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부끄럽지만 밀란 쿤데라의 소설 중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작가의 초기작으로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기본적으로 가벼운 소품의 느낌이고 장 구분이 확실하고 편집이 시원시원해서 편하게 읽힌다. 이 단편집으로 쿤데라의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으나 초기작임을 감안 했을 때 앞으로의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고 확인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장편에 대한 대략적인 시놉시스의 느낌으로 볼 수도 있는 등 여러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쿤데라의 작품에 부담을 느끼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입문작으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몇 작품은 단편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아이러니, 기승전결이 확실한 진행, 깨알 같은 유머 등으로 읽는 동안 즐거웠다. 많은 궤변들 중에서도 불쑥불쑥 나오는 인생에 새길만한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으나 그런 문장들을 400~500p 분량의 장편에서 간단없이 만나면 어떨까 싶기는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멸이니 농담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니 하는 책들을 읽어보려고 시도했다가 금방 던져버리는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언제?) ‘농담이나 불멸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우리 삶에 대해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높은 벽의 보호 아래 호기심 어린 시선들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저 괴짜들처럼 살고 있었으니, 왜냐하면 이들은 한 가지 작은 사실, 즉 이 벽들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은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33p)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이 있어요.” 교수는 말했다. “우리 중 그 누구의 과거든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식에 따라 아주 사랑받는 국가 원수의 전기가 될 수도 있고 범죄자의 전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선생님 본인 경우만 해도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회의에 모습을 보인 적도 별로 없고, 나타난 경우조차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었죠. 선생님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어요. 나도 우리가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불쑥 농담을 던져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의심들은 당장은 잊히지만 오늘 과거 속에서 다시 건져 올리게 되면 갑자기 정확한 의미를 담게 되는 겁니다. 또는, 선생님이 지금 자리에 없다는 대답을 듣게 했던 그 모든 여자들을 떠올려 보세요. 아니면 선생님 최근 연구를 봅시다. 누구든지 그 논문이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입장에서 씌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건 각기 다 다른 일이에요. 하지만 현재의 죄목에 비추어 이 모든 걸 같이 검토하게 되면 선생님의 정신 상태와 태도를 아주 잘 드러내 보여 주는 일관적인 총체를 이루게 되는 거죠.”(42p)

 

있잖아, 클라라, 당신은 거짓말이 다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야.” 내가 말했다. “난 아무거나 다 지어낼 수 있고, 사람들을 조롱할 수도 있고, 온갖 속임수를 다 꾸며 낼 수 있고, 온갖 농담을 다 할 수 있지만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 그런 거짓말들은, 당신이 그걸 거짓말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게 나야, 있는 그대로의 나. 그런 거짓말들로 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아. 그런 거짓말들로 나는 실은 진실을 말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 내가 깊이 알고 있는 것, 내가 의미를 알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어.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난 장난치지 않아. 거기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건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고 난 그럴 수 없어, 나한테 그걸 요구하지 마, 난 하지 않을 거야.”(53p)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말에 안장을 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방향을 잡아 말을 달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일 뿐임을. 그 모험들은 어쩌면 전혀 우리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임을. 그 모험들은 전혀 우리를 특징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모험들의 기이한 흐름에 전혀 책임이 없음을. 그 모험들 자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부터 다른 어디로 향한 채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56p)

 

그녀를 알기 전에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는 덜 섬세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때에도 그는 의지가 강하거나 저돌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전혀 거칠고 악마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남자 같지는 않았다 해도 그래서 더욱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분명 상당히 순진한 욕망이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어린아이 같은 욕망들은 어른의 정신의 모든 함정들을 다 벗어나 때로 저 머나먼 노년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 같은 욕망은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그 속에서 구체화 될 기회를 잡는다.(115p)

 

중첩된 그 두 이미지는 그의 여자 친구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그녀의 영혼에 끔찍할 만큼 한계가 없으며, 그 영혼에는 충실함과 부정이, 배신과 결백이, 요염한 애교와 수줍은 부끄러움이 같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그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이런 야만스러운 뒤섞임은 그에게 뒤죽박죽 쓰레기 더미만큼 역겨웠다. 중첩된 두 이미지는 여전히 서로 투명하게 비치며 나타나고 있었고, 청년은 자기 여자 친구와 다른 여자들 간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그녀의 존재 저 깊은 내면에서는 다른 여자들하고 똑같고, 온갖 생각, 온갖 감정, 가능한 온갖 악덕이 다 있어서, 그것이 그의 은밀한 질투와 의심을 정당화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사랑했던 그녀는 단지 그의 욕망이, 그의 추상적인 생각이, 그의 믿음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실제의 그녀는 절망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절망적으로 낯설게, 절망적으로 여러 모습으로, 그의 앞에,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혐오했다.(134p)

 

그런데 있잖아요, 어쩌면 바로 그래서 제가 그녀를 거부하는 건지도 몰라요. 필연성에다 대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인과 법칙에 다리를 걸고 싶은 거예요. 우주의 흐름의 그 음울한 예측 가능성을 자유의지의 변덕으로 실패하게 하고 싶은 거 말이에요.(151p)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것에만 책임이 있다면 바보들은 애초에 모든 잘못을 면제받겠군. 하지만 플라이슈만, 사람은 알아야만 할 의무가 있지. 사람은 자신의 무지에 책임이 있는 거야. 무지는 잘못이야. 바로 그래서 그 무엇도 자네 잘못을 사해 줄 수 없는 거고, 따라서 자네가 부정할지라도 자네는 여자들한테 상놈처럼 행동한다고 나는 선언하겠네.”(153p)

 

조금 전에 과장님이 왜 제가 엘리자베트를 거부하는지 물으셨을 때 제가 자유의지의 아름다움이니 꼭 지키고 싶은 자유니 하는 허튼소리를 했지요. 그런 건 진실을 가리기 위한 헛소리일 뿐이고, 사실은 완전 정반대에다 전혀 기분 좋은 게 아니에요. 엘리자베트를 거부한 건 바로 제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엘리자베트하고 자지 않는 것이 요즘 유행이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그녀하고 자지 않고, 또 만약 누군가 잔다 해도 모두들 비웃을 테니 그렇다고 시인은 못 할 거예요. 유행이란 무시무시한 용이죠, 그래서 전 비굴하게 복종한 거고요.(179~180p)

 

사람들이 하는 말의 99퍼센트가 헛된 말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그러시는군요. 당신 자신도 대부분 그저 말하기 위해서 말고 다른 무엇을 위해서 말을 하시나요?”(184p)

 

나이 든 남자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자신의 초라한 잔재이기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금의 자기가 아닌 척하는 것 말고 남은 게 없어요. 아주 공들여 위장을 해서 이젠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것, 이미 잃어버린 것을 다시 만들어 내는 일 말고 남은 게 없다고요. 지어내고, 연기하고, 쾌활함, 활기, 다정다감함을 흉내 낼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젊은 이미지를 다시 살려 내고, 그것과 한데 섞이려고 노력하고, 자기를 그것으로 대체하는 수밖에요. 과장님의 이 희극에서 난 내 모습을, 내 자신의 미래를 봅니다. 나한테 아직 체념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남았다면 말이에요. 체념은 이 우수 어린 희극보다 틀림없이 더 나쁜 악이겠죠.(191p)

 

그는 무슨 의미로 조금 살았다고 한 것일까? 여행, , 사회생활, 스포츠, 여자들을 생각했을까? 물론 이 모두를 다 생각했겠지만 문제는 무엇보다 여자였다. 다른 영역에서 그의 삶이 초라했다면, 그것이 얼마간 괴롭기는 해도 그 초라함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길 수는 없었다. 직업이 별 볼일 없고 전망도 없다고 해서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돈도, 간부 조직의 허가증도 없어서 여행을 못 했다고 해서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스무 살 때 관절 반달이 부러져 좋아하던 스포츠를 포기해야 했다고 해서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반면에 여자의 영역은 그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계였고, 그러므로 거기에 대해서는 어떤 핑계도 둘러댈 수 없었다. 거기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여자는 그에게 삶의 농도를 재는 단 하나의 타당한 기준이 되었다.(207p)

 

그는 이 모든 것을 알았지만 이 모든 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었고, 생각이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오로지 한 가지밖에 모르는 그 마음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었다.(231p)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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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테드 창의 단편집이다. 단편인지라 작년에 사놓고도 1~2편 정도만 보고 던져놨다가 드니 빌뇌브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 부분 먼저 읽었다. 소재가 인상적이다. 영화를 대충 예상해보면 책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편집을 중심으로 내용전개가 될 것 같은데 외계인도 그렇고 언어학에 대한 나름 학술적인 내용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기대된다.

 

 

?” 너는 또 이렇게 묻지. 너는 세 살이야.

왜냐하면 넌 이제 자야 하기 때문이야.”

나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너를 목욕시키고 잠옷을 입히는 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뒤로는 진전이 없는 상태야.

하지만 난 안 졸려.”

너는 징징거리지. 너는 책장 앞에 서서 비디오를 볼 작정으로 테이프를 하나 꺼내려 하고 있어. 침실에 가지 않으려고 가장 최근에 네가 고안해 낸 양동전술이지.

그건 문제가 안 돼. 넌 어차피 자야 해.”

하지만 왜?”

난 네 엄마이고, 그런 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야.”

정말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그러기 전에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쏴 죽여주면 좋을 텐데.

내가 너를 들어올려 한쪽 옆구리에 끼고 네 침대로 데려가는 동안 너는 계속 징징거리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나 자신의 고뇌에 관한 생각밖에는 없어. 내가 자라서 나중에 부모가 되면 이치에 맞는 대답을 아이에게 해 주자, 내 아이를 지적이고 자기 생각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해 주자, 하고 거듭 맹세했던 어린 시절의 내 결심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난 내 어머니와 똑같은 존재가 되려 하고 있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것에 저항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길고 끔찍한 비탈길에서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어.(194p)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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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방금 얘기했듯, 이게 우리한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물론 나는 나쁜 버릇이 든 그 작가가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그 어떤 발표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이 말이 필요 이상으로 멜로드라마 같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걸 쓰고, 출판하고 싶은 대로 출판하라지요. 저는 검열도 자기 검열도 반대합니다. 알세오 데 미틸레네가 말했듯, 단 하나의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하고자 한다면 원치 않는 것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165p)

볼라뇨의 이 말을 보고 볼테르의 명언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이 말이 생각이 났다.

 

 

로베르토 볼라뇨,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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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시인은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고로,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거짓이다. 사실 인간이 진심으로 견뎌 낼 수 있는 일은 손꼽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진심으로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지닌 채 성장했다. 이 문단의 첫 번째 문장은 참이다. 그러나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51p)

 

물론, 나만 예외로 하고 그들은 모두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녁을 같이 했던 네 사람 중에 결국 아이를 갖게 된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삶은 참 별 볼 일 없으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법이다.(59p)

 

BX를 사랑한다. 물론, 불행한 사랑이다. B는 한때 X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고 말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XB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것도 <전화>로 이별을 알린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 B는 괴로워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점차 마음을 추스른다. 드라마 대사처럼 삶은 지속되는 법이다.(93p)

 

 

로베르토 볼라뇨, <전화>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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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잘 정돈된 이야기를 읽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고 소설에는 명백한 플롯과 손에 땀을 쥐는 드라마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소설을 예술가병에 걸린 비대한 자의식의 배설물일 뿐으로 그렇게 독자들을 무시할 거면 자기들만의 성을 짓고 그 안에서 굶어 죽든 역병에 걸려 뒈지든 아무튼 알아서 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소설이 있고 다양한 독서가 있다. 가독성이 높고 흥미진진한 서사를 가진 소설에는 그것에 맞는 독서가 있고,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러한 소설에는 그것에 맞는 독서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쉽게 읽히는 소설만이 소설이라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은 소설은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그런 독서를 갖지 못한 게 작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독서의 등급을 나누려는 게 아니다. 어떤 소설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분노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 종류의 독자가 있다. 자신의 독서로 이해할 수 없는 작품 앞에서 조용히 책을 덮거나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와 작가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는 독자. 어떤 독서로 어떤 책을 읽을지 혹은 읽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자유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방식에서 벗어난다고 무작정 작품을 비난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207~208p)

 

스물여덟 살의 그는 또래 남자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아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든 남자들이 간단없이 그러는 것처럼 자신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딱히 못나지는 않고 자세히 살펴보면 은근히 매력적인 것이 어디에서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의 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코는 한쪽으로 휘어 있었고 그는 그것도 모른 채 휘어진 코와 함께 28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더 나쁜 것은,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던 비탄젤로 모스카르다가 아니었다. 멍청이다. 흰 코로 거들먹거리는 못난이다. 그가 믿었고 또 살았던 현실은 그렇게 무너졌고, 그날 이후 그는 무시무시한 광기에 사로잡힌다.(256p)

 

코가 없는 남자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코가 없어졌으니 코를 찾는 것인데 코가 없기에 코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삶이란 게 그렇다.(262p)

 

그들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서 묶이고 말았다. 게다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그들의 호감을 어떻게 설명할까? 한 사람의 하찮은 특징이나 가증스러운 결점과 같은 것들이 왜 상대방의 마음을 끄는 것일까? 첫눈에 반한다고 하는 것은 열정의 세계에 있어서는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일주일도 되기 전에 그들은 서로 말을 놓았다.

그들은 골동품 삼정이 늘어선 거리를 산책하고, 공예 학교, 대성당, 국영 공장, 기념관 그리고 모든 공공 전시장을 함께 다닌다. 가끔은 영국인이나 외국인인 체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생각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더욱 많은 고통을 느꼈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그들은 머리를 합쳐 세상의 모든 비밀을 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들이 가진 학식과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단조로운 사무실도 지겨워졌다. 예전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이제는 어리석게만 느껴졌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게다가 날마다 지각을 해서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였다.(289p)

 

 

금정연, <난폭한 독서>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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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7

 

그들의 부모는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순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도 사실은 전통의 진수였고 과장이나 과다함의 징후가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싫어했다. 이 집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19p)

 

어느 날 아침 일찍 해리엇은 어쩐 일인지 재빨리 침대에서 나와 아기방으로 갔다. 거기서 그녀는 벤이 창문턱에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높은 곳이었다. 그 애가 어떻게 그 위에 올라갔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일순간 그 애는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해리엇은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때 내가 들어오다니······. 그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81p)

 

애들은 항상 그녀가 인정하려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안도하게 되었고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긴장을 그렇게 오래 견뎌냈는지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벤을 추방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벤에 대해 생각할 때 그건 사랑이나 온정의 마음에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내부에서 정상적인 감정의 불티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오히려 죄의식과 공포감으로 그녀는 밤새 잘 수 없었다. 감추려고 애썼지만 데이비드는 그녀가 깨어 있는 것을 알았다.(105p)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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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미크로메가스와 캉디드 2편을 포함해도 200p 남짓한 짧은 분량의 책이다. 모든 텍스트는 컨텍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말이 하나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 그 시대의 모든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제한된 범위 하에서라도 글쓴이의 개인적 배경, 책이 쓰인 시대적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책을 읽는 게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정확한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도 그 시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책을 쓴 저자는 죽고 없으나 불멸의 고전이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이유를 들며 반대 사례를 늘어놓겠지만 그 메커니즘이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고전이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 정보, 지식 때문일 텐데 이때 그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제반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자.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톰 소여의 모험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온당한 비판인가. 그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은 당연할 것이고 빛나는 지성을 가진 석학이나 시대적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라도 시대의 한계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가 살았던 당대의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고 오히려 지금 당연시 되며 논의되는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 비하 등에 대한 논의가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시대를 미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그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판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다음으로 글쓴이의 개인적 배경을 살펴보자. 미크로메가스는 그냥 읽어도 낄낄거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풍자극이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있으면 다른 식으로 읽을 수가 있다. 미크로메가스의 거인 미크로메가스가 저자 본인인 볼테르를 비유한다는 것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분명 독자들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볼테르는 한 귀족 청년과의 다툼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명국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 사례가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이 비유적으로 표현된다.

 

유년 시절을 벗어나서 사백오십 살쯤 되었을 때 미크로메가스는 지름이 100피에도 안 되어 보통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벌레를 수없이 많이 해부했다. 그는 그걸 바탕으로 아주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썼는데 그로 인해 몇 가지 골칫거리가 생겼다. 그 나라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트집 잡기 좋아하고 대단히 무식한 어떤 교리해석가가 그의 책에서 의심스럽고 무례하고 경솔하고 이단적인 교리들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이단이라는 감을 잡고 열심히 그 흔적을 추적했다. 시리우스에 사는 벼룩의 실체가 달팽이의 실체와 그 성질이 같은지를 알아내는 것이 쟁점이었다. 미크로메가스는 재치 있게 자신을 방어했고 여인들을 자기편으로 삼았다. 소송은 이백 년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교리해석가는 그 책을 읽을 적도 없는 법률가들로 하여금 책에 유죄를 선고하게 했고, 책의 저자는 팔백 년간 궁정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11p)

 

또한 캉디드는 볼테르가 살았던 시기에 팽배했던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풍자하는 소설이다. 본문의 이 부분을 보자.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p)

 

이처럼 어떤 텍스트라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법은 없으며 특정 시대의 영향 아래에 있는 한 개인이 썼다는 것을 인지하고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입부에서 모든 텍스트는 컨텍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거창하게 말한 바 있지만 기실 모든 책을 각 잡고 그 책이 나온 배경부터 저자의 이력까지 조사하며 공부하듯이 읽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텍스트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정답은 없으며 텍스트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도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조차도 모든 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읽어나가지는 않는다. 다만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 기본이자 오독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 그 책이 쓰인 상황과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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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는 여러 곳을 돌아다닌 훌륭한 관찰자이다. 하지만 나는 둘 중 누구의 말도 반박하고 싶지 않다. 미크로메가스는 이 별 저 별을 일주한 다음 토성에 도착했다. 미크로메가스는 새로운 사물을 보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천체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우월한 자의 미소가 떠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잘난체하는 그런 미소는 현명하다는 사람들도 가끔 억제하기 힘든 법이다.(12p)

 

우리 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천 개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알지 못할 어떤 막연한 욕망, 알지 못할 어떤 불안이 남아 있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하찮은 존재이며 우리보다 훨씬 더 완전한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행을 좀 하면서 나는 우리보다 훨씬 열등한 필멸의 존재들도,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 않거나 만족할만한 양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15p)

 

우리는 늘 얼마 못 산다고 한탄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인가봅니다.”

저런! 우리는 태영을 오백 번 공전할 동안밖에 살지 못합니다(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만오천 년쯤 된다). 태어나는 순간에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아시겠지요. 우리 존재는 한 점이고 우리의 지속은 한 순간이며 우리 천체는 원소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좀 배우려고 하면 경험을 채 쌓기도 전에 죽음이 찾아옵니다. 나로서는 감히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드넓은 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신 앞에 서니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어 부끄럽군요.”(16p) 

 

천오백 년 동안 뻗대다가 마침내 비로소 당신을 따르게 되었는데, 당신 품에서 겨우 이백 년을 보냈을 뿐인데 당신이 나를 떠나 다른 세상에서 온 거인과 함께 여행을 가다니요. 가세요, 당신은 한낱 호기심 많은 사람에 불과할 뿐 사랑은 한 번도 못했던 거라고요. 당신이 진정한 토성인이라면 마음이 변하지 않으련만. 어디로 가는 거지요? 뭘 원하는 건가요? 우리 다섯 개 위성도 당신보다는 덜 떠돌아다녀요. 우리 토성 고리도 당신보다는 덜 변덕스러워요.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철학자는 그녀를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천생 철학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마음을 달랜답시고 그 별의 어느 젊은 멋쟁이 녀석과 함께 사라져버렸다.(19~20p)

 

당신 발꿈치만 한 커다란 진흙 더미 몇 개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서로 목을 치는 수백만 명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이 진흙 더미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차지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가 술탄이라는 사람 편인지 아니면 이유는 몰라도 황제라는 다른 사람 편인지 그것이 문제일 따름입니다. 어느 쪽도 문제가 된 작은 땅 구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결코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로 목을 베어 죽이는 이 짐승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들이 어느 짐승을 위해 목을 바치는지 그 짐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36p)

 

사물들이란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반드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쓰는 겁니다. 두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입는 것이지요. 돌멩이는 다듬어져서 성을 쌓기 위해 그런 모양이 되었고, 그렇기에 영주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남작은 가장 훌륭한 곳에서 사셔야 하니까요.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으니 우리는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48~49p)

 

그녀는 성병에 걸려있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죽었을 게야. 파케트는 꽤나 학식 있는 성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지. 역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네. 왜냐하면 그 수사는 늙은 백작 부인에게서 그 병을 옮았고 백작 부인은 기병대장에게서, 기병대장은 후작 부인에게서, 후작 부인은 어느 시동에게서, 시동은 한 예수회 수사에게서 옮았다니까. 그는 수련 수사 시절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 중 한 사람에게서 직접 그 병을 옮았다네.(61p)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p)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너무나 즐겁고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당신은 노래를 불렀고 자연스럽게 호감을 보이며 테아토 수사를 애무하고 있었지요. 당신이 불운하다고 말할 때 못지않게 당신은 행복해 보였는걸요.”

 

! 나리.” 파케트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이 직업의 비참한 일면입니다. 어제는 한 장교에게 돈을 뺏기고 매를 맞았는데 오늘은 한 수도사를 기쁘게 해주려고 기분 좋은 척 굴어야 하지요.”(170p)

 

베네치아 총독에게는 총독의 근심이 있고, 곤돌라 사공에게는 사공의 근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체를 고려할 때 곤돌라 사공의 운명이 총독의 운명보다 좀 낫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며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172p)

 

바보들은 존경받는 작가라고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찬탄하죠. 나는 나를 위해서만 읽고 내 방식에 맞는 것만 좋아합니다.(177p)

 

인간은 불안의 격동 속에 살거나 아니면 권태의 혼수상태 속에서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결론지었다. 캉디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확신하지는 못했다. 팡글로스는 자신은 언제나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겪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변한 이상 계속 그것을 주장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202p)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일합시다. 그것이 인생을 견딜만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에요.”(206p)

 

 

 

볼테르,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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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뇌 과학과 인지과학에 대해 최대한 쉬운 글을 쓰는 개리 마커스가 쓴 책이다. 같은 저자의 클루지를 흥미롭게 읽고 나서 찾아 읽게 되었다.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나로서는 쉽게 쓰였음에도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책을 덮었다. 스티븐 핑커가 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도 생각이 났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뇌에서나 신체에서나 동일하다. 생물학의 도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다른 곳에서 발현되는 유전자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차이도 없다. 유전자는 유전자일 뿐이다.

또한 홀로 존재하는 유전자란 있을 수 없다. 뇌든 심장이든 신장이든 복잡한 생물학적 구조는 모두 많은 유전자들의 협동과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단 하나의 유전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특정 행동에 대응하는하나의 유전자라는 개념이 우스울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의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신경회로가 단 하나의 유전자로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심장의 좌심실을 만드는 데 단 하나의 유전자로는 충분치 않은 것처럼, 언어에 대한 하나의 유전자나 날씨 얘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대한 하나의 유전자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단 하나의 뇌세포나 단 하나의 심장세포조차 많은 단백질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고 따라서 많은 유전자들의 결과물이다.

또한 반사작용을 제외한 모든 행동은 수많은 신경회로의 합작품이다. 포유류에서든 조류에서든, 모든 활동은 인지 체계, 경계 체계, 동기화 체계 등 수많은 체계들이 복합적으로 힘을 합친 결과이다. 비둘기가 지렛대를 쪼아 먹이를 먹는 행동을 하느냐도 비둘기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 피곤한지 아닌지, 주위에 다른 흥미로운 것이 있는지 없는지 등 수많은 조건에 달려 있다.(113p)

 

개리 마커스, <마음이 태어나는 곳> ,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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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읽음.

 

 

니꼴라이 고골, <검찰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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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4

 

내 선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이 언도된 순간부터의 가차 없는 전개 과정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해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한 결정의 진지성을 많이 깎아 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 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심각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121~122p)

 

 

알베르 카뮈, <이방인>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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