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

 

 

쉽게 잘 썼다. 대중교양서에서 깊이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여기서 흥미가 생긴 사람이라면 좀 더 세분화된 관련 분야로 독서를 이어가면 되겠다. 1/3정도까지는 매우 좋았는데 후반부는 조금 처진다. 미래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전망은 조금 지겹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되는 과정은 이미 있었던 가능성들을 쳐내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된 것은 당신의 뇌 속에서 무언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유년기 내내 우리의 국소적 환경이 우리의 뇌를 다듬는다. 가능성들의 밀림이었던 뇌를 환경에 적합한 모습으로 되돌린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뇌 속 연결들은 더 적어지고 더 강해진다.(6p)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재구성의 산물이며, 때로는 신화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모든 세부 사항들이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부 세부 사항은 사람들이 들려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어떤 부분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한 바를 내용으로 삼는다. 따라서 만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단순히 당신의 기억에 기초를 둔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기이하고 불안정하며 미완성인 이야기와 유사하게 된다.(41-42p)

 

 

감각정보들은 유형에 따라 제각각 처리 시간이 다르다.

(...)

이 같은 동기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기이하게도 당신이 과거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순간이 발생한다고 당신이 생각할 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감각들에서 유래한 입력 정보를 동기화하는 대가로 우리의 의식적인 알아챔은 물리 세계보다 시간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발생하는 사건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의식적 경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시간 간극이 있다.(72p)

 

 

전통적인 시각 모형에서 시각 지각은 눈에서 시작되어 뇌 속의 어떤 미지의 지점에서 끝나는 데이터 처리의 산물이다. 이 조립 라인 모형은 단순해서 선호할 만하지만 사실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뇌는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기 전에도 나름의 실재를 산출한다. 그 실재를 일컬어 ‘내부 모형’이라고 한다.(75-76p)

 

 

당신의 눈은 비디오카메라와 유사하지 않다. 당신의 눈은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을 포착하여 내부 모형에 제공하려고 여기저기를 탐험할 뿐이다. 카메라 필름이 렌즈를 통해 세계를 포착하는 것처럼 당신이 눈을 통해 세계를 포착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신의 눈은 데이터를 모아서 두개골 안에 있는 세계에 공급할 따름이다.(80-81p)

 

 

어떤 생물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실재를 경험하지 못한다. 각각의 생물은 진화를 통해 지각할 수 있게 된 것만 지각한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모든 생물 각각은 자신이 지각하는 좁은 구역을 객관적 세계 전체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도 무언가 있으리라는 상상을 우리가 멈출 이유가 있을까?(85p)

 

 

뇌라는 기관의 임무는 세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종하는 것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자각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거의 모든 상황에서 뇌의 작동은 당신의 의식적 자각을 동반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경우에 당신은 당신을 위해 내려지는 결정을 자각하지 못한다.(129p)

 

 

 

ㅡ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中,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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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결산

from Life 2018. 4. 2. 11:32

근자에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가 매 달 결산을 남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좋은 생각이었고 나도 해볼까란 마음이 들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으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보는 건 괜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말 정산은 꿈에라도 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력이 있다면 약간의 감상도 함께 올리겠다. 적으며 느낀 거지만 한 달 동안 정말 하는 거 없어 보인다.

 


<책>

1.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금정연, <아무튼, 택시>

3. 오르한 파묵, <하얀 성>

4.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5.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6.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막 좋았던 책은 없었고 그럴 정도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네. 점점 책을 안 읽는 거 같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꽤나 재밌었다. 고흐 편지를 읽으며 고흐의 생애를 한 번 훑어 보기도 했고 인상파 위주의 그림들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그나저나 금정연의 신간이 반가운 반면에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서서비행’과 ‘난폭한 독서’를 뒤져보기도 했다.

 

 

<영화>

1. 스탠리 큐브릭,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2. 스티븐 스필버그, <더 포스트>

3. 션 베이커, <플로리다 프로젝트>

4. 기예르모 델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5. 조 라이트, <다키스트 아워>

6. 루카 구아다니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7. 마이크 리, <해피 고 럭키>

8. 클로드 바라스, <내 이름은 꾸제트>

9. 폴 킹, <패딩턴2>

10. 아만도 이아누치, <더 데스 오브 스탈린>

11. 임상수, <그때 그 사람들>

12. 스티븐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

13.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파리스, <미스 리틀 선샤인>

14. 폴 토마스 앤더슨, <팬텀 스레드>

15. 조너선 러바인, <50/50>

16. 크레이그 길레스피, <아이, 토냐>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독이 빌리 진 킹의 감독이었는지와 감독이 한 명이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영화를 한 편, 그것도 예전에 봤던 영화를 봤네. 3월만 그런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4월도 비슷할 것 같은데 문화사대주의를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3월의 한국영화 개봉작을 보고 오길 바란다.

-본 영화중에서 크게 후졌던 영화가 없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3, 4>

-급 생각이 나서 봤다. 기억이 흐릿해서 1, 2 시즌 줄거리를 유튜브로 복습하고 3, 4시즌을 봤다. 지금 5시즌 1화에서 멈췄는데 또 손이 안가네.

 


<음악>

offonoff, <boy.>

-누가 서른살까지 들었던 음악을 거의 평생 듣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음악을 찾아 듣는 게 귀찮아서 들어왔던 장르나 이미 알고 있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 정도나 찾아 듣는다. 가끔 운 좋게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발견하게 된다. 오프온오프의 앨범에서는 ‘춤’이 가장 좋다. 오프온오프 말고는 스마트폰의 랜덤플레이 리스트, 영화의 ost와 책 읽을 때 아주 가끔씩 유튜브로 클래식 음악을 들은 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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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0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22p)

 

 

나에게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뚱딴지같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바보 같은 기대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이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바보 같다 해도,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이상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23p)

 

 

밀레의 편지에도 늘 그가 봉착한 여러 문제가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러저러한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일을 해 나갔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반면 빌더스의 편지를 보면 “이번 주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망쳐버렸다. 이런저런 콘서트나 놀이에 참석한 뒤에는 전보다 더 비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는 식의 글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밀레의 감동적인 면은 “그럼에도 나는 이런저런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이다. (78p)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125p)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141p)

 

 

우리 같은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프게 되면 방금 죽은 불쌍한 관리인보다 더 고독해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고, 집안일을 돌보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 하고 홀로지내면서 가끔은 바보처럼 살고 싶어 한다.

우리의 육체를 보더라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친구가 필요하다.(176p)

 

 

화가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 이제껏 내가 생활했듯 집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기분전환 거리도 없고, 온갖 이웃들이 비난하는 생활을 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240p)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248p)

 

 

“나는 이런저런 것을 그리고 싶다”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항상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때에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던, 기본적으로 아주 다른 시골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림을 더 훌륭하게 끝맺고 싶다, 정성들여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성공한 만큼이나 많은 그림을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지금 베르나르는 부모에게 계속 재촉받고 있다. 그러니 뭘 할 수 있겠니?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도 같은 곤경에 처해 있지.(277p)

 

 

 

ㅡ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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