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19

 

 

그의 마음이 고집스럽게 반박했듯이, 그것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정확히 그런 식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파국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진짜 시발점은 그의 명성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오페라. 아니면 절대 무오류의 존재이므로 모든 것에 다 책임이 있는 사람, 스탈린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배치처럼 단순한 것에서 촉발되었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결국 이게 그 일을 가장 정확히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의 배치 하나 때문에 처음에는 비난과 모욕을 받고, 나중에는 체포되어 총살된 작곡가.(32-33p)

 

 

그러나 문제는 그가 그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장벽도 없이, 내일은 생각지도 않고서. 왜 그가 직업 창녀와 거의 결혼까지 갈 뻔했을까? 그는 상황 탓이라고, 감응성 정신병의 요소가 얼마간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의 안에 자리한 모순되는 정신 때문이었다. “어머니, 제 처 로잘리야예요. 놀랍지는 않으시죠? ‘창녀와의 결혼’에 대해 제가 쓴 일기 읽어보셨겠지요?” 이혼도 할 수 있는데 안 될 게 뭐겠는가? 그는 그녀에게 그런 사랑을 느꼈고, 며칠 뒤 거의 결혼까지 할 뻔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빗속에서 그녀로부터 도망쳤다. 그럴 동안 노인 가우크는 런던 호텔의 레스토랑에 앉아 커틀릿을 하나 먹을지 두 개 먹을지 고심 중이었다. 무엇이 최선일지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57p)

 

 

소설이라면 그의 삶에 대한 모든 불안, 강점과 약점의 혼합, 히스테리를 일으킬 잠재성ㅡ그 모든 것이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치며 결혼의 행복한 평온으로 향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겪는 수많은 실망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모파상이건 누구건 삶은 소설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이었다. 고골의 짧고 풍자적인 이야기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59-60p)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보면 사실들은 더는 사실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진술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는 케렌스키와 트로츠키의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워할 일이었고, 그다음에는 관심 가질 정도의 문제가 되었다가, 이제는 침묵해야 할 수치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1905년 혁명에서 시베리아로 추방된 늙은 볼셰비키인 그의 숙부 막심 라브렌티예비치 코스트리킨이 처음으로 조카가 혁명에 공감하도록 북돋아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때는 자랑이자 축복이었던 늙은 볼셰비키들이 이제는 저주가 되는 경우가 더 흔했다. (...) 그러나 그는 유토피아를, 인류가 완벽해질 가능성을, 인간 영혼의 개조를 믿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있고 5년 후, 그는 <2천억 년 뒤에 지상천국이 온다네>라는 곡을 친구에게 써주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80-81p)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젊은이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 나이 대에는 아이러니가 성장을 막고 상상력을 저해한다. 남을 믿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며,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이에게 솔직히 대하는, 활기차고 개방적인 마음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다 세상사와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러니의 감각을 발전시킬 때가 온다.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가는 것이다. 아이러니의 감각은 비관주의를 누그러뜨려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어서, 아이러니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방식으로 쑥 자라났다. 버섯처럼 하룻밤 새, 암처럼 무시무시하게.(126p)

 

 

셰익스피어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핏속에 무릎까지 빠진 독재자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의 괴물들에게는 의심, 나쁜 꿈, 양심의 가책, 죄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죽인 자들의 유령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실제 공포 아래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이 뭐란 말인가? 나쁜 꿈 따위가 뭣인가? 다 감상주의, 헛된 낙관주의, 세상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보다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불과했다. 나무를 쪼개어 파편이 튀게 만든 자들, 빅 하우스의 책상에 앉아 벨로모리를 태우는 자들,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서류철을 닫으며 한 생명을 끝내버리는 자들. 그들 중 악몽을 꾸거나 죽은 자의 유령이 일어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본 자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130-131p)

 

 

어쩌면 용기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도 나이를 먹는다. 그녀에게는 사라져버린 것만 보인다. 다른 이들 눈에는 남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잘 버텨냈다고, 굴복하지 않았다고, 신경질적인 겉모습 아래 굳은 심지가 있었다고 축하했다. 그에게는 사라진 것만 보였다.(171p)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했을 때, 세상에 허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일 때에도 그는 이것만큼은 고수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흐 서곡과 푸가를 어떤 박자, 어떤 세기로 연주하더라도 여전히 위대한 음악이었고 그것은 건반악기에 전혀 재능이 없는 비열한 인간에게조차 맞설 수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음악을 냉소적으로 연주할 수는 없다.(179-180p)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심결에 슬그머니 떠오르도록 그저 놔두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죽음에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말로써든, 그의 경우에는 음악으로든. 우리 삶에서 죽음에 대해 더 일찍 생각할수록 실수도 더 적게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많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가끔은 죽음에 대해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수는 똑같이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죽음이야말로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208p)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ㅡ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ㅡ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의 즐거움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다.(227p)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알았다. 귀가 있는 이들은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하는 식대로만 이해하려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어떻게 비쳤을까? 그런 이들이 어떻게 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제 겁에 질린 얼굴이 공식 차량을 타고 지나쳐갈 때, 길가에 서 있는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일까?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233p)

 

 


ㅡ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中,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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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17

 

 

읽음. 이제 웃는 경관을 읽으면 되겠지? ㅋㅋ

 

119-120p

121-122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中,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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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3

 


무릇 현실이란 범상한 자들의 상상력을 아득히 웃도는 법이다.

 

이렇게 신의 은총과 구원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들먹이는 걸 보고 있자니 신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억울해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장클로드 로망을 보며 영화 밀양의 납치범이 생각났다. 아이의 엄마는 신앙생활을 통해 겨우 분노와 절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마침내 납치범을 용서하려고 그를 찾아간다. 그런데 납치범은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용서해주셨다.’는 주장을 한다. 대관절 누가 누구를 용서를 했단 말인가. 아이의 엄마가 고통 받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슬러 납치범을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의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납치범은 ‘나는 신에게 용서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습니다.’ 등등의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마음을 평안을 얻었다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까. 이 책의 살인자도 딱 그 짝이다. 

 

<마리프랑스, 저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어요. 플로랑스의 가족과 내 친구들을 위해 이 고통을 떠맡기로 작정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요·····.(195p)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식의 왜곡되고도 모순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대단히 특이한 생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전형성을 띤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자들의 주변에는 거의 항상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전형적인지.

 

 

 

 

한편으론,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로망 가문은 약속을 잘 지키며 황금처럼 정직해야 하니까.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했다. 괴로움을 일으켜서도, 성공이나 장점을 떠벌려서도 안 되었다.(48p)

 

 

이렇게 말하고 나니,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두들 장클로드를 그런 아내의 완벽한 남편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은 장클로드가 사들인 포르노 비디오에 대해 놀라워하며 그걸로 뭘 했냐고 순진하게 물었다. 피고는 비디오를 봤다고, 때로는 아내와 함께 봤다고 대답했고, 재판장은 그런 말은 고인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 다그쳤다.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있는 플로랑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냐고 재판장은 소리쳤고,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예,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그랬을 거라고도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58-59p)

 

 

아이들은 언제나 모든 걸 알고 있고,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감춰서는 안 된다고들 말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 말을 믿고 있다. 나는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젠 그런 말들에 자신이 없다.(86p)

 

 

예심이 진행되는 동안 판사는 악의나 의심을 품지 않았더라도 왜 누구 한 사람 그런 전화를 좀 더 일찍 해보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단단히 벽을 치고 산다 해도> 아내나 친구들이 회사로 전화 한 번 걸어 오는 일 없이 10년 동안이나 직장 생활을 해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미스터리와 숨겨진 설명이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미스터리는 거기에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것이고,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89-90p)

 

 

장클로드도 그 영화를 플로랑스와 함께 텔레비전으로 봤다고 했다. 플로랑스는 별다른 마음의 동요 없이 그저 영화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는 좋게 끝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한 번도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지도, 그러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아내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벤치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창녀에게도, 신부나 심리 치료사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착한 영혼들에게도, 자살 방지를 도와주는 긴급 상담소의 익명의 귀에게도·····. 15년간 이중생활을 하면서 어떤 만남도 갖지 않았고,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며, 도박이나 마약 혹은 밤의 세계 같은, 그가 조금은 덜 외롭게 느꼈을 그 어떤 동류 집단에도 섞여 들지 않았다. 또한 결코 한 번도 바깥에 나가 의사인 척하면서 누굴 속이려 들지도 않았다. 집안에 들어설 때면, 모두들 그가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역할을 하다 돌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장관들을 만나고 공식 만찬에 참석하는 그 중요한 일들은 그가 밖으로 나서면 다시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에게 다른 무대란 없었고, 다른 역할을 보여 줘야 할 다른 관중도 없었다. 밖으로 나서면 그는 완전히 헐벗은 상태였다. 부재 상태로, 빈 곳으로, 공백 상태로 되돌아가던 그의 상황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겪는 유일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는 분기점 이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96-97p)

 

그녀가 레미와 결별하고 두 딸을 데리고 파리에 정착했을 때, 모임의 친구들은 버려진 남편 편을 들었다. 로망의 아내인 플로랑스만은 레미 역시 그의 아내 못지않게 실컷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것, 만일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그들 부부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플로랑스 자신은 그로 인해 개인적인 괴로움을 겪은 일이 전혀 없으므로 부부 중 어느 누구도 단죄하고 싶지 않으며 두 사람 모두에게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110p)

 

 

이런 가족생활은 포근하고 따스했을 것이다. 그들 모두 포근하고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안으로부터 썩었으며, 한순간도, 단 하나의 제스처도, 설핏 든 잠조차 부패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패는 그의 안에서 자라났고 안에서부터 차츰차츰 모든 걸 삼켜 버려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그 부패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와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는 일만이 남았다.(148p)

 

 

그날부터 그는 자신의 고통을 가족들의 기억에 바치기 위해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알고 싶어 했고 성찬을 준비하는 긴 단식이 곁들여진 기도와 명상의 기간에 들어섰다고 한다. 25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진 그는 자신이 거짓 외양들의 미로를 빠져나왔으며,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리스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했다. 그는 <난 한 번도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없었고, 삶이 이렇게 아름다운 적이 없었다. 나는 살인자고,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가장 비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거짓된 삶보다는 이게 더 견디기 쉽다>고 말했다. 한동안 더듬거린 후에 그는 프로그램 변경에 성공한 듯이 보였다. 존경받던 연구자라는 인물이, 그보다 덜 만족스러울 것도 없는, 신비한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중범죄자라는 인물로 대체되었다.(179-180p)

 

 

<마리프랑스, 저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어요. 플로랑스의 가족과 내 친구들을 위해 이 고통을 떠맡기로 작정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요·····.(195p)

 

 

다섯 시간의 심의 끝에, 장클로드 로망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고 22년 동안은 가석방의 기회가 없다는 단서가 붙었다. 모든 게 순조롭다면 그는 2015년에 예순한 살의 나이로 감옥을 나올 것이다.(200p)

 

 

그들처럼 무조건적으로 장클로드에게 동의하고 있노라고 믿게 하여 그들의 신뢰를 남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는 장클로드가 아니었다. 내가 보낸 편지들에서 처음에는 그를 <로망 씨>라고 했고, 그다음에는 <친애하는 로망 씨>, 그리고 그 후에 <친애하는 장클로드 로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애하는 장클로드>까지는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마리프랑스와 베르나르가 로망의 겨울 의복에 대해 활기를 띠며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나는 그토록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애정이 감탄스러우면서 동시에 거의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시험 전날 자살한 연인의 이야기 같은 뻔한 허구를 군말 없이 삼켜 버리거나, 베르나르처럼 이 불행한 운명의 밑바닥에 신의 계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길을 밟아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주변에 베풀고 있는 그토록 많은 선행을 위해서 그 온갖 거짓과 우연과 끔찍한 드라마가 필요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거야말로 제가 언제나 믿어 왔던 것이고, 그게 지금 장클로드의 인생에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모든 일은 잘 돌아가고 있고 그 의미란 게 결국은 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리지외의 성녀가 되기 전의 어린 테레즈 마르탱이 황홀경에 젖어 들려주던 위대한 범죄자 프란지니 이야기, 두 여자와 어린 소녀를 죽인 그 살인범을 용서하고 신에게 기도하자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1887년의 사람들 역시 할 말을 잃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내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베르나르의 입장이란 게 단지 헌신적인 기독교 신자의 입장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나는 마리프랑스와 그가 내 작업을 기웃거리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정의로운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뉘우치는 한 사람의 죄인을 위해 신의 가호를 기도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카트린 에렐은 로망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로망은 주님의 무한한 자비와 주님이 자신의 영혼에 행하는 경이를 읊조리는 천사 같은 말들에 흔들려 다닐 것이고, 그러다 보면 현실과 직면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잃어버릴 거라는 거였다. 로망과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낫다고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트린은, 예외 없이 모든 경우에서, 고통스러운 명징성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환상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211-212p)

 

 

 

ㅡ 엠마뉘엘 카레르, <적>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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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9

 

총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마르틴 베크’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두 번째 작품도 읽을 의향이 있다. 대화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문장이 간결하고도 단정하다.

 

셜록 홈즈로 대표되는 천재적인 탐정 개인의 기지와 재치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평범하나(솔직히 얘기하면 평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직업군내에서 일급의 능력을 발휘하는 충분히 유능한 사람들이며, 그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 직업윤리가 있는 경찰이 힘을 합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화나 드라마처럼 금방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2017년이 아닌 1960년대라면 말해야 뭘 할까. 시스템을 신뢰하는 자에게, 현실적이되 매력적인 인물들이 모여 번뜩이지만 근거가 부실한 직관을 통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물적 증거를 하나씩 쌓아가며 수사망을 좁히고 범인을 추적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충분한 즐거움이리라.

 

 

 

딸이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나자 그가 사랑에 빠졌던 밝고 발랄한 아가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혼 생활은 지루하다고 해야 할 일상으로 안착했다.(38p)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보람이 없었다. 지금은 작은 책상에 앉아서 수첩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정말로 집에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번인가 전화기로 손을 뻗었지만, 매번 생각에 그쳤다.

다른 많은 일이 그렇듯이.(52p)

 

 

함마르는 함께 일하기에 좋은 사람이었다. 늘 침착하고 아주 조금 굼떴다. 두 사람은 사이가 괜찮았다.(79p)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88p)

 

 

오랫동안 개처럼 일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니 대수롭지 않은 실마리 하나라도 과대평가하게 되는 것 같군요.(98p)

 

 

대체 뭘 했겠습니까? 땅콩이라도 까면서 놀았겠습니까? 그래요, 미안하지만 이건·····.(150-151p)

 

 

그렇게 많은 정보 제공자가 그렇게 널리 퍼져 있으니 반드시 살인범이 덫에 걸려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논리적인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틴 베크는 강간 살인 사건에 얽힌 아픈 기억이 하나 있었다. 범행은 스톡홀름 교외의 어느 지하실에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즉시 발견되었고 경찰은 한 시간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다. 살인자를 목격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었고 그들이 범인의 인상착의 상세하게 묘사했다. 범인은 발자국, 담배꽁초, 성냥,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남겼다. 게다가 그가 피해자를 유린한 수법은 몹시 변태적이면서도 특징적이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애초의 낙관은 스스로의 무능에 서서히 좌절로 변했다. 단서가 그렇게나 많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그로부터 칠 년 뒤, 문제의 남자는 또 강간을 시도하다 체포되었다. 취조중 남자는 갑자기 무너져내려 과거의 살인까지 자백했다. 칠 년 만에 해결된 그 범죄가 마르틴 베크에게는 하나의 작은 일화일 뿐이었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선배 경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선배 경찰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오백 번쯤, 아니, 천 번쯤 거듭 자료를 훑어보고 증언을 확인했던 것을, 그 일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계속했던 것을 마르틴 베크는 똑똑히 기억했다. 종종 뜻밖의 장소나 의외의 상황에서 선배와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선배는 비번이거나 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 최고의 비극이 된 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는 중이었다. 선배는 세월과 함께 쇠약해져서 일찌감치 연금을 받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수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사건이 해결된 것이었다. 전과도 없고 용의자 선상에 오른 적도 없었던 웬 인물이 할란드의 어느 경찰관 앞에서 느닷없이 눈물을 터뜨리며 칠 년 넘게 묵은 교살 범행을 털어놓았다. 너무나 늦게 찾아온 결말이 과연 늙은 형사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안겼을까? 마르틴 베크는 가끔 그게 궁금했다.(229-231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로재나> 中,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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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5

 

 

네 가지 요리는 모두 야채로 만든 거였는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밑에는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어.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 그러다 마지막 요리를 먹을 때 보니 밑에 또 돼지고기가 있는 게 아니겠나. 난 잠시 멍해졌다가 곧 허허 웃고 말았지. 자전의 뜻을 알아차렸거든. 그녀는 나를 깨우치려 했던 거야. 여자들이 겉모습은 다 달라 보여도 아래는 모두 같다는 뜻이었지. 자전의 속내를 눈치 채고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네.

이런 이치는 나도 알아.”

정말로 이치는 나도 알았어. 하지만 위쪽이 다르게 생겼으면 그 각각에 대한 내 마음도 다 달라지니 난들 어쩌겠나.(31p)

 

 

 

위화, <인생>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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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29

 

 

 

나는 혹한을 무릅쓰고, 이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이십여 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 아! 이것이 내가 이십년 동안 늘 그리워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내 고향은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기억해내고 그 좋은 점을 말로 표현하려 하자 그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그것을 표현할 말도 사라져버렸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변명했다. 고향은 본래부터 이런 곳이었다고ㅡ진보도 없지만, 내가 느낀 바와 같은 슬픔도 마찬가지로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나 자신의 마음의 변화일 뿐이다.(47-48p)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61p)

 

 

아Q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했다. 놈들은 노란 변발을 휘어잡고 벽에 그의 머리를 너덧 번 쿵쿵 짓찧었다. 건달들은 그제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는 잠시 선 채로, “나는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상의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의 노란 변발을 잡아챌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아Q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변발 밑동을 움켜잡고 머리를 비틀면서 말했다.

“벌레를 때린다, 됐지? 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 이제 놔줘!”

벌레가 되었어도 건달들은 놓아주지 않았다. 전과 똑같이 가까운 아무데나 그의 머리를 대여섯 번 소리나게 짓찧었고, 그런 뒤에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역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경멸을 잘하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일인자’이다. 장원도 ‘제일인자’이지 않은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아Q는 이처럼 여러 가지 묘법을 써서 적을 극복한 뒤에는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잔 마시고, 또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시시덕거리고, 한바탕 입씨름을 하여 또 승리를 얻고,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잠이 들었다.

(...)

그는 넋을 잃고 사당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기의 은전 뭉치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제삿날 벌어지는 노름판은 대부분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니 어디 가서 재산을 찾는단 말인가?

하얗게 반짝이는 은전 더미! 더구나 자기 것이었는데ㅡ지금은 없어져버린 것이다! 자식이 가져간 셈 치자고 해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자기를 벌레라고 해보아도 역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도 이번에는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ㅡ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ㅡ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71-74p)

 

 

“내가 어렸을 때 말야, 벌이나 파리가 한곳에 앉아 있다가 무엇에 놀라면 즉시 날아가지만 조그맣게 한바퀴 돌고 나서는 아까 그 자리로 되돌아와 내려앉는 것을 보고 참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뜻밖에 지금 나 자신도 기껏 조그맣게 한바퀴 돌았을 뿐 제자리로 날아 돌아온 것이야. 게다가 뜻밖에 자네도 돌아왔군. 자네는 좀더 멀리 날아갈 수 없었나?”

“글세, 아마 나 역시 조그맣게 한바퀴 돈 것에 불과할걸.”(158p)

 

 

 

ㅡ 루쉰, <아Q정전> 中,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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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1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거지, 그래, 알겠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아, 이쯤 하자. 다르델로를 만나면 보잘것없는 인물이 아니라 나르키소스를 상대하게 될 거야. 이 말의 정확한 의미에 주의해야 해. 나르키소스라는 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야.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낮게 평가해. 나르키소스는 과대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관찰하고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 하거든.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모든 거울들에 친절하게 신경을 쓰는 거지.”(25-26p)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괜찮아.”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네가 생각에 푹 빠져서 길을 걷고 있어.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서로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57-58p)

 

 

그는 성공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시샘을 불러일으킬까 걱정했고,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지만 추종자들을 피했다. 사사로운 생활에서 몇 차례 상처를 입은 뒤, 특히 퇴직자들의 음울한 무리에 합류해야 했던 해부터 이런 조심성은 고독을 즐기는 취향으로 변했다. 그의 반순응적인 발언들이 예전에는 그를 더 젊어 보이게 했지만 이제는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데도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옛날 사람, 그러니까 늙은이가 되게 했다.(77-78p)

 

 

“샤를하고 너는, 사교계 칵테일파티에서 불쌍하게 속물들 시중이나 드는 동안 좀 재미있게 해 보려고 웃기는 파키스탄 말을 만들어 냈어.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을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 돼. 너는 피곤하고 지겹기만 할 뿐이야.”(96-97p)

 

 

“너, 왔다가 그냥 간 게 몇 번이야?”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며 줄이 거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136p)

 

 

 

ㅡ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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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9

 

 

“이봐, 짐. 고양이가 우리 인간들처럼 똑같이 말해?”

“못하지. 고양이는 그렇게 못해”

“그럼, 소는?”

“소도 못해”“고양이는 소처럼 말해, 또 소는 고양이처럼 말하구?”

“아니”

“고양이와 소가 서로 다르게 말하는 건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겠지?”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이제”

“그렇다면, 고양이나 소가 우리 사람들과 다르게 말하는 것도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 아니냔 말야”

“그야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프랑스 사람이 우리 미국 사람들과 다르게 말을 하는 것이 어째서 당연하지 않고 옳지 않느냐 말야. 자, 어서 대답 좀 해봐”

“헉, 고양이가 뭐 사람이당가?”

“그야 아니지”

“그렇다면, 고양이가 사람처럼 말할 까닭이 없잖능가. 소는 사람이랑가?ㅡ아니면 소는 고양이랑가?”

“어느 쪽도 아니지”

“그렇다면, 고양이는 사람이나 소처럼 말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말이제. 프랑스 사람은 사람이당가?”

“물론 사람이지”

“그럼 됐네그려! 빌어먹을, 도대체 왜 프랑스 사람들은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거란 말이랑가? 이걸 대답해 보란 말이랑께!”

더 이상 얘기를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ㅡ검둥이에게 토론을 가르친다는 것은 소 귀에다 경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만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172-173p)

 

 

그 사나이들은 가버렸고, 나는 뗏목에 올라탔습니다.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ㅡ위급한 상황에 부딪히면 뒤를 밀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 손을 들고 말지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 거야ㅡ아마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거야.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젠 이 일로 마음을 쓰는 일을 아예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그때 그때에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221-222p)

 

 

“아, 슬프군요!”

“도대체 무엇이 슬프다는 말이오?”하고 대머리 영감이 따져 물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작자들과 한패가 될 만큼 신세가 영락하고 말았나를 생각하니 말이지요”그리고 그는 헝겊으로 눈 가장자리를 훔치기 시작했지요.

“에이, 이 천벌 받을 놈 같으니라구. 우리들이 뭐 너하고 한패가 되지 못할 게 어디 있단 말이냐?”하고 대머리 영감이 꽤나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내뱉었습니다.

“그야, 내겐 과분할 정도이지요. 훌륭한 한패고말고요. 하지만 나를 그토록 높은 지위에서 이렇게 낮은 신분으로 떨어뜨린 작자는 누구지요?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니올시다ㅡ천만에요. 나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자업자득이지요. 냉엄한 이 세상더러 하고 싶은 대로 최악을 다하라지요. 한 가지만은 나는 알고 있지요ㅡ나를 위한 무덤이 어디엔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전과 다를 것 없이 돌아가고,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겠지요ㅡ사랑하는 사람들, 재산, 그 밖에 모든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 무덤만은 빼앗아갈 수가 없어요. 언젠가 나는 그 무덤에 누워 모든 걸 잊어버리고 내 불쌍한 가슴이 안식을 찾게 될 겁니다”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계속 울어댔지요.(277-278p)

 

 

이 거짓말쟁이들이 왕도 공작도 아니고 그저 천하의 협잡꾼이요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 입도 뻥끗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혼자만 알고 내색을 않는 것,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놈들이 자기들을 왕이니 공작이니 하고 불러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지요. 짐에게 얘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빠한테서 무엇인가 배운 바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거라는 겁니다.(283-284p)

 

 

내가 너희들을 알고 있느냐고?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고말고. 나는 남부에서 태어나 자랐고, 북부에서 산 일도 있다. 그래서 모든 웬만한 인간쯤은 두루 알고 있단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란 겁쟁이지. 북부에선 짓밟으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를 짓밟게 하고, 그후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것을 참아낼 만큼의 겸허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올린단 말이다. 남부에서 한 사나이가 자기 혼자서 대낮에 사람들이 가득 탄 역마차를 세워놓고는, 승객들로부터 돈을 빼앗는단 말이다. 너희들 신문들이 너희들을 용감한 사람이라고 불러대니까 정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용감하다고 착각하고 있지ㅡ실은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의 용기가 있을 뿐 용기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 너희들 배심원은 왜 살인자들을 교살 하지 않은 거지? 그것은 그자의 친구놈들이 어둠을 타 등뒤에서 자기를 쏘아 죽이지나 않을까 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이다ㅡ그 친구놈들은 틀림없이 그짓을 해내고야 말 테니까.

그래서 그들은 늘 놓아주지. 그러면 복면을 쓴 겁쟁이들 백명을 거느리고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밤에 가서 그 악당을 사형한단 말이다. 너희들의 잘못은, 너희들이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또 다른 잘못은 어둠을 타고 오지 않고 게다가 복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너희들이 데리고 온 것은 절반짜리 사나이란 말이다ㅡ저기 있는 저 벅 하크니스가 바로 그런 놈이거든ㅡ그리고 만약 벅이 앞장을 서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그저 소동만 일으켰을 뿐이란 말이야.

너희들은 여기에 오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평범한 인간은 귀찮은 일과 위험한 일은 싫어하는 법이거든. 너희들도 그런 것을 싫어하지만 저기 있는 저 벅 하크니스 같은 절반짜리 인간이 <놈을 사형에 처하라! 놈을 사형에 처하라!>하고 외치면 너희들은 물러서기가 두려워지거든ㅡ너희들의 본색이 탄로날까봐서 말이다ㅡ겁쟁이라는 본색 말이다ㅡ그것이 두려워 큰 소리를 지르고 그 절반짜리 사나이 윗저고리 꼬리에 잔뜩 매달려서 대단히 장한 일을 해낸다고 큰 소리를 치고는 대단한 기세로 여기로 몰려왔단 말이지. 이 세상에서도 제일 불쌍한 건 오합지중이야. 군대가 바로 그렇지ㅡ오합지중 말이다. 오합지중은 타고난 배짱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의 집단에서, 그들의 상관한테서 빌려온 배짱으로 싸운단 말이다. 하지만 그 선두에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없는 오합지중은 불쌍하기 이를 데 없단 말이다. 자,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꽁무니를 낮추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다.(323-324p)

 

 

“여러분, 잠깐 기다리시오! 한 마디 말할 게 있소” 그 말에 사람들은 주춤 걸음을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속아넘어갔소. 하지만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죽을 때까지 늘 이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단 말이외다. 그것은 아니될 일이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 나가서 연극을 칭찬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도 우리처럼 속아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피차 똑같은 처지에 놓이는 게 아니겠소. 어디 내 말이 틀렸소?” (“그 말이 옳아!ㅡ판사님 말이 옳다니까!”하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그럼 좋소ㅡ우리가 속았다는 건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맙시다. 자, 어서들 집으로 돌아가서 누구나 다 이 비극을 보러오라고 권합시다”(334p)

 

 

“친구를 방문한다고 하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한다는 말은 싫어”

“그래요, 그럼 그것은 그만두기로 하지요”그녀에게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ㅡ아무런 해도 끼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은 사소한 일로 성가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사람이 가는 길을 가장 평탄하게 해주는 것은 이와 같이 사소한 일인 겁니다. 그렇게 한마디 해두면 메리 제인은 안심할 것이며, 게다가 돈 한 푼 드는 일도 아니었지요.(407-408p)

 

 

이 말에 왕은 살금살금 뗏목의 오두막 속으로 기어들어가 울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공작도 자기 술병을 들고 나섰지요. 그리하여 반 시간 후에는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둑처럼 다시 다정한 사이가 되었고,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점점 더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팔을 베개로 삼아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지요. 두 사람은 자못 마음이 풀어졌지만, 제아무리 마음이 풀어졌다 하더라도 왕은 돈 주머니를 감춘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잊어버릴 만큼 풀어지지는 않았지요.(441p)

 

 

 

ㅡ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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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25

 

 

자크: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저기 높은 곳에, 생각은 잘하는데 말이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 적혀 있으니.(30p)

 

 

자크: 제 대위님이 살아 있는 내내 절 괴롭혀서 그의 죽음 덕분에 제가 드디어 그 엄격한 예의범절에서 해방됐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때는 정말 화를 낼 뻔했습니다.

 

주인: 좋네, 자크. 난 내가 원하는 걸 이룬 모양이군. 그대를 위로하기 위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어디 말 해 보게나? 그대는 울고 있는데 내가 만약 그대 고통의 대상에 대해 말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가? 아마도 그대는 더 심하게 울었을 테고, 난 그대를 더 비통하게 만들었겠지. 그래서 난 그대를 속였다네. 우스꽝스러운 추도사와 그 뒤를 이은 우리의 작은 논쟁으로. 이제 대위에 대한 생각은 그를 마지막 처소로 데리고 가는 장례 마차만큼이나 그대에게서 멀어졌다는 걸 인정하겠지. 따라서 난 그대가 사랑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네.(77p)

 

 

자크: 전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말했던 선행이나 악행에 대해 때로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이죠. 선행을 했던 사람도 나쁜 짓을 할 수 있고, 악행을 했던 사람도 속죄할 수 있으니까요.

 

주인: 진부한 아첨꾼도 준엄한 심판관도 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거라.

 

자크: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에겐 각자 자기만의 개성이나 관심, 취향, 열정이 있어서 그에 따라 말을 과장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죠. 있는 그대로 말하라니요! 그런 일은 도시 전체를 뒤져도 아마 하루에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들걸요. 게다가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사정이 더 나은가요?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시키는 일도 도시 전체를 뒤져 하루에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들걸요.

 

주인: 제기랄! 혀와 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격언이구나.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그렇지만 자크야, 네가 생긴 대로 말하거라. 나도 내가 생긴 대로 들을 테니. 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말을 믿을 테니.(81-82p)

 

 

여기 내 아내와 구스의 대화가 있다.

“구스 선생님이시군요?”

“네, 부인,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제가 갔던 곳에서요.”

“거기서 뭘 하셨는데요?”

“고장 난 방아를 고쳤죠.”

“누구 건데요?”

“모르겠는걸요. 방앗간 주인을 고치러 간 건 아니니까요.”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옷을 잘 입으셨네요? 그런데 왜 깨끗한 양복 속에 더러운 셔츠를 입으셨죠?”

“셔츠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왜 하나밖에 없죠?”

“한 번에 몸뚱어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 남편은 없지만 식사하고 가세요.”

“아닙니다. 전 댁 남편에게 제 위도 식욕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댁 부인의 건강은 어떠세요?”

“그녀가 원하는 대로죠. 그녀 일이니까요.”

“아이들은요?”“최고죠!”

“특히 눈이 아름답고 피부가 좋고 아주 건강해 보이는 아이는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나은 셈입니다. 죽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뭘 좀 가르치시나요?”

“안 가르칩니다, 부인.”

“뭐라고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교리 문답도 안 가르친단 말이에요?”

“읽기도 쓰기도 교리 문답도 안 가르칩니다.”

“왜죠?”

“사람들이 제게 아무것도 안 가르쳤어도 제가 무식하진 않으니까요. 아이들이 똑똑하다면 저처럼 될 테고, 바보라면 아무리 가르쳐 봐야 바보밖에 더 되겠습니까?”(96-97p)

 

 

말더듬이만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절름발이만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 법이죠(117p)

 

 

자크: 나리,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슬퍼해야 할지 무엇을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을, 또 나쁜 것은 좋은 것을 가져오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저기 높은 곳에 쓰인 것 아래서 우리 소망과 기쁨, 슬픔 속에 제정신이 아닌 채 어둠 속을 걸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전 눈물을 흘릴 때 제가 자주 바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 그렇다면 웃을 때는?

 

자크: 웃을 때도 여전히 바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전 울거나 웃을 수밖에 없죠. 바로 그 점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백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밤새도록 눈을 붙일 수가 없었어요.

 

주인: 아니, 네가 시도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말해 보거라.

 

자크: 모든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 거죠. 아! 제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주인: 그게 무슨 도움이 되지?

 

자크: 근심으로부터 해방되거나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데에, 또는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여 길모퉁이 말뚝에 부딪혀도 베개 위에 드러누울 때만큼이나 편안하게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되죠. 때로 제가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확고해도 아주 작은 반대나 하찮은 일에는 자주 당황하니 말입니다. 스스로 따귀를 때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전 체념했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러나저러나 거의 마찬가지더군요. 단지 덧붙일 게 있다면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거죠. 그건 다른 종류의 체념으로, 더 쉽고 더 편해요.(121-123p)

 

 

자크: 전 원칙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내리는 규칙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니까요. 모든 서약은 왕이 내리는 칙령의 전문과도 흡사하죠. 모든 설교자들은 우리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면서 그들의 교훈을 실천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들 자신은 틀림없이····· 미덕이란·····.

 

주인: 미덕은 좋은 것이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 좋다고 말하니. 마실 것을 다오.(130p)

 

 

자크: 칼과 칼집의 우화죠. 어느 날 칼과 칼집이 싸움을 했답니다. 칼이 칼집에게 말하기를 “이 방탕한 여자야! 넌 매일 새 칼을 받아들이는구나·····.” 그러자 칼집이 칼에게 대답했죠. “당신은 바람둥이야. 날마다 칼집을 바꾸니·····.” “칼집, 당신이 약속한 건 이게 아니잖아·····.” “칼, 당신이 먼저 날 배신했어요·····.” 싸움이 식탁에까지 번지자 칼과 칼집 사이에 앉아 있던 자가 말했어요. “칼 그리고 칼집, 그대들은 변하는 게 좋겠소. 변하는 게 그대들 마음에 드니까. 하지만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건 잘못이오. 칼, 자넨 여러 칼집으로 들어가도록 하느님이 만들었다는 걸 모르오? 그리고 칼집, 자넨 하나 이상의 칼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졌다는 걸 모르오? 그대들은 칼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들이나, 어떤 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들이나, 어떤 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집들을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칼집, 그대는 단 하나의 칼에, 그리고 칼, 그대는 단 하나의 칼집에 만족할 거라고 맹세했을 때에 그대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미쳤다는 걸 알지 못했단 말인가.”(166-167p)

 

 

자크: 명예를 걸고 약속했을 때에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재판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명예를 걸고 약속했으니 다시는 말하면 안 되죠.

 

주인: 네 말이 옳다.

 

자크: 하지만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고도 앞으로 있을 배 번이나 더 되는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인: 동의하네.

 

자크: 약정 1. 제가 나리께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한, 또 나리께서 저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느끼는 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이점을 남용할 것임.

 

주인: 하지만 자크, 일찍이 이 같은 약정은 한 번도 만들어진 적 없었잖은가.

 

자크: 약정이 만들어졌든 안 만들어졌든 그런 일은 항상 행해져 왔으며 또 세상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행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나리와 마찬가지로 이 법칙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안 해 본 줄 아십니까? 나리께서는 자신이 그들보다 더 능란하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시고, 나리께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필요의 법칙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약정 2. 자크가 주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힘을 모르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주인은 자신의 나약함이나 관대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자크는 무례할 수밖에 없으며, 주인은 평화를 위해 이를 모른 체해야 할 것임.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정되었고, 자연이 자크와 주인을 만든 순간 저기 높은 곳에서 조인되었음. 따라서 주인은 칭호를 얻고 자크는 실권을 가질 것이라고 결정하는 바임. 만약 나리께서 이런 자연의 의도에 반대하신다면 성공하지 못할겁니다.

 

주인: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네 몫이 내 것보다 더 낫지 않느냐?

 

자크: 누가 그걸 반박했나요?

 

주인: 그런 조건이라면 내가 네 자리를 차지하고 대신 널 내 자리에 앉혀야겠구나.

 

자크: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나리께서는 칭호도 잃고 실권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 하도록 하죠. 우리 둘 다 잘 지내니,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속담이나 만들며 지내죠.

 

주인: 어떤 속담인데?

 

자크: ‘자크가 주인을 끌고 간다.’라는 속담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지만 장차 나리나 저보다 더 가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듣게 될 것입니다.

 

주인: 그건 가혹한, 아주 가혹한 것 같구나.

 

자크: 주인님, 존경하는 주인님. 나리께서 아무리 바늘에 찔리지 않으려고 한들 바늘은 더욱 아프게 찌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끼리 합의한 걸로 하죠.

 

주인: 필요의 법칙에 합의를 하면 무슨 이득이 있지?

 

자크: 아주 많습니다. 어디서 멈춰야 할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명확히, 분명히 안다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싸움은 나리께서 제 주인이라고 불리지만 실은 제가 나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하지 않은 데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합의된 이상 거기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주인: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도대체 어디서 다 배웠지?

 

자크: 그 위대한 책에서요. 아, 나리, 아무리 생각하고 명상하고 세상 모든 책을 연구한들 그 위대한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한 평범한 서기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251-253p)

 

 

독창적인 사람은 첫 번째로 교육이, 다음으로 지나친 사회 경험이 소진시키지만 않았다면 더 많았을 것이다. 마치 은화에 새겨진 것이 유통되다 보면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282p)

 

 

자크: 어느 날 한 아이가 속옷 파는 가게 판매대 아래 앉아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죠. 그 소리에 짜증이 난 여주인이 말했어요.

“얘야, 왜 소리를 지르는 거냐?”

“그들이 제게 A라고 말하도록 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왜 A라고 말하지 않니?”

“제가 A라고 말하면 그 즉시 제게 B라고 말하라고 하기 때문이죠.”

제가 나리께 키 작은 남자 이름을 대기만 하면, 전 나머지 이야기도 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319p)

 

 

자크: 나리, 두 가지를 지적해야겠군요. 하나는 제가 이야기를 할 때면 악마나 다른 사람이 꼭 제 이야기를 중단한다는 점이고, 나리 이야기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한 사람은 가시덤불을 달려도 찔리는 법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어디다 발을 놓아야 할지 아무리 쳐다보고 걸어도 가장 평탄한 길에서도 가시덤불에 찔려 온통 살갗이 벗겨진 채 집에 도착하니 말입니다.(359p)

 

 

자크: 나리가 제게 보여 준 나쁜 본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바람 피우기를 원하면서도 딸은 얌전하기를 바라고, 아버지는 낭비하기를 원하면서도 아들은 절약하기를 바라고, 주인은·····.

 

주인: 하인 말을 중단하기를 바라면서도,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자주 중단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말은 중단되기를 원치 않고·····.(360p)

 

 

자크: 그 아이는 골칫덩어리가 될 겁니다.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망나니가 될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라면, 자신이 부자가 될 거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망나니가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좋은 이유죠.(379-380p)

 

 

 

ㅡ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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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11

 

 

털 한 가닥을 잡아당기면 아픈데, 많이 잡아당기면 전혀 아프지 않은 건 왜 그렇죠?(37-38p)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 도시에서 사는 겨울 동안, 뾰뜨르 세르게이치가 가끔 우리를 방문했다. 시골에서 사귄 사람은 시골에서만, 그것도 여름에 매력적인 법이다. 도시에서, 게다가 겨울에, 그들은 매력의 절반을 잃는다. 도시에서 차를 대접하면, 다른 사람의 프록코트를 빌려 입은 것 같은 그들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스푼으로 차를 젓는다. 도시에서도 뾰뜨르 세르게이치가 이따금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그 결과는 시골에서와 전혀 달랐다.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을 더 강하게 느꼈다. 나는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는 가난하고 더군다나 귀족 출신도 아니다. 그는 보조 사제의 아들로, 임시 예심 판사일 뿐이다. 우리 두 사람은 ㅡ 나는 젊기 때문에, 그는 영문도 모른 채 ㅡ 이 벽이 매우 높고 단단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도시로 우리를 방문하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류 사회를 비판하거나 응접실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으면 시무룩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부술 수 없는 벽이란 없다. 하지만 현대 소설의 주인공들은, 내가 아는 한 너무 소심하고 생기가 없고 게으르고 걱정이 많다. 그리고 지나치게 쉽게, 자신이 실패자라는 생각, 그리고 사생활이 자신을 속인다는 생각과 타협한다. 투쟁하는 대신, 그들은 세상이 저속하다고 비판만 할 뿐이다. 그들의 비판 자체도 조금씩 그 저속함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을 모른 채.

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행복은 가까이 있었다. 행복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는 듯했다. 나는 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내가 인생에서 뭘 기다리고 바라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음 편히 살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갔고, 밝은 낮들과 따뜻한 밤들이 아른거리며 지나갔고,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고, 건초 냄새가 났다. 기억 속에서는 사랑스럽고 멋진 이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흔적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안개처럼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49-50p)

 

 

물론 지성도 영원할 수 없고 덧없지만, 어째서 내가 지성에 끌리는지 당신도 아실 겁니다. 인생은 지긋지긋한 덫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성숙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에 의해서 무(無)에서 이 세상으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왜? 그는 자기 존재의 의의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고 혹시 말해 준다 하더라도 전혀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그가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죽음만 찾아옵니다. 그것도 역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렇게 감옥과 같은 곳에서 똑같은 불행으로 엮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면 좀 나은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분석과 종합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자유롭고 고매한 사상들을 교환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덫에 걸린 것을 신경 쓰지 않게 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78-79p)

 

 

감옥과 정신 병원이 사라지고, 당신의 말처럼 정의가 승리를 한다고 해도, 사물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일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프고 늙고 죽을 겁니다. 찬란한 서광이 당신의 삶을 비춘다 해도 결국은 관속으로 들어가 땅속에 파묻히게 될 겁니다.(86p)

 

 

어느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큰 도시들은 지적으로 침체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활발하지요. 말하자면 거기에는 참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매번, 이곳으로는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사람들만 옵니다. 불행한 도시입니다!(88p)

 

 

“당신 이야기나 합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에게 누가 손가락도 대지 않았고, 으르거나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황소처럼 건강합니다.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돈으로 공부했고, 그리고 곧장 편안한 직장도 움켜쥐었습니다. 20년 이상 당신은 난방 시설이 잘돼 있고 밝고 하녀까지 딸린, 집세를 낼 필요도 없는 주택에서 살고 있고, 게다가 마음이 내킬 때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당신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라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썼을 겁니다. 당신은 보조 의사와 쓰레기 같은 자들에게 일을 미뤄 두고 자신은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 돈을 쌓아 두고, 책을 읽거나 고상하지만 실없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즐기고, 그리고 (이때 이반 드미뜨리치가 의사의 붉은 코를 힐끔 쳐다봤다) 술이나 홀짝거립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삶이 어떤지 본 적이 없고, 삶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다만 이론적으로 현실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당신이 고통을 무시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헛되고 헛된 현세니, 삶과 고통과 죽음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무시니, 이성적인 이해니, 진정한 축복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러시아의 게으름뱅이들에게나 가장 잘 어울리는 넋두리입니다. 가령 말입니다, 농부가 아내를 때리는 광경을 당신이 봤다고 합시다. 무엇 때문에 참견하나? 때리도록 내버려 두지,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두 사람 다 언젠가 죽을 테니까. 게다가 맞는 아내가 아니라 때리는 농부가 때린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언짢아할 텐데.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은 한심하고 메스꺼운 일이지만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아낙네가 와서 이빨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고통은 고통에 대한 관념이고, 게다가 아프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 수는 없고 누구나 어차피 죽는 건데, 그러니 내가 사색하고 보드까를 마시는 걸 방해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젊은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조언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답하기 전에 생각을 하겠지만, 당신에게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성적인 이해 아니면 진정한 축복을 얻도록 노력하시오. 그런데 도대체 그 기괴한 <진정한 축복>이 무엇이란 말이오? 물론 대답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곳 쇠창살 안에 갇혀 격리된 채 학대받지만, 그러나 그것은 훌륭하고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병동과 따뜻하고 아늑한 서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까. 참 편리한 철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양심이 깨끗한 현인이라도 된 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이보시오, 이것은 철학도 사색도 넓은 견해도 아니오, 게으름이고, 무기력이고, 잠에 취한 무감각입니다······. 그렇지 않소!” 이반 드미뜨리치가 다시 화를 냈다. 고통을 무시한다지만, 손가락이 문에 끼이면 당신도 목청껏 비명을 지르고 말걸!“(93-94p)

 

 

벗어날 수가 없어, 벗어날 수가. 우리는 연약하단 말입니다······. 이전에 나는 침착했고, 밝고 건전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했었소. 하지만 현실이 거칠게 나를 건드리기만 했는데, 나는 좌절하고 말았소······ 붕괴되고 말았소. 우리는 연약하오, 우리는 시시하단 말이오······. 당신도 마찬가지요. 당신은 지적이고 고상한 사람이오. 어린 시절부터 고결한 충동이 몸에 배었지만, 현실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지치고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연약하고 연약하단 말입니다!(115p)

 

 

지금 대학생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같은 찬 바람이 류리끄 시대에도, 이반 뇌제 시대에도, 뾰뜨르 대제 시대에도 불었으며, 그때에도 지금처럼 모진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이렇게 해진 짚 지붕과 무지와 우수, 이런 황량함과 어둠과 압박감이 똑같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공포가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천 년이 지나도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154-155p)

 

 

실제로, 아침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신경과민을 비웃었고 자신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온을 어쩌면 영원히 잃었고, 미장 작업이 끝나지 않은 이 이층집에서의 행복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해졌다. 환상은 끝났고, 개인의 행복과 평온과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새롭고 불안하며 자각적인 생활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183p)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고향의 둥지는 그에게 밝고 아늑하고 편안했는데, 지금 농가에 도착해서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척이나 어둡고 좁고 또 지저분했다.(185p)

 

 

나는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나는 땅도 없고,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아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을 걸치고 또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229p)

 

 

쓰디쓴 경험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여자들을 내키는 대로 불러도 된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 <저급한 인종>이 없다면 그는 단 이틀도 살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는 지루해했고, 기분도 나빠 말도 나누지 않고 냉담했지만, 여자들과 있을 때에는 자유로웠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았다. 심지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여자들과 함께 있다면 편안했다. 그의 외모나 성격, 기질 전체에는 매력적이면서도 좀처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 그것이 여자들을 끌고 유혹했다. 그는 이 점을 알고 있을뿐더러, 그 또한 어떤 힘에 의해 여자들에게 이끌렸다.

잦은 경험, 정말로 쓰라린 경험을 자주 했기에 그는 이미, 모든 정사는 처음에는 생활에 유쾌한 변화를 가져다주고 부드럽고 산뜻한 모험으로 생각되지만, 점잖은 사람 특히 속내를 잘 털어놓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스끄비치들에게는 결국 아주 복잡한 문제로 커져 곤혹스럽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여자와 새롭게 만날 때면 그 쓰라린 경험도 슬그머니 기억에서 사라져, 제대로 살고 싶어졌고, 모든 일이 정말이지 단순하고 유쾌하게 여겨졌다.(238p)

 

 

오레안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따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가 우리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잠, 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에서는 바닷소리가, 이곳에 아직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도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243-244p)

 

 

 

ㅡ 안똔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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