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보면 모든 생물체가 요행이랍니다, 놀랍도록 총명하신 군주여. 필연적인 형질이란 없습니다.

- 우리 스퀸치는 우리 행성에서 요행히도 특정 사건들이 특정 순서대로 발생한 결과입니다. 우리 선조가 살았던 독특한 환경 조건에서 번성했던 독특하고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145p)

 




ㅡ 제이 호슬러&케빈 캐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 中,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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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잘 읽혔다. 그게 단점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저 거창한 제목을 봤을 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전개, 굳이 이렇게 길고도 긴 소설로 만들어야 했느냐는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소설 보다는 하루키의 에세이와 여행기를 찾아봐야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은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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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7




지난번에 나이를 먹으니 밸런타인데이가 하나도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재미없어지는 건 밸런타인데이만이 아니다. 생일도 영 재미가 없어지고 만다. 자랑할 건 못 되지만, 최근의 내 생일에는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었다.

 물론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 마누라는 선심 쓰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선물 뭐가 좋아요? 뭐든 사줄게요!"라고 말하고, 또 대개는 실제로 사준다. 그러나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녀가 사든 내가 사든 돈 나오는 구멍은 똑같은 것이다. 10만 엔짜리 카세트덱을 사다줘서 우아! 하고 당장은 기뻐 날뛰어도, 월말이 되면 "저기,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라는데" 할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생일선물로 무얼 받든 기쁘지 않고 감동도 없다.(107~108p)

 


센다가야에 살던 시절, 집 근처 킬러 거리에 맛있기로 평판이 난 라면집이 두 곳 나란히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면 싫어하는 라면 냄새가 풀풀 풍기는 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늘 고생스러웠다. 어느 친구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라면이 먹고 싶은 격렬한 욕망을 억누르느라 굉장히 고생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라면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하는 차이만으로도 인생살이의 양상이 꽤 달라지겠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228~229p)



ㅡ 무라카미 하루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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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충고가 곧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로서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205p)

 

 



ㅡ 한승태, <인간의 조건> 中,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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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도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일요일이 형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엿새 동안의 어두웠던 정신 작용을 이날 하루에 산뜻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형은 많은 희망사항을 이십사 시간 속에 던져 넣는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열 개 중에 두세 개도 실행하지 못했다. 아니 그 두세 개조차 모처럼 실행하려고 하면 도리어 그로 인해 소비되는 시간이 아까워져 꼼짝 않고 지내는 사이에 일요일은 어느덧 저물어버리기 일쑤였다. (p33)

그는 오래도록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p264)


ㅡ 나쓰메 소세키, <문> 中,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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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일이 싫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기쁜 마음으로 배운 것이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17p)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23p)


고별사를 읽으면서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채플을 네가 해야 할 일의 일부로 여겨야 해. 닭의 창자를 끄집어내는 일처럼 여겨야 해. 코드웰 말이 맞아. 어디를 가든 늘 너를 미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을 거야. 아버지, 룸메이트, 채플에 마흔 번이나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 따라서 또다른 학교로 옮긴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냥 일등으로 졸업이나 해!(122p)


"집에서 멀리 있으니 행복하니?"...
"전보다 나아요. 엄마." 전보다 나아요. 엄마가 전보다 못한 대가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176p)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239p)



ㅡ 필립 로스, <울분>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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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이 점을 어렸을 때 인식했다. 그는 모든 종교가 불쾌했으며, 그 미신적인 허튼 수작이 의미없고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그 지독하게 어른스럽지 못한 면-그 젖비린내 나는 이야기와 독선과 양떼, 그 게걸스러운 신자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죽음과 신에 관한 야바위나 천국이라는 낡은 공상이 통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몸만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서 우리에 앞서 살다 죽어간 몸들이 결정한 조건에 따라 살고 죽는 몸. 그가 그 자신을 위한 철학적 틈새를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틈새였다. 그는 일찌감치 직관적으로 그 철학과 마주쳤으며, 그것이 아무리 초보적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만에 하나 자서전을 쓰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제목은 『남성 육체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를 터였다. 그러나 그는 퇴직 후에 작가가 아니라 화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일련의 추상화에 그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저지 턴파이크 바로 옆에 있는 황폐한 공동묘지의 어머니 곁에 묻히던 날에는 그가 무엇을 믿느냐 또는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p57~58)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p130~131)



ㅡ 필립 로스, <에브리맨>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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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개인으로, 집단의 일원으로 꾸는 꿈은 단지 우스울지 모르나, 인간이라는 경계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 인간의 꿈 전체를 한데 모아 보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천문학자들이 밝히는 우주는 끝없이 광활하다. 망원경에 잡히지 않는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알 수 없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함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가시적 세계에서 우리 은하계는 작은 부분이고, 이 작은 부분 안에 있는 태양계는 눈에 겨우 띄는 반점만 하고, 이 반점에서 우리 지구는 현미경으로 잡힐까 말까 하는 점과 같다. 질소와 물의 불순물, 물리․화학 물질 덩어리들이 몇 년간 이 지구라는 점 위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자신들을 구성한 원소들로 분해된다. 이 덩어리들은 분해 시점을 되도록 늦추려는 자기 보존 욕구와, 반대로 자신과 구...성 성분이 비슷한 다른 원소들로 서둘러 분해되려는, 다시 말해 ‘타자를 위한 열렬한 몸부림’사이에서 싸우다 수명을 마친다.
천재지변으로 수천 개의 덩어리들이 주기적으로 파괴되고, 질병으로 인해 그보다 많은 숫자가 일찌감치 사라져 간다. 이런 물리적 사건을 우리는 ‘불행’이라고 평가하지만, 막상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이런 파괴적 행위를 할 때는 기뻐하며 신에게 감사의 기도까지 바치곤 한다. 태양계라는 시계로 쟀을 때, 인간이 물리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은 전체 중에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자연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인간은 서로 파괴하기 위한 ‘헌신적 노력’으로 미리 삶을 마감해 주는 ‘친절’까지 베푸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삶이다.
삶에 대한 이런 서글픈 관점을 그냥 받아들이면 인간은 견디지 못하고 생존할 수 있는 본능적 에너지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종교와 철학에서 그 탈출구를 찾았다. 외부 세계가 아무리 무심하고 낯설게 느껴져도, 우리의 ‘종교 위안부들’은 겉으로 보이는 갈등의 저변에는 ‘화합’이 존재한다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키려 한다. 이들은 최초의 성운으로 시작된 오랜 역사의 진보가 인간에 와서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햄릿>은 많이 봤지만, 거기서 첫째 선원의 역할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역할은 “신이여, 당신을 축복하소서.”라는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이 인생에서 유일한 직업인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사람들이 햄릿이나 허레이쇼, 길덴스턴 같은 주인공들과 접촉도 없이 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상상해 보라. 이들은 첫째 선원의 말 세 마디(“신이여, 당신을 축복하소서.”)가 전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문학 비평 체계를 고안해 내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른 부분도 그 부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이들을 모욕하고 추방하는 식으로 벌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햄릿 전체에서 첫째 선원의 대사가 차지하는 부분보다 훨씬 미미하지만, 우리는 우주라는 무대 뒤에서 우리 삶이 속한 희곡의 후반부를 들을 수 없고, 또 다른 등장인물이나 구성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에, 인류 전체에 호감을 가지고 인류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비국교도신자이며 일개 식료품점 주인인 존스 씨는 자신이 영생을 누릴 만하다고 여기기에,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 우주는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설탕에 몰래 모래를 섞고 일요일에 신자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자신의 앙숙 로빈슨 씨를 떠올리며 우주의 자비가 도를 넘어섰다고 여긴다. 결국 존스 씨의 완벽한 행복을 위해서는, 로빈슨 씨 같은 사람이 가야 할, 불이 이글이글 타는 지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우주적 존엄성은 가지지만, 우주의 약한 자비 때문에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불분명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로빈슨 씨 역시 존스 씨에 대해 내용만 다르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행복을 유지한다. (p32~34)



ㅡ 버트런드 러셀,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中,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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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25~26p)


"아니요.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난 스스로에게 정말 솔직해질 때면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 맞아. 난 약간은 재능이 있어. 아니면 재능 있는 사람인 척할 수 있거나.' 하지만 그런 건 둘 다 요행이에요, 제리. 재능이 주어진 것도 요행, 빼앗긴 것도 요행이라고요. 이놈의 인생은 시작부터 끝까지 요행이에요."(42p)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리라는 생각을 하면 때로 놀랍기도 해. 내가 죽었을 때도 그럴 테지."(63p)


'내가 뭘 걱정하는데? 난 그 사람이 하루하루 더 늙어간다는 게 걱정돼.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예순다섯에서 예순여섯이 되고, 그다음엔 예순일곱이 되고, 그런 식으로 계속돼. 몇 년 후에는 일흔이 되겠지. 넌 칠십 먹은 노인이랑 살게 될 거고.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란다.' 어머니가 계속 말했어요. '그 다음에 그는 일흔다섯 노인이 될 거야. 절대 멈추지 않아. 계속 돼. 노인들한테 으레 생기는 건강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할 텐데, 어쩌면 상황은 그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그 뒤치다꺼리는 네 책임이겠지. 그 사람을 사랑하니?'(86p)


남자가 가는 길에는 수많은 덫이 갈려 있었는데, 페긴이 그 마지막 덫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그 덫에 발을 들였고,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포로처럼 미끼를 물었다. 파국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마지막에야 알았다. 있을 법하지 않았냐고? 아니, 예측 가능했다. 한참 후에 버림받았다고? 분명 그녀에겐 그가 느꼈던 것만큼 긴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를 매혹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때가 되자 그것은 그녀가 "이제 끝내요."라고 말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살고자 하는 욕심도 비운 채 혼자 그 막대 여섯 개만 지니고 그의 굴로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페긴은 차를 몰고 떠났다. 붕괴 과정은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자초한 몰락으로 인한, 이제 결코 회복할 길 없다는 사실로 인한 붕괴.(140p)



ㅡ 필립 로스, <전락>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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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의 사항을 떠올리는데 짜증이 치민다. 볼 필요도 없다. 차 한쪽이 망가졌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가 눈에 훤하다. 몇 달 동안 서류 절차, 보험 소송과 반대 소송, 전화에 매달려 살 테고, 정비소는 약속 일자를 미뤄대겠지. 그의 차는 본디의 참모습을 잃었으며, 아무리 감쪽같이 수리한들 결코 원래로 돌아가지는 못 할 것이다. 앞 차축, 축받이에도 충격이 갔고, 장기적인 고문의 핵심이 될, 비밀에 싸인 부속 장치, 즉 랙 앤드 피니언 방식의 조향장치도 충격을 받았다. 이 차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차는 처참하게 달라졌으며, 그의 토요일도 그렇다. 시합은 글렀나보다.(139~140p)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를 둘러싼 육지며 바다에서 기계나 다름없는 생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존재라고 믿던 편리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물고기조차 고통을 느낀다. 확장되는 도덕적 연민의 범위, 이것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적 조건이다. 머나먼 곳에 사는 사람들만 우리의 형제자매가 아니다. 여우도, 실험실 생쥐도, 그리고 이제는 물고기까지도 우리의 형제자매다. 퍼론은 낚시 한 것을 직접 먹거나 바닷가재를 산 채로 펄펄 끓는 물에 던져넣은 적은 없지만, 언제든 식당에서 주문해 먹을 의향은 있다. 늘 그래왔듯이,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다. 이렇게 통찰력을 발휘해 떠들어봐야 가까이에 있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당해낼 수 없는 힘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것은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이 잔잔한 메릴본에서 세계가 그토록 온전히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다.(209~210p)


그들은 앞으로의 운수를 믿을 수 없으며,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한다. 그들은 또한 모든 것이 끝난 뒤, 서로를 되찾고 난 뒤에는, 망각의 약속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448p)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는 표면적인 차이점일 뿐이다. 그것은 그저 계급이나 기회만의 차이는 아니다. 술꾼과 마약쟁이 들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출신은 다양하다. 최악의 폐인 중에는 사립학교 출신들도 있다. 직업 환원주의자 퍼론은 그것이 결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분자 단위의 암호로 기록된 성격적 결함의 문제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생계를 꾸릴 수 없는, 혹은 '한 잔 더'를 뿌리치지 못하는, 혹은 오늘 하리라고 어제 결심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암울한 운명이다. 사회 정의를 제아무리 강력하게 실현한다 해도 모든 도시의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심성 허약한 집단을 치유하거나 사라지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헨리는 목욕 가운 앞섶을 바짝 여민다. 악운을 보면 바로 알아차려야 하며,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중독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지만, 어떻게든 마음이나 편하게 해주고 비참한 상태를 최소화시켜주는 것밖에는 해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451p)


그는 약하고 무지하며, 하나의 행동이 결과를 빚는 과정에서 자신은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또다른 사건, 또다른 결과를 낳아, 결국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결코 자진해서 선택할 리 없는 지점ㅡ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ㅡ에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 무서울 따름이다.(460p)



ㅡ 이언 매큐언 <토요일>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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