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

 

제일 재밌어 보이는 ‘올림픽공원 산책지침’만 읽었다. 혹시나 타이밍이 맞으면 다른 작품도 읽어볼지도.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은 노스탤지어라고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아? 아니 너희 때는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배우려나. 지수야, 너는 실제로 희망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본 적 있어? 잠깐이면 가능할지 몰라도 희망은 장기적 동력이 될 수 없어. 의외로 휘발성이 강한 감정이라고.”

인류사 대부분의 위대한 발견은 고칠 수 없게 된 과거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서 비롯됐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날씨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얘기였다.(54-55p)

 

 

선물도 못 주고받게 하면서 무슨 크리스마스야. 지수는 몇 번 불평한 터였다. 사실 지수는 에이와 반대였다. 상습적 불평쟁이였다. 하지만 불평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 않는 게 아니듯 불평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62p)

 

 

 

ㅡ 지동섭 외,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中,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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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2

 

평이한 문장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밀도가 높다면 높고 사유만 실어나르는 듯한 문장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런 방식을 이 책에서만 쓴 건 아니고 이미 전작들인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에서도 비슷했으므로 놀란 건 아니겠으나 이번 작품을 읽고는 마음이 아주 약간 식었다. 나는 반복을 계속 경험하는 것에 남들만큼 재미를 못 느낀다.

 

 

 

 

 

나는 그 애가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길들이는지 잘 알았다. 안혜리의 가장 큰 매력은 넓고 깨끗한 집이나 외모 따위가 아니라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것과 희구하는 것을 각자의 저울에 올렬서 마술 같은 균형을 맞추는 재주였고, 그래서 그 애는 어떤 의미로든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김은아도, 나도, 윤서래도, 다른 애들도 안혜리에게서 자신의 갈망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게 사기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뒤에도 흔적에 충성을 바쳤다.(32p)

 

 

평범한 아이들은 차별이 나쁘다는 말에 선뜻 동의했지만 그게 싫어하는 애의 약점이 되면 금방 물어뜯었다. 혹은 그 애가 물어뜯기는 장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공범이 되었다.(54p)

 

 

성적표의 숫자나 아양을 떠는 태도 따위로 학생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은 교육자일 수 있겠지만, 그런 기준을 갖추는 게 차라리 나으리라고 했다. 요컨대 이 사람은 본질을 보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속물이 되는 유형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국어 시간에 고등학교 2학년 수학 문제를 푸는 모범샘들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고 있었다.(89p)

 

 

유치원생들에게 참치를 그려보라고 하면 물고기가 아니라 통조림 캔을 그린다고들 했다. 진짜 참치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잘 정리된 언어는 뼈대와 비늘을, 씹을 수 없거니와 혀에 상처까지 남기는 부분을 우리에게서 벗겨내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무해하고 다정한 환대를 말하는 책들이 우리를 우아하게 모욕한다고 느꼈다. 우리를 매대에 올릴 만한 상품으로 소모시켜버린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누추함은 감당할 수 있다는 오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덩어리에서 슬픔과 연약함처럼 투명한 감정만 추출하고 기이함과 추함과 주먹질과 발작적인 웃음 따위는 모두 없는 척 내버리는 것이다.

쓰레기장에 핀 꽃을 보고 감동하지만 악취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오로지 검댕을 이기고 핀 꽃을 보기 위해서만 쓰레기장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았다. 그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의 명세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해로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도리어 치워 없애려 들었다.(92-93p)

 

 

울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도 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긴 울어서 해결될 만큼 사소한 문제만 있으면 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132p)

 

 

태초의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뒤에야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수치심을 느꼈다던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

예상하긴 했지만 지금껏 살아온 곳과 해온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부끄러워졌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려는 시도는 자해 같았다. 속물이라도 되고 싶었는데 그럴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쓰레기장을 외면함으로써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일단 쓰레기가 아니어야 하는 법이다.(154p)

 

 

내가 논하고 싶은 것은 남의 엄마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상식이 아니다. 내 엄마에게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며 나는 그런 애가 아니라는 항변도 아니다. 전혀 다른 것이다. 만약 내 엄마가 그런 여자고 내가 그런 애라면, 너희는 나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냐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공부할 마음조차 다잡지 못해서 그 길로 흘러갔으면, 나는 이대로 버러지 취급을 받아도 되냐는 것이다. 예쁘지도 선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짓밟아버려도 되냐는 것이다.

(...)

악함과 약함과 불쌍함은 다른 체계일지라도 뒤섞여 있다. 슬픈 사연만으로 면죄부를 주었다가는 세상이 무너지겠지만 그 사연이 없었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정말로 앞뒤가 맞지 않은 방식으로 질서정연하다.(160-161p)

 

 

포착하기란 하나의 상을 확정하며 시야 바깥을 잊는 일이고, 말하기란 보이는 것에 언어를 덧씌우고 나머지를 거스러미처럼 내버리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이 삶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는 중인지를, 무엇을 갚고 무엇을 청구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여러 곳을 동시에 볼 수 없고 생각이 뻗는 범위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보통은 순간적인 이미지에 눈이 멀거나 이미 지어진 말을 빌려 쓰게 된다. 프랜차이즈의 햄버거 세트처럼 건강이나 맛이나 영양소가 조금씩 부족하지만 언제든 시켜 먹을 만큼 간편한 말들. 낯선 가게에 들르는 도박이나 스스로 요리하는 곤란을 피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들. 그러니까 괴물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인 일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괴물에게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고, 마음 편히 연민하고 싶은 것들은 그러기 어려울 만큼 더럽거나 이상하거나 사납고, 반대로 악취와 더러움 속에 숭고함이 숨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가는 것이 마냥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싫은 것이 마냥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데, 평범한 사람들이 그 애매한 역설을 계산에 넣는 대신 상식을 고수하는 건 정말로 편함의 문제인 듯하다. 상식이 끝나는 자리에서 세상도 끝난다고 믿어버린다면 더 멀리 나아갈 필요 또한 없는 법이다.(194-195p)

 

 

 

ㅡ 단요, <케이크 손> 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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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심 선우가 내가 본 소설과 영화들의 주인공들처럼 행동하길 바랐던 거다. 평생 믿어온 것을 통쾌하게 부정하기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당하게 말하면서 자유로워지기를. 그리고 나도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거다. 증명되지 않은 천국과 지옥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그것들에 짓눌린 삶을 버틸 수밖에 없는····(126-130p)

 

 

신을 믿지 않는 데는 실패했다. 교회를 나가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거기에 있었다. 신을 믿지 않기엔, 나는 신을 너무 증오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다만 내 삶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연락이 끊긴 지 모래되어 얼굴도 이름도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 친구처럼.

(...)

그리고 그것 분하게도 다윗이 희미해지는 속도와 완전히 정비례했다. 정말로 나는 다윗이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열여섯 살의 내게 알려주었다면 그 애는 나를 죽이려 들었을지도 모른다.(313-318p)

 

 

 

ㅡ 정해나, <요나단의 목소리3> 中,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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