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
모두가 알지만, 누구나 읽지는 않는 고전 중 하나인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읽었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을 쓴 많은 저자 중에서 굳이 플로베르의 책을 읽은 이유는 별거 없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좋아하는데 가령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의 책”과 같이 작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은 작가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아하고, “이모부의 서재”,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와 같은 서평집은 독서욕을 자극하므로 좋아한다. 또 “유혹하는 글쓰기”, “소설가의 각오”와 같이 글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놓고 정작 소설 작법에 대한 배움보다는 그들의 인생사를 들려주는 책도 좋다. 이런 책을 읽던 와중에 서평가 금정연의 “난폭한 독서”라는 책에서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를 언급하는 부분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책과 독서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으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부바르와 페퀴셰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로 애석하다면 애석하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얘기로 느껴져 읽고 싶은 마음에 ‘부바르와 페퀴셰’를 샀으나,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정작 읽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다. 인생이 늘 그런 식이다.
흔히 좋은 평가를 받으나 쉬이 읽어내기에 버거울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들 대부분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책들은 왜 지루하고 그 지루한 것을 왜 읽는가. 나는 방금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읽는가’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세상에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란 없는 법이다. 허접한 비유를 들어 얘기해보자면 일반냄비와 뚝배기의 차이다. 두 냄비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라면이 먹고 싶을 때 뚝배기에 끓이지 않는다. 라면을 먹는 이유는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을 빠르게 끓일 수 있는 일반 냄비를 사용한다. 온기가 오래 가지 않고 뚝배기보다는 빨리 식는다는 점을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음식이 온기가 오래갈 필요는 없으므로 금방 식는다고 단점이라 불평할 일은 아니겠다. 그저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반면에 뚝배기에서는 물이 비등점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라면을 끓이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비교적 오랫동안 온도가 유지되는 음식에 적합하다. 즉 짧은 순간의 몰입과 집중적인 재미를 원한다면 그에 부합하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책을 읽으면 되고, 발동이 걸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무한정 지루할 수도 있으나 차곡차곡 쌓아가는 재미를 느끼고자 한다면 그런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므로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으나 세월을 견디며 많은 사람에게 충분한 인정을 받게 된 소위 말하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는 이유라면 지루함을 참고 읽어낸 독자에게 그것을 만회할만한 경험을 제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놓으니 모든 책이 다 가치가 있고 읽을 만하다는 PC하지도 않을뿐더러 하나 마나 한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코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좋은 책이 좋지 않은 책에 비해 드물었다. 이것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위의 비유는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논외로 하고 소위 말하는 좋은 책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기준과 포부를 가지고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읽으려는 사람이 있을 텐데 아무리 한가롭기로서니 부러 자신을 학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재미도 없는 딴소리를 계속하고 있는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의 대강의 줄거리는 ‘엠마 보바리라는 한 여자가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륜을 통해 생의 활력을 찾지만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지극히 통속적이고도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로베르가 처음 마담 보바리를 쓸 때 당대의 흔한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평범한 통속소설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궁금해서 책을 읽은 후에 역자의 해설, 평론가들의 분석 등 이것저것을 찾아보았다. 책을 읽으며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것을 예리하게 짚어주는 것도 있었고, 전혀 생각지 못한 지적도 있었다. 직접화법도 간접화법도 아닌 자유간접화법을 통해 화자가 물 흐르듯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운율과 리듬감을 중시한 단어(솔직히 이건 번역본을 읽으니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를 보여준다고도 하며, 여러 가지 상황과 등장인물을 통해 작품 전반에 깔아놓은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한다. 풍부한 함의를 가지며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아이러니다. ‘마담 보바리’라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지배적인 정서는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에 무려 4년의 기간 동안 몰두했다. 4년이라는 기간 중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집에 거주하며 ‘마담 보바리’를 썼다고 하며, 초고 작성과 그 후에 이어지는 지난하고도 끝없는 퇴고 과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집필 중의 편지왕래를 통해 당시의 퇴고 과정과 그 방향에 대한 플로베르의 의견을 엿볼 수가 있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가 부분으로 나누어서 분석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이해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전후 맥락 없이 특정 대목을 인용해봤자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 그 아이러니를 온전히 느끼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옮겨보자면 이런 식이다.
“이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주일에 한 번씩 애인을 만나러 시내로 나가는 허락을 남편에게서 얻어내고야 말았다. 한 달이 지나자 심지어 사람들은 그녀가 놀랍게 발전했다고까지 말했다.(378p)”
이 부분은 엠마가 피아노 레슨을 핑계로 불륜의 상대와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당연하게도 피아노 레슨 따위는 1초도 받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그녀의 실력이 늘었다고 평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사람들이 흔히 남에게 하는 말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고 들었으니 그저 실력이 향상됐을 거라고 짐작했겠고 자연스럽게 그런 말들을 별 생각 없이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이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남 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동서고금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만 더 옮겨보자.
“전나무 숲속의 무덤가에서 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서 울고 있었다. 흐느낌으로 찢어질 듯한 그의 가슴은 달빛보다도 더 부드럽고 칠흑 같은 밤보다도 더 헤아릴 길 없는 엄청난 회한에 짓눌려 어둠 속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갑자기 철책문 소리가 삐걱하고 났다. 레스티부드와였다. 그는 잊고서 두고 간 삽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담을 기어올라 도망가는 쥐스텡을 알아본 그는 그제서야 언제나 그의 감자를 훔쳐가는 도둑놈이 누군지 알아냈다고 생각했다.(490~491p)”
이 부분은 엠마의 독촉에 못 이겨 간접적이나마 엠마의 죽음을 방조한 쥐스텡이라는 사람이 죄책감에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레스티부드와라는 성당지기가 도둑놈으로 오해하는 장면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레스티부드와에 대해 혀를 차며 성급한 사람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와 같은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어디 레스티부드와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자신이 당하는 오해만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해로 얼마나 많은 타인을 억울하게 했을까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모든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 오해 따위는 없는 관용과 이해의 삶을 살 수 있느냐고 플로베르에게 물을 수 있을 텐데 우리네 인생사가 말처럼 그리 쉽지도 않을뿐더러 플로베르의 생각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언급한 부분들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삶이라는 아이러니를 충실히 담고 있는 소설이며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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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풍습에 따라 그녀는 뭘 좀 마시라고 권했다. 그가 사양하자 그녀가 다시 강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웃으면서 자기도 마실 테니 리큐어를 한잔 마시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찬장에서 퀴라사오 병을 꺼내오고 손을 뻗쳐 조그만 유리잔 두 개를 집어다가 하나에는 가득히, 다른 하나에는 살짝 붓는 척만 하고는 잔을 맞부딪친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거의 빈 잔이었으므로 그녀는 마시기 위하여 몸을 뒤로 젖혔다. 그렇게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내민 채 목을 길게 늘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웃으면서 예쁜 이빨들 사이로 혀끝을 내밀어 컵 밑바닥을 몇 번씩이나 날름거리며 핥았다.(39p)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일수록 그녀의 생각은 그것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를 가까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권태로운 전원, 우매한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 따위는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 어쩌다가 그녀가 걸려든 특수한 우연에 불과한 반면, 저 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대한 나라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마음의 기쁨을 혼동하고,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과 감정의 섬세함을 혼동하고 있었다. 인도산 식물의 경우가 그렇듯이 연애에도 그것을 위해 준비된 땅과 특수한 기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달빛 아래서의 한숨, 긴 포옹, 내맡긴 손에 떨어지는 눈물, 육체의 뜨거운 흥분과 우수에 젖은 애정 같은 모든 것은 한가로움으로 가득한 거대한 성관의 발코니, 두꺼운 융단이 깔리고 가득한 꽃 바구니, 단 위에 침대가 놓이고 비단 장막이 드리워진 규방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거기에다 보석의 광채와 하인들이 입은 제복의 장식끈의 빛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90p)
고개를 돌리자, 샤를르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챙달린 모자를 눈썹께까지 푹 눌러 쓰고 위아래의 두터운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바보스럽게 보였다. 그의 잔등을, 그 태연한 잔등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녀의 눈에는 프록코트에 덮인 그 잔등 위에 그의 사람됨의 진부함이 온통 다 진열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짜증스러운 기분 속에서도 일종의 잔인한 쾌감을 맛보면서 그녀가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레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추위로 창백해졌지만 그 때문에 얼굴엔 한층 더 감미로운 우수가 서린 것 같아 보였다. 넥타이와 목 사이로 조금 느슨해진 셔츠의 칼라가 살을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한쪽 귀의 끝이 머리칼 다발 밑으로 나와 있고 구름을 쳐다보고 있는 크고 푸른 두 눈이 엠마에게는 산속의 하늘 비친 호수보다도 더 맑고 더 아름답게 보였다.(149~150p)
주고받는 대화는 활기가 없었다. 보바리 부인은 매번 말을 꺼내는 듯하다가 스스로 그만둬 버리곤 했고 레옹 자신도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는 벽난로 옆 낮은 의자에 앉아서 상아 바느질 상자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늘을 놀리면서 가끔 손톱으로 천에다 주름을 잡곤 했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녀의 말에 사로잡혔다면 그랬을 것처럼, 그녀의 침묵에 발목이 잡힌 채 말이 없었다.
“딱한 사람이군!”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의 어떤 면이 맘에 안 들어서 저럴까?”하고 그는 자문해보았다.(154~155p)
“사실”하고 그는 엠마 곁으로 되돌아와서는 커다란 사라사 손수건을 이빨로 물어 펴면서 말했다. “농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들 말고도 또 있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의 노동자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실례지만 말입니다, 내가 아는 불쌍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정숙한 여성들은, 정말이지 거의 성녀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인데 빵 한 조각 없이 헐벗고······”
“하지만 저어······”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양쪽 끝이 일그러졌다). “신부님, 빵은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겨울에 불이 없는 여자들”하고 신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거야 아무러면 어때요?”
“뭐라고요! 아무러면 어떠냐고요? 내가 보기엔 사람이란 몸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만 하면······왜냐하면······결국······”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하고 그는 걱정스러운 듯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혹시 소화 불량이 아닐까요? 보바리 부인,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차를 좀 드세요, 그러면 기운이 납니다. 아니면 흑설탕을 탄 냉수를 한잔”
“왜요?”
그녀는 어떤 몽상에서 막 깨어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인께서 손으로 이마를 짚기에 그랬죠. 현기증이 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러고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그런데 방금 나한테 뭔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게 뭐였지요? 생각이 안 나네요”
“제가요? 아무것도 아녜요······ 아무것도”하고 그녀는 되풀이했다.(167~168p)
사랑은 부재로 인하여 조금씩 꺼져 갔고 미련은 습관 속에서 질식해 버렸다. 그녀의 창백한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불길의 남은 빛은 더욱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점점 사라져갔다. 의식이 몽롱해진 탓인지 그녀는 남편에 대한 혐오를 연인에 대한 동경으로 착각했고 불타오르는 증오를 새로이 뜨거워지는 애정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여전히 폭풍은 휘몰아쳤고 정열은 타오를 대로 타올라 재가 되었지만 아무런 구원도 오지 않고 햇빛은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채 어디를 향해도 캄캄한 밤이었으므로 그녀는 뼛속으로 스며드는 무서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은 채 갈 곳 몰라하고만 있었다.(182p)
로돌프는 부드러운 가죽장화를 신고 있었다. 저 여자는 분명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으리라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가 커다란 우단 저고리에 흰 털로 짠 바지를 입고 층계참에 나타나자 엠마는 그 풍채에 매혹되었다.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229p)
그래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자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어졌고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태도가 달라져 갔다.
그는 이미 옛날처럼 그녀를 울리던 저 감미로운 말을 더 이상 입에 담지 않게 되었고 그녀를 미치게 하던 저 열렬한 애무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그녀가 그 속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었던 그들의 엄청난 사랑이, 마치 강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강물처럼 그녀의 발밑에서 줄어들어 가는 것 같았고 마침내 그녀의 눈에 강바닥의 개흙이 보였다. 그녀는 그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욱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러자 로돌프 쪽에서는 점차 무관심을 감추려 하지 않게 되었다.(247p)
“그러나 살구 때문에 졸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어떤 종류의 냄새에 극도로 민감한 체질의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건 병리학적 견지에서나 생리학적 견지에서나 연구해 볼 만한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겁니다. 신부들은 그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 옛날부터 종교의식에는 향료를 써왔던 겁니다. 그 목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황홀한 기분을 자아내는 데 있죠. 게다가 남성보다 더 섬세한 여성들의 경우는 효과를 거두기가 쉽죠. 그중에는 뿔을 태우는 냄새나 부드러운 빵 냄새만 맡아도 기절하는 예까지 있다고 하거든요······”(301p)
그들은 둘다 자기들의 과거가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각자가 하나의 이상을 만들어가지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생활을 거기에 맞추고 있었다. 게다가 말이란 언제나 감정을 길게 늘이는 압연기 같은 것이다.(340p)
샤를르는 그녀가 그토록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도 슬퍼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동적인 그녀의 고통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자기의 슬픔을 털어버리면서,
“어제는 재미있었어?”하고 그는 물었다.
“네”(365p)
그녀는 그를 보고 <키가 커지고 말랐다>고 했다. 그와 반대로 아르테미즈는 <튼튼해지고 볕에 그을렀다>고 했다.(374p)
이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주일에 한번씩 애인을 만나러 시내로 나가는 허락을 남편에게서 얻어내고야 말았다. 한 달이 지나자 심지어 사람들은 그녀가 놀랍게 발전했다고까지 말했다.(378p)
처음 한동안 그것은 엄청난 행복이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그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즉, 그의 주인은 이렇게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뭐, 어때요! 그냥 나와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 그는 몰래 빠져나왔다.
그녀는 레옹에게 검은색 옷만 입으라고 했고, 그가 루이 13세의 초상처럼 턱수염을 뾰족하게 기르기를 원했다. 그러고는 그의 거처를 알고 싶어했고 직접 보고 나자 초라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에 레옹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곧 그에게 자기네 것과 같은 커튼을 사서 달라고 권했다. 그가 돈이 든다고 반대하자,
“어마! 어쩌면 그렇게 쩨쩨해요!”하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만날 때마다 레옹은 지난번 밀회 이후의 모든 행동을 낱낱이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시를, 그녀를 위한 시를, 그녀를 찬양하는 사랑의 시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첫줄을 쓰고 나면 아무리 해도 둘째 줄의 운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선물용 시집에서 십사 행 시 하나를 베껴 보냈다. 허영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엠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녀의 생각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하지 않았다. 그녀의 취미는 모두 받아들였다. 그녀가 그의 정부라기보다는 그가 그녀의 정부가 되었다. 그녀의 정다운 말과 키스는 그의 혼을 쏙 빼놓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깊고 은밀한 나머지 물질 세계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인 이런 퇴폐적 기교를 그녀는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401~402p)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410p)
“이런 옷감을 미터당 칠 수에 염색 보증한다며 팔고 있으니 원! 그래도 사람들은 믿는다니까요! 아시겠지만, 정직하게 다 말하며 장사할 수야 있나요”그는 이렇게 다른 손님들에게는 속임수를 쓴다고 고백함으로써 그녀에 대한 자신의 에누리없는 정직성을 납득시키려 했다.(414p)
결국 레옹은 엠마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난로 옆에서 동료들이 떠들며 놀려대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장차 그 여자 때문에 얼마나 난처한 일을 당할지, 또 어떤 소문이 퍼질지를 생각하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신이 후회되었다. 게다가 그는 곧 수석 서기가 될 참이었다. 자중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풀루트 연습도 집어치우고 감정의 흥분이나 공상의 세계와도 인연을 끊었다.ㅡ속된 부르주아도 젊음의 피가 끓어오르면 단 하루, 단 일분 간일망정 자기가 위대한 정열을 바칠 수 있고 드높은 일을 해낼 수가 있다고 믿는 법이니 말이다. 가장 보잘것없는 바람둥이도 동방의 황후를 안아보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 법이고 일개 공증인도 가슴속에는 시인의 잔해를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그런 분에 넘친 꿈들을 접었다.
이제 그는 엠마가 갑자기 가슴에 매달려 흐느껴 울기라도 하면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도 일정량이 넘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의 마음은 시끄러운 사랑타령엔 무관심하게 졸기만 할 뿐 이제는 그 미묘한 맛을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사람은 서로를 너무나도 알아버려서 기쁨을 백 배나 더해주는 저 경이로운 소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레옹이 그녀에게 싫증이 난 것만큼 그녀 역시 상대에게 물려버렸다. 엠마는 간통 속에서 결혼 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그대로 발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 따분한 간통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녀는 이러한 행복의 저속함에 굴욕을 느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습관 때문에 혹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녀는 거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 큰 행복을 기대하다가 오히려 행복의 샘을 송두리째 고갈시켜 놓으면서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레옹이 자기를 배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의 실망을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헤어질 결심을 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별을 가져올 파국이 일어나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419~420p)
전나무 숲속의 무덤가에서 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서 울고 있었다. 흐느낌으로 찢어질 듯한 그의 가슴은 달빛보다도 더 부드럽고 칠흑 같은 밤보다도 더 헤아릴 길 없는 엄청난 회한에 짓눌려 어둠 속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갑자기 철책문 소리가 삐걱하고 났다. 레스티부드와였다. 그는 잊고서 두고 간 삽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담을 기어올라 도망가는 쥐스텡을 알아본 그는 그제서야 언제나 그의 감자를 훔쳐가는 도둑놈이 누군지 알아냈다고 생각했다.(490~491p)
미망인 뒤피 부인이 그에게 영광스럽게도 <그녀의 아들인 이브토의 공증인 레옹 뒤퓌 씨와 봉드빌의 레오카디 르뵈프 양의 혼약>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샤를르는 그녀에게 보낸 여러 가지 축하의 말들 가운데 이런 말을 썼다.
<가엾은 나의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대단히 기뻐했을 것입니다!>(492p)
ㅡ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