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

 

번역, 번역, 번역. 진정 내 문해 능력의 부족함 탓인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가. 생각에 관한 생각도 구판으로 보고 있는데 이럴 때는 참 원문으로 볼 수 있는 영어 능력이 부럽다.

 

 

설령 아무 사고 없는 여행이라 해도, 자기 노선의 어딘가를 비행하는 조종사는 단순한 풍경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대지와 하늘의 빛깔, 바다 위로 남겨지는 바람의 흔적, 석양 무렵의 황금빛 구름, 조종사는 그것들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자기 농지를 한 바퀴 돌며 수많은 징후로 봄이 오거나 냉해가 발생하거나 비가 올 것을 예측하는 농부와도 같이, 직업 조종사 역시 눈의 징후, 안개의 징후, 행복한 밤의 징후들을 해독해낸다. 처음에는 기계가 인간을 자연의 커다란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욱 더 혹독하게 그 문제들에 종속시키고 만다.(34-35p)

 

 

오랜 친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한 그토록 많은 추억들, 함께 겪은 수많은 고된 시간들, 그토록 잦았던 다툼과 화해, 마음의 움직임, 그런 보물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우정은 다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떡갈나무를 심어놓고 곧바로 그 그늘 아래 몸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헛된 일이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 우리는 풍요로웠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그 작업을 해체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그런 시기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씩 우리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에는 늙어간다는 말 못할 회한이 서린다.(40-41p)

 

 

이별, 부재, 거리, 회귀의 관념들은 비록 그 단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동일한 현실을 담고 있지 않다.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삶이 우리의 본성과 더 잘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그 삶이 우리의 언어와 더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매번 발전할 때마다 우리는 습득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습성들로부터 조금 더 멀리 밀려났고,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 자신들의 조국을 세우지 못한 진정한 이민자들이다.(58p)

 

 

멀리 떨어져 있음을 가늠하게 해주는 것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집의 정원 담벼락 하나가 중국 만리장성의 벽보다 더 많은 비밀을 담고 있을 수 있으며, 사하라의 오아시스들이 모래 두께로 보호되는 것보다 어린 소녀의 영혼이 침묵에 의해 더 잘 보호되기도 한다.(77-78p)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수도원에 들어가 담을 쌓고서 우리가 모르는 규칙에 따라 생활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티베트의 오지의 고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며 그 어떤 비행기도 우리를 내려주지 못할 먼 곳에 있는 것이다.(88p)

 

 

그는 유대인 노점 앞을 어슬렁거렸고, 바다를 보았으며 이제 자신은 자유로우므로 어느 방향이든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얼마만큼이나 그가 세상과의 연관성이 없는가를 깨닫게 했기 때문이었다.(121p)

 

 

우리가 강렬한 배고픔을 느끼듯이, 그는 사람들 틈에서의 한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고 사람들과 엮인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다. 아가디르의 무희들은 바르크 영감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왔던 것처럼 수월하게 그녀들과 작별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랍 카페의 종업원, 길거리의 행인들, 그들 모두 자유인으로서의 그를 존중했고, 그와 함께 평등하게 자신들의 햇빛을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그가 필요하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유로웠지만, 무한히 자유로워 더 이상 대지 위에서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걸을 때 거치적거리는 인간관계의 무게, 눈물, 작별, 비난, 기쁨, 사람이 어떤 몸짓을 할 대마다 아껴주거나 고통을 주게 되는 그 모든 것, 그를 다른 사람들과 묶어 무겁게 만드는 수많은 관계들이 없었다.(123p)

 

 

 

ㅡ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中,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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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1

 

우주만화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하겠다.

 

 


우하하하, 착각하지 마라. 과장하지 말라고.”

젊은이들이 노인들 생각에 맞는 답변을 하지 못하면 노인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다.(64-65p)

 

 

,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 받는 걸 알게 될 거야.(88p)

 

 

우리는 항상 선한 것을 기대하지. 하지만 영혼이 착하든 악하든 간에, 우리를 찾아 이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불쌍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해도 우리는 매일 우리 도리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 밭을 경작하면 되는 거야.”(97p)

 

 

착한 반쪽은 매일 자기가 생각한 도면을 완성해 나갔고 설계도에 종이를 덕지덕지 붙였지만 피에트로키오도는 그 기계를 만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오르간물방아오븐은 나귀들에게는 일을 적게 시키면서 우물에서 물을 끌어 올려야만 했고, 여러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바퀴로 이동할 수 있고, 축제일에는 정지되어 있어야 했으며 주위에는 그물을 쳐서 나비를 잡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피에트로키오도는 인간들이 정말 실용적이고 정확하게 만들어 작동할 수 있는 기계는 사형대와 고문대같이 해로운 것들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악한 반쪽이 피에트로키오도에게 새로 만들 기계에 대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이 장인의 머릿속에는 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금방 떠올라서 그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들을 다시 손볼 필요 없이 완벽하게 완성된 그 도구는 기술적으로나 독창적인 면에서나 걸작이었다.(103p)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 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119p)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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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

 

아우스터리츠나 토성의 고리는 좀 천천히 읽어야지. .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난 나는 레오폴트슈타트와 요제프슈타트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작은 거리들을 목적도 방향도 모른 채 한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나중에 지도에서 확인하고 놀란 일이지만, 정처 없는 산책중에 내 발길은 특정한 지역 테두리 안에만 머물러, 프라터슈테른 뒤편의 베네디거 아우 공원과 알저그룬트 종합병원을 기점으로 하는 초승달 내지 반달 모양 구역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그때 내가 돌아다녔던 경로를 종이 위에 그려본다면, 이성과 상상력, 그리고 의지력의 경계에 가서 부딪힌 다음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무수한 삼각과 사각, 그리고 대각선들을 그어놓았다는 인상을 풍길 것이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도시를 종으로 횡으로 가로지르던 방랑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명백한 경계를 긋고 있었다. 그때의 행동에서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는, 한 없이 걷기만 했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완전히 임의로 정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조금도 침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35-36p)

 

 

인간이 실제로 미쳐버리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럴 만한 계기는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자기 자신에 아주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사노바는 인간의 명확한 판단력을 저 홀로는 깨지지 않는 유리에 비유한다. 단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만 깨지지만, 일단 깨질 또 얼마나 쉽게 깨지고 마는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끝이다.(57-58p)

 

 

나는 낯선 도시에서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일단 내가 너무 까다로워서 몇 시간이고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녀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고, 그렇게 헤매다닌 끝에 대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에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어버리는 탓이다.(76-77p)

 

 

우리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인물은 항상 간절함이 사라진 다음에야 나타난다고.(146p)

 

 

나에게 가장 친숙하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의 사물 두 가지는 군사작전용 모형을 움직이는 모래상자와 군대의 전황 보고인데, 적어도 나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 두 가지 사물의 논리 사이에는 조건을 파악할 수 없는 드넓은 벌판이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우리의 감각으로 잡히지 않는 사소한 요인들이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사를 뒤바꾼 주요 전투들이 바로 그런 요인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다. 사소한, 하지만 워털루에서 전사한 오만 군사와 말들의 생명과 비견될 정도로 비중 있는 요인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비중의 문제, 그것이다.

(...)

인간이 핸들을 한번 돌리는 것만으로, 그런 의지만으로, 수많은 변수와 연관된 사물의 행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사실 참으로 허황된 것이다.(148-149p)

 

 

K 박사는 육체를 배제한 사랑의 이론을 단편적으로 풀어놓는다. 그런 상에는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것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한 행복의 근원은 자연이지 이미 오래전에 자연으로부터 유리된 우리의 육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연인들은, 사랑에 빠지면 대부분 다 어리석어지기 마련인데,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지만, 욕망으로 흐려진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떠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성욕으로 그 어떤 때보다 더 대책 없는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제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나는 상상은 걷잡을 수가 없다. 끊임없는 변화와 반복을 요구하는 강박이 인간을 굴복시킨다. 이미 그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일단 그런 강박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인간이 영원히 붙들어놓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조차도,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150-151p)

 

 

그들은 우연히 몇몇 다른 이와 함께 있었는데, 그중 매우 부유하고 매우 우아하면서 젊은 한 러시아 여인이 한편으로는 권태롭고 한편으로는 극도의 좌절감으로 말미암아우아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면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 역은 훨씬 드물게 성립하는 법이니까카드를 꺼내어 탁자에 펼쳤던 것이다.(151-152p)

 

 

그런데 애초에 누구의 잘못 때문에 그가 이러한 엄청난 불행을 영원히 짊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잘못이라면 그것이 어떤 잘못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가 다름아닌 K 박사이므로, 나는 결코 항해를 끝낼 수 없는 사냥꾼 그라쿠스의 영원한 방랑이 의미하는 것이 사랑의 갈망에 대한 속죄라는 생각이 든다. K 박사는 그 자신이 펠리체에게 보낸 수많은 박쥐-편지에 썼듯이, 언제나 외양으로도 그리고 법적으로도 향유의 여지가 없는 그런 지점에서만 사랑의 불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157p)

 

 

쉰이 되던 해까지 건축용 함석 제조업체에서 일했으나 관절염으로 점점 몸이 굽는 바람에 조기 은퇴를 한 그는, 아내가 문방구점을 경영하는 동안 온종일 집안의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한옆으로 일단 밀려난 사람에게 하루가, 시간이, 그리고 인생이 얼마나 느리게 갈 수 있는지를, 하고 그는 말했다.(198p)

 

 

나는 매우 장황하면서도 군데군데 모순이 섞인 대답을 했는데, 놀랍게도 루카스는 그것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이 내 안에서 저절로 설명되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수수께끼처럼 변해간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199p)

 

 

1511, 페스트로 일백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1530, 대형 화재로 일백 채의 집이 전소했다. 1569, 큰 화재로 시장이 불타버렸다. 1605, 대형 화재로 일백마흔 채의 건물이 잿더미가 되었다. 1633, 스웨덴인들이 마을을 초토화했다. 1635, 페스트로 주민 칠백 명이 사망했다. 1806년부터 1814, 독립전쟁에서 W 출신 자원병 열아홉 명이 전사했다. 1816년부터 1817, 수해로 흉년이 들었다. 1870년부터 1871, 마을 청년 다섯 명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1893, 416일 큰불이 나서 시장 거리 전체를 태웠다. 1914년부터 1918, 고국을 위해 싸우다 이 지역의 아들 예순여덟 명이 전사했다. 1939년부터 1945, 남자 일백스물다섯 명이 이차대전에서 돌아오지 못했다.(224-225p)

 

 

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 , 문학동네

,

2019/1/6

 

 

, 저게 저렇게 된 것도, 이게 이렇게 된 것도 내 탓 아닐까. 전생의 인연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사고방식은 요컨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라고. 바꿔 말하면 자기를 과대평가한다는 거지. 전봇대가 큰 것도 우체통이 빨간 것도 전부 내 죄입니다, 하는 건 자기를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상과 마주 보길 포기한 어리광쟁이가 하는 말이야.(43p)

 

 

하마터면 연설을 할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이야기를 끝맺었다. 헤어진 아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돼. 감탄이 나오게 설명해주는 평론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입 다물고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게 의지가 되는 남편 아냐?(97p)

 

 

가나와 함께 살게 된 아버지는 아침 일찍 펑소와 빨래를 시작해 오전 중으로 집을 구석구석 깨끗이 치우고 나면, 전철을 갈아타고 경로 우대 할인이 되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백화점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그 김에 동물원에 가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거나 가나가 부탁한 장을 보거나 한다. 저녁이 되면 마음에 든 동네 주점에서 가볍게 요기하고 가볍게 마시고, 가나가 집에 올 즈음에는 직접 물을 받아 목욕하고 NHK<뉴스워치 9>를 보고 나서 취침.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모양이다. 가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했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이라기보다 셰어하우스의 주민 같은, 어딘지 모르게 담백한 관계였다.(103p)

 

부녀간의 관계만 담백할 뿐만 아니라 노년이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 형태 중 하나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늙어야 할 테고, 그러자면 역시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란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겠지. 운동을 합시다.

 

 

아들에게도 언젠가 배우자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제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연히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그 뒤 식사에 초대하고, 두 사람의 개인사며 취향,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을 맞춰보고, 메일 등등을 주고받으며 호의를 전할 생각을 하면 다소 귀찮다. 타인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갈 자신도 별로 없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 좋은 집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119-120p)

 

 

가나를 도와주는 게 싫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부르면 달려 올 것이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누가 답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내 감정에 화살표를 붙일 수 있는 어떤 전망이나 방향성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상황에 맡기고 그때그때 대응해봤자 이내 지칠 대로 지쳐 진이 빠질 것이다. 공중에 뜬 상태에서 발을 움직인들 허공을 저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134p)

 

 

 

마쓰이에 마사시,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 비채

,

2018/12/24

 

 


미인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지요, 하고 남자가 말한다. 사람마다 다 미인이라고 느끼는 대상이 다른 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여자가 물으며 다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 그럼요, 아주 못생긴 사람이나 조금 못생긴 사람이나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나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다 포함해서요, 하고 양말 파는 남자가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못생긴 사람이 조금 못생긴 사람을 미인으로 느낀다고 해서 그 조금 못생긴 사람이 미인이 되는 건 아니지요.(125-126p)

 

 

너희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언니가 말을 이었다.

사사건건 불만투성이면서도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몰라. 자기 혼자 행복하자고 다른 사람 인생을 엿 먹이기 일쑤인데 정작 본인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를 모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164p)

 

 

한마디로 빈털터리라는 소리네.”

그런 셈이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랄까.”

그 순간에 웬일인지 그들이 잘생겨 보였다. 두 사람은 막 샤워를 끝낸 터였다. 토메의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는데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만한 태도가 느껴졌다. 오빠나 나에 비해서 그들은 모든 일을 더 단순하고 명쾌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166p)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며칠이나 우리 집에 있을 생각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멀리 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 말이다. 공격적인 것과 호의적인 것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167p)

 

 

한마디로 우리 가족은 늘 중산층이었고 각자 다양한 위치에서 시작해 때로는 모순적인 선택까지 해가며 신분 상승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의와 윤리의 상징적인 담보자인 굳건한 상류층의 장벽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네. 우리가 끝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사회 계층은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었지만 동시에 씨족의 가장 깨어 있는 영혼들(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 말일세)을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었지. 나는 겨우 열세 살이었던 그때 우리 가족의 소유가 아닌 그 농장에서 바로 그 불안의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네. 그것은 아찔한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자체가 무화되는 시간 속의 공간이었지.(174-175p)

 

 

 

로베르토 볼라뇨, <악의 비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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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8

 

강렬하다.

 



삶은 계속 되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며(30분 만에 꽃병이 놓인 위치를 다섯 번이나 바꾼다든지, 미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각 상황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야 했다. 즉, 그때까지 습관처럼 해왔듯 모든 상황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차례차례 직면해야했다. 그리고 성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곧 우리는 뚱보가 두려워서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59p)

 

 

그는 레닌 훈장, 적기 훈장 4번, 수보로프 일급 훈장 2번, 쿠투조프 일급 훈장, 보그단 흐멜니츠키 일급 훈장, 셀 수 없이 많은 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정부와 당의 주도 하에 빌니우스와 빈니차에 그의 기념비들이 세워졌다(틀림없이 빌니우스 기념비는 현존하지 않고, 빈니차 기념비 역시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옛 동부 프러시아의 인스터부르크 시는 오늘날 그를 기려 체르냐호프스키라고 부르고, 토마스폴스키 주의 베르보포 마을에 있는 집단 농장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오늘날에는 집단 농장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카시 지역에 있는 우만스키 주의 오크사니노 마을에는 위대한 장군을 기려 청동상이 세워졌다(내 한 달치 월급을 걸고 말하는데, 현재 그 청동상은 페틀류라로 대체되었다. 앞으로는 누구로 대체될지 어찌 알겠는가). 비비아노가 파라를 인용하며 말했듯이, 결국 세상의 영광은 그렇게 영광도 없이, 세상도 없이, 싸구려 햄 샌드위치 한 조각 남지 않게 되었다.(79p)

 

 

나는, 나에게 카를로스 비더는 시인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그에게 말했다. 좋소, 좋아, 로메로가 말했다. 우리 편협해지지 맙시다. 어쩌면 비더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시인이 아니거나 나쁜 시인일 수도 있고, 그 혹은 그들이 좋은 시인일 수도 있소. 모두 어떤 잣대를 갖고 보느냐에 달린 거지.(159p)

 

 

그를 죽일 겁니까?, 내가 웅얼거렸다. 로메로는 내가 볼 수 없었던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기다리든지 아니면 블라네스 역으로 가서 첫 기차를 타시오. 나중에 바르셀로나에서 만납시다. 그를 죽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 일로 우리가, 당신과 내가 망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 작자는 이제 아무에게도 해코지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분명 망가지지 않소, 로메로가 말했다, 오히려 돈이 두둑이 생길 거요. 그가 아무한테도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겠소. 사실 그건 우리도 모르는 일이오. 우리는 알 수 없소. 당신도 나도 신이 아니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뿐이오. 그 이상은 아니오.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절대 꼼짝도 않는 몸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로 그가 합리적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내가 우겼다. 모두 끝난 일입니다. 이제는 아무도 아무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겁니다. 로메로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다독였다. 그건 당신이 참견하지 않는 게 낫소, 그가 말했다. 곧 돌아오겠소.(196-197p)

 

 

ㅡ 로베르토 볼라뇨, <먼 별>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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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2

 

피식피식 웃기다.

 

 

가난뱅이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온통 위법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 무렵 내 성적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샤는 예전에도 성적불량이었다. 교학과에서는 우리의 도덕성을 들먹였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빚까지 지게 되면, 그의 도덕성 문제가 거론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19p)

 

 

쉬지 않고 질문을 해대는 사람은 언젠가는 답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37p)

 

 

편집장은 선량한 사람이었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 선량함과 같은 사치는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법이다.(72p)

 

 

“머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그래도 도둑질할 머리는 돌아가나 보지? 자네 서류에 집단 절도라고 돼 있던데. 대체 뭘 훔친 거야?”

죄수는 당황해 하며 어물쩍거렸다.

“별거 아냐·····. 트랙터를·····.”

“트랙터를 통째로?”

“물론이지.”

“그걸 어떻게?”

“아주 간단해. 철근 콘크리트 제조 콤비나트에서 한 일이지. 내가 심리전을 썼거든.”

“어떻게 했다는 거야?”

“어떻게 했다는 거야?”

“콤비나트에 들어갔어. 트랙터에 앉았지. 뒤쪽 기름통 밑에 철로 된 큰 통을 묶었어. 당직실 쪽으로 몰고 갔지. 통이 시끄럽게 덜그럭거렸을 거 아냐. 경비가 나와서 <통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하고 묻더군.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필요해서요.>하고 대답했지. <서류 있어?>, <아니오.>, <그럼 풀어놔.>·····나는 통을 풀어놓고 그냥 쭈욱 타고 갔어. 어쨌든 심리전이 통한 거지. 그러고 나서 트랙터 분해 작업을 했고·····.”(110-111p)

 

 

나는 내가 겪었던 가난을 슬퍼하지 않는다. 만약 헤밍웨이의 말을 믿는다면 가난은 작가에게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학교이다. 가난은 사람을 명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식의 교훈은 얼마든지 있다.

흥미로운 점은, 헤밍웨이가 부자가 되자마자 이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139p)

 

 

무언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었을 때 그들은 나를 무시했다. 그런데 내가 거의 반병신이 된 지금은 여자들이 나한테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내 눈을 서로 치료해 주려고, 말 그대로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했다.(201p)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동의하십니까?”

“생각해 보라면서요.”

“얼마나 생각을 해야 합니까? 그냥 동의하세요.”(225p)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ㅡ 도블라또프, <여행가방> 中, 뿌쉬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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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31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모든 게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 가버릴 수 있다는 걸 말이다.(29p)

 

 

나이를 먹으면 대개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 시야가 좁아진다.(39p)

 

 

살다보면 고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몸무게, 외모, 심지어 이름까지 그렇다) 아무리 기도하고 애를 쓰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규정한다.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것들이.(66p)

 

 

어렸을 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다.(205p)

 

 

내 인생은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내가 하지 않은 말에 의해 결정되어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누락 되었는가가 우리를 규정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밝히지 않은 진실이 우리를 규정한다.(212p)

 

 

나는 지금까지 니키의 인생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엄마를 되찾고.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은 없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엔딩만 있는 걸지 모른다.(296p)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375p)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루려고 애를 쓰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다들 가독을 위해 근사하고 널찍한 집을 장만하고 최신형 사륜구동 컨트리사이드 디스트로이어를 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좀 더 작고 환경 친화적인(하지만 뒷좌석에 반려견을 태울 만큼은 되는) 차로 갈아탄다. 그러다 은퇴를 하면 널찍한 주택은 닫힌 문 뒤로 방마다 먼지만 쌓이는 감옥으로 바뀌고 온 가족이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기에 좋았던 마당은 관리하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는데, 어차피 가정을 일군 아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래서 집도 작아진다. 건사할 사람이 나 하나밖에 안 남는 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러면 이사하길 잘했다고 혼자 중얼거린다. 집이 작을수록 외로움으로 채우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혼자 뒤를 닦지도 못해서 독방의 철책이 달린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기 전에 이승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378p)

 

 

ㅡ C. J. 튜더, <초크맨> 中,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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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3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사람이 한번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곧 절도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술을 마시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으며, 천박한 인간처럼 굴고 약속도 지키지 않을 거라고 말이오. 한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굴러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살인 혹은 저런 살인 탓에 파멸해간다. 인용 끝.”(148p)

 

 

우리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파괴 충동을 누를 수 없기 때문에 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L'homme est méchant(인간은 사악하다)이기 때문에 체념해야 한다는 거요. 그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게 전부였소. L'homme est méchant. 그래서 나는 다른 선택을 했지.”

말하자면?” 피르미누가 물었다.

실제 행동에 옮기는 거요.” 돈 페르난두가 대답했다. “고문당하는 사람들은 변호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것이 훨씬 더 겸손한 행동이니까. 농업 논문을 쓰는 일하고 곡괭이로 흙을 파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유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난 농부처럼 곡괭이로 흙덩이를 부수는 쪽을 선택했어요. 겸손에 대해 말했지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마시오. 결국 나는 오만함 때문에 이런 태도를 취한다고 할 수 있으니.”(176p)

 

 

안토니오 타부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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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0

 

 

회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역시 뭔가 회개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안토니우 신부와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는 신부에게 회개하고 털어놓고 싶지만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페레이라는 회개를 막연히 그리워할 뿐이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였다. 아니면 회개라는 생각만을 좋아한 것일지도 모른다.(98p)

 

 

사실 전 제가 살아온 삶에 만족합니다. 코임브라에서 공부를 하고, 요양원에서 평생을 보낸 아픈 여인과 결혼하고, 그리고 큰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범죄 기사를 쓰고, 지금은 이 작은 신문사의 문화면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107p)

 

 

그럼 난 뭘 해야 합니까? 페레이라가 물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르도주 박사가 대답했다, 기다릴밖에요, 천천히 침식을 일으킨 후에, 문학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믿으면서 신문사에서 범죄 기사를 쓰며 이 모든 세월을 보낸 후에, 박사님의 정신의 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하나의 지배적 자아가 있을 겁니다. 박사님은 그 자아가 표면에 나타나게 내버려두시면 됩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박사님 자신과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겁니다, 박사님께서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사제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페레이라 박사님, 결국 그 젊은이들 생각이 옳고 지금까지의 당신 삶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렇게 생각 하십시오, 하지만 아마 앞으로는 박사님 삶이 쓸데없다고 생각되진 않으실 겁니다, 박사님의 새로운 지배적 자아가 이끄는 대로 놔두십시오, 그리고 설탕을 가득 넣은 레모네이드와 음식으로 박사님의 고통을 보상받지 마세요.(110p)

 

 

밤이 깊어가고 양초들이 희미한 불빛을 퍼뜨렸다. 내가 왜 자네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몬테이루 로시, 페레이라가 말했다. 아마 박사님이 훌륭한 분이시기 때문일 테죠, 몬테이루 로시가 대답했다. 그건 아주 간단해, 페레이라가 반박했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문젯거리를 찾아다니지 않을 뿐이야.(160-161p)

 

 

ㅡ 안토니오 타부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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