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4

 

오늘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폭력(그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을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많은 사건을 극화해서 보는 느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마음도 들었는데, 이런 사례에 한국에서 비장애인 남성으로 태어나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가장 쉬운 방법을 생각해볼까. 자신이 평균이상의 공감 능력, 도덕성, 지성 등을 겸비하고 있고, 책 속의 등장인물과 조금의 공통점도 없다고 믿으며 그에 대해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서 각 인물에 대해 이러저러한 점을 비판하고 지적하면 된다. 아울러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포와 폭력에 대해 나는 너희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정이입까지 하면 금상첨화겠다. 근데 그러할까.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한 기사 몇 줄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 몇 권 읽었다고 페미니스트라 설치는 게 우스운 것처럼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 겪는 문제에 깊이 통감한다며 고뇌하고 있는 꼴을 하고 앉아 있으면 여성이 보기에 얼마나 같잖을까.

 

 

 

세상에, 서운했다. 일부러 전화를 피했으면서 막상 벨소리가 끊기자 이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외로움이 거세게 밀려오며 속이 울렁거렸다. 내 마음은 이토록 뻔하고 지루하다.(12p)

 

 

다들 이렇게 스스로에게 계속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한 순간, 더 쉽게 와르르 무너질 테니.(19p)

 

 

병에 걸린다는 건, 내 행복을 남에게 맡겨놓는 것과 마찬가지야. 불안하고 끔찍하지.(85p)

 

 

이강현은 그와 비슷했다. 그녀가 선택하는 프로젝트, 발표 논문 주제, 학교의 인맥 모든 것이 실리적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그녀를 우습게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동기나 선배 들은, 일명 ‘학문에 영혼을 바치는 연구자’들은 이강현 같은 사람 때문에 진짜 실력자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공부보다 정치가 우선이고 학문의 순수성보다 이득이 남는 학교 사업에 힘을 쏟는 것이 무슨 꼴이냐고 말이다. 그들은 이강현 때문에 안진대학이 발전할 수 없는 거라고 분노했다. 동희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발해서 척지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 앞에서는 적당히 인상을 쓴 채 회의와 고뇌에 빠진 젊은 학자 코스프레를 했다. 하지만 동희가 진짜 경멸하는 이들은 바로 학문에 영혼을 바친 그들이었다. 학문, 열정, 대학의 본질? 그는 학문 자체가 좋아서 공부를 한다는 식의 말을 경멸했다. 인간의 언어란 정말 대단했다. 본질을 감추고 외피를 만드는 데 언어만큼 적당한 건 없었다. 진실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따라붙는 무수한 수식어는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학문이란 진실을 추구해야 하고, 이 세상이 남겨놓은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냉혹한 자기 검열을 해가며 학문이란 무엇인지 계속 탐구해야 한다고? 오직 성과만이 선이 된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학문은 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토로하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건 이강현의 자리였다. 그들이 이강현을 싫어하는 건, 그 자리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할 학문의 기사인 ‘내’가 아니라 그녀라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동희가 보기에 자신의 인정 욕구와 학문에 대한 사랑을 구분 못 하는 어설픈 학구파들보다 이강현이 훨씬 유능한 사람이었다.(105-106p)

 

 

현규는 절대 몰랐다. 그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고, 모두에게 대접받는 사람이니까. 그의 단점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어떤 일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 그는 자신이 나서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남자였다.(168p)

 

 

수진은 믿지 않았다. 사람들의 악의가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수진이 믿지 못하는 건 악의라기보다는 형체 없는 목소리들이었다. 오히려 악의는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악의는 분명한 의도와 형체를 갖고 있으니까. 팔현에서부터 들어온 그 목소리들. 무심한 목소리로 수진을 가리키던 말들. 춘자 딸, 날라리 딸, 불쌍한 년. 마을 사람들은 착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말을 했을 때 수진이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말하고 또 말했다. 바닥에 돌멩이가 있어! 수진은 엄마 닮아서 멍청할 거야. 와, 하늘에 비행기가 간다. 춘자는 아마 다른 게서 또 자식을 낳았을 거야. 겨울이다! 눈이 와! 세상에, 수진이가 대학에 가? 사람들은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남자는 수진을 강간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203p)

 

 

“괜찮아,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은 없었어. 그리고 남자들은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 정말 다정해. 나는 그게 좋아.”

수진은 마음이 답답했다. “원하는 걸 얻고 나면 너를 함부로 대하잖아.”

(...)

“다들 왜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언제든지 마음을 열 것 같아서 쉽게 다가서지만, 너의 깊은 외로움을 알고 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아마 그렇기 때문일 거라고 수진은 말하지 않았다.

(...)

그들은 이마를 맞대고 잠들었다. 그날 잠에 빠져들면서, 수진은 오랜만에 진아를 떠올렸다. 수진은 진아가 자신에게 멀어졌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230-231p)

 

 

“어린 남학생들이 아직 절제를 배우지 못해서 그래.”

개소리다. 이강현은 오빠를 믿었다는 여학생들의 울음소리 못지않게 남자는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는 걸 참는 게 힘들다는 말을 경멸한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259p)

 

 

김동희가 그렇고 그런 놈인지는 진작 알고 있었다. 본인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형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놈. 위로 올라갈 생각으로 가득한 놈. 야망이 크고 과한 노력을 하는 놈. 그런 놈의 특성은 매우 단순하다. 상명하복에 충실하다. 세상을 그 틀에 맞춰 본다. 김동희는 자신이 모실 사람과 무시할 사람을 철저하게 구별한다. 김동희는 매번 모든 자리에서 최우선으로 대접하는 인물들이 다르다. 어떤 자리를 가든지 순식간에 서열을 매기니까. 항상 자기가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김동희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김동희는 학교 신문에 여자들을 존경한다는 칼럼을 썼다. 어두운 폭력을 빛으로 바꾸는 존재라고. 여자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존재들을 경멸한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을지 모르니 늘 긴장을 한다고.

‘여자들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의 진짜 얼굴을 몰랐을 것이다. 여자들은 항상 나를 다른 사람으로 존재하게 해준다.’

이강현은 웃음이 나온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라는 칼럼에서조차 자신이 얼마나 평등주의자인지 보여주려고 애쓰는 꼴이라니. (...) 학교에서는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칭하고 싶어 한다. 좋아 보이는 게 뭔지는 알아서 냅다 챙겨두고 싶은 거지.

페미니즘을 논하는 남자 교수들은 여성 인권까지 신경 쓰는 진보주의자로 통하지만, 여자 교수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꼴페미가 될 뿐이다. 김동희가 영리하기는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동희에게 제법 속는다. 친절한 김동희, 성실한 김동희, 오, 뚝심 있는 김동희, 실력 있는 김동희. 그런 건 이강현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강현은 김동희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이강현은 남자를 믿지 않는다. 물론 여자도 안 믿는다. 다 귀찮다. 이강현은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다.(260-262p)

 

 

이강현은 혼자 깔깔 웃었다. 내가 뭐라고? 꼴페미가 아닌 진정한 페미니스트. 그렇지, 그렇지. 이강현은 자신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독립적인 여자.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할 용의가 있고, 남자들이 하는 일에 크게 나서지 않지만 돈을 공평하게 나누어 내고,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가까운 농담에 화내지 않고, 남자들이 2차에 갈 때 눈치껏 빠지며, 최근의 여성운동이 과하다고 지적할 줄 알며, 더 중요한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 그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을 수행하는 페미니스트!(265-266p)

 

 

내가 아쉬워하는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데, 정작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나를 아쉬워했다.(280p)

 

 

 

ㅡ 강화길, <다른 사람> 中,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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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6

 

 

근자에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좋았다. 기대를 많이 한 작품집이라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을 했으나 예상을 웃돌 정도로 좋았다. 실린 작품이 골고루 좋았지만 최은영의 매력은 단편보다는 중편정도의 분량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편은 또 어떨까?


 

 

오늘 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76p)

 

 

학위를 받았지만 윤희는 어느 때보다도 허전했다. 무언가를 이룬 게 아니라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조차 그 순간을 즐기지도, 자신을 격려하지도 못하는 자기 모습이 익숙하고 한심했다. 그렇다고 이런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윤희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85p)

 

 

언제나 주희였다. 싸우고 나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던 사람은. 쪽지로, 핸드폰 문자로, 지나가는 윤희의 팔을 붙잡고 멋쩍게 웃었던 사람은. 지금도 주희는 예전처럼 이 관계를 돌보려 하고 있었다. 하기 힘든 말을 애써서 겨우겨우 이어나가면서. 그런데도 윤희는 그 마음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94p)

 

 

얼마를 기다리든 결국 엄마는 왔다. “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왜 나와 있는 거야. 위험하게 이게 뭐하는 거야. 다시 이러면 진짜 혼낸다.” 다그치다가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딸들에게 볼을 비비대던 엄마,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99p)

 

 

내 눈에 모래는 의사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똑똑한 동생을 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의 가장 넓은 평수에 사는 온실 속 화초였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용돈을 받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래가 조금이라도 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애를 속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래는 자신의 환경을 조금도 과시하지 않았다. 지하상가에서 산 삼천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편의점에서 파는 로션을 발랐다. 그런데도 그애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났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118p)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126-127p)

 

 

“사람은 변할 수 있어. 그걸 믿지 못했다면 심리학을 공부할 생각은 못했을 거야.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남을 변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1학년 말, 전공 선택을 하면서 공무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궁금하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서. 타고난 부분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해석하고 반응하고 회복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나는 공무가 인간에게 품는 낙관이 신기했고, 때로는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의심했다. 네가 어떻게 커왔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 달라질 수 있어? 그 인간들이 변하고 달라진다고 해서 그들이 학대한 사람들의 상처가 없어져?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의 말에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싶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136p)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난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누군가 내 마음을 받아써줄 순 없겠지. 너도 공무도 이런 내가 답답했을 거야. 어쩌면 의뭉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재주가 없었어.(140p)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141p)

 

 

내가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말하지 않고도 오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빨리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157p)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162-163p)

 

 

그날 밤, 나는 내가 평생을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며 살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는 것도.(178p)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180-181p)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

미주는 그 사건으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진희가 자길 버린 게 아니라 자기가 진희를 버렸다는 사실을 미주는 그제야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후회로 울어 자기 마음을 위로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자신의 눈물이 미주는 역겨웠다.(202p)

 

 

아마 미주는 자신을 안타까이 보는 무당의 그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208p)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사람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222p)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 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 번으로 사라지듯이.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그저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223-224p)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225p)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235p)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투명하게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의 일이 얼마나 될까. 나는 눈을 감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그녀의 곁에 같이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민, 하민, 하고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부르다 침묵이 내게는, 그녀의 고통과 무관한 내게는 더 합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273-274p)

 

 

처음엔 친구들과 나눠 피우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는 방에서 혼자 피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을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먹으면서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비루한 현실은 그 나른한 피로 속에서 엷게 빛났고 폭발하는 웃음은 내게 위안을 줬다. 그러나 공허했다. 잠에서 깨어나 먹다 남은 음식들과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취한 눈에 빛나 보이던 것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색이 바랜 것처럼 느껴졌다.(277-278p)

 

 

그 말이 기억날 때면 엉망이 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이 사람한테는 이런 말투로 말하고, 저 사람한테는 저런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 하나가. 한없이 상냥하다가 누군가에게는 비정할 정도로 무심하고, 진심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말하고 웃다가도 돌아서면 웃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그렇게 하루를 살고 보면 자신의 진짜 말투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게 된 사람이. 길거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보고 웃는 것만 같았다. 자주 추웠다.(280p)

 

 

그때도 나는 하민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대학원에 들어갔는지 알았으니 라페스트에 찾아가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요르카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될 무렵 나는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때도 여전히 시간만 잡으면 아일랜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팔 년 동안, 나는 아일랜드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건 착각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아일랜드는 내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현실의 선택지 밖으로 떨어져나갔다.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삶은 전과는 다른 속도와 리듬을 얻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집에서 독립했고 대학에 재입학했으며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직장을 구했다.(299p)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 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눈물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날 선 경계가 여기에 있다.(318-319p)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324p)

 

 

 

ㅡ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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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인간이란 구르는 걸 멈추지 않는 한 조금씩 실이 풀려나갈 수밖에 없는 실타래 같은 게 아닐까, 그때 고모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했다. 병원 문을 열고 나가면 실타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갈 것이고, 실타래에서 풀려나간 실은 밟히고 쓸리고 상하면서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친밀했던 사람, 아끼던 사물, 익숙한 냄새를 잃게 될 것이고 세상도 그 속도로 고모를 잊어갈 터였다. 어느날은 거울 속 늙고 병든 여자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리라. 하나의 실존은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절연을 준비하는 것이다.(82-83p)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124-125p)

 

 

얼마 전 독일을 충격에 빠뜨린 이민자와 난민의 집단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난주 토요일엔 이 작은 도시에도 그들의 유입과 정착을 반대하는 거리행진이 있었습니다. 행진은 평화로웠지만 행진 뒤에 남은 극우단체 소속 회원들은 자동차의 유리를 깨거나 거리의 소화전을 부수었습니다.

(...)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공포와 잠재된 폭력을 분출할 수 있는 도화선이 간절한 사람들이 거리를 지배하던 날이었으니까요.(133-134p)

 

 

상처는 영혼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강박적인 성실함으로 영혼을 좀먹는다. 상처를 이겨내면서 성숙해졌다는 말은 균이 살아온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진저리나도록 아름다운 언어····· 아무것도 잊히지 않았다. 맞고 있을 땐 저만치서 가만히 서 있는 아이들을 죽도록 미워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맞는 아이와 무관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구경하는 무리에 숨어 있어야 했던 날들은 절대로 망각되지 않았다. 폭력은 차츰차츰 번져 아이들 사이에서도 빈번해졌다. 덜 맞고 더 먹기 위해 서로를 때리고 비방하고 추문을 만들어 퍼뜨렸다. 시기하고 배반하고 원망하고 괴롭혔다. 잊었을 텐데, 형기를 마쳤을 원장과 교사들, 시설 관리인과 급식을 담당했던 식당 직원들, 비정상적으로 비쩍 마른 아이가 절뚝이며 지나가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보육원 주변의 농가 주민들, 모두들 이미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을 텐데, 어째서 나는 높은 탑처럼 쌓인 기억의 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이토록 끈질긴 고통, 일생이 다 지나도 작은 균열 하나 나지 않을 견고한 결정체, 그리고······

그리고, 그들이 있었다.(239-240p)

 

 

ㅡ 조해진, <빛의 호위> 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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