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1
진짜 '연민' ㅡ그런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으나ㅡ이 아니라 단순히 초조한 마음에 불과한 가짜 '연민'을 지닌 한 사내의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는데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인물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긴 했다.
물론, 이 열성적인 지인이 이상하다거나 불쾌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아이가 열심히 우표를 수집하듯 열성적으로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그렇게 해서 구축한 인맥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 사교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 약간 별나긴 하지만 온순하기 그지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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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인생의 유일한 낙은 이따금씩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름을 보면서 "이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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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지인들의 공연은 빠짐없이 찾아가 박수갈채를 보내주고, 생일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축하 전화를 걸어주고, 절대로 남의 생일을 잊는 법이 없었으며, 신문에 난 혹평은 전하지 않는 대신 호평만큼은 진심을 담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작은 부탁을 하거나 자신의 인맥에 한 사람만 더 늘어나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처럼 오지랖 넓은 그 지인에 대해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이런 부류의 사람을 알고 있고, 거칠게 밀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이들의 정성 어린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8p)
도입부의 한 인물에 대한 이 묘사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자유로운 사람과 감금되어 있는 사람의 관계가 아무런 문제없이 지속되기란 힘든 법이다. 불행한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은 모든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주기만 하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듯이, 늘 보호를 받기만 하는 환자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대해서도 언제나 속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처받기 쉬운 그녀에게는 때로는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그녀를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는 그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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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 한 가지를 이해하고 나면 다른 것들도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한 가지 고통을 진심으로 연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마법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고통도, 심지어는 낯설고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고통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나타나는 에디트의 심술에 현혹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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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장기간 지속되면 환자뿐만 아니라 측은해하는 주위 사람들도 또한 지치게 마련이다. 절실한 감정은 끝없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에디트의 아버지와 일로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 가엾은 소녀와 함께 가슴 깊이 고통을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지치고 체념한 상태였다.(74-75p)
처음으로 나는 진정한 관심은 전기 스위치처럼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남의 운명에 관여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88p)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낯선 사람이 나를 처음 보고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어서 정말로 기분이 좋았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언제나 그 거짓 배려로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고 심지어 그 빌어먹을 배려가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내가 장님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들의 잡담과 변명 뒤에도 그 용감하고 솔직한 아주머니가 보여준 혐오스럽고 불편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목발을 만지는 순간 당신들의 숨이 멎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나요? 언제나 달콤한 말로 나를 진정시키려 한다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아요? 당신들이 나를 짐슴의 시체처럼 침대에 눕혀놓고 방을 나서면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눈을 위로 치켜뜨고 '저 불쌍한 것!'이라고 하면서 한숨을 짓겠죠. 그러면서 당신들이 한 시간, 두 시간을 '불쌍하고 아픈 아이'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겠죠. 하지만 나는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고요! 나는 당신들이 날마다 나를 동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단 말이에요. 연민은 필요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연민은 거부하겠어요! 오고 싶으면 오고,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마세요! 하지만 군마 심사 같은 엉터리 이야기를 꾸며대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란 말이에요! 나는······ 나는 당신들의 거짓말, 당신들이 그 끔찍한 배려심은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102p)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법입니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고 믿으면 양심의 가책이 덜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카니츠는 이번 피해자에게서는 조금의 잘못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손이 묶인 채로 그에게 항복했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른 채 푸른 눈동자로 끊임없이 그에게 감사하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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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곁에 있는 피해자도 불안해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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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제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 때문에 그 전에 모든 일을 정리하고 싶어서요······ 애써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수고비로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저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셨잖아요. 저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니까······ 계산을 끝냈으면 해서요."
카니츠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녀의 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겁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거죠. 마치 개에게 화풀이를 하며 마구 때렸는데, 그 개가 엉금엉금 기어와서는 애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의 잔인한 손을 핥아줄 때처럼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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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모든 일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상대의 반응까지 예상하는 철저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겁니다. 중개인 시절 그는 사람들이 그의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리거나 인산조차 받아주지 않는 경험도 해봤고, 심지어 그가 담당하던 구역에는 피해 다녀야 할 골목들도 몇 곳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인사를 받아보는 것은 그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그를 철저하게 믿어주는 최초의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172-173p)
나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 즐거웠고 다른 사람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인 것이다.(207-208p)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는지 너무 적게 했는지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연민에서 비롯된 그 거짓말 때문에 에디트가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결코 죄나 불의가 될 수 없었다!(216p)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답니다.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치료도 되지만 그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제때 중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처음 몇 번 맞을 때에는 마음이 진정되고 통증도 없애주죠. 그렇지만 우리의 신체나 정신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답니다. 신경이 더 많은 양의 모르핀을 찾게 되는 것처럼 감정은 더 많은 연민을 원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옆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원하게 되죠. 언젠가는 '안 돼'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그 거절 때문에 환자가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은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증오하게 될지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래요, 소위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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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절망에 빠진 사람을 그냥 모른 척합니까? 저는 그저······ “
갑자기 콘도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게 아니에요! 책임감을 느껴야죠! 엄청난 책임감이요! 연민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면, 그건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요! 성인이라면 어떤 일에 관여하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함께 갈 건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물론 당신이 좋은 의도로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 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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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합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235-236p)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자신이 상대의 열정을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지가 있다 할지라도 자신을 탐하는 상대의 욕망 앞에서는 그 의지조차 무기력해지는 법이다.(282p)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생각 이상으로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것은 생각의 상당한 부분이 이미 오래전에 새겨진 인상과 오래전에 받은 영향을 그저 자동적으로 작동시켜나가는 역할만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규율을 통해 군인으로 성장한 사람은 명령에 거역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 군령은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 자신의 의지를 없애버리는 힘을 의미한다. 군복만 입고 있으면 그는 명령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몽유병자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명령을 따르게 된다.(440p)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내 죄를 잊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절실하게 잊고자 하는 일은 쉽게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 죄를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딱 한 번 옛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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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양심이 기억하는 한 그 어떤 죄도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461-463p)
ㅡ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中,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