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6

 


쉽다. 그리스 로마 문명, 기독교, 게르만의 침입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이용해서 유럽역사를 훑는 1부가 특히 인상적이다. 세계사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이 짧은 책조차 다 읽기 버겁다면 1부만이라도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근대부터 조금씩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게르만족은 평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명예는 위험 속에서 더 쉽게 쟁취할 수 있으며, 당신은 폭력과 전쟁 없이 대규모 동료들을 유지할 수 없다. 동료들은 항상 자기 족장에게 물건을 요구한다. 내게 그 군마를 주시오. 아니면 내게 그 피로 물든 승리의 창을 주시오. 식사는 일종의 보수로 소박한 음식이지만 풍족하게 먹는다. 이런 좋은 인심은 전쟁과 약탈이 있어야 충족된다. 당신은 게르만족 사람을 설득하여 밭을 갈게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해의 생산물을 기다리게 만들기란 적에게 도전하고 싸우다 입은 상처에 대한 보상을 얻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땀으로 얻는 것은 기백이 없으며 비천한 짓이라고 생각한다.(27-28p)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역시 다른 그리스인들처럼 단순함을 추구하다가 중대한 오류를 저질러 서양의학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신체의 건강은 네 가지 체액, 즉 혈맥,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가르쳤다. 이로 인해 19세기까지도 피가 너무 많은 것이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될 때는 거머리를 붙이는 치료법이 허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히포크라테스는 너무나 오랫동안 고전으로 받아들여졌다.(79p)

 

 


ㅡ 존 허스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中,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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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

 

 

쉽게 잘 썼다. 대중교양서에서 깊이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여기서 흥미가 생긴 사람이라면 좀 더 세분화된 관련 분야로 독서를 이어가면 되겠다. 1/3정도까지는 매우 좋았는데 후반부는 조금 처진다. 미래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전망은 조금 지겹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되는 과정은 이미 있었던 가능성들을 쳐내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된 것은 당신의 뇌 속에서 무언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유년기 내내 우리의 국소적 환경이 우리의 뇌를 다듬는다. 가능성들의 밀림이었던 뇌를 환경에 적합한 모습으로 되돌린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뇌 속 연결들은 더 적어지고 더 강해진다.(6p)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재구성의 산물이며, 때로는 신화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모든 세부 사항들이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부 세부 사항은 사람들이 들려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어떤 부분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한 바를 내용으로 삼는다. 따라서 만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단순히 당신의 기억에 기초를 둔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기이하고 불안정하며 미완성인 이야기와 유사하게 된다.(41-42p)

 

 

감각정보들은 유형에 따라 제각각 처리 시간이 다르다.

(...)

이 같은 동기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기이하게도 당신이 과거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순간이 발생한다고 당신이 생각할 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감각들에서 유래한 입력 정보를 동기화하는 대가로 우리의 의식적인 알아챔은 물리 세계보다 시간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발생하는 사건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의식적 경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시간 간극이 있다.(72p)

 

 

전통적인 시각 모형에서 시각 지각은 눈에서 시작되어 뇌 속의 어떤 미지의 지점에서 끝나는 데이터 처리의 산물이다. 이 조립 라인 모형은 단순해서 선호할 만하지만 사실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뇌는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기 전에도 나름의 실재를 산출한다. 그 실재를 일컬어 ‘내부 모형’이라고 한다.(75-76p)

 

 

당신의 눈은 비디오카메라와 유사하지 않다. 당신의 눈은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을 포착하여 내부 모형에 제공하려고 여기저기를 탐험할 뿐이다. 카메라 필름이 렌즈를 통해 세계를 포착하는 것처럼 당신이 눈을 통해 세계를 포착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신의 눈은 데이터를 모아서 두개골 안에 있는 세계에 공급할 따름이다.(80-81p)

 

 

어떤 생물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실재를 경험하지 못한다. 각각의 생물은 진화를 통해 지각할 수 있게 된 것만 지각한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모든 생물 각각은 자신이 지각하는 좁은 구역을 객관적 세계 전체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도 무언가 있으리라는 상상을 우리가 멈출 이유가 있을까?(85p)

 

 

뇌라는 기관의 임무는 세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종하는 것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자각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거의 모든 상황에서 뇌의 작동은 당신의 의식적 자각을 동반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경우에 당신은 당신을 위해 내려지는 결정을 자각하지 못한다.(129p)

 

 

 

ㅡ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中,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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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0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22p)

 

 

나에게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뚱딴지같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바보 같은 기대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이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바보 같다 해도,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이상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23p)

 

 

밀레의 편지에도 늘 그가 봉착한 여러 문제가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러저러한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일을 해 나갔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반면 빌더스의 편지를 보면 “이번 주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망쳐버렸다. 이런저런 콘서트나 놀이에 참석한 뒤에는 전보다 더 비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는 식의 글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밀레의 감동적인 면은 “그럼에도 나는 이런저런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이다. (78p)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125p)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141p)

 

 

우리 같은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프게 되면 방금 죽은 불쌍한 관리인보다 더 고독해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고, 집안일을 돌보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 하고 홀로지내면서 가끔은 바보처럼 살고 싶어 한다.

우리의 육체를 보더라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친구가 필요하다.(176p)

 

 

화가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 이제껏 내가 생활했듯 집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기분전환 거리도 없고, 온갖 이웃들이 비난하는 생활을 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240p)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248p)

 

 

“나는 이런저런 것을 그리고 싶다”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항상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때에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던, 기본적으로 아주 다른 시골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림을 더 훌륭하게 끝맺고 싶다, 정성들여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성공한 만큼이나 많은 그림을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지금 베르나르는 부모에게 계속 재촉받고 있다. 그러니 뭘 할 수 있겠니?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도 같은 곤경에 처해 있지.(277p)

 

 

 

ㅡ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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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7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 줄리언 바지니의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이오네스코의 노트와 반노트’, 시인 이승훈을 알게 되었다. 읽어봐야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안 돼. 왜냐하면 그게 더 어려우니까.”(38p)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건 전혀 오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가 (여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들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남자라서)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무지이거나 묵인이거나 잠재적 동조리 오해가 아니다.

비단 택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병원에서,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클럽에서, 집에서·······.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여성들은 크고 작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위의 단어들과 함께 여성, 범죄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여성혐오 사회가 맞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주장들은 그 자체로 우리가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48p)

 

 

하지만 <지상의 밤>과 우리 사이에는 30년 가까운 시차가 있다. 우리는 그때의 사람들이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본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우리는 우리가 숨 쉬는 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시간과 함께 많은 것이 변한 후에야 뒤늦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 많은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난 후에야 미세먼지라는 말을 알게 된 것처럼. 물론 30년 후의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60p)

 

 

나는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고통을 호소하며 혹시 모를 교통사고 후유증을 걱정하는데 나는 같이 병원을 가지는 못할망정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친구 맞나? 사이코패스 아닌가? 인생의 모든 비극은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그때 알던 것을 지금은 모르기도 하고·······(106p)

 

 

즉흥 강연의 최대 단점은 강연이 끝난 후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죽기도 좀 애매하다·······

강연을 예정보다 일찍 마치고 막차를 탔다. 도서관에서 편의를 봐준 덕이었다. 어쩌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일박을 허락하기에는 내가 조금 부족했는지도·······

나는 터미널에서 버스에 탔다. 출발 시각을 5분 앞두고 표 검사를 시작했다. 내 표를 본 남자가 말했다. “내리세요.”

?” 내가 되물었다.

내리라고요.” 남자가 내게 표를 돌려줬다.

왜요?”

내려요. 가다가 울기 싫으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방을 챙겨서 내렸다. 황당하고 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서울행 티켓을 들고 동대구행 버스에 타고 있었다.(113-114p)

 

 

 

금정연, <아무튼, 택시> , 코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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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6

 

 

오르한 파묵의 책은 처음인데 되게 재밌는데? 특히 앞부분 절반가량은 단숨에 읽힌다.

 

 

 

책 서두의 헌사가 내 개인적으로 어떤 중요성이 있는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모든 것은 다른 어떤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게 이 시대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같은 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이다.(16p)

 

 

후에 나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때 그 한순간의 선장의 비겁함이 내 인생 전부를 바꿔놓았다고.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당시 선장이 그처럼 겁을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인생은 여전히 이렇게 바뀌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인생이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도 과거를 되돌아보다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사실은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18p)

 

 

그 후 삼 년간이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매일매일이, 한 달 두 달이 하루처럼 똑같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겪어 왔던 계절들의 지겹고도 견디기 힘든 반복이었다. 우리는 날마다 한 치도 틀리지 않고 되풀이 되는 것들을 고통스럽고 절망적으로 바라보면서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재앙이 오기를 막연히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끔 궁정으로 불려가 허울 좋은 예언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해몽을 해주었고, 목요일 오후면 여전히 사원의 시계실에서 친구들과 모여 과학 이야기를 했으며, 아침이면 여전히 예전처럼 규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종아리를 때렸다. 종종 집으로 놀러와 혼사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그전만큼 단호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무시했고, 여자들과 농을 하기 위해 여전히 듣기 싫은 음악도 들어야 했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증오를 참지 못할 때면 여전히 숨을 가누지 못하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또한 침대 위에 누워서도 손가락은 가만히 두지를 못하고 사방에 쌓인 필사본과 책들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졌으며, 그러다가 천장만 쳐다보며 마냥 시간을 보냈다.

(...)

그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진을 빼놓는 반복적인 일상의 권태를 깨버릴 어떤 재앙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걱정이 됐던 것은 ‘과학’이라는 것을 완고하게 추구할 만한 끈기와 신념이 이미 그에게서 소진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그를 매혹시키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도 거기에 일주일 이상 빠져들지 않았으며, 도중에 바보들을 상기해내고 모든 것을 잊으려고만 했다.

‘그들을 위해 지금까지 생각한 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들을 위해 이 정도까지 고민할 가치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화를 낼 가치가 있을까?’

아마도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정열과 욕구를 과학 연구에 집중시킬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그는 자기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고 믿기 시작했다.(90-92p)

 

 

 

ㅡ 오르한 파묵, <하얀 성>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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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4

 

 

내가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남아 있는 나날’을 즐거이 읽었던 기억으로 기대감이 가득했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소설의 문제라기보다는 무릇 판타지라고 했을 때 독자가 기대할법한 거의 모든 것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하긴 ‘나를 보내지 마’도 겉으로는 SF라는 장르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 읽다보니 또 나름 괜찮아서 후반부는 몰입해서 읽었다. 초반부터 강하게 암시하는데, 기억과 망각에 대한 소설이다. 이때의 기억이란 인간의 사랑에 대한 협소한 기억만 일컫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의 유대가 아주 강하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있으면 저는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을 제 앞에 보여달라고 하지요. 한 사람에게 물어본 다음, 다른 사람에게 같은 걸 묻습니다. 두 사람은 따로따로 말해야 해요.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참된 모습이 곧 드러나요.”

“어렵지 않아요?” 비어트리스가 물었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 정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안다는 거 말이에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쉽게 속을 수 있어요.”

“맞습니다, 부인. 하지만 우리 뱃사공들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속임수를 꿰뚫어 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게다가 가장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할 때에는 진실을 숨기는 게 힘들지요. 부부는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데도 우리 뱃사공의 눈에는 분노나 화, 심지어는 증오가 보일 때도 있어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만 한 경우도 있고요. 더러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다른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보여요.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속적인 사랑, 그런 걸 보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요. 그런 사랑을 보게 되면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두 사람을 함께 배에 태워 갑니다.”(68-69p)

 

 

“게다가 내가 기억을 하든 잊어버리든 내 마음속에 당신을 향한 감정은 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당신은 늘 같은 감정 아닌가요, 공주?”

“나도 그래요, 액슬. 하지만 지금 다시 드는 생각은요, 오늘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이 마치 비를 머금은 잎에서 떨어지는 이 빗방울과 같은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사실 하늘은 오래전에 비가 그쳤는데 말이에요.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의 사랑도 점점 빛이 바래져 완전히 사라져버릴 뿐, 거기에 다른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그 낯선 여자는 내게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함께 나눈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 그 뱃사공은 내가 예상하고 두려워했던 바로 그 대답을 했어요.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액슬, 지금 이 상태에서요? 그와 같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요?”(71-72p)

 

 

“그런데 부인, 당신은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확신하나요? 우리가 알지 못하게 감춰져 있는 편이 더 좋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신부님. 액슬과 저는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되찾고 싶어요. 그런 순간들을 빼앗긴다는 건 밤중에 도둑이 들어와 가장 소중한 걸 빼앗아 간 것과 같아요.”

“하지만 안개는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모두 덮고 있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부인?”

“우리에게 나쁜 기억도 되살아나겠지요. 그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로 몸을 떨기도 할 거고요. 그래도 그건 우리가 함께했던 삶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럼, 나쁜 기억이 두렵지 않은가요, 부인?”

“뭐가 두려워요, 신부님? 오늘 액슬과 제가 각자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아무리 이 안개가 위험을 숨기고 있더라도 기억을 되찾는 길이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이전까지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았더라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건, 어린아이라 해도 알 거예요. 액슬과 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 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243-235p)

 

 

“단순한 거예요, 공주. 케리그가 정말로 죽고 이 안개가 사라지게 되면 말이오. 그래서 기억들이 돌아오고 내가 당신을 실망시켰던 기억들도 생각나면 말이오. 혹은 한때 내가 저질렀던 어두운 소행들이 기억나서, 당신이 날 다시 보게 되고,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말이오. 이것만은 약속해줘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내게 느끼는 그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줘요. 안개 속에서 깨어나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결국 서로를 멀리하게 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오? 약속할 거죠, 공주? 안개가 사라지고 나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내게 느끼는 그 마음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겠다고 약속해요.”(383p)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그냥 잊힌 채 벌 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426p)

 

 

“아내가 그 일의 시작을 자기 탓이라고 했다면 그다음에 일어난 많은 부분은 내 잘못으로 돌려야 해요. 사실 짧은 기간이지만 아내가 날 배신한 적이 있었지요.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내가 어떤 말 혹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요? 지금은 다 아득하게 지난 일이에요. 새가 저 멀리 날아가 하늘의 한 점으로 보이는 것처럼요. 하지만 아들은 이 쓰라린 일을 지켜본 목격자였어요. 달콤한 말로 속이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그렇다고 사람 마음의 갖가지 이상한 점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어요.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떠났고, 아내와 내가 다시 행복하게 재결합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지요.”

(...)

“나는 용서를 이야기하고 실천하면서도, 복수를 갈망하는 마음속 작은 방에 용서의 마음을 오랫동안 꽁꽁 가둬두었던 거지요. 아내에게, 그리고 내 아들에게 옹졸하고 증오에 찬 행동을 했던 거요.”(466-467p)

 

 

 

ㅡ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中,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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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8

 

 

그로부터 얼마쯤 지난 늦은 여름. 어쩌면 다음해 늦은 봄. 의외로 늦은 가을이나 늦은 겨울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날. 우리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해서 지도가 태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복기했다. 그러고는 문득 대화를 멈추었다. 우리는 머릿속에만 남아 있을 뿐인 한창때를 그리워하는 노인들처럼 아득한 시선으로 베이지색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벽은 마냥 산뜻했다.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하자 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해.”(15p)

 

 

“unknowing the known, knowing the unknown. 미지는 기지로, 기지는 미지로.”(180p)

 

 

 

 

ㅡ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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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8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과 강점은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르지는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범위 안에서 합법적 수단으로만 통치하도록 하는 법치주의, 언론·출판·사상·표현·집회·시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입법부와 사법부를 행정부와 분리하여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삼권분립,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예방하고 시정하는 일을 주된 임무로 하는 독립적 국가기관 설치, 복수정당제와 같은 제도화된 권력분산과 상호견제 장치가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 된 것은 모두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116p)

 

 

사람들을 훌륭한 삶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삶을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수양하면서 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실천하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169p)

 

 

재벌 총수와 그 가족들, 기업 경영자와 임원들, 대학교수, 큰 신문사와 방송사의 간부들이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사실 역시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한계급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하위 소득계층 유권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선거를 할 때 주로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에 표를 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베블런의 이론에 따르면 그것 역시 유한계급제도와 관계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데도 돈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산적 노동을 하면서도 몹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베블런은 그 둘이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이미 말한 것처럼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변화된 환경이 무엇인지, 나의 정신적 태도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데 대한 본능적 저항감을 극복하려면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 지배적 생활양식에 순종하면서 일상적 생존투쟁을 견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201p)

 

 

 

 

ㅡ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中,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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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2

 

 

 

 

이렇듯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모형들에도 대개 개발자의 목표와 이념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인스턴트 음식을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없다는 원칙을 정했을 때, 나는 식단 모형에 내 이념을 주입한 셈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행동한다.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부터 무엇을 질문할지까지, 우리 자신의 가치관과 바람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모형들은 수학에 깊이 뿌리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모형이 성공적인지 판단하는 것도 개인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모든 모형의 핵심 요소는 성공에 대한 정의다.(45p)

 

 

LSI-R 질문지는 범죄자의 가족, 이웃, 친구들까지 포함해서 범죄자의 출생 환경과 성장 배경 모두를 세세히 다룬다. 그러나 이런 세부 사항들이 형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재판에서 검사가 피고의 형에게 전과가 있다거나 그가 범죄율이 높은 동네에서 산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피고에게 흠집을 내려 한다면, 유능한 변호인은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반박할 것이다. 제대로 된 판사라면 이의 제기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사법 시스템의 근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

LSI-R 같은 재범위험성모형은 치명적인 피드백 루프를 확대재생산한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일정한 직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족과 친구가 많은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들은 재범 위험성평가에서 받은 높은 점수가 더해져, 더욱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범죄자들에게 둘러싸인 감옥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수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오랜 수감 생활은 그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즉 재범 위험성을 확실히 증가시킨다.

이들은 마침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더라도 예전에 살던 가난한 동네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과자라는 별까지 단 상태라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런 상황에 몰려 그가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재범위험성모형은 의문의 1승을 추가하는 셈이다. 그런데 실상은 더욱 잔인하다. 재범위험성모형 자체가 그런 악순환이 발생하는 하나의 원인이며, 그런 악순환이 지속되는 데 일조한다. 이것이 바로 WMD의 대표적인 특징이다.(53-54p)

 

 

솔직히 헤지펀드는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으로, 위험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결코 나 같은 외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 헤지펀드는 자체적으로 위험관리팀을 운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상품을 구매하는 주된 이유는 단지 투자자들에게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85p)

 

 

금융위기 이후에도 월스트리트의 문화는 그대로였다. 트레이더들은 위험 신호에 대비하기 보다는 실질적인 위험이 닥치기 전까진 이를 과소평가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했다.(87p)

 

 

지원자가 많으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만 남기고 나머지 지원자들을 불합격시킬 수 있다. 다른 대리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입학 경쟁률은 시장의 움직임을 반영하기에 타당한 기준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장 자체가 조작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령 전통적으로 중위권으로 분류되는 학교의 데이터를 조사해보면, 우수한 성적으로 뽑힌 학생들의 수업 등록률이 극히 낮다. 이는 우수한 지원자들의 경우, 상향 지원한 대학에 합격하면 보험에 드는 심정으로 지원한 대학에 굳이 진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위권 대학들은 수업 등록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 선발 알고리즘을 조정하고 있다. 성적이 뛰어나더라도 입학 가능성이 낮은 지원자들은 떨어지도록 말이다.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조차 입학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대학마저 이제 더 이상 확실한 보험이 아니라는 당혹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대학교들 또한 선발한다면 반드시 등록할 일부 우수한 학생들을 놓치게 됐다. 이런 선발 과정은 교육적으로도 전혀 올바르지 않다.(108p)

 

 

이 모두가 분명 가치 있는 목표처럼 들리지만, 모든 순위 시스템은 항상 조작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피드백 루프들이 활성화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진다. 가령 기준을 낮춤으로써 졸업률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다. 수학과 과학 분야의 필수 과목과 외국어에서 고전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이들 과목의 이수 조건을 완화하면 졸업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교육 시스템의 목표 중 하나가 글로벌 경제에서 활동할 더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 들을 양성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수 기준을 낮추는 것이 과연 현명한 조치일까? 졸업생들의 평균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도 땅 짚고 헤엄치기다. 교양 과정을 축소하고 교육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폐지하면 그만이다. 교사와 사회복지사들은 공학자, 화학자, 컴퓨터과학자들보다 돈을 못 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적게 버는 직업이라고 해서 사회적 가치가 덜한 것은 결코 아니다.(120p)

 

 

약탈적 광고는 전형적인 WMD. 이런 광고는 절박한 사람들을 찾아내 표적공략한다. 가령, 교육과 관련된 약탈적 광고들은 대부분 거짓된 성공 로드맵을 약속하면서 잠재 고객에게 갈취할 돈을 극대화할 방법을 계산한다. 이런 광고의 작동 방식은 거대하고 악의적인 피드백 루프를 활성화시키며, 고객들을 엄청난 빚더미에 올려놓는다. 뿐만 아니라 광고의 표적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속고 있는지도 거의 알지 못하는데, 이는 약탈적 광고 캠페인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컴퓨터 화면에 팡! 하고 나타났다가 나중에 전화가 걸려오는 식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선택됐는지 또는 어떤 경로로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그렇게 많인 입수할 수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127p)

 

 

뿐만 아니라 영리 대학들은 오프라인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어번 어셈블리의 또 다른 대학 진학 상담교사인 캐시 마제시스는 영리 대학들이 이력서 작성 방법을 알려주는 무료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간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연락처 정보를 제공한 가난한 학생들은 나중에 영리 대학들에 사실상 스토킹을 당하다시피 한다. 반면 영리대학들은 부유한 학생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학생 모집 활동은 영리 대학들의 사업에서 핵심이다. 대부분의 영리 대학이 교육 자체보다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 상원이 30곳의 영리 대학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영리 대학의 학생과 신입생 모집인 비율이 48 1이었다. 피닉스 대학교의 모기업인 아폴로 그룹은 2010년 마케팅 비용으로 10억 달러 이상 지출했는데, 마케팅 예산의 거의 대부분이 신입생 모집에 집중됐다. 예를 들어, 학생 1인당 마케팅 비용은 2225달러인데 비해 학생 1인당 교육비는 892달러에 불과했다. 이런 수치를 오리건 주에 있는 포틀랜드 커뮤니티 칼리지와 비교해보자. 이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5953달러인 반면 마케팅 비용은 학교 전체 예산의 1.2%로 학생 1인당 185달러에 불과하다.(140-141p)

 

 

안타깝게도 약탈적 광고의 세상에는 영리 대학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동지가 아주 많다. 고통 받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 모든 곳에 약탈적 모형을 휘두르는 광고주들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분야로 대출 시장을 들 수 있다. 누구나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우편번호별 통계에서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 거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약탈적 광고주가 볼 때, 이들 지역의 IP로 접속해 검색엔진에서 대출을 알아보고, 할인쿠폰을 클릭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특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자신들을 쳐다봐달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리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소액 단기대출업체들도 WMD를 활용한다. 합법적인 업체가 운영하는 WMD도 있다. 하지만 대출 산업 자체가 본질상 약탈적이다. 미국에서는 단기 대출에 평균 574%의 터무니없는 고금리를 취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소액대출업체가 채무자들을 평균 여덟 번 정도 다른 대출로 갈아타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훨씬 장기적인 대출처럼 보이게 한다. 소액대출산업의 WMD는 수많은 데이터 브로커와 리드 창출자들에 의해 유지된다. 이름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숫제 사기꾼이나 마찬가지다. 소액대출업체들이 마구 뿌려대는 신속한 대출을 약속한다는 광고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팝업창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된다. 그런 광고를 보고 자신의 은행 정보를 포함해 신청서 작성한다면, 자신의 정보를 도용하고 오용할 사람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셈이다.(145-146p)

 

 

UCLA 인류학 교수로 프레드폴을 창업한 제프리 브랜팅햄은 프레드폴 모형은 피부색과 민족성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양형 지침으로 사용되는 재범위험성모형을 포함해 여타 예측 프로그램들과 달리, 프레드폴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지리적 데이터에 온전히 집중한다. 프레드폴이 활용하는 핵심 변인은 각 범죄의 유형과 발생 장소, 그리고 발생 시점이다. 이는 언뜻 보면 아주 공정한 것처럼 생각된다. 경찰들이 범죄 발생 위험 지역들에 출동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강도와 자동차 절도를 예방한다면, 그 지역이 혜택을 입을 거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범죄는 강도와 차량 절도 같은 중대 범죄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프레드폴 시스템을 적용할 때, 경찰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먼저 경찰들은 이른바 1군 범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1군 범죄란 살인, 방화, 폭행같이 대개 경찰에 신고가 들어오는 강력 범죄다. 여기에 부랑죄, 적극적인 구걸, 마약을 소량 판매하고 복용하는 행위 등 2군 범죄를 포함시킴으로써 치안 활동의 초점을 확장할지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미한 방해범죄는 경찰이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는다면 범죄로 기록되지 않는 것들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경미한 범죄는 흔한 일이다. 오죽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그런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동이라고 부르겠는가. 2군 범죄를 모형에 포함시키면 분석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 방해 범죄 데이터를 예측 모형에 입력하면 더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로 출동하게 되고, 당연히 그런 동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당할 것이다.

경찰들이 강도, 살인, 강간 같은 중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순찰을 도는 것일지라도, 우범 지대로 분류된 동네에서는 순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작은 범죄라도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경찰이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만약 순찰을 돌다가 기껏해야 16살 정도로 보이는 미성년자 둘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중단시키는 게 옳다. 그러다 보면 이런 경범죄가 경찰의 범죄 예측 모형에서 점점 더 많은 점을 차지하고, 이는 다시 경찰이 그 지역을 순찰하게 만든다.

이는 바로 유해한 피드백 루프가 활성화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경찰 활동 자체가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시키고, 이런 데이터가 다시 더 많은 경찰 활동을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교도소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범죄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동네 출신이고, 또한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계다.

설령 모형이 색맹’, 다른 말로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피부색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 지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오늘날 미국 도시에서 지리적 요소는 인종에 대한 유효적절한 대리 데이터다.(150-152p)

 

 

그런데 맥대니얼의 사례를 공정성의 사례를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그가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에서 성장한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다. 그의 삶은 예전부터 범죄에 둘러싸여 있었고, 범죄에 연루된 사람도 많이 알았다. 그는 그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주로 주변 여건 때문에 위험인물로 여겨졌다. 그 결과, 그는 이제 경찰의 감시를 받는 요주의 인물이 됐다. 만약 맥다니엘이 마약을 구입하거나,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거나, 혹은 미등록 총기를 휴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면, 사법 당국 전체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평소 그런 행동을 일삼는 미국인이 수백만 명이나 되는데도, 법 집행 당국이 맥다니엘에게 훨씬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건 간에 그는 미리 경고까지 받았지 않았나.

경찰을 맥대니얼의 집으로 이끈 모형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는 시카고 경찰의 모형이 잘못된 목표를 설정했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단순히 범죄를 퇴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맥대니얼의 동네에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는 켈링과 윌슨의 깨진 유리창 연구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앞서 말했듯, 그 이론의 사례 연구에서 경찰들은 도보 순찰을 하면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지역사회의 기준을 준수하도록 돕기 위해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체포를 치안과 동일시하는 모형들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켈링과 윌슨이 제시한 목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178-179p)

 

 

다시 카일 벰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카일이 크로거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맥도날드에는 무사히 입사한다고 가정해보자. 카일은 맥도날드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펄 난다. 입사하고 넉 달이 지나기도 전에 주방 매니저가 되더니 1년 후에는 전체 프랜차이즈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승진한다. 이럴 경우, 크로거의 누군가가 인성적성 검사를 살펴보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확인할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농구 모형은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반영하는데, 왜 채용 모형은 그러지 않을까? 농구팀들은 수백만 달러의 잠재적 가치를 지닌 선수 개개인을 관리한다. 경쟁 우위를 획득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는 농구팀의 애널리틱스 엔진은 늘 데이터에 목말라 있다. 지속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농구팀의 선수 관리 시스템은 부정확하고 시대착오적인 구닥다리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 최저임금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많은 직원을 집단으로 관리한다. 이런 기업들은 인적자원 담당자들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기계는 많은 사람을 추려서 더욱 관리하기 용이한 집단으로 만든다. 가령 습관성 도벽이 발병하거나 생산성이 급감하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회사로선 부적합 지원자를 걸러내는 채용 모형을 수정할 이유가 거의 없다. 비록 잠재적 인재를 놓치기는 하겠지만, 그 모형은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는 셈이다.

채용 모형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현재 상태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화된 채용 시스템의 희생자들은 고통 속으로 내던져진다.(190-192)

 

 

이력서를 자동으로 심사하는 시스템이 확산되기 전인 2001년과 2002, 시카고 대학과 MIT의 공동 연구진은 <보스턴 글로브><시카고 트리뷴>에 구인광고를 낸 1300여 개의 회사에 5000장의 가짜 이력서를 보냈다. 일자리는 사무직에서 고객 서비스와 영업까지 다양했다. 각각의 이력서에는 인종적 색채를 띠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력서 절반은 에밀리 월시와 브렌든 베이커 같은 전형적인 백인 이름을, 남지 절반은 라키샤 워싱턴과 자말 존스 같은 전형적인 흑인 이름을 썼다. 이름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조건은 거의 동일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첫째, 백인 이름을 사용한 이력서에 대한 반응률이 흑인 이름의 이력서 보다 50%나 높았다.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아마도 두 번째 결과가 훨씬 더 놀라울 것이다. 백인 지원자들은 이력서의 내용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확실하게 달랐다. 백인 지원자들 중에서 화려한 이력서가 그렇지 못한 이력서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채용 담당자들은 백인 지원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이력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나 흑인 지원자들의 경우, 이력서가 훌륭하든 아니든 반응률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같은 실험 결과로 볼 때, 인종적 편견은 여전히 채용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93-194p)

 

 

(...)

이런 프로그램은 대학입학사정의 경우와 매우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이력서를 준비하는데 투자할 돈과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승자가 된다. 돈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 지원자들은 자신의 이력서가 블랙홀로 직행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이는 빈부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정보와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경쟁우위를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오해가 없도록 분명하게 밝힐 게 있다. 비단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력서와 관련된 비즈니스는 언제나 이런저런 편견에 물들어 있었다. 앞선 세대의 경우, 정보에 밝은 사람들은 이력서 내용을 명쾌하고 일관성 있게 구성하고, IBM 타자기 셀렉트릭 같은 고급 기계를 사용해서 작성하며, 좋은 용지에 인쇄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이력서는 취업의 문고리를 쥐고 있는 인간 문지기를 통과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반면 자필 이력서나 등사기를 사용해 잉크 얼룩이 번진 지저분한 이력서들은 대부분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이렇게 볼 때, 기회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경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순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승자가 되려면 기계 문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기계 문지기들의 불평등한 평가는 취업 시장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계를 설득하는 능력은 우리의 생계 활동에 갈수록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는 구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박이든 자동차 정비소든 사업의 성공은 검색 엔진의 검색 결과에서 얼마나 앞쪽에 등장하는가에 달려 있다. 구직 활동이든 승진이든, 혹은 정리해고의 칼바람에서 살아남는 것이든, 오늘날 사람들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승리의 비결은 기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하고 과학적이며 민주적이라고 칭송받는 오늘날의 디지털 세상에서도 내부자들은 여전히 중대한 우위를 차지하는 비결을 알아낸다.(196-197p)

 

 

그렇다면 효율성과 공정성을 모두 담보해줄 기준으로 무엇이 적당했을까? 이는 매우 쉬운 문제처럼 보였다.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은 수십 년의 입학사정 경험이라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컴퓨터 시스템이 지금껏 인간이 해왔던 절차를 그대로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당신의 짐작이 맞다. 이런 정보가 바로 문제의 근원이었다. 인간에게서 지원자들을 차별하는 법을 배운 컴퓨터는 인간들보다 한 술 더 떠서 기가 막힐 만큼 효율적으로 차별적인 심사를 했다.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을 오해하기 전에 이 말부터 해야겠다. 컴퓨터에 반영된 학습용 데이터의 모든 차별적 요소가 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 이름이나 외국 주소를 기입한 상당수의 지원자가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알듯 의학 교육을 받을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늦게라도 영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입학사정관들은 그런 가능성을 고려하기는커녕, 영어에 능통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원자들을 불합격시켰다.

이처럼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전통적으로 서류전형에서 문법적 오류와 철자 오류가 많은 지원서들을 골라냈는데, 문맹이나 다름없던 1970년대 컴퓨터는 그런 전례를 따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은 대리 데이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과거에 영어 사용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탈락한 지원자와 동일한 출생지나 주소지의 지원자에게 낮은 점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파키스탄, 영국 내 이민자 집단 거주지 같은 특정 지역 출신 지원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고, 당연히 면접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탈락한 지원자의 절대다수는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입학사정관들은 여성 지원자들을 기피했는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의사로서의 경력과 상충될 거라는 진부한 이유를 내세워 이를 정당화했다. 당연히 프로그램도 똑같은 선택을 하도록 설계됐다.

(...)

수학 모형들이 데이터를 철저히 조사해서 범죄, 빈곤, 교육 등 중요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사회가 선택할 몫이다. 그들을 배제하고 처벌하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면서 끌어안을 수도 있다. 요컨대 WMD를 치명적인 무기로 만드는 2가지 특징인 확장성과 효율성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199-201p)

 

 

그러나 지금까지 알아보았듯, 재범위험성모형부터 교사평가모형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WMD는 모형에 현실을 반영해 수정하기보다는 원하는 현실을 창조한다. 관리자들은 모형이 계산한 점수가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기꺼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근거를 갖추어서 인간이라면 망설일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그 같은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객관적인 숫자에 떠넘기는 것이다. 그들에게 숫자가 진실을 담고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225p)

 

 

채용과 승진 절차에 신용평가점수를 고려하는 관행은 빈곤의 악순환을 촉발시킨다. 신용 이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면 신용 이력이 더욱 나빠지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는 사회 초년생이 첫 직장을 구할 때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장기 실업자의 어려움과도 닮았다. 너무 오랫동안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줄 곳이 거의 없는 그런 경우 말이다. 이는 불운한 사람들이 한번 휩쓸리면 빠져나오기 힘든, 파괴적인 피드백 루프라고 할 수 있다.

고용주들은 책임감 있는 사람은 신용이 좋고, 그래서 신용이 좋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채를 도덕적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기업이 파산하거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바람에, 혹은 비용 절감이라는 허울 때문에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많은 사람이 매일 일자리를 잃고 있다. 불경기라면 실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실직과 한께 건강보험 자격도 상실하고 있다. 무보험 상태에서 행여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면 그들은 여지없이 대출금 연체자가 된다. 일명 오바마 케어 혹은 건강보험 개혁법이라고 불리며 건강 보험 미가입자 수를 감소시킨 부담적정보험법을 적용받아도, 의료비용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개인파산 사유다.(248-249p)

 

 

실수는 학습의 기회가 된다. , 시스템이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일 때만 그렇다. 구글은 다행히도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WMD 모형에는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삼는 과정이 빠져 있다. WMD의 자동화 시스템은 e점수를 생성하기 위해 우리의 데이터를 샅샅이 훑는다. 이는 과거를 그대로 미래에 투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재범 위험성에 따른 양형 모형이 그렇고, 약탈적 대출 알고리즘도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런 예상에 부합하는 대우를 받는다. , 기회를 박탈당하고, 더욱 자주 감옥에 가며, 서비스와 대출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불이익을 받는다. 이는 냉혹하고 불공정한 일이지만 평가 과정이 알고리즘에 철저히 숨겨져 있어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스스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모든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기계들은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 무엇도 조정할 수 없다. 최소한 기계 스스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데이터를 샅샅이 조사하고 무엇이 공정한지 판단하는 것은 기계로선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며 지독히도 복잡한 일이다. 오직 인간만이 시스템에 공정성을 주입할 수 있다.(258-259p)

 

 

차차 알아보겠지만, 보험업계의 개인화 움직임은 아직까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이미 우리를 예전보다 더 소규모 부족으로 분류하고, 우리에게 각기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를 고객 맞춤 서비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보가 개개인이 아니라 가상의 집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사용하는 모형은 우리와 행동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 특정한 집단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정확도와는 상관없이 분석의 불투명성은 바가지 보험료로 이어질 수 있다.(272p)

 

 

자동차용 블랙박스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데이터를 분석당하는 것보다 감시를 당한다는 데 더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들은 모니터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추적당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에 관한 정보가 광고주들에게 팔리거나 국가안보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용케 감시를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라이버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비싸진다.

아직까지 자동차 보험사들의 추적 시스템은 초기 단계다. 게다가 운전사의 사전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 추정당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만 자신의 차량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작동시키면 된다. 그 대가로 당장 5~50%의 보험요율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혜택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반면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함으로써 할인율로 발생한 보험사의 수익 감소를 메워줄 것이다). 어찌 됐건 보험사들은 더 많은 정보를 입수함에 따라 더욱 정확하게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경제의 본질이다. 차량 내 추적 시스템으로 얻은 정보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통찰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수익으로 전환시킨 보험사들이 업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을수록 보험사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는 추적 시스템이 보험업계의 표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보험사들에 필수적인 정보만 제공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보험을 고수하려는 소비자들은 할증료를, 그것도 상당히 높은 할증료를 지불해야만 할 지도 모른다. WMD의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는 오직 부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 되고 있다.

감시는 보험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보험은 지역사회의 불행한 소수의 필요에 반응하기 위해 다수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수백 년 전 마을에서 누군가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누군가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면 가족친지와 이웃, 그리고 신앙이 있다면 신도들이 도와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시장경제에서 우리는 이런 도움을 보험사들에 위탁하고, 보험사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보험료의 일부를 취한다.

우리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보험사들은 위험도가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런 다음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보험요율을 적용하거나 법률이 허락하는 선에서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 스스로 다양한 위험을 균형 있게 관리하도록 돕는다는 보험의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난다. 표적화의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평균치만 부담할 수 없다. 예상되는 미래 비용 또한 부담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우리가 삶의 장애물을 수월하게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장애물에 대비해 미리 비용을 청구할 것이다. 이것은 보험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며, 장애물을 극복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더욱 혹독한 일이 될 것이다.(283-285p)

 

 

그러나 오늘날에는 TV에서도 개인화된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가령 뉴욕에 위치한 시뮬미디어 같은 신세대광고 회사들은 TV 시청자들을 행동에 따라 세분화된 버킷으로 분류해 사냥 애호가, 평화주의자, 대형 SUV 운전자 등 생각이 비슷한 사람별로 맞춤화된 광고를 제공한다. TV를 비롯해 모든 언론이 시청자와 독자들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정치적 마이크로 타기팅의 잠재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 타기팅이 보편화될수록 이웃 간에도 서로 어떤 정치적 메세지를 전달받는지 알기가 어려워진다.

(...)

물밑에서 실행되는 캠페인은 정치권과 유권자 사이에 정보 불균형 상태를 초래한다. 정치 마케팅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관리하고,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찔끔찔끔 제공하면서 각자 정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측정한다. 반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웃들에게 어떤 정보가 제공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이것은 비즈니스 협상가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전술과 닮았다. 이들은 협상의 양 당사자를 개별적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어느 쪽도 협상가가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은 여러 집단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막는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

이처럼 프로필과 예측으로 무장한 채 날로 성장하는 마이크로 타기팅 과학은 WMD로서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 거대하고 불투명하며 무책임하다. 또한 정치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을 도와준다.

각 유권자를 점수화하는 행태는 또 다른 폐해를 낳는다. 소수의 유권자들만 무대 중앙에 올리고 나머지 유권자들을 조연으로 만듦으로써 민주주의를 손상시킨다.(324-326p)

 

 

탐욕에서 비롯됐든 편견에서 나왔든, 부당함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 WMD의 폐해가 최근 역사에서 인류가 보여준 비열함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과거에도 대출 담당자나 채용 담당자가 대출을 해주거나 직원을 채용할 때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한 인종집단 전체를 차별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최악인 수학 모형이라도 그런 관행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사결정은 가끔 오류가 있기는 해도,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 하나 있다. 바로 진화하는 능력이다. 학습하고 적응함에 따라 개개인은 변화하고 우리가 운영하는 제도나 시스템도 개선돼 왔다. 반면에 자동화된 시스템은, 기술자들이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가령 빅데이터 기반의 대학 입학사정 모형이 1960년대 초반에 구축됐더라면,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1960년대 초반 박물관들이 고수했던 위대한 예술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들을 규범으로 삼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예술 작품이 부유한 후원자들의 돈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백인 화가들의 손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당연히 앨라배마 대학교의 미식축구 팀도 온통 백인 선수였을 것이다.(336-337p)

 

 

 

 

캐시 오닐, <대량살상 수학무기> , 흐름출판

,

2018/2/21

 

 

저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그의 말과 행동을,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물으며 읽었다. 많이 배웠다.

 

 

, 나중에 하율이가 커서 음악 한다고 하면 허락할 거야?” 하고 묻기에 내가 뭐라고 허락을 해. 아이 인생이 내 것은 아니잖아하고 대답했었다. 실제로 나는 아이의 직업이나 배우자나 진로에 대해 내가 허락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대답에 감탄하는 친구를 보며 , 이렇게 열린 생각을 가진 부모라니!’ 하고 스스로 뿌듯했는데, 20년 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자신은 있으면서 오늘 아침 아이가 고른 옷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나의 현실이다.(39p)

 

 

출산 후 한동안은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 엄마가 먹는 게 그대로 젖이 되어 아이에게 가기 때문에 특히 초기엔 매운 음식이나 커피를 거의 먹지 못한다. 오히려 임신기보다 수유기에 더 제약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수유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했던 나는 아이만 낳으면 열 달 동안 참았던 맥주를 마음껏 마시리라고 생각했었다. 맥주는커녕 커피도 못 마신다는 걸 알고 망연자실해 있는 내게 빛나 선배가 말했다. “마셔! 마시고 짜서 버려. ,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거야.”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1년여 간의 금주를 끝내고 목구멍으로 맥주를 넘기던 순간,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내가 평생 마셨던 술 중 가장 맛있는 술이었다. 집에 돌아와 서너 번쯤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버리면서 생각했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우울한 엄마가 주는 모유보단 행복한 엄마가 주는 분유가 맛있지 않겠니?’(50p)

 

 

그런데 왜 그런 이성적인 생각은 끓어오르는 분노 앞에 속수무책인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 해보았다.

 

뭐가 이렇게 못마땅하지?

-그 사람이 예의 없게 행동했잖아.

다른 사람이 예의 없게 굴었을 때도 화가 났었나?

-물론 그렇지.

회사 선배나 상사가 널 화나게 할 때도 그 화가 3일씩 가고 그랬나?

-그건 아닌 듯.

그때도 어떻게 하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나?

-그것도 아니지.

그럼 왜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화가 가라앉을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지?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할 수있으니까.

 

이거였다. 계속 화가 났던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화내도 되는대상이었던 것이다. 내가 화를 내도 내게 크게 해를 끼칠 일이 없는 사람. 마치 식당의 진상 손님이나 콜센터 직원에게 분풀이하는 저열한 고객처럼. 생각해보면 회사 상사와 같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상대일 경우에는 부스스 화가 가라앉게 마련이었다. 비겁한 나의 감정이여.

어떻게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 약자에게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성숙한 인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내 아이에게 나는 절대자다. 먹을 걸 주고 옷을 입힌다. 내가 물리력으로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며, TV를 볼지 말지 따위의 사소한 것도 내가 허락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자식에게 조심스럽다.

(...)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인 것 같다. 우리가 자동적으로 훌륭해진다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강자인 내가 철저히 약자인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존중감으로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 자식이 아니면 내가 누구를 상대로 이런 사랑을 해보겠는가. 화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힘으로 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74-77p)

 

 

애덤 그랜트의 책 <오리지널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래드클리프 칼리지(어디 있는 학교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맥상 유명한 명문 대학인가 보다)를 졸업하고 30대가 된 여성 수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헌신하는데 부모의 영향은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정신적 스승(롤모델)14퍼센트 정도 기여했단다.

(...)

부모의 영향력은 1퍼센트 미만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환호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하율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부모는 필요 없어진다는 말이 아닌가. 내 경우를 생각해봐도 10대에 들어서서는 이미 엄마의 말이 잔소리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는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하율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자식의 삶이 달라진다는 무거운 책임을 비로소 벗는 날. 내가 내 인생 앞에 선 개인일 뿐이듯, 너 역시 네 삶을 짊어지는 단독자라고 말할 수 있는 날. 그때가 오면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네가 스스로 찾아가야 해. 경영학 책에서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야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할 것이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책들이나 적선하듯 툭툭 던져줘야지.(78-80p)

 

 

영화 초반, 주인공 팀이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에도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아빤 좀 더 평범하셨다. 항상 시간이 남아도는 분이셨다. 50세 생신 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면서 이젠 얘기도 하고 나한테 탁구도 져주시면서 여생을 여유롭게 사시게 됐다.” 팀의 아버지가 누리는 여유로운 삶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산 버전이다. 첫 번째로 살았던 삶은 어땠을까.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나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최대한 오래, 끝까지 일을 하지 않았을까. 쉰 살의 나이에 은퇴할 수 있는 사람은 암에 걸린 시간 여행자뿐이라는 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사지만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82p)

 

 

동생이 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에 빤해 나는 동생에게 참 무신경했다. 동생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 갈 길을 갔던 내 모습이, 그런 악의 없는 무심함이 더더욱 동생을 괴롭혔을 것임을 지금은 안다. 무지가 상처를 주는 메커니즘이 늘 그렇듯 내게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93p)

 

 

1. 집안일은 공동의 일이다. 당신이 남자 룸메이트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면 절반 분담을 당연히 여기지 않겠는가. 하물며 나는 당신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약하다. 당신이 더 많이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외벌이에 전업주부라고? 그렇다면 전업주부에게도 직장 다니는 남편처럼 출퇴근과 휴일과 휴가의 개념을 적용해야 하지 않나. 그걸 요구하지 않는 아내라면, 고마워해야지.)

2. 나도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빨아서 개어준 속옷을 입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집안일에 특별한 기술있지 않다는 말이다. 나도 잘 못 한다. 많이 해서 익숙해졌을 뿐이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집안일에 서툴다면 아내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3. 아내가 남편을 칭찬할 때 대개는 잘 달래서 이거라도 하게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웃는 경우가 많다.

4. 당신이 아무리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해도 아내가 그보다 많이 하고 있다. 억울해할 것 없다.

5. 시댁에 갔을 때 조카들이랑 놀아준다고 방에 들어가 있지 마라. 당신이 블록을 맞추는 동안 거실과 주방에선 많은 일이 일어난다.

6. 아이의 옷, 장난감, 유모차를 사는 게 내 쇼핑이냐? 도끼눈 좀 뜨지 마라. 정작 내 옷은 사지도 못했다. 뭘 사야 하는지 찾아보는 것도 육아에 속한다. 얼마나 시간과 품이 드는지, 당신도 한번 해보고 얘기하자.(129-130p)

 

 

나는 기억한다. 내가 감기에 걸려서 감기약을 지어왔을 때 친정엄마는 얼른 먹어라하시고, 시어머니는 애기 젖 주고 먹어라하셨던 걸. 그런 건 참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늦은 밤 술자리에서 내게 어떻게 아기 엄마가 이 시간에 술을 마셔요?”라고 묻던 그 남자의 말투를. 그날 내가 불쾌감을 표시하여 술자리의 흥을 깨뜨린 것에 대해, 기어코 당신에게 사과를 받은 것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133-134p)

 

 

<채식주의자>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폭력성이라고들 하고 특히나 어떤 평론가는 소설 속 아버지의 행동을 남성적 폭력이라 칭했는데, 나는 이들의 모습이 한국적 폭력’, 혹은 한국 부모의 폭력으로 읽혔다. 이를테면 그것은 자식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계속 입을 때 그 옷을 가위로 잘라버리는 폭력이다. ‘저대로 두면 몸이 상할 텐데라면서 입에 억지로 고기를 쑤셔 넣는 모습의 연장선에 저러다 겉멋이 들어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닐까걱정하며 바지를 잘라버리는 내 엄마가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 자식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다는 태도, 아니 개입해야 한다는 믿음, 그것도 아주 깊숙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달려들어 자식의 잘못된 면모를 바로잡아주려는 공격적인 모성 혹은 부성.(136p)

 

 

요 며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나는 왜 방금 전에 하지 말아야지다짐한 말을 또다시 하고 있을까. 내가 망한다면 뭘로 망할까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분명하다. 난 말로 망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이야기하고 보면 사실 별것 아니라 머쓱해지면서.

나는 왜 이렇게 흥분을 잘할까. 없어 보이게.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일까. 화내지 않고 조곤조곤 차분히 말하고 싶다. 제발.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약할까. 편집하다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왜 좀 더 버티지 못하고 바로 페북을 열고 딴짓을 할까. 그러다 시간이 휙 지나 결국 허둥댈 거면서.

나는 왜 내 단점을 알면서 고치질 못할까. “수연아, 너는 흥분 하지만 않으면 돼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선배에게 듣고 감동했던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지긋지긋하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관심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덥석 하겠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닥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 능력을 상회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야 하는 일임을. 철회하기 쪽팔려 꾸역꾸역 하면서 내 경솔함을 후회하겠지.

나는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잘할까. 게다가 대부분의 거짓말은 잘난 척이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지가 언제고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만 벌써 몇 번째냔 말이다.

나는 왜 나이를 서른다섯이나 먹고도, 입사 9년 차가 되고도, 애를 둘이나 낳고도 나는 왜 이럴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요즘 하율이에게 자주 하는 말. 왜 엄마가 한 번 말하면 안 듣니? 엄마가 아까부터 양말 신으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안 신었니? 만화는 두 개만 보기로 약속해놓고 왜 징징대니? 두 개만 보기로 했으면 두 개 끝나고 딱 꺼야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의 나는 진심으로 짜증이 나 있다. 하율이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짜증을 못 이겨 하는 말이다.

내 못나고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하율이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다. 내 삶은 하율이보다 훨씬 엉망이지만 하율이는 여섯 살이고 나는 서른다섯 살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하율이에게 너도 네가 네 마음대로 안 되지? 엄마도 그래라고 말하는 게 옳다. 너는 왜 그러냐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할 게 아니라.

사실 제일 답답한 건 나잖은가. 나는 대체 왜 이럴까, 이 말이 지금도 사무치게 올라오는걸.(143-145p)

 

 

내가 밥을 먹으라고 하면 하율이는 바로 와서 밥을 먹어야 하나?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해야 하나? 하율이는 나에게 화를 내면 안 되나? 왜 그렇지·····? ‘내가 강아지를 돈 주고 샀으니까가 말도 안 되는 대답이듯이, ‘내가 너를 낳았으니까도 아이가 내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내가 너를 먹이고 키우니까’, ‘내가 너의 부모니까’·····. 그 무엇도 내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지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애초에 그럴 이유란 없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서로에게 표현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뿐이다. 아이는 거기에 서투니 내가 알려준다혹은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간다가 맞는 말일 것이다.

(...)

아이에게 혼을 내거나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그저 화를 내고 있을 뿐임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이 책을 읽고 반성했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하율이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될 리는 없지만, 최소한 그게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기준은 갖게 되었다. ‘이건 이상이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라고 덮어두지 말고, 내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으로 계속 떠올리고 싶다.(148-149p)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남편은 진지하게 퇴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사실 남편이 휴직, 이직, 퇴직을 고민한 건 꽤 오래된 이야기다.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그만둘까? 옮겨볼까?결심을 굳힐 때쯤 바쁜 시즌이 끝나 퇴근이 조금 빨라지거나 보너스가 들어온다그래도 이만큼 월급을 주는 회사도 드물지, 옮겨봐야 다른 데도 퇴근 시간은 비슷하잖아? 일단은 그냥 좀 더 다니자다시 바쁜 시즌이 돌아온다이렇게는 못살겠다, 돈을 좀 덜 받아도 일찍 끝나는 데로 옮기자그럼 어디 한 번 알아볼까?여기저기 알아보며 고민하는 사이 월급이 들어온다·····. 이런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그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하율이의 시력은 완성되었으며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189p)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아이는 행복의 증명이 아니며, 당신이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는 딱 그만큼 나 역시 내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을 늘어놓듯이, 비혼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역시 그만의 행복을 나열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229p)

 

 

<옥자>를 보며 생각했다. 하율이와 하린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나는 조연일 거라고. 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내 부모님의 비중이 크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를 쓰고 자식을 먹이고 키우겠지만 바로 내가 하율이와 하린이가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들에게 벌어지는 중요한 일들을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다 알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인간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할진대, 유독 자식에 대해서만 내가 너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건 오만이다. 다만 이 오만이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게 슬프다. 자식이 철이 들수록,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수록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영역이 늘어간다.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할수록 비밀이 늘어가는 모순.(234-235p)

 

 

 

장수연,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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