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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잡기 2017.06.30
  7. 글쓰기에 대한 잡기 2017.06.23

일기

from Life 2017. 10. 30. 11:51

2017/10/23

 

 

1. 지금은 당연하게 통용되는 개념이지만 생각해보면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많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등. 인간은 태어날 때 모든 지식을 완벽히 갖추거나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타고난 성별이나 자신이 자라며 겪었던 환경으로 인해 한쪽으로 치우친 시야를 가질 소지가 다분하다. 한국 한정으로 동시대 비장애인 남자의 삶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대에 뒤처지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바로 자신의 지식을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것(글자 그대로 최소한의 노력이다)이며 페미니즘은 그 지식 중 하나다. 페미니즘은 단일한 뜻으로 정립된 용어가 아니므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큰 줄기를 제외하고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이다. 철저히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공기처럼 당연시 여겨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새롭고도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는 것만 해도 페미니즘에 고마워할 가치가 충분하리라.

 

 

2. 지난 주말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대신 드라마를 봤다. 5시즌으로 계획되어 있는 마인드헌터의 첫 번째 시즌. 몇 가지 얘기해보자면 첫째,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자의식 과잉으로 폭주하는 주인공의 변해가는 모습과 그 인물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을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데이비드 핀처는 등장인물에 대한 애착이나 동정 따위가 없다는 게 느껴진다. 둘째, 극악무도한 범죄를 막으려면 그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알아야 대처와 예방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그들과 비슷한 범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론을 정립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지켜보는 재미를 들 수 있겠다. 또 앞으로 여러 시즌에 걸쳐 더욱 자세히 표현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자들과의 만남을 일회성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함으로 인해 자연스레 형사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습도 느껴졌다. 셋째, 조금은 아쉬운 점인데 시대상 및 직업적 특성을 감안해도 여성 캐릭터가 지금보다는 더 의미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작에 핀처 뿐만 아니라 샤를리즈 테론도 참여했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해본다.

 

 

3. ‘의도는 좋았다’라는 말로 부적절한 행동의 의도를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행동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행동의 의도를 얘기하나. 그런 논리로 선한 의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행동의 나쁨이 만회 되는 건 아니다.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알 수도 없을 의도를 추측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드러난 행위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우리가 궁예처럼 관심법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적절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어떤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거나 적어도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며 과도하게 추측할 게 아니라 행위 자체만 보는 게 어떨까. 설사 의도가 좋았다 한들 행위가 적절하지 못했으면 행위의 부적절함을 따져 물을 일이지 의도를 물어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만고에 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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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7. 9. 18. 13:14

1. 자신이 조금이나마 들어봤다고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을 본다. 그 조금의 정보조차 부정확하게 거론하고 사람 이름 서넛을 주워섬기는걸 보고 있자니 안쓰럽다. 대단한 기대를 한 게 아니었음에도 듣고 있기가 고역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이 떠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야말로 허공에 부유하는 알맹이 없는 말들의 잔치. 나라고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말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느낀 자아성찰의 시간이었다. 항상 삼가는 마음을 가지며 아는 것만 적확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실행해 옮기는 건 어렵다.



2. 책을 읽는 게 소수의 대단히 호사스런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고 얼마나 읽겠냐마는 주변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들이 한 권의 책이라도 읽었다는 얘기는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즐기는 여가라면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영화감상일 텐데, 영화도 책을 소비하는 방식과 사정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크게 보면 양상이 비슷하다고 할까. 책을 안 읽는다지만 책도 책 나름이라 자기계발서, 설민석이나 김제동 등의 책, 읽기 편한 에세이는 잘 팔린다. 반면에 인문학이나 철학 영역에서 결국 읽히고 팔리는 건 하룻밤 만에 읽는 철학사나,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따위의 책이다. 과학쪽은? 말해 뭘할까. 영화도 마찬가지다. 팔리는 영화는 데이트용 팝콘 무비. 조금만 불쾌한 묘사가 나온다거나, 자신의 지적 수준에 걸맞지 않게 아주 조금 난해하다거나 지루하다면 관객은 외면한다. 뭐든 쉬워야 한다.



3-1. 주말을 이용하여 영화를 몇 편 봤다. 아메리칸 메이드와 윈드 리버는 평범했다. 도입부터 시선을 사로잡으며 참신하게 영상과 음악을 연결하는 재미를 줬던 베이비 드라이버는 매우 좋았다. 편집이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개연성에 의문이 드는 장면도 있었지만 충분히 준수했다. OST를 찾아봐야겠다. 집으로 돌아와 같은 감독의 '더 월즈 엔드'를 봤는데 이 영화도 만족스러웠다.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답게 여전히 음악은 빠지지 않았지만 거의 액션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액션신이 훌륭했다.



3-2. 주말의 영화관 나들이는 오랜만이었는데 어디서 돈 주고도 못 볼 진기한 구경거리를 봤다. 관객으로 거의 꽉 찬 영화관에서 내 옆자리 커플이 서로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경험이라 계속 쳐다볼까하다가 그동안 눈에게 충분히 못할 짓을 많이 한 것 같아 애써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커플이 시종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팝콘과 나초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음료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빨대소리를 내며 알뜰살뜰하게 마셨다는 사실은 덤이다. 역시 누가 뭐래도 영화는 주중에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이다.



4. 해야 할 게 많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미술사 강의도 들어야 하고, 탐욕스럽게 빌려온 책도 반납기일 전까지 읽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본 영화와 관련된 영화도 봐야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한다. 물론 즐거운 일들이지만 오늘부터 그 어느 것 하나 하지 않아도 삶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들을 하려고 공연히 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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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7. 9. 7. 11:57

1. 최근에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을 읽었다. 어렸을 때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은 있어도 음악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지식도 전무하여 걱정이 됐지만, 클래식 음악의 기본적인 교양을 쌓고자 책에서 언급하는 음악과 함께하며 성의 있게 읽었다. 썩 만족스럽다. 많은 음악가의 이름과 음악 이론으로 인해 책을 덮으면 ‘그래서 도대체 내가 무슨 책을 읽은 거지’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차이, 오르간이라는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 편성이 가능한 이유, 콘체르토와 사중주 의미 등 책의 내용이 제법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수확이 있었다. 지금 상권을 읽은 상태인데 하권도 읽어볼까 한다. 좀 더 욕심과 흥미가 생겨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도 함께 읽고 있다. 이 책의 1부는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고, 2부는 저자 자신이 방송했던 대본이다. 이 책 역시 롤랑 마뉘엘의 책과 같이 대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절판이라 아쉽다.

 

 

2. 항상 음악, 영화, 책 모두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즐기며 산다고 말해왔으나 그 즐기는 정도는 차이가 있다. 책은 읽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는 것에 비해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음악은 이리저리 찾아가며 들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피치포크에서 신보 정도나 체크하고 있다. 그나마 영화를 가장 부담 없이 즐긴다고 할 수 있는데 뭐 영화도 영화 나름이긴 하다. 왕빙의 ‘철서구’나 벨라 타르의‘토리노의 말’같은 영화를 부담 없이 보긴 힘들 테니까. 그렇다 해도 그중 영화 감상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요즘은 그것조차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덩케르크’같은 영화는 개봉 전날에 미리 챙겨 봤을 텐데 지금은 그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건 말건 별 감흥이 없다. 꼭 봐야만 하는 영화는 없다지만 벌써 이렇게 취미 생활에 관심도가 떨어지면 더 나이 들면 뭐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 기분은 연중행사와 같이 잠깐씩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므로 그냥 지나가게 놔두면 되겠지 싶다가도 역시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3. ‘사람들과 조금 더 교유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 물론 생각만 하고 말로만 떠든다. 혼자 있을 때 잘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삶에서도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며 더 잘 산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말은 글자 그대로 ‘혼자 있는 삶’만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하는 삶’과 병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따라서 타인과 만남이 거의 없는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소리다.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은데 가끔 외롭고 심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외롭고 심심한 건 역시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관심 있는 분야의 동호회나 소모임 등을 기웃거리기도 해봤으나 마음에 드는 모임을 찾기는 요원하다. 그루초 막스의 말처럼 ‘나를 받아주는 모임이라면 나는 그 모임을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뒤틀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이건 일부분 나 개인의 고약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가 그렇게나 힘든 우리 모두의 이유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가치관은 더욱 공고해지고 취향은 점점 정교해진다. 세월을 통해 형성한 자신의 미묘한 기호를 낱낱이 설명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귀찮아진다. 척하면 척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고대하는 것이다. 즉 가치관과 취향까지 고루 맞아떨어지는 친구를 만나고자 하는 것일 텐데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노력을 기울이기는 싫지만 영혼의 단짝은 만나고 싶다는 소린데, 이건 뭐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모임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위의 사항을 충족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노력을 더 기울이거나 기대치를 낮추기보다는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물은 아니지만 답은 알고 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듯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하므로 타인에게 너무나 엄정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현재의 인연을 너른 마음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가치관과 취향의 문제에서도 융통성 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4. 적고 보니 ‘아쉽다.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와 같이 죄다 부정적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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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7. 8. 25. 09:27

뭔 놈의 모임 하나 들려는데 이렇게나 지켜야 될 것도 많고, 돼먹지 못한 강제 사항 엄청 많네. 얼마나 대단한 모임이라고. 책을 읽는 모임인데 책을 꼭 들고 오라는 건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그런 건지? 책을 읽어 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남한테 보여주려고 꼭 책을 가져와야 하나? 퍽이나 읽어오겠다. 그리고 모임 카페에 놀러 오라고 주소 남겨 놓고 카페 가입 하지 않으면 게시글 못 읽게 하는 건 어디서 이렇게 카페 운영하라고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는건지? 모든 카페에서 저런 짓을 하고 앉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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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7. 8. 21. 12:59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 이런 말이 있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낸 밤과 마주한 낮의 낙차가 심하면 심할수록 현실의 일상이 너무나 권태롭게 다가온다. 헛헛하고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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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from Life 2017. 6. 30. 16:24

기존에 사용하던 블로그 스킨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서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css나 html에 문외한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해서 손을 놓고 있던 차에 갑자기 바꿔봐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것저것 코드를 많이 지워서 다른 형태로 수정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지금 블로그 레이아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에 가까워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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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잡기

from Life 2017. 6. 23. 12:18

2017/6/23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최근 에피소드에서 금정연씨가 기술자로 나와서 했던 말을 듣고 생각 정리.

 


1. 사기 치는 책들이 더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책을 조심하려고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책을 읽는 다고 수억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만 원 남짓한 돈과 3-4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 소요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책을 고르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책을 고르는 것에 한정된 게 아니라 많은 일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실패 없이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두 말 않고 그걸 택하면 된다. 그러나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수많은 실패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 실패들을 실패로 내버려두지 않고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된다. 적어도 기분이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2.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흔히 얘기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기도 한다. 그만큼 많이 들어서 진부한 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지침들은 다 그렇다. 우리는 그런 지식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단지 실행하지 못할 뿐.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하루에 필요한 적당량의 칼로리를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건강한 삶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실행하지 못할 뿐. 따라서 여기서 굳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단어의 의미를 조금 바꿔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다독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인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다독은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찾아야 한다. 따라서 반복해서 읽을 만한 책을 찾기 위해 부단히 책을 탐색하고 읽어나가는 과정을 다독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다작은 많이 써보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다작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보고, 나쁜 문장은 지우고 좋았던 문장은 다른 형태로 바꿔 본다. 문장의 배열을 바꿔보기도 하고 단어를 고쳐보기도 하며 글을 가지고 노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다상량이다. 여기에서 내 의견은 기존의 원칙과 다르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기 마련이고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은 글쓰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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