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8

 

 

읽는 내내 가라앉았다.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이 여성이 딸의 성정체성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하루하루가 지나면, 조금, 아주 조금의 변화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긴 나이가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다. 젊었을 때는 선을 긋고 담을 쌓고 그래서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이토록 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모두 별다를 게 없는 늙은이가 되는 탓이겠지. 그런 늙은이들을 받아 주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탓이겠지.(13p)

 

 

고요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로 옮겨 간다. 딸애는 서른 중반에. 나는 예순이 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을까. 아니, 지금보다 더 팍팍할까.(22-23p)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30p)

 

 

딸애에게는 직장이 없다. 일은 하지만 직장이 없는 사람들. 열 명 중 하나. 열 명 중 셋. 그런 식으로 늘어나더니 이제는 열 명 중 여섯, 일곱이 그런 사람이다.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 대출을 받을 자격도, 공공 주택에 들어갈 자격도.(32p)

 

 

나는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을 구겨 버리고 아주 작게 만들고 멀리 던져 버릴 수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모른다고 여기면 얼마간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들. 아무것도 모를 때엔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들. 그러나 뭐든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발톱을 세우고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다. 진실과 사실. 그런 명백한 것들의 속성. 언제고 그것들은 사납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62p)

 

 

나는 좋은 사람이다.

평생을 그렇게 하려고 애써왔다.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이웃. 그리고 오래전엔 좋은 선생님.

정말 힘들었겠구나.

나는 공감하는 사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나는 응원하는 사람.

다 이해한다. 이해하고말고.

나는 헤아리는 사람.

아니. 어쩌면 겁을 먹은 사람.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깊이 빠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입은 옷을,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사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걸까. 그러나 지금 딸애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68-69p)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름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91p)

 

 

참담함이 정수리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내린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할까. 실은 이런 것들이 호시탐탐 삶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삶에서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저 모퉁이를 돌면 정확히 바로 그때에 짠, 하고 나타나는 것. 언제 어디서나 득시글거린다는 것. 왜 아무도 이런 것들을 미리 말해 주지 않는 걸까.(113-114p)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고, 알게 된 것을 말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뭐든 모른 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늙어 버렸다.(127p)

 

 

내 나이대의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20-30대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언제 물러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그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사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어떤 가능성들을 하나씩 베어 내면서 일상을 편편하고 밋밋하게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는지도 모른다. 무성하게 자라난 것들을 다 제거하고 마침내 평평해진 삶 너머로 죽음이 다가오는 모습을 주시하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뭔가 시작하고 맞서고 싸우고 이길 만한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면서 무료하지만 안전하고 무력하지만 차분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129-130p)

 

 

이건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해해 달라고 사정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요. 이건 그냥 권리잖아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갖는 거요. 그리고 사생활은 일과 별개예요. 제가 요구하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일과 사생활을 구분해 달라는 것. 강사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 달라는 것.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156p)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삼킨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162p)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173p)

 

 

완벽한 오후.

그러나 내가 상상한 순간은 끝내 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늘 너무 이르거나 늦게 도착한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기다리다가 포기하게 만든다.(188p)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197p)

 

 

 

 

김혜진, <딸에 대하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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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5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짝꿍이 자꾸 아이스케키를 하고 시비를 건다고 일렀을 때, 담임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위로 언니가, 아래로 터울이 꽤 지는 남동생이 있던 정희는 음식이든 용돈이든 학원비든 동생 다음 차지인 게 서럽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 등교하던 현주는 승용차에 탄 채 길을 묻던 남자가 하의를 다 벗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수능이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 기차 여행을 가던 중에는 객차 안을 돌아다니던 남자가 통로 쪽에 앉아 있던 지선이의 가슴을 만졌다. 여고 앞길과 뒷산에 출몰하는 ‘바바리맨’을 본 친구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공부를 좀 하는 친구는 모두 부모에게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이니 교대에 가라는 말을 들었고, 대학에 가서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가 헤어진 경미는 학과 사람들에게 무수한 뒷말을 들었다. 정화는 상사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니 된장녀라는 소리를 들었고, 주영은 회식 자리에서 부장과 블루스를 춰야 했다. 민경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에게 받은 것은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보약이었고, 주원은 아이를 낳고 나니 손목이 시큰거리고 뼈가 시려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세영은 어디 가서 ‘맘충’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나 죽겠다고 말했다.(32-33P)

 

 

‘지켜주겠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여성 선별 범죄가 분명한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관성적으로 사용하며 피해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경찰과 언론, 그리고 이에 기꺼이 동조하며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를 방관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는 ‘남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말라’는 말은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혹은 이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리베카 솔닛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인용한 지네 추라는 여성의 트윗은 이 문제를 명료하게 요약한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68P)

 

 

스스로 건전한 상식인이라고 믿는 호모포비아만큼 끈질기고 말이 안 통하는 상대는 없을 것이다.(104P)

 

 

<파리의 연인>의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한기주는 자기가 데려간 모임에서 모욕당하고 있는 강태영(김정은 분)을 질질 끌고 나오며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손 치우란 얘기도 못 해?”라며 화를 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손은 치우지 않는다. 그리고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름으로써 ‘애정’을 표현하다가 격정에 못 이겨 기습 키스를 퍼붓는데,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거지? 불쾌하고 불안해서 사랑은커녕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남자들인데.(115P)

 

 

“보고 싶어요.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찾아오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의 집 앞 현관이나 계단에 밤새 앉아 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남자.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레긴 개뿔, 어떻게 피해야 할지 무서울 뿐이다. 여성이 자신만의 안전하고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욕구지만 너무나 쉽게 침해받는 권리기도 하다. 초대받지 않은 이가 쳐들어오는 것도, 주변을 서성이는 것도, 지켜보는 것도 스트레스며 공포다. 자신이 순정남이라 믿었을 것 같은 많은 남주인공들과, MBC <운빨로맨스>에서 여성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현관문을 닫지 못하도록 버텼던 두 남자는 이를 알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데이트폭력이라 부르는 것들은 과거 ‘치정 폭력’, ‘치정 살인’의 현대화된 언어이고, ‘애틋한 로맨스’라 믿었던 ‘따라다니기’, ‘기다리기’등은 이제 스토킹이라 부른다.”(119-120p)

 

 

“지금의 걸 그룹은 아이돌이 아니다. 우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동경받기 위해 판타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웃어야 한다. 존중받지 않는 것이, 지금 이 극한 직업의 본질이자 그들의 역할이 되어버렸다”(132p)

 

 

한국 사회에서 20대 여성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게 성폭력을 행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정작 끔찍하고 분노스러운 것은 내가 겪은 일이 교사라는 이유로 성폭력이라 호명되지 않고, 교사라는 이유로 내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라는 위치보다 교사라는 것을 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받는 것. 어떤 사람이 교실에서 내게 야동을 보여주며 ‘선생님, 섹스해 봤어요?’라고 물어본다 하더라도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교육자로서 왜 이런 행동이 잘못이고 바람직한 성 관념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야 하는 것이 나의 직무이자 의무라고 이 사회가 규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학교라는 공간이 절대로 날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바늘로 찌르듯 인지되는 것이 절망스러운 것이다.(202p)

 

 

“‘일베 문화에 물든 요즘 초딩들’이야기가 나오면 여학생들은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베 문화를 체화한 학생들은 대부분 남학생들이던데 그 사이에서 같이 살고 있는 여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십 명의 초·중·고 여학생들이 그에게 긴 답장을 보내왔다. ‘김치녀’나 ‘걸레’, ‘메갈년’이라는 욕설을 듣고 외모 평가는 물론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흔하다는 토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제발 누구라도 좀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절박한 목소리들 사이의 한 문장을 잊지 못한다. “좀 살려주세요.”(203-204p)

 

 

너무 지쳤지만 분노와 우울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애써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문득 눈에 띈 웹툰을 보던 중 한 대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모니야, 용기는 두려운 마음 안에 있어. 네가 그 두려운 마음 안에 있는 용기를 힘차게 불러내면 돼. 그리고 말이야······ 네가 남을 위해 용기를 내면,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용기도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어.

 

다른 때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를 이 말이 그 순간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용기는 두려운 마음속에 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용기가 아니라, 그 두려운 마음 안에서 용기를 불러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일 수 있다는 것. 나의 두려움만이 아니라 타인의 두려움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를 위해 용기를 낼 수도 있고,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206-207p)

 

 

그러나 여성 배우가 ‘촬영장의 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들은 ‘예쁘고 상냥한 여배우’로서의 감정 노동을 암묵적으로 요구받으며 이를 기꺼이 수행하면 칭찬받고, 그렇지 않으면 ‘까칠하고 거만한 여배우’라는 또 다른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비난받는다. 담배를 피울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부당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조차 여배우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직접 대응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다.(216p)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한다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가시밭길에 들어서는 일과 같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TV에서, 신문에서, SNS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과 폭력에 맞서 ‘흥’을 깨뜨려야 한다. 어제까지의 나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은 물론, 지금 이 순간의 나조차 믿을 수 없어 불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하는 외로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일상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럽고 피로한 일이다. 하지만 돌아 나갈 마음은 없다.(222-223P)

 

 

 

 

ㅡ 최지은, <괜찮지 않습니다> 中,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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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4

 

 

 

미리암은 루이즈와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머리에 스쳐가는 어떤 생각, 잔인하지는 않지만 부끄러운 그런 생각을 엠마에게 절대 털어놓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자신만의 삶, 우리 자신에게 속한 삶, 다른 이들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가 자유로울 때에만.(53p)

 

 

루이즈, 당신 같은 처지라면, 독신에 겨우 밥벌이를 하는 그런 상황이면 말이에요, 보통은 아이를 낳지 않아요.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면, 당신이 완전히 무책임하다고 느껴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보같이 웃으며 나한테 외서 이렇게 통보를 하다니요. 그러면 어쩌라고요? 샴페인이라도 딸까요?” 그는 커다란 방에서 뒷짐을 지고 미완성 캔버스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당신은 이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분별력이 없어요? 내 말 들어봐요, 당신은 상황이 나아지게 도움을 주려는 나 같은 주인을 만난 게 다행이에요. 벌써 진즉에 내쫓았을 사람들을 내가 많이 알죠. 세상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 내 어머니를 당신에게 믿고 맡기는데, 당신은 이렇게 경솔하고 경우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군요. 일이 없는 저녁에 당신이 뭘 하든 상관 안 해요. 문란한 당신 사생활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하지만 삶은 파티가 아니라고요. 아기를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요?”(138-139p)

 

 

폴의 어머니 실비는 그들을 비웃었다. “너희는 보모에게 아주 대단한 주인처럼 구는구나. 좀 너무하는 것 같지는 않니?” 폴은 기분이 상했다. 그의 부모는 돈과 권력을 혐오하고 약자에 대한 존중을 약간은 과시하면서 그를 길렀다. 그는 자신과 동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늘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해왔다. 그는 상사에게도 언제나 말을 편하게 했다. 명령을 내린 적도 없다. 하지만 루이즈로 인해 그는 주인이 되었다. 아내에게 경멸스러운 조언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팔을 뻗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너무 다 들어주지 마, 계속해서 뭘 요구해댈거야.”라고 말한다.(157p)

 

 

아이들 곁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아이들은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 이곳의 어려움, 어두움을 짐작은 하지만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루이즈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녀는 그들 손을 잡고 눈높이를 맞추지만 이미 그들은 다른 곳을 본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놀이를 찾아냈으니 누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불행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척하지 않는다.(269p)

 

 

아이들의 외침 소리에 짜증이 치민 그녀도 소리를 지르고 싶다. 신경이 거슬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날카롭고 불쾌한 소리, 그들이 !’,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들로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내일 언제?”라고 밀라가 수백 번도 더 묻는다. 아이들이 더 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으면 루이즈는 노래 한 곡도 부르지 못한다. 그들은 이야기, 놀이, 갖가지 얼굴 표정, 모든 것을 영원히 다시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루이즈는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그녀는 눈물과 투정과 히스테릭한 기쁨에 더 이상 너그럽지 않다. 가끔 손으로 아당의 목을 잡고 기절할 때까지 흔들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저어 이런 생각을 털어낸다. 그러면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되긴 하지만 이미 그녀는 끈끈한 검은 늪에 휩쓸리고 말았다.(272-273p)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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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5

 

 

리처드 맥과이어의 여기서를 읽었다. 한 공간의 여러 시간대를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이다. 그 시간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든다. 그래서 우리가 농담하며 웃고 떠드는 현재, 인간이라는 종이 있기 전인 몇 십 억 년 전의 과거,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까지 시간대가 비선형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글자가 거의 없이 그림으로 압도하는 책이며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잘 표현했다. 책을 보며 최근에 봤던 영화 고스트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떤 식으로든(누가 먼저일지는 모르겠다.)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드 맥과이어, <여기서> ,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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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휘영은 세계에 신이 없다면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따위의, 내가 딱 싫어하는 류의 화제를 자꾸 테이블에 올렸다.(60p)

 

 

이런 환경에서 어지간한 인간들은 좀스럽고 추한 모습을 보인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수업이 있기 몇 시간 전부터 강의실 앞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기다리는 녀석들과 내가 같은 급이라는 게 한심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습실에서 제대로 앉아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정재준 한국사><황남기 헌법>이니 하는 책들에 밑줄을 그으며 중얼중얼 법 조항들을 외우고 있다 보면 이런 공부에 정말 젊음을 바쳐야 하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134-135p)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마음 놓고 내 처지를 하소연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휘영이라면 혹시 학교 도서관에서 아직까지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술 한잔 사달라면 사주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158-159p)

 

 

술에 취하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같이 마실 사람도 없었다. PC방으로 출근해 7급 공무원 시험용 국어 공부를 두어 줄 하다 중학생들에게 과자를 팔고 초등학생을 두들겨 팬 내 꼴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170p)

 

 


 

장강명, <표백> , 한겨레출판

,

2018/1/17

 

 

영웅과 악당이 고통에 무감각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이런 사람이 부당한 취급을 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매우 흉악한 범죄자에게 우리는 그만큼 엄한 처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처벌을 통해 그 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할 뿐만 아니라 지각된 범죄의 부당함을 극복하고 범죄자에게 충분한 고통을 안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잔인한 사람에게 특히 잔인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편 우리는 때로 존경하는 영웅의 희생을 망각함으로써 영웅을 홀대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부모의 감정, 스승의 시련, 지도자의 고통 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계에 관한 3장에서 살펴본 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자면, 영웅을 이해하는 우리의 도식은 도덕적 유형 고착에 근거한다. 즉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우리보다 강인해 보이고 삶의 고난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오로지 도덕적 행위자로만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영웅의 고통이 덜 눈에 띄고 공감을 덜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이 얻어맞으면 우리의 심장이 요동친다. 그러나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얻어맞으면 곧 반격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만약 영웅이 대다수 사람들보다 더 강인해 보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영웅에게 더 고통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자 같은 사람을 배신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다면, 어차피 누군가피해를 입어야만 한다면 사람들은 종종 영웅에게 피해를 안긴다.

(...)

물론 당신은 테레사 수녀가 이런 고통을 정말 잘 이겨낼 것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고객들을 관리할 사람을 뽑는 회의가 열렸다고 상상해보라. 아마도 두툼한 외투를 집게 될 사람은 과거에 힘들기만 하고 보상은 못 받는 고된 일을 묵묵히 했던 사람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선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도 원치 않는 무거운 짐을 짊어질 능력이 있다고 볼 것이다. 이런 지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다음번에 사람들이 당신의 헌신적 태도를 칭찬하거든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을 위해 희생하면 남이 당신을 희생시키기가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156-159p)

 

 

이런 자기 통찰의 결여는 때때로 친구들의 연애 생활에서 뚜렷이 드러나곤 한다. 누구는 자신이 그동안 사귀었던 여러 명의 남자 친구를 거론하면서 첫 번째 남자는 잘 생기고 옷도 잘 입어서 사랑했고, 두 번째 남자는 친절하고 따뜻한 눈을 가져서 사랑했으며, 세 번째 남자는 성격이 활달하고 재미있어서 사랑했다고 설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통계 분석을 돌려본다면, 대다수 차이가 수입으로 설명된다는 사실(즉 그녀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한다면 그녀는 당신의 실리만 따지는 설명을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돈을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쩌면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키스는 말보다 더 정직한 법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특별한 짝을 찾아 헤매는 온라인 데이트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누구에게 메세지를 보내겠다는 결정을 어떻게 내릴까? 상대방의 재치 있는 프로필을 살펴볼까? 아니면 별자리가 무엇인지 따져볼까? 온라인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차이는 여자의 경우 젊고 매력적이며 사교적인지에 의해 설명되고, 남자의 경우에는 키가 크고 근육질이며 부자인지에 의해 설명된다. 우리는 덜 천박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이유들을 꾸며낼 뿐이다.(374-375p)

 

 

 

대니얼 웨그너, 커트 그레이,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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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

 

 

너무 말을 많이 한 날엔 혹시 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염려가 들기도 하지.(67p)

 

 

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 나쁘게 변한 세계보다 사람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사슬에 묶여서 꼼짝하지 않는 바퀴니까. 아무것도 변하는 것 없이 모든 게 제자리에만 멈춰 있다면 인간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179p)

 

 

정원사가 무안해할까 봐 그 자리에서는 아무 내색도 안 했지만 니스는 집으로 들어와서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이라니, 언제 적 어휘를. 그러나 정원사의 순진한 태도를 재미있어하던 니스는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기면서 차츰 웃음을 잃었고, 방에 들어와 거울 앞에 섰을 때는 완전히 굳은 얼굴이 되었다. 어린 시절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희들은 아무 괴로움도 없는 1직 도련님들이라서 좋겠어.’

열여섯 살 때 자신 역시 제이와 버즈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친구들을 도련님이라고 느꼈던 그때 그 마음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을까.(183p)

 

 

자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한 아버지도 다윈을 생각해 그 일을 다신 꺼내지 않을 것이다. 우습지만 가정의 평화란 상당 부분 이렇게 한쪽의 묵인과 다른 쪽의 동조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220p)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진실이다.(429p)

 

 

그렇다고 제이가 꽉 막힌 고리타분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제이는 기본적으로 장난꾸러기였다. 특히 동생인 조이에게는 어리다는 이유로 짓궂은 장난도 자주 쳤다. 한번은 밧줄로 동생을 나무에 묶어 놓은 적도 있었다. 조이가 우는 것을 보고 내가 제이, 이런 건 죄가 되지 않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제이는 길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건 죄가 되지만 야구를 하다가 남의 집 유리창을 박살 내는 건 죄가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제멋대로식 재판같이 여겨지기도 했지만, 제이는 유리창을 박살 내는 것엔 숨길 의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숨길 의도가 있는 일만이 벌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야구를 하다 남의 집 창문을 깨뜨린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공을 찾으러 가서 사과하면 화를 내는 집주인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잘못을 고백하러 온 우리를 오히려 기특하게 여겼다. 제이는 우리가 잘못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동생을 놀리는 것 역시 숨길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놀이이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현명한 제이는 인간의 죄의식이 숨김에서 태동한다는 것을 벌써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468p)

 

 

박지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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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8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을 많이 이야기하면 세상에는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의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통 키의 사람이 가장 많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되고, 과하게 먹으면 독이 되는 보통 식품이 있을 뿐이다.(24-25p)

 

 

GMO를 잘 정리한 책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하지만 이미 GMO는 위험하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고, GMO에 대한 위험성 실험이나 주장의 오류를 지적해봐야, 언젠가 진짜로 위험성에 관한 구체적 증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설득될 가능성은 없다. 1만 번의 실험으로 안전성을 주장해봐야 11번째의 실험에서는 잘못되었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학자와 소비자의 가장 큰 괴리일 것이다. 학자는 그 정도면 충분히 확인되고 검증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소비자는 완벽함을 요구한다. 과학은 언제든지 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28p)

 

 

의사들마저 같은 분자도 천연과 합성은 전혀 다르다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한숨 나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약들은 대부분 자연에 없는 순수 화학 합성품 자체이다. 역할과 효능은 용량, 순도, 제형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지 출처가 천연이냐 합성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60p)

 

 

사람들의 식품에 대한 오해 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은 아마도 섭취한 음식이 그대로 몸이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섭취량=소화량도 아니고, 소화량=흡수량도 아니며, 흡수량=축적량도 전혀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자들마저 그런 착각을 한다.

(...)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된다는 생각은 너무나 흔해서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으면 바로 내 몸의 유전자가 변형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물고기를 먹는다고 아가미가 생기지 않고, 소고기를 먹는다고 소가 되지 않음에도 그런 신념은 참 버리기가 힘든 것 같다.(62-63p)

 

 

자연에는 진보도, 합목적성도, 아름다움도 없다. 자연에 그런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단지 인간의 희망이 자연에 투사된 것일 뿐이다.(89p)

 

 

우리는 진짜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위적이고 화학적인 것은 싫어. 하지만 자연에서 만들어진 거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이것이 요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친환경’, ‘유기농을 찾고, 틈만 나면 자연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좋아하는 자연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가공의 자연이다. 아무도 자연 그대로의 삶인 노숙이나 동굴을 좋아하지 않고 가장 비자연적인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짐승의 소리, 천둥소리, 새소리, 물소리보다 가장 비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소리인 음악을 좋아한다. 냄새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고속도로를 가다가 밖에서 퇴비 냄새가 나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맛 또한 그렇다. 자연은 맛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산과 들에 나가서 자연의 식물을 뜯어먹지 않고 인간이 만든 농산물의 특별한 부위만 먹는다. 그것도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지지고 볶아서 먹고 최소한 다른 재료와 조합이라도 한다.

자연은 과연 그렇게 안심하고 믿어도 되는 걸까? 자연의 배신이라는 책은 이런 사고의 맹점을 꼬집으며 자연은 이기적이고 위험천만하며 잔혹한 곳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자연의 이미지에는 뱀, , 말벌, 거머리, 모기, 날벌레 같은 존재들이 누락되어 그저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현실은 수많은 혐오스러운 존재들도 함께 뒤엉켜 생존과 번식을 위해 벌이는 막장 드라마와 유사하다.(90-91p)

 

 

나는 자연과 천연을 강조하는 사람치고 진정한 자연의 이치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익숙한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 무심한 채 자신의 규칙대로 작동할 뿐인데 인간들이 자신에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주 오래된 관행이기도 하다.(92p)

 

 

자연 그대로가 좋고 가공할수록 나빠진다는 것은 거짓이다.

-두부는 나무에서 열리지 않고, 생콩을 먹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농사는 자연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먹는 일본이 세계 최장수 국가이다.(161p)

 

 

수력발전에서 나온 전기와 원자력 발전에서 나온 전기가 다를까?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 있고 추하고 악취 나는 꽃이 있다면 예쁜 꽃에서 만들어진 산소와 악취 나는 꽃에서 만들어진 산소는 성분이 다를까? 실제로 이것을 궁금하게 여겨 직접 실험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같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렇지만 아직 출처에 따라 성능이 다르다는 원시적인 생각은 여전하다. 건강전도사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실제 성분의 기능과 무관하게 석유에서 만들어진 ㅇㅇ과 같은 식으로 항상 진실을 호도한다.(180p)

 

 

과학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냥 자기 입맛대로 말하겠다는 핑계일 뿐이고, 과학이 그 동안에 알아내고 해결한 것들의 방향성을 보면 뻔히 유추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100가지 위험 가능성을 제시했을 때 10가지를 조사하여 10가지 모두 안전하면 나머지 90가지도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90가지를 조사하여 90가지 모두 안전하다면 나머지 10가지가 안전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도 아직 나머지 10가지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위험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은 곤란하기 짝이 없다.

과학의 한계를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주제넘지 않고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정직성, 항상 자기점검하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태도를 겸손이라고 본다면, 과학보다 더 겸손한 분야가 어디에 있는가? 과학은 확정적 표현을 안 한다. ‘삼일 만에 인생이 달라지는 ㅇㅇㅇ’, ‘말기 암도 치료하는 기적의 명약!’ 이런 식의 거짓말은 없다. 과학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여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을 설명한다. 반면 나는 건강전도사들이 노력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과학이 발전하여 과학 스스로가 그동안 설명하지 못하던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설명하지, 과학 밖에 있는 사람이 알아낸 것은 별로 없다.

알레르기, 아토피, 과잉행동장애처럼 세상에는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질병이 많다. 그런데 건강전도사는 뭐가 하나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으면 무작정 그 식품이 질병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증거는 필요 없다. 그저 그렇다고 우기고 여기에 사람들의 체험담만 덧붙이면 된다. 설탕이 흥분독소라는 주장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이 설탕을 많이 먹었다고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설탕 때문에 흥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설탕이 아이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설탕을 먹었다는 생각이 어른의 판단력을 흥분시킨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당장 거짓말이 들통날 확률이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공포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주장들은 대부분 증명하기 힘든 것이고, 명확히 틀릴 경우에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넘어가면 그만이다. 사실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켜버리는 것이다.(181-182p)

 

 

우리의 행동은 체험담보다는 구체적 통계를 따져서 높은 확률에 배팅하여야 한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다 번개를 맞은 끔찍한 사고를 보고 우산을 버리면, 비를 맞아 폐렴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실 건강이나 다이어트 같은 분야는 체험담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만 알아도 거의 전문가나 다름없다. 세상이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은 변덕과 우연성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이비 과학이나 미신에 속기 쉬운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현실을 단숨에 꿰는 쉽고 단순한 해답을 얻으려는 성향을 조심해야 한다. 단순한 해답은 그리 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 , 다이어트와 같은 복잡계 현상은 몇 가지 요인으로 응축할 수 없다. 일기예보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서 슈퍼검퓨터로 분석해도 장기예보가 힘든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내일의 날씨나 장기간 구체적 날씨는 예측하기 힘들어도 연간 예상 강수량, 평균 온도 같은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식품도 그렇다. 각각의 사건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것이 주는 장기적 패턴은 예측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남의 일이고 체험담은 나의 일이다. 인류의 삶은 통계일지 몰라도 나의 삶은 유일한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고 체험담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그 하나가 나에게는 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196-197p)

 

 

식품회사는 항상 누가 나쁘다고 하면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대체 원료를 찾는 쪽으로 움직인다. 오래 사용된 원료가 엉터리 실험으로 시비에 휘말리면 비슷하게 검증되었으면서도 아직 덜 사용하여 욕을 덜 먹는 원료로 교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감미료 소동이 그랬고 지방 소동이 그랬다. 대체 감미료, 지방 대체재, 소금 대체재 등이 과연 설탕, 지방, 소금만큼 안전할 수 있을까?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료가 가장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가장 많이 검증된 원료다. 세상에 독성이 없는 물질은 없다. 물마저 독성이 있고 부작용이 있다. 소금은 생명에 필수지만 상당히 맹독성 물질에 속한다. 가장 말 많고 탈 많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장점이 많아서 오래 사용된 원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식품의 문제는 단지 양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된다. 불량지식이 비용뿐 아니라 리스크도 높이고 있는 것이다.(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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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상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단어를 찬탄과 찬양의 대상으로 여기는 반면 '인공'이나 '화학'이라는 단어를 낮추어 보며 열등하게 취급하는지 말이다. 일례로 비타민c 성분을 과일에서 얻는 것과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화합물로 얻는 것 중 거의 항상 전자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 둘이 우리 몸에서 작용 하는 데는 어떠한 차이도 없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로 그러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는 비단 식품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화장품 업계에서도 천연이니 자연이니 떠들며 관련 화장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고가에 판매 중이다. 화학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 있다면, 아니 해당 성분이 우리 몸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조금의 관심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면 얻을 수 있을 정보를 이렇게나 무시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의 게으름이란 놀랍다이에 대해 끝도 없이 얘기 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 얘기해보자. 바로 콜라겐이다. ‘화장품에 대한 50가지 거짓말의 저자 이나경은 자신의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한때 콜라겐 붐이 일면서 콜라겐 음료, 콜라겐 서플리먼트 등이 휩쓸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콜라겐은 아무리 발라도, 또 아무리 먹어도 우리 피부와 몸에 필요한 콜라겐을 공급해주지 못한다. 콜라겐은 분자의 크기와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피부에 흡수조차 되지 않는다. 만약 침투를 한다 할지라도 피부 내에 손실된 부분을 찾아내어 마치 테트리스처럼 블록이 착착 채워질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167p)

 

이 책은 제목이 말하듯이 식품에 대해 합리적인 생각을 하자고 촉구하는 책이다. 그 방법은 건강에 대한 걱정을 파고드는 불량지식의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식품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자는 것이며, 그 방법은 과학적인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건강 문제의 많은 부분은 품질의 문제라기보다는 양의 문제라고 여러 번 지적한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배격하는 건강전도사, 식품업계, 쇼닥터 등과 마찬가지로 본인 역시 자신의 구미에 맞게 연구결과나 통계치를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저자의 논리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의심의 방식에는 논리가 있어야한다. ‘그냥 그럴 것 같다라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신뢰할만한 사람이었다 한들 덮어놓고 그의 모든 주장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핵심은 말을 한 주체가 얼마나 믿을만한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했던 주장이 얼마나 말이 되는 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저자도 동의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저자의 바람이 충분히 이루어진 걸로 보이며 앞으로 식품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그 방법론을 사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느낄 것 같다.

 

2. 비단 건강전도사에만 한정할 게 아니라 사이비 의학 지식을 나르는 자들(ex. 안아키의 김효진, ‘환자 혁명의 저자 조한경 등등)을 포함하여 대중에게 퍼지는 불량지식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지식을 줄여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3.

http://www.pewinternet.org/2015/01/29/public-and-scientists-views-on-science-and-society/(링크된 페이지의 첫 번째 표 관련)

해당 링크의 표는 여러 사안에 대한 과학자와 일반인의 인식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 중 GMO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가장 큽니다. GMO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눠봅시다.

 

4.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추천할만한 음식점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5. 자연(or천연)과 인공(or화학)이라는 대비되는 개념에 대한 생각을 나눠봅시다.

 

6. 각자의 건강관리(=Diet)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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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1.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은 어떠신지요?

 

역학은 한정된 집단의 건강과 질병의 패턴, 원인, 그리고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역학은 공중위생의 주춧돌이며,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어 필요한 질병예방책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파생된 사회역학은 건강상태와 질병의 사회적 분포 및 사회적 결정요인을 연구, 규명하는 역학의 한 분야. 저자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역학자로서의 의견을 들려줍니다. 이런 책이 대다수의 유력 매체와 지면에서 호평을 받고 연말리스트에 오른다는 사실에서 사회변화에 대한 조금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이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그에 따라 그 사회에 기반한 가치, 관념들이 바뀝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변화도 매우 빠릅니다. 기껏해야 20대에 자신의 전공이라는 한정된 분야만을 공부하고 내 인생에서 배움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 하는 오만한 자는 언제 어디서나 멍청한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수치심을 아는 존재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 대한 혐오나 수치심을 줄이고 시대에 발맞춰나가기 위해서라도 배움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책이 그런 배움에 일조할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얘기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219p)

 

 

 

2. 저자는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현 사회에서 건강이 가장 위협받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은 어떤 집단이라고 생각하나요?

 

1) 의료 시설을 이용하기 힘든 공간에 거주. ex) 시골, 산간벽지

2) 저소득층(x, 전문지식x, 정보획득x 모두 함께 나타날 수 있음)

3) 아동(안아키에 노출된 아이, 아동학대)

 

 

 

3.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게이라는 점을 혐오했던 어머니(및 가족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왜 특정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혐오스러워할까요? 혐오라는 감정의 바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기가 생각하는 아주 협소하고도 편협한 범위의 사회적 기준이 있을 텐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초과하는 경우에 혐오하거나 낯설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책에서도 언급하고 제가 최근에 본 영화(ex. 원더)의 대사에서도 표현되는 것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거나 그에 따른 차별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가령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의 얼굴은 현대의학으로도 평범한 얼굴로 바꿔줄 수 없습니다. 이때 그 얼굴이 비정상적이라고 차별하거나 혐오의 시선을 던지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요소, 즉 그 얼굴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바꾸는 게 선택 가능한 유일한 방법일 텐데 실천이 쉽지 않죠. 이와 같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4.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배심원으로 참가하여 다음의 재판부 의견에 대해 동의 여부를 투표할 수 있다면, 어떤 입장이신가요?

<재판부 의견 : '공산품안전법'에 의하면 그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에게 스스로 안전을 확인해 신고하도록 강제할 근거가 없었고, 그 밖에 살균제의 성분이나 유해성을 확인할 의무나 제도적 수단이 없었으므로 정부기관은 법적 책임이 없다.>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상호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견입니다. 법감정과 사법제도는 다르고 법적인 책임은 없겠죠.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5. 일본의 재난연구자에 따르면 대형 재난을 겪은 지역에는 정부가 여러 지원을 수행하지만, 지원 내역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되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와 치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가 침묵한다고 합니다.(184) 대형재난 이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내역을 언론에 공표하는 것을 제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본문에서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와 같이 침묵하는 게 바로 한 사회의 감수성이자 실력이라고 말 합니다. 적절한 지적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 걸맞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본 언론이 정부의 통제 때문에 해당 사안을 보도하지 않은 건 아닐 거라고 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참사는 참사고 이미 끝난 일이니 그만 좀 하자.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을 할거냐. 그리고 그들의 특혜는 곧 우리의 불이익이니 용납할 수 없다.’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교양수준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닐는지요.

 

 

 

6. 각종 사건, 사고가 넘치는 위험사회 속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시스템을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의 재난대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측면을 살펴볼 수 있겠네요. 우선 정치적으로는 단기적인 정책을 남발하는 자를 가려 뽑아야합니다. 가능할리 만무하겠지만. 둘째, 한국이 치안이 좋다지만 그 말은 한국에 거주하는 성인남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므로 나머지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지키는 삶을 사는 게 필요합니다. 전기 충격기는 필수겠죠. 셋째, 그래봐야 아무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세월호 같은 사건은 또 발생할 테니까요. 현재를 사는 한국인의 인식 수준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다면 세월호 선장 같은 자들이 또 안 나올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포기하세요. 포기하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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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는 초창기에 높은 치사율로 인해 공포의 질병이었지만, 1995년 다양한 약제를 함께 사용하는 칵테일 요법이 도입되면서 그 치료가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2013년 출판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이나 캐나다에 거주하는 스무 살 젊은이가 HIV에 감염되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평균 51.4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HIV/AIDS는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관리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것이지요.(64p)

 

 

한 생존 학생은 참사 이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긴다. 또 다른 학생은 영화관이나 노래방에 들어가면 비상구부터 찾는다. 여느 10대들처럼 까르르웃다가도 주변을 둘러본다. 웃어도 되나 두렵다. 큰 소리가 나면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두통과 강박, 우울증도 흔하다. 참사가 남긴 후유증은 계속된다.

하지만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악성림프종으로 앓아 눕고 숨을 거둬도 산업재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182-183p)

 

 

얼마 전 일본의 재난 연구자 한 분을 만났다. 일본의 경우, 쓰나미 등 대형 재난을 겪은 지역에는 정부가 여러 지원을 수행하지만, 누구도 그 내용을 입에 올리지 않고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원 내역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되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감수성이고 실력이다.(184p)

 

 

저는 동성애와 HIV/AIDS에 대한 이와 같은 거부감이 상당부분 보건학적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AIDS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는 동성애와 HIV/AIDS에 대한 비과학적인 낙인과 혐오로부터 벗어나, 동성애자를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215p)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219p)

 

 

개인적인 이야기인데요. 저는 20세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혁명이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었어요.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어내는 혁명의 전망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제게는 20대 내내 큰 화두였어요.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 그 고민이 마지막에 닿았던 지점이 그런 거였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그토록 적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절반만, 아니 그 반의반만이라도 그때 열정의 10퍼센트를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시간의 10퍼센트를 소외된 약자를 위해 쓰고 있다면,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학생 시절에 했던 다짐이, 지금의 공부와 활동은 앞으로 수십 년간 스스로를 망치는 일과 싸우기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중요한 것은 졸업 이후에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299-300p)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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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호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57p)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심지어는 폴에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폴에게 괴로움을 안겨 줄 생각 같은 건 꿈에도 없었다.(66p)

 

 

그녀는 어리석고 수다스럽고 가식적이었다. 사랑의 행위를 우스꽝스럽게 만듦으로써 그녀는 기묘하게도 그를 노골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에게 있는 애정이나 우정, 혹은 막연한 관심을 무화시켜 버리는 그런 태도가 그녀를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대화가 안 통하고 잘난 체하고 저속하고 시시하고 더러운 여자. 난 그런 여자와의 섹스가 좋아.’ 그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68p)

 

 

‘날 완전히 믿는다니. 완전히 믿는 나머지 날 속이고 혼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참 대단해.’(72p)

 

 

“창문 좀 닫고 아침 식사를 주문해 줘, 자기.”

실망한 로제는 몸을 돌리고는 되는 대로 말했다.

“‘자기’라고? 그게 무슨 뜻인데? ‘자기’라니?”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웃으라고 한 말이 아냐. ‘자기’라는 게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당신은 나를 당신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는 거야? ‘자기’라는 말에 다른 뜻이라도 있나?”

‘이건 좀 심하군.’ 그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놀라며 생각했다. ‘여자가 쓰는 말을 문제 삼기 시작하는 건 끝이 가까워졌다는 얘긴데.’(118p)

 

 

 

ㅡ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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