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0

 

밋밋하다. 단편집을 읽어봐야 할지 생각 중.

 

 

인류의 비극이란 모두 의미를 찾는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의 의미를 찾다가 자기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고,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사랑이라는 착각을 발명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공동체를 만들고, 사랑을 혐오로 바꾸고, 혐오를 증오로 바꾸며, 그걸로도 모자라 대의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의미라는 것 자체가 우주엔 없다. 그런데 왜 인간은, 아니 나는, 여전히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흩뿌려진 수천수만의 점을 자꾸만 이어보려 하는가?(70p)

 

 

이야기에는 늘 아이러니 팩터라는 게 존재하고, 이야기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생각도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데 있다. 내가 직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입력하며 얻은 교훈은 그것 하나다. 이야기는 늘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버지의 인생도, 예측도, 내 현재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96p)

 

 

 

ㅡ 문지혁, <비블리온> 中, 위즈덤하우스

,

2023/5/4

 

 

처남은 말짱한 상태에서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취하면 견디기 힘든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람직한 면이 있었으니, 원칙적으로 절대 혼자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75p)

 

 

두 사람은 오래 알아온 사이로 수많은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둘은 좋은 친구였으며, 상대 언어를 얼마나 쉽게 익혔는지를 과장되게 떠벌리곤 했다. 보통의 스칸디나비아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다소 냉소적으로 덧붙이는 것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그 순간이 왔다. 회의나 다른 고위층 모임에서 어울리기를 십여 년, 두 사람은 함마르의 시골 별장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지극히 간단한 일상 대화마저 나눌 수 없었다. 덴마크인이 지도를 빌려달라고 말하자, 함마르는 자기가 찍힌 사진을 가져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두 사람의 세계 중 한 부분이 무너졌다. 한심한 오해로 점철된 형식적인 파티를 몇 시간 보낸 뒤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알고 보니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363-364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사라진 소방차> 中, 엘릭시르

,

2023/4/30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찾아오는 회의와 냉소의 시기였을까. 기계처럼 움직이며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책이 뭘까? 이 많은 책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지? 그렇게 책에 묻혀 산 다음 나는 어떤 인간이 되었지? 박학다식한 지성인이 되지도 못했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지도 못했고 젊은 시절 예술과 문학에 빠져 현실 파악을 못한 바람에 경제적 여유와 멀어진 삶을 살게 된 것만 같았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할 뻔하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게 뭐 있겠니? 책에서 뭘 배우라는 거니? 나는 내 인생으로 다 겪었다.” 또한 읽기와 쓰기가 직업이 되면서 책은 서운함과 서글픔과 소외감이라는 예상치 못한 감정을 가져다주기도 했다.(80-81p)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이지 모르겠어요.” 요가 선생님에게, 엄마에게, 친구에게,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었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어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어요? 50년 가까이 살았지만 매일 점점 더 모르겠어요.”

일을 열심히 해서 연금과 저축 액수를 높이면 잘 살고 있는 걸까. 매일 저녁을 더 정성껏 차리면 될까. 산책과 등산을 자주 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접하면, 부모님에게 자주 전화를 드리면, 운동을 빠지지 않고 피아노 연습을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자선 단체 후원금을 늘리면 잘 사는 걸까. 아니 그냥 살아 있기만 하면 될까.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자의식을 버리고 들꽃이나 다람쥐처럼 살면 되는 걸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돌아온 나는 알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일곱 권이나 빌려서 집에 오는 길, 갑자기 모닥불처럼 붉게 타오르던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방이 하나도 무겁지 않아 이상하다고, 문득 삶이 두렵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마음에 드는 소설책 한 권이면 크리스마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림 같은 풍경이나 멋들어진 숙소를 보면서 저기서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행복이 보장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오늘도 나를 몰입하게 해 줄 책을 찾아 서점과 도서관을 헤매는 나는 친구네 집에서 셜록 홈스를 읽던 어린이나 집에 있던 단 한 권의 수필집을 쓰다듬어 보던 소녀와 똑같은 사람이다. 번역가가 되어 일로서 책을 읽어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허무와 냉소에 젖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었다. 책은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고 차와 쿠키를 내어 주고 꽃과 정원과 하늘을 보여 주었다. 책은 끝이 없는 선물이자 변치 않는 약속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책에 한 번 더 의지하며 혹독하고 목마른 계절들을 나 보려고 한다.(91-92p)

 

 

ㅡ 금정연 외,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中, 편않

,

2023/4/30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2017년 「관광객의 철학」을 출간했다. 여행자, 순례객도 아닌 관광객에게 무슨 철학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즈마가 노린 건 바로 그 지점이다. 관광객의 철학을 간단히 설명하면, 가벼운 접근이 우연을 만나고 이러한 우연이 우리에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거다. 말하고 보니 지나치게 간단해지는데 실은 철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다. 아즈마 히로키는 「관광객의 철학」을 출간하기 전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을 출간했고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책은 제목 그대로 후쿠시마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난의 세세한 내용을 짚어보지 않아도 어떤 반응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누군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진도항 관광지화를 주장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아즈마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관광화를 실천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체르노빌, 광주 등등 역사적 비극과 재난의 현장에는 공원과 박물관, 투어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해마다 수천에서 수십만의 사람이 방문한다. 단지 이곳을 가리키는 단어가 추모, 기억, 순례 등 관광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일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여기에는 언어의 문제가 존재하고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제한한다. 경박한 관광과 진지한 추모의 간극. 아즈마 히로키가 도발하는 건 이러한 태도와 규정이다. 기존의 시선으로는 진짜 사건과 만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추모는 비극을 물신화한다. 추모객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만 본다. 반면 훨씬 가벼운 태도의 관광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사람들을 사건과 조우하게 만든다. 일종의 산책자처럼 말이다.(69-70p)

 

 

 

ㅡ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 中, 마티

,

2023/4/27

 

나한테는 역시 별로. 예상했던 딱 그대로라 읽는 재미가 전혀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안 읽을 듯.

 

 

 

요즘은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사랑’을 하고 있다거나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에 빠져 있다거나 혹은 과거에 그랬었다고 숨김없이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고 공감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었더라도 그렇게 마구 이야기해버린 것을 후회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하고 남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내 열정의 실상과는 아무 상관 없는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21p)

 

 

일상생활에서 가끔 일어나는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에도 나는 무덤덤했다.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우편 집배원들의 파업에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A는 절대로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으니까.(물론 결혼한 남자로서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나는 도로가 막히거나 은행 창구가 붐벼도 조용히 기다렸고, 직원들이 불친절해도 화를 내지 않았다. 어떤 일에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또 나는 사람들에 대하여 연민과 고통과 우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일없이 공원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들, 그리고 통속소설에 정신이 빠져 있는 여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렇지만 내 안의 무엇이 그 사람들과 닮았는지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24-25p)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씌어지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터이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열어섯 살 때 일광욕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몸을 태우고 스무 살 때는 피임도 하지 않은 채 겁 없이 섹스를 즐겼던 것처럼, 나중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일 뿐이니까.)(38-39p)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74p)

 

 

 

ㅡ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中, 문학동네

 
,

2023/4/25

 

 

 

우리의 통화 목소리는 디지털 전환 이후 더 나빠졌습니다. 마이크 성능이 나빠져서는 아니에요.

(...)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통화 상대방의 목소리를 덜 듣습니다.

(...)

그 이유는 구형 아날로그 전화기와 달리 휴대폰은 마이크에 잡힌 소리의 전 범위를 전송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대신 디지털 처리를 합니다. 그 소리를 압축하고 엔지니어들이 불필요한 것으로 판정한 데이터는 모두 제거하는 것이죠.

이러한 효율성은 디지털 소통의 도달 범위를 놀랄 만큼 확대 시킵니다. 음반을 mp3로, 사진을 jpeg로, 필름을 유튜브 영상으로 축소하는 등의 여타의 손실 압축과 마찬가지로, 휴대폰 통화 음성을 압축하면 디지털 통신망을 통해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데이터 패킷이 만들어져요.

엔지니어들은 이와 같은 손실 압축 포맷이 이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다만 그 목적은 본질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소리의 본질적인 부분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휴대폰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을 전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치워져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배경 소음은 밀려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수많은 작은 소리들도요. 우리의 숨소리. 우리가 듣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62-63p)

 

하지만 레코드숍에 가면 제가 찾고 잇는지 몰랐던 음반을 만날 수 있어요. 우연한 발견을 노리고 가는 거죠.

살 만한 게 없을 때도 누구든 거기서 만난 사람에게서 항상 뭔가를 얻어듣게 됩니다. 음반 수집가나 점원은 굉장히 특이한 취향을 가졌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강한 의견도요.

(...)

“나는 다른 데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 종종 그곳에 간다. 구식이고, 깨졌고, 쓸모없고, 뭐에 쓰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는 변태적인 물건을 찾아서.”(90-91p)

 

 

그 각각의 접근법이 가진 문제에도 불구하고 폴 라메르와 그의 동료들의 추천 알고리즘이 현재 도달한 단계는 꽤나 경이롭습니다. 저는 스포티파이의 ‘디스커버’(발견하기) 기능을 이용하는데 제 음악 취향에 대한 예측이 너무 정확해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 음반을 내가 좋아할 줄 어떻게 알았지?’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음반은 제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제껏 수많은 음반을 구경하면서 본 기억조차 없지만 저의 컬렉션에 있는 다른 음반들과 정말 비슷한 느낌이어서 어쩐지 들은 적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제가 들은 적 있는 음악과 실제로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놀랍지 않은 음악이죠.

놀라움은 ‘발견’과 다릅니다. 우리 모두를 끌어들이고 우리의 시간을 최대한 그들의 제품에 쓰게 하는 데 혈안이 된 거대 디지털 기업에 놀라움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온라인에서 그러한 기업들의 영향력을, 그리고 우리 각자가 보는 정보의 부분집합을 생성하는 그 기업들의 알고리즘을 벗어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의 자유와 혼돈을 그들의 만든 프로그램의 지배력과 예측력으로 바꾸어놓는 중입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는 그와 같은 시스템을 전복하기가 쉽습니다.(103-105p)

 

 

우리는 인간이니 각자 욕망이 있고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만약 저쪽으로 걸어가고 싶다면, 가장 좋은 건 제가 그냥 당신을 통과해서 직진하고 사람들이 좍 갈라지는 것일 테죠. 그러면 저는 거뜬히 저쪽에 도착할 겁니다. 그런 게 아마 인간의 욕망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적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의미하는 것은 언제나 물이 갈라지듯 길이 열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가 미리 예상한 경험뿐이라는 겁니다.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좋아요, 당신이 필요한 게 딱 하나고 그것 말고는 정말로 아무것도 필요 없다면, 그럼 문제없습니다. 거기서 사세요. 단, 그 밖의 모든 것은 놓치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하세요. 정말로 그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기 밖에 있는 세상은 넓고, 인터넷 바깥에는 물리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다른 종류의 경험도 해야 합니다. 그 세상은 훨씬 풍요롭거든요. 거기에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만 있지 않죠. (107-108p)

 

 

왜냐하면 진정한 차이는 소음으로 풍요로운 세상과 오로지 신호만을 얻으려 애쓰는 세상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소통으로의 전환 속에서 우리가 겪어온 근본적인 변화입니다.(133p)

 

 

 

ㅡ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다른 방식으로 듣기> 中, 마티

,

2023/4/24

 

 

경찰의 일은 현실주의, 정해진 절차, 집요함, 체계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다. 물론 까다로운 사건이 우연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우연이란 융통성 있는 개념이고 요행이나 운과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범죄 수사의 성패는 우연의 망을 가급적 촘촘히 짜내는 데 달려 있다. 번득이는 육감보다는 경험과 성실함이 더 많이 기여한다. 명석한 두뇌보다는 좋은 기억력과 건전한 상식이 더 귀한 자질이다.

현실에서 경찰이 하는 일에는 육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육감은 애초에 자질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점성술과 골상학을 과학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61p)

 

 

만약 당신이 정말로 경찰에 붙잡히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찰관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진실이고, 스웨덴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스웨덴 범죄 역사에는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이 무수히 많지만 경찰관이 살해된 사건 중에는 미해결 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88p)

 

 

마르틴 베크의 주머니에 든 보고서에는 새로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일례로, 경찰 일이 다른 직종들 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다른 직종들이 경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했다. 건설 노동자나 벌목 노동자의 삶이 경찰관의 삶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항만 노동자, 택시 기사, 주부도 그렇다고 했다.

그렇지만 경찰 일이 다른 직업보다 더 위험하고 더 거칠고 봉급도 적다는 건 일반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식이 아닌가? 아쉽게도 그 질문에는 단순한 대답이 있었다. 물론 그런 고정관념이 퍼져 있지만, 그것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찰관들만큼 역할 고착을 심하게 겪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통계가 엄연히 증명하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매년 부상을 입는 경찰관의 수는 경찰에게 학대당하는 사람의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톡홀름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령 뉴욕에서는 매년 평균 7명의 경찰관이 살해되는 데 비해 택시 기사는 한 달에 2명, 주부는 일주일에 1명, 실업자는 하루에 1명씩 살해된다고 했다.

(...)

심지어 어느 스웨덴 연구진은 영국 경찰의 신화를 깨부수는 데 성공하여 그들에 대한 인상을 현실화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영국 경찰이 다른 몇몇 나라의 경찰에 비해 폭력적인 상황을 유발하는 비율이 낮다는 걸 보여준 거였다. 덴마크 당국도 이 사실을 깨달아서, 이제 덴마크 경찰관들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무기 소지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은 그렇지 않았다.(90-91p)

 

 

마르틴 베크도 내심으로는 이 작업이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을 인정했다.

(...)

하지만 마르틴 베크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고,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있는 작업이라도 처음에는 거의 모두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173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어느 끔찍한 남자> 中, 엘릭시르

,

2023/4/22

 

 

규가 남편의 핸드폰에서 남편과 지경의 섹스 동영상을 발견한 건 여름이었다. 지경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합의하에 촬영된 것 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평소대로 일하고 저녁 차리고 애들 숙제를 봐줬다. 그러다 김이 술에 곯아떨어지면 음소거를 하고 섹스 동영상을 봤고, 몸을 뒤척이면 화면을 끄고 숨을 죽였다. 반전으로 복수를 준비해둔 건 아니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그저 둘의 섹스가 눈에 익기를, 고통에 담담해지기를 기다렸다. 그게 아니면 뭐. 싸우고, 이혼하고, 재산분할하고, 주말마다 상대의 집에 애들 라이딩해주고, 이따금 그래도 집에 남자가 있을 땐 이런 무시는 안 당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불 보듯 뻔한 일을 겪어나갈 에너지나 있나? 내일 발표할 PPT 자료 만들 여력도 없는데····· 그렇게 규는 현실감각과 현실도피가 섞인 괴로운 상태로 여름을 버텨내고 있었다.(48p)

 

 

규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원래 규는 말을 절대 안 놓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끝까지 알겠습니다, 하는 사람이었다. 규가 보기에 반말은 관계를 무리하게 좁혔다.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서 반말하는 게 아니라 반말을 하고부터 예의를 잊었다. 멀리서 정중히 목인사를 하던 사람도 남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게 되는 것이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바라면 안 될 것을 바랐다.(62p)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회피하는 사람들. 실눈 뜨고 사는 사람들. 구지경도 눈꺼풀을 바짝 내리고 사는 거죠. 집에 수북이 쌓인 단수 경고장을 볼 때도. 피임을 안 하고 했던 섹스를 떠올릴 때도. 후회할 때. 살기 싫을 때도. 위아래로 떨리는 눈꺼풀 안쪽 어둠 사이로 세상을 흐릿하게 보는 거죠. 그래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를 똑바로 보면 모두를 똑바로 봐야 하니까요. 걔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

세간의 기준으로, 규는 지경에게 한참 더 함부로 굴어도 되었다.

그러나 규는 그만 지경을 더 괴롭힐 새도 없이 자신이 싫어져버렸다. 과거에 규는 사람들이 지경에게 너무 모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자기 일이 되자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경이 더 미웠다. 지경은 겹으로 잔인했다. 배우자의 배신을 보게 했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지킬 수 있었을 규 자신의 자부심을 파괴했다. 그리하여 규도 살짝 내디뎌보았다. 말을 놓고 사생활을 캤다. 내가 이래도 네가 어쩔 건데, 하는 낯두꺼움으로, 상대의 콧구멍을 꿰고 끌고 다니는 힘의 쾌감으로.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에는 남이 나에게 한 잘못 때문에 잠 못 이루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남에게 한 짓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65-66p)

 

 

그럼에도 그날 ‘악하다’는 말이 나온 까닭은 소설이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악하다는 말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창작반에서는 뜬금없이 어떤 말이 유행했다. 복기나 오독처럼 평소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유행했고 그러면 너도나도 아무 때고 그 말을 썼다. 악하다, 도 그런 말 중 하나였다. ‘되짚다’보다 ‘복기’가, ‘잘못 읽다’보다 ‘오독’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듯, ‘생각이 짧다’ 정도면 족했을 텐데도 사람들은 기어이 초롱의 소설에 대해 악하다는 표현까지 썼고 거기에는 ‘아’ 해도 될 것을 ‘악!’ 하고야 마는 문학의 낯간지러운 과장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부당한 환기가 맴돌이치고 있었다. 초롱도 그 점을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74-75p)

 

 

예전부터 초롱은 궁금했다. 삶에 어떤 위기가 닥쳐야 소극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는 사람이 설사가 나온다고 화장실에서 앞사람을 밀칠 수 있을까? 배우자의 불륜 상대에게 물을 끼얹거나, 의료 사고로 가족을 죽게 한 병원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수 있을까? 자의식을 이기는 시련이란 무엇일까?(83p)

 

 

초롱이 선생에게서 소설을 배울 무렵 선생은 극히 드물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씨앗만 심고 빠지는 스타일로 학생들이 서로의 소설을 물고 뜯다 올려다보면 그제야 한두 마디 던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혹은 십 년 뒤, 선생이 심은 씨앗이 잭의 콩나무처럼 학생들의 머리에서 솟구치곤 했다. 그제야 학생들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선생의 악담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나. 그러나 파종은 십 년 전의 일이었다.(89p)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제3의 원은.”

두 사람은 허공에서 돌아가는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소설에서 친구를 그리지 않았어. 친구의 고문도 그리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떳떳했어. 설사 친구를 떠올리며 어떤 것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변형이면 아무도 그게 친구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본인은 알아보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랑 나는 알았어. 내가 친구에 관해 한 자도 적지 않은 채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너도 작가니까 알겠지만. 큭.”

선생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곤 다시 올라와 손을 흔들었다. 선생의 손이 이발소 회전 간판처럼 끝없이 돌아갔다.

“소설을 쓸 때 옆에서 이런 게 오르내리지 않니? 소설을 쓰다 고개를 돌리면 제3의 원이 보이지 않니? 물론 내가 친구만 생각하며 소설을 쓴 것은 아니야. 친구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는 바뀌고 바뀌어 친구도, 친구가 아닌 것도 아닌, 제3의 원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소설을 썼어. 하지만 그 제3의 원에는 친구의 삶이 들어있지. 친구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들어 있지. 그 미묘한 뉘앙스를 친구는 감지했던 거야. 이제는 알겠어. 친구는 괴로웠던 거야. 내가 소설에 쓰지 않았지만 쓰는 내내 보고 있던 것, 소설에 담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대전제였던 것, 친구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의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아닌, 제3의 원. 그 알 수 없는 구멍을 종일 노려보다 결국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친구는 단지 내가 인정하기를 바랐어. 내가 실은 자기에 대해 썼다는 것을.”(98-99p)

 

 

“나왔다! ‘이상한’ 사람.”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나는 그 말보다 비겁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차라리 위험한 사람이 낫지. 이상한 사람은 위험한 사람의 완곡어잖아?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위험하다고 말하는 위험은 감수하기 싫어서 이상함의 두 가지 측면, 두려움과 매혹 중 매혹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거지. 여차하면 ‘튀려고’.”(132p)

 

 

“너 동대학은 아냐?”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얼마 전까진 동대학이 동국대 말하는 건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왜 다 대학원을 동국대로 가나 했지. 동이 동국대 동이 아니라 같을 동이란다. 너도 어디 가서 기 안 죽으려면 알아둬.”(156p)

 

 

그럼 어쩔 텐가. 누워만 있을 텐가. 누워서 상상만 할 텐가. 상상은 안전하니까. 나쁜 상상과 나쁜 행동은 다르니까. 상상 ‘속’에서 죽이고 강간할 수는 있지만, 상상‘으로’ 죽이고 강간하지는 못하니까. 택시 기사의 목을 뒤에서 조르는 ‘상상’을 하는 것은 괜찮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 서기 하는 사람을 밀어버리는 ‘상상’을 하는 것은 괜찮다. 사고행위융합오류는 오류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상상이 우세할까. 상상이 끝나고 행동이 시작되는 시점, 작은 불씨가 확 번져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되는 순간, 결국 칼을 들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 서게 하는 격발의 타이밍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누가 감히 보장할 수 있는가. 상상이 커지고 커지다 퍽 터져 현실의 발치까지 줄줄 흘러들길 내심 기대한 적 없는가? 상상을 믿지 마라.(186p)

 

 

모기와 인간은 다르다? 모기를 때려잡듯 인간을 때려잡을 수는 없다? 휴머니즘이라는 견고한 경계가 있다? 심장의 차가운 부분ㅡ노인이 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는 부분ㅡ을 지속 확장하고, 심장의 따뜻한 부분ㅡ서점에서 가장 헐한 책을 골라 사는 부분ㅡ을 지속 축소하면, 우리도 금세 유씨를 따라잡을 수 있다. 휴머니즘을 극복할 수 있다.(191p)

 

 

적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이다.(196p)

 

 

우리는 사장의 호의가 헤퍼서 싫었고, 그러느니 차라리 호의의 각을 좁혀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베풀어주길 바랐다. 사장이 창 너머로 근사한 술을 건넬 때 우리는 우리의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느끼기 싫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런 기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이 품은 마음 때문에 스스로 다쳤고, 초라해지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써야 했다.(197p)

 

 

사장은 과거 자신이 주최한 책 모임을 돌아보며 사람들의 수동성에 대해 짜증을 부리곤 했다. “다들 그저 떠먹여주길 바라. 더 똑똑한 사람이 혼자 커리큘럼을 짜고 양질의 독서 목록을 제공해주길 바라. 독서는 그것과 정확히 반대로, 자치 정신을 기르기 위함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강제성을 띤 자발성으로 매주 책을 가져왔고,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보이는 사장의 은근한 장악을 싫어했다. “사장 새끼는 취지가 너무 많아 짜증나.” 언젠가 보이는 말했다. 사장은 우리에게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늘 골치를 썩어가며 책을 골랐다.

보이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부침개가 먹고 싶다면 부침개가 다 부쳐질 때까지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와인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보이가 우리끼리 있을 때 “사장 새끼 책 점 치는 거 진짜 짜증나”라고 했던 바로 그 행동을 했다. 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이 책에선 어떤 부분이 제일 좋았어?”

보이는 그걸 ‘책 점’이라고 불렀다. 사장이 독후감을 빙자해 우리의 수준과 사연을 알아내려는 수작이라는 것이었다.

(...)

나는 보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사장이 우리에게 책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과 구절을 물어 그것으로 우리의 내면을 부당하게 읽는다 한들 뭐 그리 대순가 싶었다. 그러나 보이는 프라이버시에 예민했고, 보통 사람보다 프라이버시의 범위가 넓었다. 나는 정말 신경이 쓰이면 제대로 된 신호 대신 소음을 보내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보이에게는 책에서 어디가 좋았다는 신호뿐만 아니라 대놓고 아무 말이나 하는 소음도 프라이버시에 속했다.(205-206p)

 

 

우리가 부모를 원망하자 율 리가 말했다.

“맞아, 어른들은 나쁜 짓을 해. 너희의 가슴을 찢어놔. 하지만 슬퍼 마. 억울해 마.”

(...)

“너희는 클 거야. 자랄 거야. 그럼 너희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어. 어릴 적의 일은 뒤로하고, 우리는 죽는 날까지 죄의 항상성을 향해 나아간단다.”

(...)

당신도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하는가? 나는 요새 자주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한다. 오래전에 들은 별 것 아닌 말이 멀쩡히 몸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내장을 찢는다. 그러면 나는 시간차공격을 당한 배구 선수처럼 속수무책이다. 상대편 공격수가 뛰어서 나도 뛰었는데, 어느새 공격수는 사라지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음 공격수가 스파이크를 때려넣는 것 같다. 말의 강타. 나는 그저 당할 뿐이다. 도끼날 아래 장작처럼. 게다가 배구와 달리 말의 이차 공격은 수년, 심지어 수십 년 후에 비로소 시작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남이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색무취였던 말이 뒤늦게 악취를 풍겨 때늦은 앙심을 품게 했다. 그러다 다행히ㅡ계속됐다가는 유치원 시절 문방구 아주머니를 ㅡ수소문해 칼을 들고 찾아가게 된다ㅡ점차 내가 남에게 했던 말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오묘하다. 오묘하게 치사한 것이다. 분명 내가 남에게 한 악담인데 마치 내가 들은 악담처럼 느껴진다. 과거로 돌아가 이번에는 내가 상대가 되어, 어린 내가 하는 나쁜 말을 꼼짝 못하고 듣는 것이다. 내가 한 말에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격으로.(232-234p)

 

 

“있잖니, 사람이 응? 너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잖아? 그것도 꼴사납다. 자기를 미워하는 짓 같지만 실은 자기가 좋아 죽겠는 짓거리거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242p)

 

 

한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의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그 일을 대신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목경과 무경의 부모가 밖으로 돌았을 때, 자식을 굶겨 죽일 만큼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애들을 돌보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때, 놓아지지 않는 정신이, 최소한의 양심이 저주처럼 느껴졌을 때, 차라리 불능이길 바랐을 때, 그럴 때 나타난다는 것이, 게다가 아무 설명 없이 생색 없이 철없는 가출의 형식으로 나타나 상대가 가장 바라는 것을 해준다는 것이 고모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좋은 마음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목경은 생각했다. 메리 포핀스처럼 날아다니며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빠진 사람들 앞에 짠, 나타나는 고모에게는 오만한 고약함도 있었다. 그러나 목경은 무수한 의도 중에서 실오라기 같은 악의를 건져올리려는 결벽증을 버린 지 오래였다. 고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결코 하고 싶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하기 싫은 일로 바뀔 때까지 숨 돌릴 틈을 얻었다.

목경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언니가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알았다는 사실이었다.(308-309p)

 

 

 

ㅡ 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中, 문학동네

,

2023/4/21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과 그냥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 사이의 간극을 고민해보는 시간이자 나도 모르게 받은 부모의 영향을 떨쳐내는 게ㅡ어떤 행동 양식이나 사고 방식이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지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겠지만ㅡ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집 근처의 가게에서 구한 책인데 태어난 날에 근거해 사람의 성향을 설명해준다고 말하며 내가 태어난 달로 책장을 넘겨 글을 읽어주었다.

(...)

나는 그 내용 중에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글의 진실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입에 올리고, 회자하는 상대의 성향을 이러저러한 뚜렷한 특성의 가닥으로 풀어내며 상대의 행동이나 행동의 이유에 대해 말을 얹을 수 있게 허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상대 혹은 우리 자신을 읽을 수 있다고 여기게 되고, 이를 심오한 발견으로 경험한다고.(26-27p)

 

 

나는 로리와 내가 요즘 아이를 가질지 말지 의논하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낳아야지, 아이를 갖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는 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로리와 내가 저녁 요리를 하면서도 장을 보러 가면서도 커피를 준비하면서도 수시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같은 화제를 다방면으로 반복해 논하며 서로가 세세하고 실감나는 요소를 추가하거나, 끝나지 않는 추측을 하는 물리학자들처럼 수백 가지 가능한 경우들을 되짚었다. 우리 둘이 지칠 대로 지치고 잠도 부족한 상태가 되면 서로 얼마나 상처를 줄지. 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다른 존재를 전적으로 돌보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의 충족감은 어떻게 유지할 건지. 친구들에게도 의견을 물었고, 모두 솔직하고 정직하게 답해주었다. 몇몇 친구는 헤쳐 나갈 수 있고 아이들이 나이가 들수록 길을 찾는 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 관계의 허점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날 거라고 말했다. 또 일부는 아이를 갖는 건 엄청난 희열을 주는 경험일 수 있다고, 다만 그에 기꺼이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사려 깊은 조언과 이야기도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야 했고ㅡ한 삶과 다른 삶을 비교하는 건 최종적으로 불가능하기에ㅡ그래서 우리는 어김없이 도로 시작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34-35p)

 

 

강사는 이런 감정은 오늘날 우리 안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고 했다. 이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자기 모친은 친구뿐 아니라 식구 하나하나 사이에서 누가 무얼 주고받았는지를 말없이 다 헤아려두었다고 말했다. 강사는 다른 집을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가 잊지 않고 챙겨 가던 완벽한 선물을 기억하며 그런 격식을 자기가 사춘기 시절 얼마나 지긋지긋해했는지, 어머니는 답례로 받은 선물에 대해서도 꼭 한마디해야 했고 보이지 않는 저울에 올리고 정의의 여신이라도 되는 양 평가를 붙였다고 말했다. 강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아주 컸고 손님과 친척이 수시로 지내러 왔는데, 누가 집에 오기만 하면 이런 계산이 따랐지만 동시에 대놓고 그런 언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기도 모전여전으로 내면화 한 이런 계산하는 버릇을 퇴치하려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고 말했다.(45p)

 

 

그날 뒤로 달라진 건 딱히 없었고 단지 아주 오랫동안 그리스 희곡 작가들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지나 돌아갔을 때, 내가 여전히 그 작품들에 매혹된다는 사실에 실망감마저 들 뻔했다.(61p)

 

 

삶에 있어 최선은 욕망받는 것이라고, 내가 욕망하지 않더라도, 나를 욕망하는 사람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만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가르침을 어떤 경로로든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어디서 배웠는지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104p)

 

 

나는 모네에 대해서라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학생이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말했다.

(...)

하지만 남자친구와 시내 미술관을 찾은 그날 그 순간, 아련한 빛과 들판에 놓인 건초 더미의 모양을 보며 이해한 게 있었다. 그 그림들이 시간에 대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했다. 화가가 두 개의 시선으로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첫째는 젊음의 시선으로, 풀 위에 깃든 새벽 분홍빛에 잠에서 깨어나 그가 전날 한 작업과 앞으로 해야 할 작업 모두를 가능성을 품고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두 번째 시선은 나이가 있는 사람의 시선, 어쩌면 그 그림들을 그리던 모네의 나이보다 연륜이 지긋한 시선으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예전에 느꼈던 그 감정들을 기억하고 다시 붙잡으려 시도하는, 그러나 그사이 지니게 된 필연성의 감각이 풍경에 스미는 걸 막을 길 또한 없는 시선이었다.(107-108p)

 

 

원인은 지금도 몰랐지만 그 지점에서 잔 여울을 지났고, 그런데 정작 몽상에 잠겨 예상도 대비도 못 한 걸 수도 있다고 했다. 뒤집힌 채로 물살이 몸과 얼굴과 머리 주위로 치밀던 느낌과, 그런데도 묘하게 차분했고 이제 어떻게 되는지 가만 기다리고 보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

왠지 모르게 자기도 형도 그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차분히 가던 길을 계속 갔다고, 수면으로 다시 올라왔을 때 형이 짓고 있던 표정을 봤음에도 누구도 그 일을 시인하지 않았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로리는 말했다. 나는 너무 실감이 나서, 너무 끔찍해서 그런 게 아닐까 여겼는데 로리는 아니라고, 자기 생각에는 그 반대 같다고, 그러니까 저희 둘 다 그런다고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을 걸 알고 또 계속 길을 가고 싶고 계속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여울을 몇 차례 지나쳐야 했고, 이미 벌어진 일이 그 사실을 바꾸지는 않았다고.(129-130p)

 

 

강사가 예전 언젠가 부모는 자식의 숙명이고, 이는 비극에 있어서뿐 아니라 소소하고도 위력 있는 점에서 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게 딸이 있다면 그 아이의 삶이 내가 살아온 방식에 일부 좌우되고 아이의 기억이 내 기억을 따를 것이며 이 점에 관한 한 그 아이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136p)

 

 

 

ㅡ 제시카 아우,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中, 엘리

,

2023/4/20

 

오르부아르와 화재의 색을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 없다. 잘 읽히는 책이지만 막 엄청 재밌지는 않았다. 르메트르의 다음 작품도 읽을지는 고민 좀 해봐야겠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을 경멸했고,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른바 간첩들을 증오했으며, 또 이이 이른바 간첩들은 명령 불복종자들을 토할 듯이 역겨워했다. 이뿐 아니라 사보타주범, 병역 기피범, 패배주의자, 그리고 이른바 국가 반역자들은 일반 잡범을 버러지처럼 여겼고, 또 이 잡범들은 그들 간에도 도둑, 사기꾼, 약탈범, 살인범을 구분했는데, 이 살인범들은 도둑들과 섞이려고 하지 않았다.(365-366p)

 

 

ㅡ 피에르 르메트르, <우리 슬픔의 거울> 中, 열린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