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
저자는 벡델 테스트로 유명한 바로 그 벡델.
만약 당시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더라면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길뿐”이란 문장을 읽으며 위안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176p)
ㅡ 앨리슨 벡델, <펀 홈> 中, 움직씨
2018/7/1
저자는 벡델 테스트로 유명한 바로 그 벡델.
만약 당시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더라면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길뿐”이란 문장을 읽으며 위안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176p)
ㅡ 앨리슨 벡델, <펀 홈> 中, 움직씨
2018/7/13
1. 한승태의 두 번째 노동에세이. 인간의 조건을 냈을 때는 지면으로만 간략한 정보를 알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팟캐스트에 직접 출현해서 저자에 대해 가졌던 평소의 궁금증이 제법 해소되었다. 지금은 선거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나올 책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앞선 두 책과 같이 에세이의 형태로 나올지 다른 형태로 나올지 모르겠으나 무조건 기대된다.
2. 책을 읽으며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공장제 축산업의 폐해(물론 이것도 중요하다)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떠들고 실제로도 자신이 그러하다고 믿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마음껏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절대적으로 약한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보면 본인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인간을 대할 때는 이를 비교적 잘 인식한다. 부모가 자식을, 교사가 학생을, 화가 난 소비자가 애꿎은 상담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볼 때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같은 종인 인간에 한해서다. 그 대상이 종의 범위가 달라지는 순간 더 이상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피터 싱어의 종 차별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과 똑같은 종에 한해서만 완벽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말고 종을 떠나 우리와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존재를 떠올려보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실천가능한 일이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점점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동정심도 그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닭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이것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밟은 다음 저 산 너머로 차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닭들에 대해서 책으로 읽었다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서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19P)
찰스 부코스키는 어디엔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있다고 썼다. 오히려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건 연달아 구두끈이 끊어지는 식의 ‘사소한’ 불행의 연속 때문일 수 있다고 말이다.(35P)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154P)
팀장은 내가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그녀는 작업 중에도 틈만 나면 자식들 얘기를 들려주고 내가 안쓰럽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찬이나 국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숙소에서 작은 몰티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 팀장이 (비쩍 마른 몰티즈보다 100배는 더 귀여워 보이는) 자돈을 아무런 동요 없이 죽이는 걸 보면 일이란 것이 사람을 얼마나 무뎌지게 만드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187P)
결국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우리 편’에 대한 사랑. 농장장이 어떤 식으로 남에게 비춰지든 간에 그가 나에 대한 호의에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겨우 3일 전에 알게 됐을 뿐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같은’ 한국 사람에 대한 도리였다.
차별에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지만 그것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다. 게다가 그런 사랑을 통해 얻은 이익을 거절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의 원칙에 공감하지만 자신이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엔 노골적으로 차별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혐오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입을 삐죽거리고 속으로는 딴소리를 할지언정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그들의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센 항의가 터져 나온다. 뒤틀리고 날이 서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랑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218P)
자돈사에서 폐사한 몸집이 제법 컸던 돼지를 촬영한 오래된 동영상 파일이 있었다.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난 후여서 배가 잔뜩 불러 있었다. 화면은 빵빵해진 돼지의 배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돼지들이 번번이 화면을 가렸다. 잠시 후 화면 아래서 보라색 고무장화가 튀어나와 돼지들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 좀 비키라고, 저리 좀 비켜!”
내 목소리였다.
“꺼져 이 새끼야! 꺼지라고 좀. 썅!”
화면 속 목소리가 사장의 목소리와 너무 비슷하게 들려서 끝까지 볼 수 없었다.(235P)
강경의 사장은 (이런 식으로 야비하게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는데)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사람보다 상품이 더 중요했다. 그는 우리가 절대 돼지를 때리지 못하게 했다. 상품에 흠집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가 감시하는 동안뿐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농장의 원칙은 그랬다. 하지만 횡성의 사장은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가 물건처럼 다루는 것은 돼지뿐이었다. 그는 진심에서 우리가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돼지를 때리는 것도 전기 충격기를 쓰는 것도 막지 않았다. 전자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두들겨 팰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게 했다. 후자는 뺨을 얻어맞으면 자기가 뭘 잘못했나부터 고민할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전기 충격 주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이성의 노예들이 보는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횡성의 양돈장에서 보았던 일들도 같은 논리도 이해한다. 그건 그들이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동물은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262-263P)
매일 아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때면 바위 아래 깔려 있다가 그걸 밀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푸드 파이터가 핫도그를 삼키듯 그날그날 작업을 소화했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기업계의 유명 인사들이 아니라 먹기 대회 선수들에게서 찾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그들은 이걸 왜 먹어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맛이 어떤지 음미하는 법도 없이 그냥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도 어제를 오늘로 밀어내고 오늘을 내일로 밀어내고 일하는 날을 쉬는 날로 밀어내고 다시 일하는 날로 밀어냈다. 이 경기에는 대상도 특별상도 없었다. 모두가 보잘것없는 참가비만 손에 쥐고 물러날 뿐이었다.(373P)
어느 날 아침 강아지사에서 밥을 주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개들이 흥분해서 짖기 시작했다. 강아지사는 천막 안에 있어 소음이 가장 심했다. 다른 곳은 개방되어 있어 소리가 흩어지는 반면 이곳은 소리가 울렸다. 분만사도 천막 안에 있었지만 다 자란 암컷들은 성격이 차분해서 어린 개들처럼 심하게 짖지 않았다. ‘컹! 컹! 컹! 컹! 컹! 컹!’ 쇠파이프로 쇠파이프를 칠 때 나는 것과 같은 울림이 강한 금속성 소음이었다. 그런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귀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막대기로 케이지를 후려쳤다. “조용 해! 조용!” 개들이 움찔하며 울음을 멈췄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조음의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순간 귀가 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리얀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막대기를 쥔 손이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런 짓이나 하려고 개 농장까지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흥분해서 한 번 실수한 것뿐이야. 이제 다시는 오늘 일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개 짖는 소리 한가운데 있을 때의 달콤한 정적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나는 이미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틀 후에 다시 케이지를 쳤다. 그리고 다음 날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이번에야 말로 정말 마지막이야’하고 다짐해놓고서 또 다음 날도. 후회와 폭주를 오가는 간격도 점점 짧아져서 오전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중얼대다가 오후에 또 그러는 식이었다. 케이지를 때리면 ‘깡’ 하고 알루미늄 배트로 홈런을 때린 듯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개들은 즉시 바닥에 바싹 엎드리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개 농장에서 뜻하지 않게 노예 상인의 위엄을 갖춰가고 있었다.(376-377P)
한 번 짖을 때마다 대패로 두개골을 한 겹씩 깎아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스트레스에는 두 가지 결말밖에 없다는 것을. 도망치거나 터져버리거나. 나는 물줄기를 개에게 돌렸다. 개는 즉시 케이지 구석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개는 오른쪽 구석에 얼굴을 처박았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그래도 소용없자 다른 개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표적을 놓친 물줄기는 이제 다른 개들에게로 향했다. 흠뻑 젖은 개는 나를 등진 채 앞발로 철창을 벅벅 긁어댔다. 그러면서 올가미에 묶여 끌려가는 개처럼 낑낑대는 비명을 간간이 내뱉었다. 더 이상 케이지에 약을 뿌리지 않았다. 나를 향해 짖어대는 개들에게 소독약을 쏘아댔다. 물줄기를 맞는 개들을 제외한 모든 개들이 합창하듯 짖어댔다.
“짖지 마! 짖지 말라고! 내가 너네한테 뭘 어쨌다고 짖는 거야?! 나는 전태일이 누군지도 알고 촘스키가 어느 대학 교수인지도 아는 사람이야!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나는 너희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란 말이야!”
나는 다른 개들 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개의 엉덩이에 대고 소독약을 쏘아대면서 소리쳤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누군가 거칠게 호스를 빼앗았다.
“아, 개장 소독하라고 했더니 이게 뭐하는 거야?!”
봉휘 아저씨였다.
“이거 독한 거라고! 개한테 쏘지 말라고 하는 거 못 들었어? 이 벽이랑 똥 쌓인 데 쏘라고. 내가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거 못 들었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거는 내가 수리얀 불러와서 할 테니까 한 씨는 가봐. 개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그러면 안 되지. 아, 가! 가라고!”(393-394P)
“인생 최고의 날을 상상해봐, 승태. 너는 방금 한승태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듣고 집을 나섰어. 대통령이 하도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바람에 내키지는 않지만 청와대에 가서 차도 한잔 마시고 사진도 좀 찍고 나왔지. 밖에는 교황이 보낸 차가 기다리고 있어. 로마에서 널 만나러 날아온 거야. 너는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둘러싸여서 식사를 해. 교황이 따라준 와인과 교황이 찢어준 빵을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는 트럭에 치일 뻔한 아기를 몸을 날려 구해내. 그리고 아기를 구하기보다는 핸드폰 만지작거리길 선택한 선량한 시민들 덕분에 너의 놀라운 활약상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거지.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승태에게 열광해. 너를 찼던 모든 여자들이, 한 중대 병력쯤 되냐? 한승태를 찼던 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제목으로 신문에 장문의 기고문을 올리기 시작하지. 베스킨라빈스는 너의 아이스크림 취향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더 이상 슈팅스타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결정해. 그리고 아마도 이게 승태를 가장 기쁘게 만들 것 같은데, 드디어, 마침내, 국립국어원에서 승태 의견을 인정하고 공식 발표를 하는 거야. ‘정확하다’와 ‘적확하다’의 차이는 적확하다를 썼을 땐 대학물이 좀 든 것처럼 들리는 것뿐이라고 말이야.
너는 그 모든 승리를, 그 모든 성취를 몸으로 느낄 수 있어. 손으로 이 폰을 쥐고 있는 것처럼. 빗방울이 피부에 닿는 것처럼. 그 모든 성공이 네 몸에 느껴져. 사람들이 한승태를 외쳐대던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어.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니가 불 꺼진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라질 거야. 그중 어떤 것도 니가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붙들고 잠 못 이룰 때 너를 도와주지 못할 거야. 그중에 어떤 것도, 상대가 너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결국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새벽에 니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는 걸 막아주지 못할 거야.”(400-401P)
시작은 어떤 우월감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개들을 그렇게 대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장을 보면서 나 자신을 윤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대단히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농장 전체에 증거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바꿀 이유도 없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개들과 나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시기도 있었다. 개들에겐 간간이 고기를 먹여주고 지루함을 달래줄 사람이 생겼고 나는 밤마다 곤경에 처한 동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고 자부하며 잠들 수 있었다.
내가 당당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실제로 선량한 면이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개들과 놀아줬던 것도 자투리 고기가 생기면 개들에게 먹였던 것도 정말로 개들이 안쓰러워서 한 일이었다. 철망에 발바닥이 끼어서 꼼짝 못 하는 개를 보며 안타까워한 것도 모두 진심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의 의도가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개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당연하게도!). 온갖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개들 때문에 힘들고 괴로웠다. 나는 선량한 존재인데 고통 받는다면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사장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만큼이나 개들도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사장을 보며 느꼈던 우월감을 이제는 시끄럽고 냄새나는 개들을 대하며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애썼는데 너희들은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한단 말이야? 이건 너희들이 잘못하는 거야, 너희들은 벌을 받아야 돼!
개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다면 개와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를 추슬러야 했다. 하지만 나는 미련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 돼.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과 비례해서 나 자신이 대단히 선량한 존재라는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아마도 이런 점이 감상적인 인간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한계를 인정하고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평형을 찾는 대신 스스로를 순교자의 자리로 몰아붙이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임계치를 향해 조급하게 달려갔다. 마침내 더 이상 개들을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내가 사장보다 더 지독하면 지독했지 조금도 덜 하지 않았다.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불행하게도 언제나 천사가 되려던 자들이
짐승이 되고 만다.
(파스칼, <팡세>)
이것이 감상주의의 불가피한 운명인 것이다.
그의 견해는 현실과 최초로 맞닥뜨리는 순간
정반대의 것으로 변해버린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과거 가톨릭 교회에선 교황을 'Infallible'이라고도 칭했다.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판단, 언행 따위가) 전혀 잘못이 없는, 절대 틀림없는”이라고 정의한다. 교황은 절대 무류, 즉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일이 없으며 그가 하는 일은 모두가 옳다는 것이다. 개농장에선 내가 절대 무류였다. 따라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무슨 일이든 개에게 득이 되고 복이 되는 일이어야 했다. 나는 내가 선량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 자신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개들이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려고 발버둥을 치더라도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선량함을 의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된다.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
개농장을 나아가 공장식 농장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 역시 ‘의심하지 않음’이 아닌가 싶다.
(...)
전통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효율성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윤 추구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보지 않는 존재는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시스템이든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다.(442-445P)
닭이나 돼지는 얼마든지 먹어도 좋지만 개만큼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뭔가 하나만 특별히 여기는 것은 위선 아니냐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모든 비극에 참여하려 했다간 역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이라도 관여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당장 모두가 채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식량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생물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인간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부터 고기가 되는 운명에서 구제하자는 주장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닌가?(455P)
ㅡ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中, 시대의 창
2018/6/23
작가 이름을 알게 된 건 제법 오래 됐는데 드디어 한 권 읽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좋은 작품이었다.
자고 있는 손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긴 속눈썹과 둥근 뺨이 아이들 어릴 때 모습을 닮았다. 문득 아카시가 어른이 되는 건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시가 중년이 되는 걸 볼 수 없다는 사실, 자신이 늙었다는 단순한 사실에 서글퍼졌다. 몇 년이 지나면 아카시가 바로 이 방을 차지하고, 루마와 로미가 했던 식으로 문을 닫아놓을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부모에게 등을 돌려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된, 야망과 성취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저버렸었다.(65p)
그는 갑자기 못 견디게 떠나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24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내일이면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간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고 2주 후면 박치 부인과 함께 프라하를 여행 하면서 매일 밤 그녀 옆에서 자게 될 거라고. 딸이 여기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 자신을 위해서였다. 전에는 딸이 그를 필요로 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딸은 평생 그가 해준 것에 더하여 그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딸의 제안이 더 언짢았다. 자신의 일부는 언제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 제안을 뿌리쳐선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달랐다. 즐거운 경험이긴 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보니 그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와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68p)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삶이 얼마나 황폐한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일을 한 적이 없었고 낮에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유일한 일은 아빠와 나를 위해 청소하고 밥을 하는 것뿐이었다. 외식은 드물었다. 아빠는 싸구려 음식점에서조차, 집에서 먹는 것보다 얼마나 비싼지 항상 지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가 교외에서 사는 게 얼마나 싫고 얼마나 외로운지 불평을 할 때마다 아빠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행하면 캘커타로 돌아가지”라고 하면서, 떨어져 있어도 자긴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나도 아빠에게 엄마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그래서 엄마를 두 배로 외롭게 했다. 내가 전화를 너무 오래 하거나 방에만 있다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맞받아 소리치는 걸 배웠다. 엄마가 한심하다고, 나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는 말도 했다. 내게 더 이상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엄마와 내게 모두 갑작스레 분명해졌다. 프라납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96p)
“아이들을 데리고 L.A.에 와. 바닷가에 있는 라이언의 별장에 놀러 와야 해.” 팸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별장.”
“정말 가보고 싶어요.” 메건이 말했다. 하지만 아밋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고, 팸의 세상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이유는 별로 없었다.(130p)
그래도 아밋은 자기가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모니카가 태어나고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지 않았던가? 쉬는 날 아내가 아이들을 볼 동안 그는 공원에 가서 조깅을 했고, 또 거꾸로 아내가 서점에 가거나 네일 살롱에 갈 수 있도록 그가 아이들을 보았다.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혼자 있는 그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죽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가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라 생각했었는지 말이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 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한 것처럼 매일 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혼자 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140-141p)
수드하는 엄마가 불쌍하고 한심했다. 자기가 모르던, 불쾌하고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라는 이유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아들을 탓하는 대신 미국과 그 법을 탓하고 있었다. 아빠는 이해한듯했지만 대화에 끼려고 하지 않았다.
(...)
그녀의 부모는 자식들이 괴로워하는 일은 언제나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엄마가 점심 도시락으로 이상한 음식을 싸주어서 비웃음을 사는 것도, 감자 카레 샌드위치를 싸면 원더브레드가 초록색이 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세상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게 뭐가 있느냐? 부모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울증’이란 단어는 외국어였고 미국의 것이었다. 고생과 부당함은 그들이 인도를 떠날 떄 두고 왔고, 자기 자식들은 절대 그런 일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에게 평생 고통 없이 살라고 면역 주사라도 놔주었다는 식이었다.(173-174p)
“런던에 언제라도 놀러와.” 이렇게 말했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졌다.(185p)
발목에 뭔가 스쳐서 내려다보니 닐의 식탁에 묶여 있던 풍선이었다. 이제 줄 위에 떠 있지 못하고, 다시 부풀어 오르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빠진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줄을 가위로 잘라 통째로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더니 놀랍게도 그 속에 쏙 들어갔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210p)
“미안해, 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네가 키스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226p)
그녀가 그의 선물을 사는 걸 떠올리니 우울해졌다. 그들은 친근하게 지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241p)
ㅡ 줌파 라히리, <그저 좋은 사람> 中, 마음산책
2018/6/17
세상에 만두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어떤 음식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한데도, 그게 만두인 경우에 한해서는 내 이해력이 딱 정지하고 만다. 어떻게 만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판되는 냉동만두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속이 한 티스푼 정도밖에 안 들어간 ‘피’투성이 만두밖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집에서 빚은 만두나 장인이 만들어 파는 수제만두를 못 먹어본 사람이 틀림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두에 관한 한 누가 뭐래도 나는 단호하다. 기본적으로 만두는 매우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이건 변하지 않는다. 만두가 맛없어지기 위해선 굉장히 만두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져야 한다.(30p)
ㅡ 권여선, <오늘 뭐 먹지?> 中, 한겨레
2018/6/1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뼈 심하게 때리네.
-저기, 준페이.
-왜?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 라고 이 책에 나와있는데
-(무슨 공부를 하는거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응? 뭐가? 나도 그런 여자 좋아하는데? 뭔가 기운이 난달까, 자신감이 생긴달까. 그리고 내 이야기에 웃어주거나 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하지.
-하지만 준페이.
-응?
-네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재미없잖아? 호감을 얻기 위한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호감도가 높아진다니 이상하지 않아?
-대답하기 싫어!(26-27p)
ㅡ 마스다 미리, <내 누나 속편> 中, 이봄
2018/6/6
어떤 직업 분야든 오랜 세월에 걸쳐 일가를 이룬 사람은 흥미를 부른다. 직업윤리를 지키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선, 한 배우의 조언.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 바보처럼 보이고, 스스로 바보처럼 느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당신이 고함지르는 상대가 제작자일지라도 말이지요). 그 뒤로 저는 절대 일하며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당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그건 엄청나게 부당한 행위니까요.(85p)
ㅡ 마이클 케인, <명배우의 연기 수업> 中, 지안
2018/6/2
다 읽지는 못하고 반납했는데 윤리학의 기초적인 교과서 같이 느껴졌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찬찬히 다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사야 될 듯.
관용은 물론 하나의 덕목이다. 그러나 이것이 윤리 상대주의를 찬성하는 좋은 논증이 되는가? 아니다. 만일 도덕이 개개의 문화에 따라 단지 상대적이라면, 또 만일 해당 문화가 관용의 원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문화의 성원들은 관용적이어야 할 의무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허스코비츠와 셰퍼-휴즈도 관용의 원리를 한 가지 예외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관용의 원리를 절대적인 도덕 원리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관용적이지 않기보다 관용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그 어떠한 입장도 다른 입장보다 객관적으로 보아 도덕적으로 더 낫지 않다. 만일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에 기초해서 여성 할례를 비난한다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를 이유로 여성 할례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서구인들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든 도덕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관용의 원리를 절대적인 원리로 다루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할 수는 없다.(56p)
“어느 문화가 옳고 또 어느 문화가 그른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애매해 보인다. 우리는 어느 한 체계를 다른 체계보다 옹호하기 위해서 추론하고 또 사고 실험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믿음이 다른 문화의 도덕적 믿음보다 또는 우리 자신의 문화 내부의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믿음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적 믿음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있다. 우리가 사실적인 또는 과학적인 문제에 관하여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우리가 도덕적 문제에 관해서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한 문화가 도덕적 인식을 함에 있어서 단지 혼동을 하거나 아니면 잘못을 범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자식들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기는 이크 부족과 같은 문화가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보호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문화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습속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비판을 통하여 원리들을 추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67p)
ㅡ 루이스 포이만, 제임스 피저, <윤리학> 中, 울력
2018/6/2
요즘 너무 소설을 안 읽은 것 같아서 찜해 뒀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음.
한 번도 ‘과자 회사’ 같은 곳에 진지하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었다. 과자라는 건 그냥, 슈퍼마켓에 가면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 혹은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포장해서, 진지하게 파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 십 년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24p)
지금도 기억나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새로 산 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비인지 눈인지 모르는 것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뭐랄까,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느낌? 그런 게 몰려오더라고요. 가족들과는 사이도 좋고 집도 여전히 안락한 곳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제가 가야 하는 세계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거긴 이렇게 앞도 잘 안 보이고 가족이 이해 못 하는 외로운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곳을 향해 걸어가겠다. 열일곱 살이 진지하니까 엄청 우습죠? 그곳이 어딘지, 어떤 곳인지는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이 시계와 함께.(62p)
“그래도 엄마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수술하지 않고도 깨끗이 나을 수 있다니 기적 같아. 이제 열흘 후면 연수도 끝나니까 그때까지 더 건강해져야 해. 그럼,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하고 있지. 엄마, 아빠, 누나들이 있는 한 나는 무적함대야.”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만약에 저렇게 서로서로 열심히 쌓아 놓은 이야기 중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 나는 게 있다면ㅡ비유하건대 방금 짓다 온 빈터의 그 집들처럼ㅡ꼬마는 어떻게 될까. 저 귀여운 세계가 흔들린다면.(84p)
제 말은 단순한 구경꾼이었다는 뜻이에요. 뭐, 구경꾼도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가 구경꾼이라는 걸 모른 채로 평생 살 수 있다면. 하지만 자기가 구경꾼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엔 밖으로 뛰어나와야죠.(103p)
인간은 본래 자기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좋은 것은 덜 좋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상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안전해질 수 있다.(136p)
형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이마에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고개를 젓는다.)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거······. 나를 이해한다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228p)
ㅡ 박지리,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中, 사계절
2018/6/1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공공의 역할까지 가족에게 떠넘겼고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족 총력전’이 되다시피 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의 자율성은 간단히 무시됐으며 가족주의의 극단이라 할 마음가짐, 즉 아이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고 통제하는 행동은 여전하다. 가족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배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됐다. 그러는 동안 국가는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저만치 물러나 각 가족의 ‘각자도생’만 부추겼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9p)
버릇을 가르치느라 때렸다는 주장은 나중에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로까지 발전한 ‘의도적’학대를 위장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를 죽이거나 해를 입힐 ‘의도’를 갖고 시작하는 학대는 없다. 서현이의 경우도 한두 번의 체벌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면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뼈가 폐를 찔러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평소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학대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양육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도 학대를 치닫는 경우가 없었다. 도구를 갖고 엉덩이를 자주 때리는 부모들이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학대를 할 가능성이 9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6-27p)
상황에 따라 부모는 자녀에게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강한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체벌은 엄연히 별개인 인격체에 대한 구타이고 폭행인데도 아이의 관점이 아닌 성인,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미숙한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열등한 상대에 대한 교정 목적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오래된 논리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적 연구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에게도 반성보다 공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28-29p)
‘체벌 덕분에 오늘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논리 역시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체벌금지가 사회적 의제가 될 때마다 등장하는 체벌 옹호의 논리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통신」에서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라고 말했다.(35p)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성폭력을 밝혀내려 분투하던 인권변호사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맥락에선 마을 전체의 침묵, 방조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표현이지만 나는 이 말을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부모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듯 부모 혼자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체벌을 쉽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태도, 폭력에 관대한 정서, 공적 개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자잘한 구멍이 사방에서 생겨나고 결국 어디에선가는 아이가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부모의 체벌에 관대한 한국 사회는 마을 전체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40-41p)
성인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호와 교양 목적의 징계’라는 말로, 상대에게 의도적인 해를 끼쳐도 된다고 법이 허용하는 유일한 대상이 아이들이다. 아이도 한 개인으로서 자율적 존재이고 어른처럼 생명과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이를 법의 언어로 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가족의 사생활 영역에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 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가정폭력, 부부강간을 금지하듯 아이들에 대한 체벌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관심과 보호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가 어려우므로 성인과 동일하게 아이들도 신체의 온전성을 보존할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법에 문외한이지만 부모의 권리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정의를 독일의 법에서 보았다.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 제6조 제2항은 “자녀의 보호와 교양은 자연적 권리이자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부과되는 의무이다. 그의 행사에 관하여는 국가 공동체가 감독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한국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친권이 지나치게 강한 나라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56-57p)
다만, 우려되는 점 하나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아이가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가정우선의 원칙, 그리고 양육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에 대한 강조가 자칫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128p)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다. 중앙입양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까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사람은 총 16만 6,512명에 이르며, 이는 같은 기간 국내입양(7만 9,088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보낸 나라다.(133-134p)
이 장의 서두에서 소개한 현수, 은비, 김상필 씨의 공통점, 이들이 불행한 죽음으로 증언하는 한국 입양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입양절차와 제도 운영의 책임을 공적 기관, 즉 국가가 아니라 민간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오랫동안 채택을 유보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비판받던 항목이 있다. 바로 21조 (a) 항인데 이 조항은 책임 있는 공적 기관, 즉 정부가 입양을 결정하라는 것이다. 입양제도를 운영하면서 이 조항을 유보했던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낸 나라인데도 여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을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았다.
2012년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입양의 마지막 단계에서 법원이 허가하는 제도를 갖춘 뒤 정부는 2017년 8월, 21조 (a) 항의 유보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입양절차의 시작이 민간기관들에 맡겨져 있는데, 마지막 단계의 법원 허가제만 갖고 입양이 공적으로 관리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소개한 현수와 은비의 죽음은 모두 법원 허가제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입양절차가 공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되지 못해 벌어졌던 일이다. 여전히 해외든 국내든 친생부모가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는 뜻을 밝히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전적으로 민간 입양기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된다.(138-139p)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위험을 타자와 관련짓는 반응은 근대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온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 헬렌 조페의 「위험사회와 타자의 논리」에 따르면 매독이 유럽을 휩쓸던 15세기에 매독은 영국에선 ‘프랑스 두창’으로 프랑스에선 ‘독일병’으로, 플로렌스인 들에겐 ‘나폴리병’, 일본인에겐 ‘중국병’으로 불렸다. 매독뿐 아니라 콜레라, 흑사병, 나병에 이르기까지 집단적인 불치의 질병은 늘 ‘타자’와 연관되어 왔다.(157-158p)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은 거꾸로다.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232p)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행위자의 처벌을 위한 조사뿐 아니라 가족이 다시 복원될 수 있도록 돕는 가족 보존과 재결합 지원 서비스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담원들은 학대 행위자 처벌과 가족 보존 지원이라는, 매우 상반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늘 ‘가치의 갈등’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심각한 학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신고 접수 이후 아동학대로 판정한 사례의 경우에도 가족 보존을 위해 가급적 고소고발보다 서비스 제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학대 행위자의 재학대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고소고발 등 공권력 개입 요청보다 사례 개입 서비스 제공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는 데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이와 반대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 이후로는 신고 대응과 조사의 부담이 커져 가족 보전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위축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친권에 개입해야 하는 신고조사의 영역은 공공기관이 맡고,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은 가족보전과 치료, 재결합 위한 전문적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체계를 이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아이가 부모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정위탁, 시설 입소, 입양 등의 여러 대안적 양육방식 중에서 어떤 방식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지를 공적 권력이 결정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는 판단이 선다면 입양의 절차를 시작할 때부터 공공기관이 이를 맡아야 한다.(250-251p)
차별과 배제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공감능력의 향상이다.
하지만 공감을 실천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공감은 편협하다. 혈연, 인종, 국적, 유사성, 가치의 공유 등으로 금을 그은 집단의 경계, ‘내 편’의 울타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한다.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은 사람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그들’과 ‘우리’를 나누고 신속하게 ‘그들’을 차별할 표지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
또 권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공감력이 낮다. 다른 사람 처지에 서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통의 경험도 꼭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현재 그 일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덜 공감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공감의 한계 때문에 심리학자 폴 블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래의 위험을 예방하는 정책을 세우려면 공감을 제쳐놓고 생각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 등에 대처하려면 미래의 추상적인 혜택을 위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과해야 하는데, 대체로 사람들은 막연한 대중의 고통, 미래의 큰 비극보다 특정한 개인, 눈앞의 아픔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공감의 능력이 확대되는 건 아름답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익혀야 하는 일이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공감의 확대는 어쩌면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발휘해야 도달 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치 자신이 겪는 양 느낀다 해도 고통의 원인을 잘못 인식하면 행동이 엉뚱해지듯, 그릇된 인식이 공감을 왜곡하는 일도 잦다.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 갈등의 해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역지사지의 확대, 공감의 향상을 핵심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
핑커는 공감은 이타성을 촉진할 수 있고,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면 그 계층에게 공감이 확대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입의 문명’을 추구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족벌주의처럼 감정이입과 공정성이 상충되는 예도 많기 때문이다. 핑커가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보다 더 낫다고 추천한 이상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배타적 가족주의의 폐해 극복과 관련해서도 나는 핑커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 그것이 제2의 본성이 되어 감정이입에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감정이입의 확대보다 권리의 범위 확대가 더 중요하다.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253-256p)
ㅡ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中, 동아시아
2018/5/24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신파극인지 알면서도 눈물이 나고 눈을 꼬집히면 눈물이 나기 마련인 것처럼, 별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유독 엄마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다. 한국에서, 아니 나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 개인이 자신의 여행기를 책이라는 출판물의 형태로 남겼다는 개인적인 보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와의 여행기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이 책은 목적지인 인도도 중요하지 않고, 이모는 물론이거니와 무얼 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방점은 ‘엄마’와 자식이 함께 무언가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유달리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다룬다거나, 생애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엄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특장점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책은 흔하다. 모르긴 몰라도 서점의 매대에 꽂혀 있는 여행 에세이 중 이와 같은 테마의 여행기가 수십 권은 있을 것이다. 다만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나는, 이런 책을 처음 읽었고 그게 나름의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말이다. 같은 테마의 다른 여행기를 읽었어도 아마 비슷한 감상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타 여행에세이에 비해 큰 차별점이나 특정 집단에 소구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책이므로 인도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보자. 인도에 처음으로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던 계기는 고등학생 때 읽었던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때문이었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류시화의 인도에 대한 또 다른 에세이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얘기하며 저자의 인도에 대한 첫 기억이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럴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들이 특별한 어느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으로 남기에는 너무 많이 팔렸다. 예전 같지는 않아도 위의 두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고 당시에도 이미 충분히 팔리며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그런 이유로 해외여행에 로망이 있는 사람치고 당시에 소위 ‘인도 뽕’을 맞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그 책에서 접했던 인도는 그야말로 신비한 곳이고 살면서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조차 인생의 삼라만상을 꿰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영성으로 충만한 곳으로 묘사했으니 고등학생이라면 혹할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더 이상 류시화의 책을 읽지 않지만 그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늘은 기차역에 대한 새로운 추억도 생겼다. 기차역 소음과 어우러진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 말이다.
“캘커타에서 참 많은 것을 봤어. 살면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 것 같아.”(111p)
스물한 살, 대학 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밤이었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에선 누구도 날 서울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은 딸을 데려다주는 것보다 딸이 서울로 가기 위해 필요한 차비를 버는 일이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해 ‘캐리어’라는 것을 샀고, 그 가방에 옷 몇 벌과 필기도구, 기숙사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불 꺼진 방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옆에 슬그머니 누워 내 손을 꼭 잡았다.
“선영아, 혼자 서울 보내서 미안하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생생한 그 말.(227p)
“선영아, 난 항상 딸을 믿어. 서울 가서도 우리 딸이 당당하게 잘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부터 딸은 이 집에 손님처럼 오게 될 끼다.”
“내가 왜 손님이야?”
“그냥. 이제 가면 니가 1년에 몇 번이나 집에 오겠나. 그러니깐 이제부턴 손님이지.”
나는 정말 엄마가 말한 대로 1년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갔다. 자주 찾는 손님도 아닌, 드문드문 찾는 손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화가 나서 3년 동안 집에 내려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전화도 없고 집에도 안 오던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선영아, 니 뭐하고 사나?”
“왜? 왜 전화했는데?”
“보고 싶어서.”
난 엄마의 그 말에 그날 당장 짐을 싸들고 집으로 내려갔고, 3년 만에 엄마를 봤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엄마는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젊고 건강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228p)
ㅡ 윤선영,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中, 북로그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