)

 

 

어떤 종류의 설렘이든 현실을 인식하고 나면 한풀 꺾이고 말아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기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면요.(469-470p)

 

 

전에도 그렇게 많은 호텔에서 숙박한 적이 있나요?

 

없었어요.

 

어땠나요?

 

괜찮았어요. 다만 크루즈선 탔던 경험과 좀 비슷했어요. 제가 얼마나 금세 사치에 익숙해지는지, 미니바 서비스가 얼마나 금방 어마어마한 호사에서 그저 부차적인 서비스로 변하는지 알게 됐어요···. 심지어 지금도 제가 식료품점에 먹을 걸 사러 나가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나요. 제가 어지르면 누군가가 대신 치워 준다는 걸 아는 일에도 익숙해졌죠.(473-474p)

 

 

어찌 보면 더 외로워질 수도 있어요. "내가 이렇게 하면 이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까?“ 뭐 이런 식이 된다면 말이에요.

뉴욕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누가 그런 농담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요. 섹스 후에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당신에게만큼 내게도 좋았나?“

 

[우리가 웃는다. 그리고 나는 농담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 농담의 어떤 점이 재밌는 건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크게 웃었죠? 제가 보기에 글쓰기에는 완전히 헐벗은 진심과 조작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또 무언가가 어떤 특정한 영향력을 발휘할지 늘 가늠하려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아주 귀중한 자산이긴 하지만 가끔은 신경을 끊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이번 책처럼 긴 글을 쓸 때 여자들과 관계가 그토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제가 자발적이면서도 저를 무척, 무척, 무척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작가가 형편없는 배우자라고 생각하나요?

 

보통 사람으로서 제가 짐작하자면, 작가는 유쾌하고 노련하고 만족스럽고 겉보기에는 배려심 깊은 배우자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겠죠.(495-496p)

 

 

 

ㅡ 데이비드 립스키, <처음부터 진실되거나 아예 진실되지 않거나> 中, 엑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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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

 

 

지금 나는 이것이 ‘말하고 듣기’와 ‘읽고 쓰기’에 같은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러하다.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찮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없는 일이 다른 시공간에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란의 상당수는 예의와 윤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예의와 윤리는 폭력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수단이다. 이 두 덕성은 서로 겹치지 않으며, 맥락과 상황의 문제(예의)를 보편적인 법칙(윤리)으로 만들고자 할 때 종종 충돌이 발생한다.(54-56p)

 

 

나는 오히려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편리한 면죄부로 쓰이는 것 아닐까 의심한다. 힘들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런 허약한 가설에 기대 은근한 우월감을 즐기는 듯 비칠 때에는 좀 딱해 보인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이 건강해져 자존감이 높아지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덩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독서와 인성의 관계도 그 정도 아닐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읽고 쓰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일관성을 더 추구하며, 그래서 보다 공적이고 반성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웃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내가 그렇다).(155-156p)

 

 

우리는 읽으며 과거와 대화한다. 우리는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때 우리는 현재와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식 대부분을 고작 50년 전 사람들이 듣는다면 격분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50년 뒤의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228p)

 

 

 

 

ㅡ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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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7

 

40여년이나 된 책에게 구닥다리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실험적이었겠으나 지금 읽기에는 글쎄. 몇몇 이미지들이 남았지만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저자의 다른 책이 크게 궁금하지가 않음.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원작자로 알고 있는데, 알랭 레네의 그 작품이나 챙겨봐야겠다.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들을 알려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불멸성은 유한한 것이고, 불멸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멸성은, 결코, 불멸성으로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절대적인 이원성이다. 그것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근원 속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멸성의 존재를 물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조건에서이다. 마찬가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 불멸성의 존재를 간파해 낼 수 있는데, 그것도 똑같은 조건에서, 즉 그들이 그럴 능력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서이다.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불멸성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불멸성은 정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어 그것과 함께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양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124-125p)

 

 

ㅡ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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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7

 

 

이게 2018년에 나왔으니 요즘과는 스타일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쓰고 보니 로맨스 조가 생각나네.

 

 

 

ㅡ 정지돈, <팬텀 이미지> 中,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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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8

 

 

 

노인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뼈가 비워지는 탓이겠지만,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단념해서 버려지는 무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노인의 등을 가만히 보며, 나는 그 반대편 가슴 안에 머무는 색(色)에 대해 생각했다.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이고 보내며 일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도 색이 있을 테니까. 어느 물감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찬연한 색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제 색이 바랬다고, 혹은 아예 색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늙음일 것이다.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나쁜 사건ㅡ개인의 불행이나 세계의 비극ㅡ을 겪는 순간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덜 늙고서도 늙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보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몸의 관절이 오래 쓰려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67p)

 

 

 

ㅡ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시간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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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9

 

 

 

저자가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 따라다닐 고통과 공포는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당신의 앞길이 다복하길 빈다.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곳이 더없이 세상의 부정과 불의를 함축하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움으로 치부됐다. 때로 용기 내어 조직의 문제에 대해 말하면 그저 견디라고 했다.(81p)

 

 

이 이야기를 직장 선배에게 하자 선배를 “네가 예민한 것이니 참아라, 사과하지 않았느냐, 너 말고도 수행비서 할 사람 많다, 자꾸 문제 제기하면 잘리는 건 너다”라고 했다. 그 선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내가 말한 이후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낙담했다.

안희정 조직 내의 또 다른 선배에게 말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힘든 건 알겠지만 이곳에선 어쩔 수 없다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떠나야 한다고.(86p)

 

 

제일 처음 인계받은 내용은 지사가 구두를 편히 신을 수 있도록 어떤 위치에 어느 정도의 각도로 놓아야 하는지였다.

(...)

“멍 때리지 마라, 절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격식 있는 자리인지 미리 확인해라, 지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싫어하신다, 행사 시 앉는 자리에 착석하는 끝까지 봐야 한다, 보안이 필요한 식사는 수행비서 개인 카드로 결제해라, 사우나, 미용, 마사지 등 지사의 개인 일과 비용도 수행비서 개인 사비로 써라, 지사 가족들의 비용도 수행비서가 부담한다, 현금을 넉넉히 가지고 다녀라, 한도 500만 원짜리 카드를 만들어라, 지사의 식성을 파악해라, 아주 세세한 음식 기호를 외워서 맞춰드려야 한다, 얼굴이나 이름을 못 외우니 수행비서가 보조 기억 장치로 있다가 옆에서 알려드려야 한다, 각종 신고서도 수행비서가 써서 챙겨드려라, 경제 용어도 외워라, 못 알아들으면 안 된다, KTX를 탈 때 수행비서 앞에 있는 받침대는 지사의 커피와 가방을 놓을 수 있게 펼쳐놓아라,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은 1개, 시럽일 때는 2번 펌핑해야 한다, 빵을 사 오라 하면 크루아상이나 따뜻한 플레인 베이글을 사라, 크림치즈와 나이프를 같이 준비해드려라, 가끔 단 것을 찾으시면 그럴 땐 옛날 꽈배기를 사라, 우유는 예전에는 커피우유만 드셨으나 요즘에는 흰 우유를 주로 드신다, 꼭 빨대 챙겨라, 자주 부르고 자주 심부름을 시키신다,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

안희정은 전지적 상사였다. 특히 비서는 그의 기분을 건드리면 안 된다. 기분이 중요하다는 말은 무형화된 권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자를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한마디면 됐다.

(...)

지사가 말을 하지 않아도 기분을 알아야 했다. 눈빛이나 호흡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침묵만으로도 불편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지위를 갖고 있었다. 문자 연락에 답이 늦으면 바로 “···”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메시지는 내 전임자들에게도 사용하던, 무언의 질책이 담긴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었다.(88-91p)

 

진짜 소름 돋네 시발

 

 

지사의 전화는 수행비서에게 모두 착신되어 있다. 그는 전화를 모두 돌려놓았고 개인적으로 통화하고 싶을 때만 직접 착신 전환을 풀어서 자신의 전화기를 사용했다. 한밤중에 오는 전화와 문자도 모두 수행비서가 받는다. 24시간 근무를 하는 것과 같았다. 밤이든 새벽이든 자다가도 일어나 정치인들의 전화를 받아 “현재는 통화하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메모를 해둔 후 지사에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전화 수발신 내역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이런 업무를 하다 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함은 물론 늘 긴장 상태로 있어야 했다.퇴근 후에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했다. 공적 업무 외에 사적으로 지시받는 업무도 많다 보니 어느 순간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지시하는 일이라면 수행비서는 뭐든 해결해내야 한다. 지사의 가족과 관련된 업무도 휴일 구분 없이 수시로 있었다. 휴가 때나 명절에 아들과 요트를 타러 가거나 가족끼리 놀러 가는 일정의 숙소, 식당, 체험 활동 등을 알아보고 예약해야 했고, 지사의 친구 가족이나 지인들이 묵을 장소도 알아봐야 했다. 사모나 지사가 친구들 모임에서 술을 마셔 운전을 못 하면 한밤중에 불려 나가 대리운전을 했다. 맥주, 담배 같은 개인 기호품도 수행비서가 대신 사서 숙소나 집무실로 가져다주어야 했다. 미투 이후 나는 “왜 네 번이나 지사의 방에 갔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지만, 그날들은 사적 심부름 때문에 불려 갔던 수백 전 중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늦은 밤, 새벽, 퇴근 후, 휴일에도 몇 번이고 불려 가 심부름을 했다. 담배나 라이터가 떨어지면 준비해두지 않았다고 질책을 받았다. 담배는 비서실의 공적 비용으로 대량 구매했고 외부에서는 내가 따로 사서 공급했다. 맥주나 커피, 컵라면, 달걀, 우유, 빵, 잼, 버터, 시리얼, 김치, 속옷, 면도기, 치약, 칫솔, 휴대폰 케이스, 보조 배터리, 충전기 등을 밤낮 상관없이 공관으로, 입 숙소로, 마포 오피스텔로 가져오라 사 오라 수시로 시켰다. 지인이 김장을 하는데 가뭄과 홍수로 고춧가루를 구하기 어렵다 하니 좋은 고춧가루 10근을 사서 보내라고 시켰고, 가족에게 줄 간식과 선물도 내가 사오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비용들은 수행비서의 사비로 내야 했다.

안희정의 부인이 빵이 먹고 싶다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그걸 사러 다녀왔다. 유명 빵집이 멀든 그래서 내 밥을 못 먹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런 구매에 들어가는 돈은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다.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더 주장할 수도 없었다. 처음 수행비서 인수인계 때 선배가 만들어두라고 한, 한도를 최대로 높인 개인 신용카드의 쓰임을 알게 되었다.

(...)

정치인 안희정의 대외적 이미지와 내가 업무를 통해 겪는 실상은 낱낱이 상반되었다. 그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았다. 나의 자리에서는 그에게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나 노동권도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나는 많게는 주 140시간을 일했고, 통상 주 130여 시간을 일했다.(99-101p)

 

 

안희정은 성 평등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도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었지만 내가 본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권세를 잘 알고 누리는 사람이었다. “내 위치에 이런 것까지 해야 되겠느냐”며 일정을 당일에 취소하기도 했다.

(...)

민주주의자 안희정의 정치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던 내게는 이런 괴리가 고통스러웠다. 대선 경선 당시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겠다는 연설을 하며 환호받았지만, 정작 그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노동 시간에는 한계가 없었다.

(...)

고통스러웠던 일은 노동자로서 내가 할 이유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희정이 아들과 가는 요트 강습을 예약하거나 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아 전달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도로 주위에 어려움을 토로하면 “비서는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105p)

 

 

안희정은 성폭행을 한 후 매번 즉각 사과했다. “대통령이 되는 길이 버겁다.” “내 위치가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그랬다.” “어린 너를 가져서 미안하다.” “내 직원에게 부끄러운 짓을 해서 미안하다.” “너는 수행비서이니 나를 이해하달라.”

(...)

성적 수발까지도 수행비서가 감내해야 할 일인 양 세뇌시켰다.

(...)

성폭력과 사과는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는 연속적 일상이었다. 집무실이나 관용차 안에서는 가슴이나 허벅지 등 신체를 수시로 툭툭 치고 만졌다. 그가 차 안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면 나를 옆에 앉히고 손 마사지를 시켰다. 늦은 시간 외진 장소, 화장실 앞이나 기차, 식당 안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성추행은 계속됐다. 그의 성추행과 성희롱은 점점 더 과감해지고 심해졌다. 처음에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자 무감각해졌다. 이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참고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

시간이 흐르고 안희정의 힘을 알면 알수록 더 이상 대항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갔다.(110-111p)

 

 

“왜 성폭행 당시 즉각 수사 기관에, 경찰청에, 감사 기관에 말하지 않았느냐?”

“왜 바로 그만두지 못했느냐?”

성폭력을 다루는 세상의 방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 되는지, 처벌 여부가 어떻게 결정되고 처벌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안타깝게도 내 삶 가까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들을 보아왔기에 나는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희정을 24시간 수행하며 나는 수시로 경찰 고위 간부의 전화를 지사에게 연결해주었다.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을 만나고 있는 지사를 수행하고 있었고,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있는 지사를 청와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사에게는 일상인 그런 대화와 만남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그가 가진 권력을 항상 다시 실감했다. 나는 그와 싸울 수 없음을, 내가 겪은 것을 어느 곳에도 상의할 수조차 없음을 알았다. 내가 신고한다면 그 신고를 받게 될 사람들은 안희정과 관계를 갖고 있는 이의 부하 직원들일 것임을 알았다.(112-113p)

 

 

지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완곡한 표현입니다. 비서는 지시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스를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모시는 상사를 충실히 보좌하는 비서라는 전문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부당한 것에 싫다고 말하라고요? 아니라고 하라고요? 이런 언사는 비서라는 역할과 그 특수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

서지현 검사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관을 옆에 모셔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말할 수 없음. 문제제기할 수 없음. 그것이 바로 위력입니다.(138-139p)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 측은 성범죄 사건을 ‘합의에 의한 관계’ ‘불륜 관계’로 정의하면서 ‘법적 문제’에서 ‘도덕적 문제’로 전환시키고, ‘꽃뱀’ 담론을 끌어와 생존자를 가정 파탄을 초래한 ‘가해자’로, 안희정과 그의 주변 사람을 ‘피해자’로 이미지화했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페미니즘 담론을 재해석하여 성폭력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전략을 취하며 성폭력 문제를 ‘개인화’했다”.(170p)

 

 

상사에게서, 교수에게서, 선배에게서 힘의 작동 원리에 따라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이 위력이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 위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무형적인 힘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경우는 물론,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압할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때로는 직급으로 인해, 때로는 성별로 인해, 때로는 나이로 인해, 때로는 조직이나 재물로 인해······. 그렇게 각자의 일상에 위력은 늘 존재하고 있다. 그 위력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참는 일은 많다. 그럼에도 개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나 학업을 쉼 없이 이어나간다. 위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학교나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것이 위력의 실상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174-175p)

 

 

죽어야만 시선이 바뀔까? 그래야 나를 믿어줄까? 그들이 말하는 ‘가짜 미투’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한국 사회에서 누가 대체 성폭력을 당했다며 제 인생을 그렇게 해체하면서까지 강간 경험을 내놓을까? 내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새빨갛게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죽는다면 더한 거짓말로 모든 게 새롭게 날조될 것이라 생각한다.(271p)

 

 

성폭력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현재의 삶, 과거와 미래, 자아, 인격에 대한 살인이었다. 성폭력이 비공개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 하는 살인 같았다.옷이 산산이 찢기고 벗겨져 알몸인 채로 마구 채찍질당하는 기분이었다. 산 채로 죽음을 향해 내몰리는 상황이 고통스러웠다.(275p)

 

 

성폭력 신고는 쉽지 않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 비공개로 신고를 하더라도 피해자가 속한 조직 내에서는 신고자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낸다. 알음알음 피해자의 신상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295-296p)

 

 

“왜 안희정 지사와 그렇게 친밀하고 오래된 관계였는데도,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후배의 이야기를 믿었느냐? 그 이야기를 듣고 안희정 지사와 상의할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선배는 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답했다고 들었다.

“제가 GOP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할 때 일입니다. 아침에 철책을 점검하고 오는 길에 전입 온 지 얼마 안 된 이병이 입 주변에 피를 흘리는 걸 보고 왜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이병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부소대장에게 맞았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부소대장은 제 방에 찾아와 이병과 셋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소대장이 못 들어오게 문을 잠그고, 헌병대에 연락해서 연행해가도록 조치했습니다. 사실 관계는 그곳에서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부소대장은 저와 1년을 넘게 근무한 사람이었고, 이병은 부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부소대장이 저와 훨씬 친했지만, 계급과 권력의 차이가 확실한 둘을 동일 선상에 놓고 사실 관계를 물어본다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피해자에게도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지은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신고를 통해 수사 기관의 정확한 판단을 받으라고 조언했습니다.”(328p)

 

 

 

ㅡ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中, 봄알람

,

2020/10/14

 

 

읽음.

 

 

 

ㅡ 거의없다,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中, 왼쪽주머니

,

2020/10/13

 

 

문제에 대한 밀도도 깊이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서 조금 식상함. 저자의 최근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 조금 꺼려지네.

 

 

그이 주장처럼 과연 성매매는 ‘불가피한’ 현상일까. 질문을 바꿔보자. ‘불가피한’현상은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없는가. 지구상에 폭력이 사라지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폭력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

성매매에 대한 시선의 이중성은, 성매매 그 자체는 ‘필요악’이라는 이유로 허용하되 성매매 여성은 철저히 사회와 분리시키려 했다는 점에 있다. 부르주아 ‘남성 연대’로 이뤄진 사회는 성매매를 ‘남자라면 누구나’하는 행위로 여기지만 위선적 침묵 속에 이 사실을 감춰 왔다.(253-254p)

 

 

어떤 분노는 ‘지금 당장’ 정치적 의제로 만들지만 어떤 분노는 오랜 세월 묵삭당한 뒤 아무도 책임질 필요 없는 시절이 오면 ‘과거의 역사’로만 소환된다. 그렇게 분노는 박제된다.(271-272p)

 

 

 

ㅡ 이라영,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中, 동녘

,

2020/10/11

 

 

일본 소설을 많이 안 읽다 보니 일본 소설 특유의 정서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작품이 크게 훌륭한지 모르겠다. 릿헙에서 이 책이 왜 베스트로 뽑혔는지 의아함.

 

 

 

ㅡ 나카무라 후미노리, <쓰리> 中,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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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

 

 

읽은 지 조금 지났는데 크게 기억나는 게 없다.

 

 

 

ㅡ 이마무라 나쓰코,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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