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0

 

마더 나이트 이후로 보네거트의 작품을 오랜만에 봤다. 한결 같은 풍자와 유머를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겠다. 


“미국인이 자기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건 아직도 가능해.”
“그럼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돈 강이란 것이 있다, 그건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성실한 노동, 능력 본위, 정직 같은 헛소리는 죄다 잊어버리는 게 좋다, 그 강으로 가라’고 말해준다면 가능하겠죠.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해주겠어요. ‘부자와 권력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방식을 배워라. 그들에게 빌붙어도 되고, 겁을 줘도 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호감을 주거나 엄청난 두려움을 줘라. 그러면 어느 칠흑 같은 밤에 그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소리 내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둠을 뚫고 인간이 발견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부의 강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당신은 강둑에서 당신의 자리를 소개받고, 당신만의 양동이를 넘겨...받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양껏 퍼마시되, 퍼마시는 그릇을 떨어뜨리진 마라. 가난한 사람이 들을지 모르니까.’”(139~140p)

“그러게,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야.” 이 말은 인디애나 출신의 유머작가 킨 허버드가 오래전에 한 유명한 농담의 절반이었다.
“그래.” 다른 남자가 나머지 반을 말했다. “하지만 차라리 창피한 걸로 끝나는 게 낫지.”(250p)

“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익한 인간에 대한 우리의 증오, 그리고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행위가 반드시 인간의 본성 탓은 아니라는 겁니다. 엘리엇 로즈워터라는 본보기 덕분에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누구를 만나든 서로 사랑하고 돕는 법을 배울 수 있지요.”(288p)

ㅡ 커트 보네거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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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9

처음 말했듯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릿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154p)

‘역대 영웅 군왕들이 다 잠시 소유하다가 두고 간 땅을 놓고, 자신도 두고 갈 일이 애달파서 눈물 흘리는 일은 어질지’못한 게 분명하리라. 그러니 꽃이 피면 그 한 조각 같은 봄이나마 즐기면 되는 일이지, 봄이 짧은 것을 굳이 서러워할 일은 아닌 듯하다.(188p)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두보의, 또 임방울의 가슴을 흔들었던 ‘낙화소식’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청춘의 가슴도 똑같이 뒤흔든다. (...)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191p)

ㅡ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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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3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라”.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의 황금률로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구성하는 자잘한 취향들만 봐도 그렇다. 어떤 것은 대놓고 으쓱거리며 자랑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저질스러워 남에게 들통 날까 걱정되어 죽겠다. 그 스펙트럼 사이에 여러 종류의 취향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이들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남의 취향이라고 해서 내가 그걸 다르게 평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그들이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 대상에서 벗어나야 할까? 취향은 그렇게 신성한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모든 취향을 옹호하거나 변호할 생각이 없다.(91p)

지금과 같은 시대에 지구의 나이가 6천 년밖에 안 된다고 믿는 얼간이들이 위험할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라. 과학업적이 쌓이는 것과 사회 구성원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무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다.(213p)

어처구니없다고 모두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처음에는 헛소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악하고 유치해서 삼류 SF작가들의 헛소리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위의 리스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어처구니없는 것들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는 엉터리다. 우리가 어쩌다가 정곡을 찌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곡을 찌른 운 좋은 소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254p)

ㅡ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中,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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