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15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쾌남의 자세로 솔직하게 지르는 글쓰기가 일품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어느 누구의 심기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견해도 없이 쓴 글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하며, 그런 글이 있다고 한들 과연 글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만 봐도 기함하며 쓰러질 것이다. 본디 유머란 누구나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희화화는 원래 'fair'하지 않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코미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얼른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유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카프리 같은 경우는 꼭 가보고 싶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워낙 글을 화려하게 쓰고 곳곳에 인문학적인 레퍼런스와 비유가 많지만, 빌 브라이슨은 아주 쉽게 쓴다. 빌 브라이슨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외에도 여행기를 빙자한 ‘투덜 에세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어 있으므로(절판이 많아서 빌려 읽어야 하겠지만) 더 읽어봐야겠다.

함메르페스트는 준비 운동치고는 다소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나에게 본격적인 여행이란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여행을 말한다.)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 밑에 붙는 s 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 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민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이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p57)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383p)

ㅡ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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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9

처음 말했듯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릿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154p)

‘역대 영웅 군왕들이 다 잠시 소유하다가 두고 간 땅을 놓고, 자신도 두고 갈 일이 애달파서 눈물 흘리는 일은 어질지’못한 게 분명하리라. 그러니 꽃이 피면 그 한 조각 같은 봄이나마 즐기면 되는 일이지, 봄이 짧은 것을 굳이 서러워할 일은 아닌 듯하다.(188p)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두보의, 또 임방울의 가슴을 흔들었던 ‘낙화소식’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청춘의 가슴도 똑같이 뒤흔든다. (...)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191p)

ㅡ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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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3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라”.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의 황금률로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구성하는 자잘한 취향들만 봐도 그렇다. 어떤 것은 대놓고 으쓱거리며 자랑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저질스러워 남에게 들통 날까 걱정되어 죽겠다. 그 스펙트럼 사이에 여러 종류의 취향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이들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남의 취향이라고 해서 내가 그걸 다르게 평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그들이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 대상에서 벗어나야 할까? 취향은 그렇게 신성한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모든 취향을 옹호하거나 변호할 생각이 없다.(91p)

지금과 같은 시대에 지구의 나이가 6천 년밖에 안 된다고 믿는 얼간이들이 위험할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라. 과학업적이 쌓이는 것과 사회 구성원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무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다.(213p)

어처구니없다고 모두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처음에는 헛소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악하고 유치해서 삼류 SF작가들의 헛소리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위의 리스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어처구니없는 것들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는 엉터리다. 우리가 어쩌다가 정곡을 찌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곡을 찌른 운 좋은 소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254p)

ㅡ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中,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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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1

권태가 생겨나게 되는 필수조건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상상하게 되는 지금보다 바람직한 상황과 현재 상황의 대조에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사람은 권태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에게서 도망치는 일은 불쾌한 일이지, 분명 권태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초인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사형을 당하는 순간 권태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64p)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자극의 추구는 점점 강렬해진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고, 가는 곳마다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늘 새로운 곳에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 중에는 권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권태롭지 않은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그것은 멋진 이상이며, 나도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이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이상을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중년 시절도 오고, 노년 시절도 올 것이다.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 살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67p)

나의 행동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행복을 끝장나게 할 것처럼 보이던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 고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81p)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폴레옹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부러워했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부러워했으며, 알렉산드로스는 틀림없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인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는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나 전설 속에는 늘 당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대부분 착각이겠지만 자신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려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98p)

모든 사람이 마술처럼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거의 모든 친구 관계가 깨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친구 한 명 없는 세상은 도저히 참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을 할 필요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단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런 결점도 없는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124p)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하며,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랑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 대가로 친절을 되돌려받을 것이다.
중요한 관계든 사소한 관계든,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그 사람 자신의 흥미와 사랑을 만족시켜준다. 그는 호의를 베풀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도 거의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의 신경을 거슬러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이상한 인물조차도 점잖은 재밋거리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오랫동안 애를 써도 손에 넣지 못한 성과도 굳이 애쓰지 않고 충분히 달성할 것이다.(169p)

사랑을 얻기 위해서 유달리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그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간파되기 쉬운데,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베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행동의 대가로 사랑을 사려고 애쓰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험하면서 환멸에 빠지게 된다. 그는 자신이 대가를 치러서라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랑이 자신이 베푸는 물질적 혜택보다 훨씬 값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사실상 그의 행동은 이런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191p)

자녀 양육도 큰 문제다. (...) 결국 이 여성은 엄청난 양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게 되고, 얼마 가지 않아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4분의 3을 잃게 된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력과 지성을 잃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퍽이나 운이 좋은 여자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뿐인데도 이런 여성들은 남편에게는 따분한 아내, 자녀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낮에 겪었던 이런저런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여자는 따분한 여자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여자는 얼빠진 여자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보면, 이 여성은 자녀를 위해서 자신이 치러야 했던 여러 가지 희생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몸에 배어 쩨쩨하고 까다롭게 굴게 된다. 이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면 아마 가족들은 이 여성을 사랑했을 것이다.(204~205p)

사소한 문제들이 생겼을 때 참을성 있게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자칫 그대로 놓아두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기차를 놓쳤다고 씩씩거리고, 저녁 식사가 맛이 없다고 노발대발하고, 연기를 뿜는 굴뚝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세탁소에 맡긴 옷이 분실되면, 전체 경제체제에 대해 앙갚음을 하겠다고 별러댄다. 만일 이들이 사소한 문제에다가 퍼붓는 정력을 좀 더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제국을 세우고 다시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 개인적인 일의 실패나, 불행한 결혼 생활의 고통을 참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비개인적이며 원대한 희망에 집중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기차를 놓치거나 진창 속에 우산을 떨어뜨렸을 때도 참을성 있게 버틸 수 있다. 이것은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이 성격을 고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걱정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람은 늘 짜증을 내던 때에 비해서 인생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예전 같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게 만들던 친구들의 개인적 특성들도 이제는 그저 재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아무개가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삼백마흔일곱 번째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는 이번에 들으면 몇 번째나 듣는 걸까 헤아리며 재미있어 할 뿐, 쓸데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서 말을 가로채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려고 서둘러 가고 있을 때 구두끈이 끊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는 몇 마디 투덜거리고 나서는 우주의 광대한 역사에 비추어보면 이런 일쯤은 너무나 사소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청혼을 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에 성가신 이웃이 찾아와 훼방을 놓더라도, 그는 이 정도의 재난은 아담 말고는 모든 인류가 겪어온 것이니 자신이라고 문제가 없겠느냐고 생각한다.(255~257p)

ㅡ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中,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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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2

나이가 들면 아버지처럼 정원에서 신문이나 주간지를 읽을 거라 상상했지요. 뭐 재수가 없지 뭐! 미래나 앞날을 상상하면 항상 풍요로울 거라 생각하죠? 그런데 그저 다른 것들이 있을 뿐이죠. 그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 말입니다. 내 자신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뿐 아니라 50년 후면 내 세대에 대한 기록조차 없을 겁니다. 박물관에 있는 쓸데없는 것들이 돼버리겠죠. 할 수 없지, 뭐. 가는 데까지 가보는 수 밖에요.(69p)

ㅡ 대니얼 클로즈, <윌슨> 中,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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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무위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내 친구들이 다들 실패해야 한다는 거지. 혹은, 내가 똥을 싸면 남들이 죄다 맞을 정도로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거지.(91p)

 


“원시 사회 사람들에게 여론 조사를 했다면, 행복이란 불을 좀더 쉽게 피우는 거라는 답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생각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제 그런 종류의 행복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지식을 넓히는 것, 의식의 그물을 더 넓게 던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는 살고 싶다기보다는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내게 지구에서 가장 슬픈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그에게 완벽하게 공감한다.(102p)

 


정원에는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있다. 당신이 그것을 위에서 응시하든 다른 어떤 각도에서 응시하든, 그것을 치워버릴 방법은 없다. 그리고 모든 바위는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무의미하다.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아무리 최면에 걸려 있다 한들, 당신도 그들의 전쟁에서, 우리의 전쟁에서 똑같이 죽을 것이다. 그 무슨 새로운 지혜를 무덤으로 가져가서 벌레들에게 해독시키겠는가?”(122p)

 


그녀와 그녀가 만난 모든 사람은 서로를 오해하며, 애들러는 그 오해를 칠흑같이 캄캄한 인식론적 어둠으로 묘사한다. 세 번째 부분은 그 어둠이 사회와 문명 전체에서도 역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의 모든 상호 작용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153~154p)

 


내가 머지않아 죽을 거라는 사실이 한 가지 좋은 점은 무엇에든 가짜로 흥미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이봐,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조지프 헬러의 회고록 <때때로 Now and Then>를 보면, 마리오 푸조가 조지프의 병실에 찾아와서 부러움을 드러내면서 ‘자네는 남은 평생 그 진단을 사회적 변명으로 내세울 수 있겠군’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205p)


 


ㅡ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中,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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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6




선택은 외부로부터 집단에 가해지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선택은 과정이다. 특정 유전자의 빈도가 시간에 따라 높아짐으로써 더 잘 적응하게 되는 과정일 뿐이다. 생물학자들이 어떤 특질에 대해 선택이 작용한다고 말할 때는 그 특질이 그 과정을 겪는다는 말을 줄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적응은 의지가 개입되거나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아니다. 환경에 대한 적응은 그 종이 적절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을 때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171p)

 


그런데 명심할 점이 하나 있다. 다윈의 생각과는 달리, 종들은 자연의 빈 생태 지위를 채우겠다는 목적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자연에 다양한 종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종들이 생겨나는 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종 분화를 연구해 보면, 종들은 진화적으로 우연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의 '무리'들은 생물 다양성 면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다양성을 높이고자 진화한 것이 아닐뿐더러 균형 잡힌 생태계를 만들고자 진화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공간적으로 격리된 집단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함으로써 생긴 유전적 장벽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250p)

 


인류 진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나요? 젖당 내성이나 아밀라아제 유전자 중복을 보면 틀림없이 지난 수천 년 동안에 우리에게 선택이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정확한 답은 내리기 어렵다. 선조들에게 가해졌던 선택압 중 많은 종류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선조들을 죽였던 많은 질병과 환경이 영양, 위생, 의학의 개선으로 말미암아 사라졌고, 자연 선택의 잠재적 원천이던 요인들이 제거되었다. 영국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가 지적했듯이, 영국에서 태어난 아기가 생식 연령까지 생존할 확률이 5백 년 전에는 겨우 50퍼센트였지만 지금은 99퍼센트로 높아졌다. 인류의 진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에는 선택에 의해 가차 없이 솎아졌을 듯한 개체들이 요즘은 의학의 개입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이나 이빨이 나빠서 사냥이나 씹기에 서툴렀던 탓에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죽어 갔을까?(당시라면 나도 분명히 부적응자였을 것이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항생제가 없다면 죽어 버렸을 감염을 겪었던가? 어쩌면 요즘 우리는 문화적 변화 때문에 여러모로 유전적 내리막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한때 해로웠던 유전자가 더 이상 나쁘지 않아서(안경이나 솜씨 좋은 치과 의사로 '나쁜'유전자를 간단히 보완하니까) 인구에 계속 남는다는 뜻이다.

 거꾸로, 한때 유용했던 유전자가 문화적 변화 때문에 지금은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단것과 기름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성향은 선조들에게는 적응적 특질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음식이 귀중하고 희귀한 에너지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귀했던 음식들이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물려받은 유전적 유산 때문에 충치와 비만과 심장 질환에 시달린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성향도 과거에는 적응적 특질이었을 것이다. 식량 사정이 들쭉날쭉하여 풍요와 기근을 오가는 상황에서는 보릿고개에 대비하여 칼로리를 저장해 두는 개체들에게 선택적 이점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304~305p)

 


진화의 교훈이 윤리, 역사, '가정생활' 영역으로 넘쳐흐르고야 말리라는 피어시의 생각은 지나친 걱정이다. 어떻게 진화에서 삶의 의미, 목적, 윤리를 끌어낸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진화는 생명이 다양해진 과정과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이지, 삶의 의미를 말해 주는 거창한 철학적 체계가 아니다. 진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에게는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우리의 기원에 관한 설명에서 우리의 존재의의와 행동 규범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14~315p)

 


진화는 도덕적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진화는 존재할 뿐이고, 우리는 우리가 좋을대로 그것을 생각할 뿐이다. 나는 '우리가 진화를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하는 두 가지 방향을 보여 주려 애썼다. 그것은 진화가 단순하다는 것, 또한 경이롭다는 것이다. 진화 연구는 우리의 행동을 구속하기는커녕 우리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우리는 방대한 진화 계통수에서 하나의 잔가지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자연 선택은 우리의 뇌를 정련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세상을 펼쳐주었다. 우리는 질병, 불편, 부단한 식량 탐색에 시달렸던 선조들의 삶을 그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개선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우리는 높은 산맥 위를 날고, 깊은 바닷속을 잠수하고, 심지어 다른 행성으로 여행한다. 교향곡, 시, 책을 지어 미학적 열정과 감정적 욕구를 채운다. 다른 어떤 종도 이것과 비교될 만한 일을 해낸 적이 없었다. (325p)

 



ㅡ 제리 코인, <지울 수 없는 흔적> 中,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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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모든 생물체가 요행이랍니다, 놀랍도록 총명하신 군주여. 필연적인 형질이란 없습니다.

- 우리 스퀸치는 우리 행성에서 요행히도 특정 사건들이 특정 순서대로 발생한 결과입니다. 우리 선조가 살았던 독특한 환경 조건에서 번성했던 독특하고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145p)

 




ㅡ 제이 호슬러&케빈 캐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 中,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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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7




지난번에 나이를 먹으니 밸런타인데이가 하나도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재미없어지는 건 밸런타인데이만이 아니다. 생일도 영 재미가 없어지고 만다. 자랑할 건 못 되지만, 최근의 내 생일에는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었다.

 물론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 마누라는 선심 쓰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선물 뭐가 좋아요? 뭐든 사줄게요!"라고 말하고, 또 대개는 실제로 사준다. 그러나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녀가 사든 내가 사든 돈 나오는 구멍은 똑같은 것이다. 10만 엔짜리 카세트덱을 사다줘서 우아! 하고 당장은 기뻐 날뛰어도, 월말이 되면 "저기,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라는데" 할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생일선물로 무얼 받든 기쁘지 않고 감동도 없다.(107~108p)

 


센다가야에 살던 시절, 집 근처 킬러 거리에 맛있기로 평판이 난 라면집이 두 곳 나란히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면 싫어하는 라면 냄새가 풀풀 풍기는 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늘 고생스러웠다. 어느 친구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라면이 먹고 싶은 격렬한 욕망을 억누르느라 굉장히 고생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라면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하는 차이만으로도 인생살이의 양상이 꽤 달라지겠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228~229p)



ㅡ 무라카미 하루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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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충고가 곧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로서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205p)

 

 



ㅡ 한승태, <인간의 조건> 中,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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