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5

 

 

몇 년 전에 파괴적 습관을 고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사전 약속’이라는 것임을 사회과학자들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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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이 유혹적인 여성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아냈다. 배가 세이렌이 사는 바다에 접근하기 전에 선원들에게 자기 손발을 돛대에 단단히 묶어두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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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을 뺄 때 이 방법을 썼다. 평소에는 탄수화물을 잔뜩 사다 두고 스스로에게 너는 천천히 적당량을 먹을 수 있을 만큼 강인하다고 말한 뒤, 결국 새벽 2시에 와구와구 먹곤 했다. 그래서 탄수화물을 사두지 않았다. 새벽 2시에 프링글스를 사러 나갈 생각은 없었다.(36-37p)

 

 

그저 시스템에 정보를 더욱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

“왜 이런 가속화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수네가 말했다. “그저 오늘날의 시스템에 정보가 더 많은 겁니다. 100년 전을 생각해보면, 뉴스가 이동하는 데 말 그대로 시간이 걸렸어요. 노르웨이의 피오르에 크나큰 재앙이 발생했다면 피오르에 있는 사람들이 오슬로까지 내려와야 했고, 누군가가 그에 관한 기사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 기사는 아주 천천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19년에 발생한 뉴질랜드 대학살과 비교해보라. 당시 타락한 인종차별주의자가 모스크에서 무슬림을 죽이기 시작했을 때 그 상황은 “말 그대로 실시간 방송”되었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그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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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내가 묻자 수네가 빙긋 웃었다. “속도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빠지는 건 그게 좋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고, 어느 주제에 관해 무엇이든 알아내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점점 진이 빠지게 됩니다." 수네가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 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51-52p)

 

 

그리고 모든 인간이 이해해야 하는 사실, 자신이 앞으로 설명할 모든 내용의 근원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건 바로 "우리 뇌는 동시에 한두 개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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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신을 만들어냈다고, 얼이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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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신을 사실로 둔갑하기 위해 우리는 애초에 인간에게 적용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 용어를 하나 빌려왔다. 1960년대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프로세서가 여러 개라서 동시에 두 가지(또는 그 이상)의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의 성능에 '멀티태스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이 개념을 가져와 인간에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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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얼이 설명한 것처럼)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순간 뇌를 재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59-60p)

 

 

그때, 주의력을 되찾으려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방해물들을 제거하는 방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면 그저 텅 비게 될 뿐이다. 우리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몰입의 원천으로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93p)

 

 

록산느는 18시간 내내 깨어 있다면(아침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깨어 있다면) 하루가 끝날 무렵의 반응 속도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일 때와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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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빼앗겨도 살 수는 있습니다. 잠을 줄이지 않으면 아마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거예요.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을 거고요. 우리는 분명 잠을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라요. 그 대가는 바로 몸에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된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 몸은 이렇게 생각해요. '어, 잠을 줄이고 있네. 비상 상황인 게 분명해. 그러니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온갖 생리적 변화를 일으켜야겠어. 혈압을 올리자. 패스트푸드가 당기게 만들어야지. 빠르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당도 더 당기게 만들 거야. 심박도 올릴 거고····' 이 모든 변화는 나는 대기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몸은 자신이 왜 깨어 있는지 모른다. "뇌는 우리가 빈둥거리면서 드라마 <시트 크릭>을 보느라 잠을 안 자고 있다는 걸 몰라요. 우리가 잠을 안 자는 이유를 모르죠. 하지만 그 결과로 일종의 생리적 비상벨이 울리는 겁니다."(107-108p)

 

 

침실은 적정 온도여야 하는 데, 거의 추울 만큼 서늘해야 한다. 잠들기 위해서는 심부 체온이 낮아져야 하기 때문이며, 체온을 낮추기 힘들수록 잠들기까지의 시간도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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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하는 많은 일이 따분할 만큼 뻔하다. 속도를 늦추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잠을 더 자면 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정반대로 하고 있다. 속도를 높이고, 전환을 더 많이 하고, 잠을 적게 잔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행동 사이의 괴리 속에 산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그 괴리를 만드는가? 사람들은 왜 명백히 집중력을 개선해줄 행동들을 하지 못하는가? 어떤 힘이 우리를 막고 있는가?(119-120p)

 

 

그러나 레이먼드가 누구보다 먼저 지적하듯이, 이 결과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소설 읽기가 오랜 기간에 걸쳐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을 수도 있지만, 이미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소설 읽기에 더 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그의 연구는 논란과 반박이 많다. 레이먼드는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강화한다는 점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소설 읽기에 끌린다는 점이 둘 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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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설명하는 효과가 종이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모방한 복잡한 서사에 몰입하는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는 긴 텔레비전 시리즈 또한 종이책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또 다른 그의 연구는 동화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더 좋지만, 길이가 짧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내가 보기에 이 연구 결과는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목격하는 현상과 일치하는 듯 보인다. 토막 난 파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는 무언가에 오랜 시간 집중할 때만큼 공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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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노출되는 목소리의 결을 내면화한다. 타인의 내면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 패턴을 다시 형성한다. 우리는 더욱 통찰력 있고 개방적이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반면 소셜미디어를 장악한 단절된 비명과 분노의 파편에 하루에 몇 시간씩 노출되면 우리의 사고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136-138p)

 

 

케이프코드로 달아나기 전에는 정신적 토네이도 속에 살았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통화를 하지 않고서는 절대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 상점에서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지 않고 2분 이상 기다리는 일도 절대 없었다. 모든 순간을 자극으로 채우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를 패닉에 빠트렸고, 그러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여섯 시간 동안 그저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요. 살아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거, 죽음을 카운트다운 하는 시계가 끊임없이 째깍거리고 있다는 거,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이 여섯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 알고 계시죠? 그리고 죽으면 죽음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거 알고 계신 거 맞죠?(142-143p)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내게 디지털 디톡스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바깥에서 방독면을 쓰는 노력이 환경오염의 해결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여. 개인 차원에서는 단기간 특정 효과를 볼지 몰라요. 하지만 지속 불가능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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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환경의 변화만이 진정한 차이를 만들 수 있는"상황에서 개인의 절제가 주요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163p)

 

 

오랫동안 내 집중력 악화의 원인이 나 자신의 탓이거나 하나의 기술로서의 스마트폰 자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핸드폰이 등장해 자신을 파괴했다고 되뇐다. 나는 모든 스마트폰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진실이 더욱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어느 정도 많아졌겠지만, 우리의 집중 시간이 입는 가장 큰 피해는 좀 더 미묘한 데서 온다. 문제는 스마트폰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의 앱과 노트북에서 여는 웹사이트가 설계되는 방식이다.

트리스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의 주의력을 최대한 많이 빼앗으려는 의도로 우리가 사진 핸드폰과 그 핸드폰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설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이러한 설계가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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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과거에 인간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고, 현재에도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트리스탄은 이러한 기술을 전부 그대로 보유하면서, 최대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199-200p)

 

 

우리가 더 심각한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탓하는 방식이 니르에게 더 편리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더 기본적인 차원을 살펴보자. 진실은, 그와 똑같이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잔혹한 낙관주의의 문제 중 하나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보통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례를 가져다가 그것이 평범한 일인 양 행세한다. 막 실직해서 어떻게 하면 다음 주 화요일에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찾기가 더 쉽다. 완전히 소진되고 스트레스에 휩싸여 또다시 스트레스로 가득할 다음 몇 시간을 버티게 해줄 위안이 절박하지 않다면, 다음번의 햄버거와 페이스북 알림,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기가 더 쉽다. 사람들에게 이게 "꽤 쉬운"문제라고, "그 방해 금지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대다수의 삶의 현실을 무시하는 일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우리의 집중력을 망가뜨리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으므로 우리 개개인의 행동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왜 우리가 이 시스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를 "낚고" "미치게"만들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 가득한 환경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가?(236p)

 

 

듣기 좋은 자기계발 강의로 연경 끊기의 장점을 알려주는 것은, 그럴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 상사 때문에 긴장을 풀 수 없는 사람들에게 긴장 풀기의 장점을 눌어놓는 것은 분노를 유발하는 조롱과 같다. 기근 피해자들에게 리츠 호텔에서 식사하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를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산이 많아서 일할 필요가 없다면 아마 당장 이러한 변화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우리는 빼앗긴 시간과 공간을 되찾기 위해, 그래서 마침내 휴식을 취하고, 자고,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305p)

 

 

 

ㅡ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中,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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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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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나 멸시라는 건 너무 멀리 동떨어진 것에는 던지지 않는 법이다.

내가 종이책에서 느끼는 증오도 그렇다. 운동 능력이 없는 내 몸이 아무리 소외를 당하더라도 공원 철봉이나 정글짐에 증오감을 품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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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서서히 등뼈가 찌부러지는 것만 같은데도, ‘종이 냄새가 좋다,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좋다’라는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전자서적을 깎아내리는 비장애인은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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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치비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37-46p)

 

 

 

ㅡ 이치카와 사오, <헌치백> 中,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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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0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건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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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곰스크로 갈 때를 대비해 항상 돈을 저축했다. 일이년 후에 아이가 좀더 자라면 출발하려고 했다.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배를 곯지 않을 정도의 돈도 충분히 모았다. 물론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둘째가, 이번에는 여자아이가 태어나자 내 계획은 좀더 뒤로 밀려났다.

(...)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것은 나를 사로잡는다.(59-62)

 

 

 

ㅡ 프리츠 오르트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 中, 북인더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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