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19
그의 마음이 고집스럽게 반박했듯이, 그것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정확히 그런 식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파국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진짜 시발점은 그의 명성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오페라. 아니면 절대 무오류의 존재이므로 모든 것에 다 책임이 있는 사람, 스탈린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배치처럼 단순한 것에서 촉발되었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결국 이게 그 일을 가장 정확히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의 배치 하나 때문에 처음에는 비난과 모욕을 받고, 나중에는 체포되어 총살된 작곡가.(32-33p)
그러나 문제는 그가 그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장벽도 없이, 내일은 생각지도 않고서. 왜 그가 직업 창녀와 거의 결혼까지 갈 뻔했을까? 그는 상황 탓이라고, 감응성 정신병의 요소가 얼마간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의 안에 자리한 모순되는 정신 때문이었다. “어머니, 제 처 로잘리야예요. 놀랍지는 않으시죠? ‘창녀와의 결혼’에 대해 제가 쓴 일기 읽어보셨겠지요?” 이혼도 할 수 있는데 안 될 게 뭐겠는가? 그는 그녀에게 그런 사랑을 느꼈고, 며칠 뒤 거의 결혼까지 할 뻔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빗속에서 그녀로부터 도망쳤다. 그럴 동안 노인 가우크는 런던 호텔의 레스토랑에 앉아 커틀릿을 하나 먹을지 두 개 먹을지 고심 중이었다. 무엇이 최선일지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57p)
소설이라면 그의 삶에 대한 모든 불안, 강점과 약점의 혼합, 히스테리를 일으킬 잠재성ㅡ그 모든 것이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치며 결혼의 행복한 평온으로 향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겪는 수많은 실망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모파상이건 누구건 삶은 소설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이었다. 고골의 짧고 풍자적인 이야기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59-60p)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보면 사실들은 더는 사실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진술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는 케렌스키와 트로츠키의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워할 일이었고, 그다음에는 관심 가질 정도의 문제가 되었다가, 이제는 침묵해야 할 수치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1905년 혁명에서 시베리아로 추방된 늙은 볼셰비키인 그의 숙부 막심 라브렌티예비치 코스트리킨이 처음으로 조카가 혁명에 공감하도록 북돋아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때는 자랑이자 축복이었던 늙은 볼셰비키들이 이제는 저주가 되는 경우가 더 흔했다. (...) 그러나 그는 유토피아를, 인류가 완벽해질 가능성을, 인간 영혼의 개조를 믿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있고 5년 후, 그는 <2천억 년 뒤에 지상천국이 온다네>라는 곡을 친구에게 써주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80-81p)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젊은이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 나이 대에는 아이러니가 성장을 막고 상상력을 저해한다. 남을 믿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며,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이에게 솔직히 대하는, 활기차고 개방적인 마음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다 세상사와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러니의 감각을 발전시킬 때가 온다.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가는 것이다. 아이러니의 감각은 비관주의를 누그러뜨려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어서, 아이러니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방식으로 쑥 자라났다. 버섯처럼 하룻밤 새, 암처럼 무시무시하게.(126p)
셰익스피어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핏속에 무릎까지 빠진 독재자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의 괴물들에게는 의심, 나쁜 꿈, 양심의 가책, 죄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죽인 자들의 유령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실제 공포 아래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이 뭐란 말인가? 나쁜 꿈 따위가 뭣인가? 다 감상주의, 헛된 낙관주의, 세상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보다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불과했다. 나무를 쪼개어 파편이 튀게 만든 자들, 빅 하우스의 책상에 앉아 벨로모리를 태우는 자들,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서류철을 닫으며 한 생명을 끝내버리는 자들. 그들 중 악몽을 꾸거나 죽은 자의 유령이 일어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본 자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130-131p)
어쩌면 용기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도 나이를 먹는다. 그녀에게는 사라져버린 것만 보인다. 다른 이들 눈에는 남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잘 버텨냈다고, 굴복하지 않았다고, 신경질적인 겉모습 아래 굳은 심지가 있었다고 축하했다. 그에게는 사라진 것만 보였다.(171p)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했을 때, 세상에 허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일 때에도 그는 이것만큼은 고수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흐 서곡과 푸가를 어떤 박자, 어떤 세기로 연주하더라도 여전히 위대한 음악이었고 그것은 건반악기에 전혀 재능이 없는 비열한 인간에게조차 맞설 수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음악을 냉소적으로 연주할 수는 없다.(179-180p)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심결에 슬그머니 떠오르도록 그저 놔두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죽음에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말로써든, 그의 경우에는 음악으로든. 우리 삶에서 죽음에 대해 더 일찍 생각할수록 실수도 더 적게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많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가끔은 죽음에 대해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수는 똑같이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죽음이야말로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208p)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ㅡ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ㅡ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의 즐거움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다.(227p)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알았다. 귀가 있는 이들은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하는 식대로만 이해하려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어떻게 비쳤을까? 그런 이들이 어떻게 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제 겁에 질린 얼굴이 공식 차량을 타고 지나쳐갈 때, 길가에 서 있는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일까?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233p)
ㅡ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中, 다산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