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24

어디선가 이탈리아에 움베르토 에코가, 미국에는 빌 브라이슨이, 일본에는 츠지야 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일어 읽었다. 읽고 난 생각은 저 얘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시답지 않은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은 거로 됐다.

 


환자는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서 가슴이 벅차게 된다. 마치 아내가 “말할 게 있다.”며 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심정이다.
의사 앞에 다가갈 때에는 아내가 “거기에 앉아.”라고 할 때처럼 불안과 긴장감이 고조된다.(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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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해할 수 없는 명령문도 있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데 ‘죽지마!’,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살아 있어 줘!’라고 부탁 받는다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에는 딸을 낳아 줘!’하고 명령받았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것이다. 말도 모르는 갓난아이에게까지 ‘자라. 착한 아기야!’하고 명령하고 있다.(108p)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실패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교육부터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매일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이거 해라.’, ‘이런 인간이 되어라.’는 말을 듣고 있다.(나는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그 내용도 ‘게임을 하지 마라.’, ‘손수건을 잊어버리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등 어른이라도 이룰 수 없는 목표뿐인 것이다.
목표를 나타내는 것은 좋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고 인간은 결점투성이라는 것도 가르쳐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는 어려운 문제에 자신감을 잃고 거짓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나 교사는 완벽한 인간을 연출하고자 한다. 10년 동안 스포츠센터에 다니면서 체중을 200g도 줄이지 못하는 여자가 ‘결정한 것은 꼭 끝까지 해내세요.’하고 어린이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봐서는 어린이가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다음의 남동생과 그 아들의 대화를 참조. “링컨은 네 나이 때에 10마일정도나 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장작을 패고, 촛불로 공부를 했었단다.”, “케네디는 아빠 나이 때에 벌써 대통령이었어.”)
오히려 나는 부모나 교사가 자기의 결점이나 실패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주변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라도 실패할 수 있고, 결점이 고쳐지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가르치는 것이다.(165p)

어쨌든 낫또를 좋아한다. 특히 겨자소스랑 날계란을 넣어서 뒤섞고, 그것을 따뜻한 밥에 섞지 않고 밥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또 낫또에 된장과 새순을 무쳐, 딸기 얹힌 쇼트케이크에 두껍게 바른 것을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게다가 그 낫또가 든 쇼트케이크를 먹고 있는 사람한테 멀리 떨어져서 비프스테이크를 먹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198p)

 


ㅡ 츠지야 켄지, <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中, 토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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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2

읽음

ㅡ 기타노 다케시, <다케시의 낙서 입문>,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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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9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마지막이라고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필립 로스 소설이다. 얄짤없이 드라이한 묘사로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157p)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19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그렇지 않았다.(179p)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의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243p)

“그 친구는 앵글우드 학군에서 일자리를 얻었어. 부인하고 애들을 데리고 그리고 올라갔지. 아니, 나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네.” 그러더니 그는 침묵으로 빠져들었고, 그가 자신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산다고 금욕적으로 주장했음에도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은 것에 그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며, 이십칠 년이 지났음에도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더없이 분명해졌다―그 가운데는 자신이 지금쯤 위퀘이크 고등학교 체육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271p)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자신만의 상황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또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모든 것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내 힘으로는 그가 자기 삶의 끔찍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몰아낼 수도 없고 그와 그 사건의 관계를 바꾸어놓을 수도 없었다. 버키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고―똑똑했다면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결코 태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대체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의사 표현은 정확했지만 재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생 풍자나 아이러니가 섞인 말은 해본 적도 없었고, 우스개나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대신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 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 할 수 없다. 그가 하는 어떤 일도 그가 안에 품은 이상에는 이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책임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절대 모른다.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선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구인 남편을 얻는 것을 막는 데서 가장 큰 승리감을 맛보며,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인하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된다.(273~275p)


ㅡ 필립 로스, <네메시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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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5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쾌남의 자세로 솔직하게 지르는 글쓰기가 일품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어느 누구의 심기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견해도 없이 쓴 글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하며, 그런 글이 있다고 한들 과연 글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만 봐도 기함하며 쓰러질 것이다. 본디 유머란 누구나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희화화는 원래 'fair'하지 않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코미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얼른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유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카프리 같은 경우는 꼭 가보고 싶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워낙 글을 화려하게 쓰고 곳곳에 인문학적인 레퍼런스와 비유가 많지만, 빌 브라이슨은 아주 쉽게 쓴다. 빌 브라이슨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외에도 여행기를 빙자한 ‘투덜 에세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어 있으므로(절판이 많아서 빌려 읽어야 하겠지만) 더 읽어봐야겠다.

함메르페스트는 준비 운동치고는 다소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나에게 본격적인 여행이란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여행을 말한다.)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 밑에 붙는 s 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 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민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이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p57)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383p)

ㅡ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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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8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소세키의 소설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겠지만 소세키의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소설이긴 하지만 소세키의 자전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아서(소설 속 주인공인 겐조와 현실의 나쓰메 소세키를 거의 동일시 해도 될 정도) 그 점을 생각하면서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그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6조의 좁은 다다미방에는 언제나 겐조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훨씬 강하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는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 그를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신경쇠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런 상태를 단순히 자신의 성격 탓이라 믿고 있었다.(12p)

그는 독선가였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그 점에서는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반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 있었다. 매사에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남편의 태도는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왜 좀더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항상 그녀의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재주나 기량을 자신이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41p)

그는 좀처럼 울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없을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 눈은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171p)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멀어지지만, 함께 있으면 설령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 결국 그것이 인간이니까.’(177p)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겐조는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그 불가사의함에는 주변 상황과 끝까지 잘 싸워냈다는 자부심도 꽤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여기는 의기양양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왔는지 의심해보았다. 그러나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끊어진 이유는 현재 때문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이나 형과 동화할 수 없는 것도 이 현재 때문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재 때문이 틀림없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를 만들어 낸 겐조는 참 딱한 존재였다.(247~248p)

‘당신은 아이를 가져서 행복할 거야. 그러나 행복을 다 누리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어. 앞으로도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희생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 몰라. 당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참 딱한 사람이야.’(253p)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p)

ㅡ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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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4

곱씹어볼수록 대단한 소설이다. 소재의 참신성과 특이성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 처음 읽었을 때는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어볼수록 마지막 부분이 좋다. 에드워드가 그일 이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마침내 그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회한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와 켄튼 생각도 났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함의하는 것처럼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한 시간의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어떤 부분까지 내보이며 이야기해야 하는가? 나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같은 상황에서의 남녀의 생각이 이렇게도 판이할 수 있는가? 와 같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흥미로웠다.


늘 그랬듯이, 플로렌스는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감쪽같이 숨겼다. 딱히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내색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늘 그냥 방을 나와버렸고, 나중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심한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는 밤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자신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켰고, 그렇게 자신을 속임으로써 더 완벽하게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아주 심하게 싸운 뒤에도 곧 화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을 몰랐다. 그녀는 분위기를 일시에 바꿔놓을 수도 있는 그런 싸움을 할 줄 몰랐고, 심한 말이 취소되거나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했다. 뭐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최고였다. 그녀는 신문 만화에 등장하는, 귀에서 김을 뿜어내는 만화 캐릭터처럼 열이 올라올 때조차 그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65p)

그녀는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지만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준 적도 없었다.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남들과 공유한 적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묘한 느낌을 맛보았다. 자신이 혼자라는 그 느낌을.(105p)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고, 이제 그의 분노가 그녀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있었다. 그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는 그의 감정을 해치고 싶었고 혼내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 안에 깃들어 있는, 파괴의 쾌감을 향한 너무도 낯선 충동이었고, 그녀는 그것에 전혀 저항감이 일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그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말하기 전까진 살면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 무자비하고 경이로운 말들을 할 참이었다.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총동원하고 있었다.(174~175P)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196~198P)

ㅡ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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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30

소설리스트에서 김중혁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로 알게 된 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대충 살펴보고는 그 후로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이 책은 제목부터 땡겨서 보게 됐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명의 독자를 가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일견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만드는 점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능력이겠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빛나는 유머들로 자주 즐거웠고, 가끔씩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감상은 생략하고 아래의 인상적인 구절들로 갈음한다.

담배? 아, 당신은 분명히 담배를 안 피우겠지. 내가 담배 피워도 괜찮겠나? 물론, 나도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맙소사. 우리는 방금 만났다. 그런데 당신 표정을 봐라. 뭔가 단단히 잘못 씹은 듯한 표정이다. 도대체 내가 담배 피우는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50년 후면 나는 죽고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때 건강 샌들을 신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쭉쭉 빨고, 더러운 물을 홀짝거리는 원기 왕성한 도마뱀이 되겠지. 그리고? 물론 난 내 쪽이 더 좋다.(20p)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본래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 그래서 난 혼자 스토크 뉴잉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직장에 다녔고, 때로는 외로움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더 많이 하고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 주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고 그러는 대신, 마치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 듯, 그들이 나에게 흥미로운 존재가 못 된다는 듯이 굴며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아주 당연하게도-그들은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곧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난 이런 내 약점을 깨닫지만, 다음부터 좀 더 잘 처신하겠다고 결심하기는커녕, 또다시 얼어붙고 만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35~36p)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p)

내 경험으로 보건대, 걱정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십이라는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방송되는 골칫거리가 된다.(61p)

나는 그 단어를 사랑한다. 지금.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사라졌다. 내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때였고, 그때는 사라졌다. 지금은 지금이다. (...) 과연 이런 가정들이 존재할까? 텔레비전을 보면 괴팍히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숙모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격이 다양한 어른들로 가득한 재미있는 가정들이 늘 나온다. 가족은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던 간에 <가족 편>에 선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족은, 그 숫자가 적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누가 죽어서, 어떤 때는 이혼으로, 대개는 의견 차이 또는 권태로 헤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엄마, 그들이 미워하는 아빠, 또는 그 반대가 있을 뿐이다.(73p)

밀월, 혹시 당신이 어원에 밝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 말하자면, 이 말은 최근에 와서는 단지 면세품 구입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잔뜩 찍는 결혼 휴가를 뜻한다.(86p)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렇잖은가? 음악이 멈추고 갑자기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따위의 극적인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물론, 어떤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냐. 아침에 잠이 깼는데 같이 잔 남자가 코를 골지 않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 그게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진짜같이 들리긴 하지만.(97p)

외모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외모에 관심이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이 있다. 문제는 형편없는 외모인데도 자신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엉망인 것은 자기 정신이 차원 높은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며, 워낙 바쁘다 보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모습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건방을 떤다.(135p)

고작 감기 든 걸 가지고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놈은 나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인간들은 말한다. “나,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 오, 천만에. 당신은 독감에 걸린 게 아니다. 단지 콧물이 조금 흐르고 약간의 두통이 있으며 귀가 좀 멍할 뿐으로, 그건 지독한 독감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일 뿐이다. 지난번과 같은, 그리고 그전에도 걸렸던 가벼운 감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171~172p)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177p)

“엄마, 난 규칙이 있는 줄 알았어.” (...) 사람들은 결혼하면 으레 하는 소리처럼 결혼이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요. 그 애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적어도 잠시 동안이라도-어떤 식으로든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나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고, 만약 당신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이걸 빼고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있을 수 있고 다 정상이랍니다.(211p)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 책임이야-행복이 소포 뭉치처럼 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해.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하고 생각해. 하지만 <왕자님들 환영>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218p)

“불행을 안고 떠나면, 과거의 한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264p)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278~279p)

난 이제 사랑받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포악하고 비열한 황제가 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비열하게 군 적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그런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옛날의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동의를 얻는 데 애를 썼다. 요즘은 이렇건 저렇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286p)

그는 저녁 내내 모든 걸 좋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해. 하지만 항상 다음 날 아침이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이가 행복하니까 기쁘다, 나도 행복하다.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안 그래? 행복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해. 그게 진리라고.(308p)

사랑, 존경, 남성적 매력. 이 세 가지 모두를 스튜어트에게서 얻었다고 생각했어. 이 세 가지 모두를 올리버에게서 구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314p)

ㅡ 줄리언 반스, <내 말 좀 들어봐>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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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5

 

톨스토이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은 책. 많은 분량이 아니라 부담도 덜했고 소설도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썼을 당시 톨스토이의 나이가 60대라고 들었는데 노년기에 이른 대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족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죄와벌을 읽고 흥미가 일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사놨는데 올해 안에 읽었으면 한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거짓이었다. 거짓말, 어찌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모든 이들이 받아들인 거짓말, 그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 아플 뿐이라는 거짓말,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는 거짓말, 이것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고 고통만 더 심해지며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의 거짓말 때문에 괴로워했고, 사람들이 자기네들은 물론 그도 알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의 끔찍한 상태를 고려하여 그를 속이려 들고, 그마저 그 거짓말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그를 괴롭혔다. 거짓말, 거짓말, 그가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쏟아진 이 거짓말, 끔찍하고 엄숙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방문, 커튼, 저녁식사에 올려질 철갑상어 등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만 거짓말은 이반 일리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79~80p)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 후 어느 순간 이반 일리치는 고백하는 게 지독히 창피했지만 누군가 자기를 병든 어린애처럼 불쌍히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누군가 살살 어린애를 달래듯 자기를 어루만져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길 원했다. (...) 그러나 직장동료인 세벡 판사가 찾아오자 눈물과 토닥거림에 대한 소망을 감추고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이 사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타성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그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81~82p)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만 믿어질, 바로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을 자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있노라고 말했다.(89p)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었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이 없는 직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98~99p)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 써. 일해서 갚으면 되니까.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기다리게 한 후 명세서를 내밀고는 벌금을 물리는 짓거리 따위는 안 해. 우린 정직을 신조로 하지. 나를 위해 일을 하면 나 몰라라 하는 법은 없다, 이 말씀이야.”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니키타에게 정말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앉았다. 그는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았고 니키타를 비롯하여 그에게 금전적으로 매여 있는 이들 모두 그가 자신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돌봐주고 있다고 그를 확신시켜주었다.
“압니다요. 바실리 안드레이치. 소인도 친아버지를 모시듯 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지요. 암요, 알다마다요.”
니키타가 대답했다. 그는 바실리 안드레이치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그와 명세서를 놓고 따져봐야 부질없고,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148~149p)

ㅡ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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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0

 

마더 나이트 이후로 보네거트의 작품을 오랜만에 봤다. 한결 같은 풍자와 유머를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겠다. 


“미국인이 자기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건 아직도 가능해.”
“그럼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돈 강이란 것이 있다, 그건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성실한 노동, 능력 본위, 정직 같은 헛소리는 죄다 잊어버리는 게 좋다, 그 강으로 가라’고 말해준다면 가능하겠죠.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해주겠어요. ‘부자와 권력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방식을 배워라. 그들에게 빌붙어도 되고, 겁을 줘도 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호감을 주거나 엄청난 두려움을 줘라. 그러면 어느 칠흑 같은 밤에 그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소리 내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둠을 뚫고 인간이 발견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부의 강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당신은 강둑에서 당신의 자리를 소개받고, 당신만의 양동이를 넘겨...받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양껏 퍼마시되, 퍼마시는 그릇을 떨어뜨리진 마라. 가난한 사람이 들을지 모르니까.’”(139~140p)

“그러게,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야.” 이 말은 인디애나 출신의 유머작가 킨 허버드가 오래전에 한 유명한 농담의 절반이었다.
“그래.” 다른 남자가 나머지 반을 말했다. “하지만 차라리 창피한 걸로 끝나는 게 낫지.”(250p)

“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익한 인간에 대한 우리의 증오, 그리고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행위가 반드시 인간의 본성 탓은 아니라는 겁니다. 엘리엇 로즈워터라는 본보기 덕분에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누구를 만나든 서로 사랑하고 돕는 법을 배울 수 있지요.”(288p)

ㅡ 커트 보네거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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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9

처음 말했듯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릿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154p)

‘역대 영웅 군왕들이 다 잠시 소유하다가 두고 간 땅을 놓고, 자신도 두고 갈 일이 애달파서 눈물 흘리는 일은 어질지’못한 게 분명하리라. 그러니 꽃이 피면 그 한 조각 같은 봄이나마 즐기면 되는 일이지, 봄이 짧은 것을 굳이 서러워할 일은 아닌 듯하다.(188p)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두보의, 또 임방울의 가슴을 흔들었던 ‘낙화소식’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청춘의 가슴도 똑같이 뒤흔든다. (...)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191p)

ㅡ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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