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4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는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러면서도 노벨상을 받은 노작가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써온 자신의 작품들을 총결산해서 써낸 소설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음.

 

한 부분만 뽑는다면 아래의 발췌 부분.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릭,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그래, 클라라.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ㅡ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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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7

 

40여년이나 된 책에게 구닥다리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실험적이었겠으나 지금 읽기에는 글쎄. 몇몇 이미지들이 남았지만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저자의 다른 책이 크게 궁금하지가 않음.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원작자로 알고 있는데, 알랭 레네의 그 작품이나 챙겨봐야겠다.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들을 알려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불멸성은 유한한 것이고, 불멸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멸성은, 결코, 불멸성으로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절대적인 이원성이다. 그것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근원 속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멸성의 존재를 물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조건에서이다. 마찬가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 불멸성의 존재를 간파해 낼 수 있는데, 그것도 똑같은 조건에서, 즉 그들이 그럴 능력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서이다.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불멸성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불멸성은 정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어 그것과 함께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양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124-125p)

 

 

ㅡ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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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1

 

 

일본 소설을 많이 안 읽다 보니 일본 소설 특유의 정서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작품이 크게 훌륭한지 모르겠다. 릿헙에서 이 책이 왜 베스트로 뽑혔는지 의아함.

 

 

 

ㅡ 나카무라 후미노리, <쓰리> 中,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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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

 

 

읽은 지 조금 지났는데 크게 기억나는 게 없다.

 

 

 

ㅡ 이마무라 나쓰코,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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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5

 

 

슬립 솔기 안쪽의 취급 설명 라벨이 비쳐 보였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현실성이 깨졌다. 하지만 슬립과 취급 설명 라벨은 의심의 여지 없이 현실적이었다. 나는 어떤 현실은 비현실적인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자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가 생각났지만 사실 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한 것이 이런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몰랐다.(45p)

 

 

네, 남자들은 나한테 초연하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굴기를 바라죠.(66p)

 

 

나는 그럴듯한 사람인 척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다용도실에 들어갔을 때 닉의 친구들 앞에서 재치 있는 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겨웠다.(85-86p)

 

 

나는 또다시 모든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생각에 닉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 그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했던 냉담한 말에 집착했고, 그래서 닉을 미워하면서 그에 대한 그에 대한 내 강렬한 감정이 순수한 증오라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닉이 나에게 준 상처는 애정을 거두어 간 것뿐이며, 그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았다. 그 점만 제외하면 닉은 항상 예의 바르고 사려 깊었다. 가끔 나는 이 일이 내 평생 최악의 불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얕은 불행이었고, 언제든지 닉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녹아서 바보 같은 행복으로 바뀔 수 있었다.(118-119p)

 

 

보비는 어디서든 잘 어울렸다. 보비는 부자가 싫다고 말했지만 집안에 돈이 많았고, 부자들은 보비가 같은 부류임을 알아보았다. 부자들은 보비의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부르주아의 자기 비하 비슷한 것, 별로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고, 보비에게 고급 레스토랑에 대해서, 로마에 가면 어디서 묵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 된 듯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적당히 가난한 공산주의자임이 밝혀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나는 내 발음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리거나 벼룩시장에서 산 커다란 외투 때문에 부자처럼 보일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필립 역시 부유해 보여서 힘들어했지만 걔는 진짜 부자였다.(132p)

 

 

내가 타인에게 다정했을까? 확실히 답하기는 힘들었다. 나에게 어떤 성격이 있다고 판명되었을 때 알고 보니 다정하지 않은 성격일까 봐 걱정이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다정함>은 갈등에 대한 굴종의 또 다른 표현일까? 나는 10대 때 일기장에 이런 생각들을 적었다(238p)

 

 

내 인생의 무언가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온전한, 또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나 자신의 이미지가 끝난 건지도 몰랐다. 이제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는 육체적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고, 그 고통은 전혀 특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병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고,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도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병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병에 대해서 쓴다고 해도 고통을 뭔가 유용한 것으로 바꾸지 못할 것이다. 무엇도 병을 유용하게 바꿀 수 없었다.(370p)

 

 

닉은 그날 저녁에도 그날 밤에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전화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점차 기다림 같지 않아졌고 그 자체가 인생 같았다. 일어나기를 계속 기다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정신을 딴 데 쏟으려고 다른 일만 하는 것이 인생 같았다. 나는 일자리에 지원하고 세미나에 출석했다. 세상은 계속 흘러갔다.(388p)

 

 

하지만 이제 난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 너와 나의 관계는 너와 멀리사의 관계, 너와 닉의 관계, 너와 어린 시절의 너 자신과의 관계 등등에 의해 만들어지지.(401-402p)

 

 

넌 네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다른 사람한테 못되게 구는 게 네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말이야. 스스로한테 변명하지. 보비는 부자니까, 닉은 남자니까, 난 그런 사람들한테 상처를 줄 수 없어.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나한테 상처를 주려 하고 나는 방어하고 있는 거야, 하고.(405-406p)

 

 

 

ㅡ 샐리 루니, <친구들과의 대화>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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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3

 

 

종이 동물원에 비해 이 책에서는 다루는 주제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아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는 확실히 뛰어난 듯.

 

 

 

나는 존과 함께 보냈던 길고 긴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은 날들은 너무도 적었다. 끝없는 시간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세계 곳곳에서 삶의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59p)

 

 

나는 그 물건들이 소름 끼쳤다. 내가 정말로 일어나고 싶은지 어떤지 알아맞히는 자명종 시계, 내 기분을 추측하여 내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알려 주는 텔레비전, 난방비 영수증과 내 건강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실내 온도를 결정하는 온도계 같은 것들이. 그런 물건에 정말로 조그마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그렇다면 그들에게 지금처럼 보람 없는 일을 맡기는 것은 잔인한 짓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나는 추울 때 스웨터를 입으라고 가르쳐 주는 기계 따위는 필요 없다.(180p)

 

 

나는 노년이 되면 여행을 하며 살 거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행은 젊은이를 위한 것이니까. 나이를 웬만큼 먹어서까지 여행에 나서지 못한 사람은 나 같은 꼴이 되고 만다. 태어나 자란 곳에 뿌리를 내리고 붙박이는 것이다.(184p)

 

 

실험이 실패한 까닭은 어쩌면 리즈가 그리드 위에서 보낸 주관적인 영겁의 시간에 대하여 육체 및 감각의 피드백이 철저히 부재했던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암흑 속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고정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도 발가락도, 호흡을 위해 노동하는 폐의 움직임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끝날 기약도 없는 시간 동안 함께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뿐이라고. 통 속에 든 두뇌는 끝내 미쳐 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몸이었다. 결국에는.(191p)

 

 

ㅡ 켄 리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中,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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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7

 

 

친구들과의 대화도 읽어볼까 싶다.

 

 

 

메리앤이 세면대에서 블라우스를 빨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들 그냥 우스울 뿐인 척하지만, 코넬은 그 이야기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메리앤은 학교에서 어느 누구와도 사귄적이 없어서 아무도 그녀가 옷을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녀 또한 아무한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녀의 그런 점을 못마땅해한다. 코넬이 생각하기로는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이 그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 같다. 보는 것이 금지된 대상을 볼썽사납게라도 쳐다보고야 마는 수단인 셈이다.(15p)

 

 

이제 몇 주 후면 메리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고,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녀 자신의 몸속에 갇힌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녀가 거기서 벗어나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 그게 뭐가 중요한가?(84p)

 

 

그는 나무랄 데 없는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림, 영화, 심지어 소설이나 텔레비전 쇼도 미적 감각이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때로 메리앤이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그 영화는 내 기대에는 못 미쳐. 이렇게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님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진정한 판단력은 조금도 기르지 않은 채,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만 간신히 키워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메리앤은 혼란스럽고, 갑작스럽게 예술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235p)

 

 

문학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감정적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서, 그들이 즐겨 읽은 소설 속에서 그들을 대신해 그 여행을 경험하는 사람들, 즉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맹목적인 숭배를 받았다. 설령 작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그의 책이 정말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책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마케팅이 되고, 모든 작가가 어느 정도는 이 마케팅에 가담한다. 아마 이것이 문학계가 돈을 버는 방식일 터였다. 문학은, 이런 공개적인 낭독회에서 드러나듯, 무언가에 저항하는 형식으로서는 발전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271-272p)

 

 

 

ㅡ 샐리 루니, <노멀 피플>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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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1

 

이 양반도 참 일관성 있다. 묘하게 홍상수의 삶이나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몰아서 읽지는 말고 가끔 생각날 때 한 편씩 읽어봐야지. 문장이 깔끔하고 묘사도 훌륭하다. 예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현대적으로 읽히는데 당대에는 더 그랬을 듯.

 

 

 

인간이란 한번 끔찍한 꼴을 겪고 나면 그것이 강박관념으로 언제까지고 머리에 남는지, 여전히 나오미가 도망쳤던 시절의 그 끔찍했던 경험을 잊지 못합니다.(300p)

 

 

 

 

ㅡ 다니자키 준이치로, <치인의 사랑>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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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1

 

 

 

다 읽긴 했으나 크게 재미를 못 느꼈다. 중간쯤 등장하는 노인과의 이야기라도 없었으면 중도 포기했을지도. 폴 오스터를 많이 읽은 누군가의 말로는 그의 작품 중 이게 제일 재미없다고 하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에 크게 궁금증이 일지 않아서 아마도 읽지 않을 것 같다.

 

 

빅터 삼촌은 술 취하지 않고 잔소리를 하는 도라는 견뎌 낼 수 있었지만, 그녀가 술에 취해 있을 때면 내가 느끼기엔 본래의 모습이 부자연스럽게 왜곡된, 잔인하고 참을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랬기에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벌였다. 도라가 좋을 때는 빅터 삼촌이 안 좋았고, 빅터 삼촌이 좋을 때는 도라가 안 좋았다. 좋은 도라 때문에 안 좋은 외삼촌이 생겨났고, 좋은 외삼촌은 오직 도라가 안 좋을 때에만 되돌아왔다.(18p)

 

 

어떤 의미에서는 그 느낌이 내가 경험했던 것의 실체를 바꾸었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떨어져 죽기 직전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떨어져 내리는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더라도 그 두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얻은 것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76-77p)

 

 

뉴욕 사람들이 길거리를 걸을 때면 그들의 눈에는 특별한 번득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연스럽고 어쩌면 필연적인 무관심이 떠오른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어떻게 보이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의상, 기괴한 머리 모양, 음란한 문구가 박힌 티셔츠ㅡ그런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겉모습 밑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지극히 중요해서 이상한 몸짓은 무엇이건 당장 위협으로 간주된다. 소리를 내어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몸의 어느 부분을 긁거나 낯선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하는 규칙 위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적대적이고 때로는 난폭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85p)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 쓸 만한 상대방은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짐으로써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게 하고 그가 받은 쪽일 때에는 자기에게로 던져진 모든 공을, 아무리 서툴게 잘못 던져진 것일지라도, 능숙하게 다 잡아 낸다. 키티가 바로 그랬다. 그녀는 계속해서 공이 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졌고, 내가 그녀에게 공을 던질 때는 포구 범위를 한참 벗어나는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공을 다 잡아 냈다.

(...)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기술이 너무도 뛰어나서 내가 공을 잘못 던질 때마다 일부러 그랬던 것인 양, 순전히 게임을 좀더 재미있게 만들려는 의도로 그랬던 것인 양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실제의 나보다 더 낫게 보았고 그 때문에 자신감이 생겨서 다음에는 그녀에게 좀 더 받기 쉬운 공을 던져 줄 수 있었다. 달리 말해서 나는 그녀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그 즐거움은 내가 오랫동안 경험해 보았던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컸다.(136-137p)

 

 

나는 태평한 무관심으로부터 강렬한 놀라움의 단계를 거쳤고, 내 설명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가능한 뉘앙스를 모두 잡아내려고 열심히 애쓰면서, 아무것도 빼먹지 않기 위해 세세한 사항들을 미친 듯이 그러모아 뒤죽박죽을 만들면서, 지나치게 정확해졌다.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기관총을 쏘아 대듯 딱딱 끊기며 연달아 터져 나왔다. 에핑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좀더 천천히 하라며 내 말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문제는 내 말투보다 전반적인 접근 방식에 있었다. 나는 너무도 많은 말들을 그러모으고 있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나타내기보다는 사실상 그것을 흐리는, 미묘한 의미와 기하학적인 추상의 사태 밑에 묻어 버리는 셈이었다. 명심해 두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에핑의 눈이 멀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은 긴 설명으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결국 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이 할 일은 그가 사물들을 가능한 한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말이 입 밖에 나오는 순간 사라지게 해야 되었다. 내가 말하는 문장들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부수적인 것을 분리할 줄 알기 위해서는 몇 주일 동안의 힘든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어떤 사물 주위로 더 많은 여유를 남겨 두면 남겨 둘수록 그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에핑이 자기 스스로 결정적인 일, 즉 몇 가지 암시를 기초로 해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내가 그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사물을 향해 자신의 마음이 여행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했었기 때문이다.(179-180p)

 

 

우리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내에 온갖 종류의 조용한 정보들이 흡수된다. 성별, 대략적인 나이, 사회 계층, 출생지, 심지어는 그 사람의 피부색까지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 그린 이미지가 실제의 인물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그 두 가지는 비교적 근접할 때가 아닐 때보다 더 많지만, 때로는 전혀 틀리는 경우도 있다. 트럭 운전사처럼 얘기하는 대학 교수, 늙은 여자로 밝혀지는 젊은 여자, 백인으로 밝혀지는 흑인,(199p)

 

 

결과,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좋건 싫건 간에 언제나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222p)

 

 

바버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충분한 시간은 결코 없었다. 그는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 미래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 미래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잘못이었다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는 대가를 치렀고 나 또한 그와 함께 대가를 치렀다. 결과가 어찌 되었건, 나는 그가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알지 못한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알 수 없었고, 누구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둡고 끔찍한 일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342p)

 

 

빅터 삼촌이 바버를 피하는 대신 그의 두 번째 편지에 답장을 했더라면 나는 1959년에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받아들이기가 조금이라도 더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놓쳐 버린 관계, 잘못된 시기, 어둠 속에서 생겨난 실수였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359p)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돌아왔지만 사정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지나간 일은 잊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했음에도, 예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 때는 그 삶이 더 이상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403-404p)

 

 

나는 에핑이 살던 동굴을 찾아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맨 마지막까지 그것이 미리 정해진 결론이었다) 그 동굴을 찾아보는 행위, 다른 모든 행동을 말살시키는 행위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방에는 1만 3천 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얼마든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모든 가능성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436p)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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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6

 

 

최근 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고르는 족족 다 재미있네.

 

 

 

어째서 영국의 시골 마을은 종종 살인 사건의 무대가 될까? 내가 전부터 이걸 궁금해하다 해답을 깨달은 것은 치체스터 인근 어느 마을의 조그만 시골집을 임대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였다. 찰스는 반대했지만 나는 주말에 가끔 거기로 피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런던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내가 친구를 한 명 사귈 때마다 적이 세 명 생겼고 주차, 교회 종소리, 반려견의 배설물, 화분을 매다는 것과 같은 문제들이 숨 막힐 정도로 일상을 지배했다. 진짜다. 혼란스러운 도시에서는 금세 잊힐 감정들이 시골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곪아터지고 사람들을 정신병과 폭력의 세계로 몰고 간다. 추리 소설 작가에게는 선물이다. 그리고 연결성이라는 장점도 있다. 도시는 익명의 공간이지만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용의자와,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훨씬 쉽게 창조할 수 있다.(70-71p)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서는 비정상적이고 끔찍한 죽음을 맞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부모님과 앨런 말고는 죽은 사람 자체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책과 텔레비전에서는 수많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게 없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문제가 있는 지역에서 살지 않는 한 그런 사건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살인 추리 소설의 수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에서 매력을 느낄까? 범행일까 아니면 해법일까?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안전하고 안락하기 때문에 유혈 참사에 원초적인 욕구를 느끼는 걸까? 나는 온두라스의 산 페드로 술라(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의 도시다)에서 앨런의 매출액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아야겠다고 기억에 담았다. 어쩌면 그곳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을 수도 있었다.(88p)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책이 팔리길 바란다면 진실을 1백 퍼센트 공개하면 안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크라우치 엔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고 출판계가 그립다. 안드레아스와 나 사이에서 돈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다. 인생이 예술을 모방할지 몰라도ㅡ대개는 거기에 못 미친다.(284p)

 

 

 

ㅡ 앤서니 호로비츠, <맥파이 살인 사건>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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