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

 

 

쇼코는 할아버지에게 늘 밝은 내용의 편지를 적어 보내는 것 같았다. 달리기경주에서 일등을 했다. 고모와 맛있는 카레집을 찾아갔다, 휴일에 친구들과 보트놀이를 했다. 북해도를 여행했다.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쇼코의 이야기는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내가 받은 편지에는 어두운 이야기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돈을 훔쳤지만 할아버지는 모른 척했다. 그 돈을 하수구에 버려버렸다. 가끔씩 할아버지의 음식에 독을 타고 싶다, 아빠가 보내는 양육비를 고모가 허비해버리는 걸 알고 고모의 속옷을 하나둘씩 찢어서 거리에 내던졌다, 가끔씩 소독한 칼로 자신의 골반 근처를 찌른다.

당시에는 쇼코의 모순된 말들에 혼란을 느꼈다.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게 하는 말이 진짜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두 종류의 편지가 모두 진실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모든 세부사항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모두 진실된 이야기였을 거라는 걸. 아니, 모든 이야기가 허구였더라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고, 내 편지에 썼듯이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겠지.(16-17p)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24p)

 

 

그래. 나는 겁쟁이야. 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27p)

 

 

나는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잃어갔다.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도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34-35p)

 

 

가끔씩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건성으로 받곤 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당연히, 원래 그렇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자리를 잡아서 떳떳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에 대해서 가타부타하지 않았고, 되려 나이가 드니 감기도 잘 안 걸린다고 말했었다.(43p)

 

 

“난 정말이지 괜찮을 줄 알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턱도 벌릴 수가 없었다. 턱을 벌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아서였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말라가고, 피부가 누렇게 변해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단지 그 노화가 조금 빠르게 진행된다고만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는 그리도 예민했으면서 할아버지의 상황에는 왜 그토록 무뎠었는지.

할아버지는 베레모를 벗어서 무릎에 올려놨다. 숱이 적은 흰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남자처럼 변명했다.

“정말이다. 이렇게 심해질 걸 알았으면 너에게 진작 말했을 거다. 자주 얼굴이나 보자고.”

할아버지는 안간힘을 써서 웃고 있었다.

“내가 말했으면 나 자주 보러 왔을까.”

나는 대답 대신 할아버지의 머리를 꼭 안았다. 정수리에서 머릿기름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예순다섯 밤을 더 보내고 영면하셨다.(45-46p)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89-90p)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었다. 그리웠을 것이다. 말로는 그때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준 응웬 아줌마를 엄마는 오래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91-92p)

 

 

이모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엄마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104p)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105p)

 

 

이모와 엄마는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모는 최종 재판에 참석했었다고 말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주제를 돌려야 하는데 그 생각에 부딪히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럴 때면 엄마는 어색하게나마 엄마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결혼생활의 한심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친정 친구들과 절연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처음에는 한 달에 두 번 이모를 찾아가다가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계절에 한 번 안양에 찾아갔다. 가끔씩 통화를 하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서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이모는 엄마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엄마 또한 그랬다. 엄마는 살얼음판을 딛듯이 이모의 상처가 달지 않은 마음들만을 디디려 했고 이모는 엄마가 이모를 조금이라도 가여워할까봐 애써 아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심지어 이모가 안양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조차 몰랐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113-114p)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되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115-116p)

 

 

할머니의 바람대로 엄마는 이모와 관계없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가끔 엄마는 이모를 떠올렸다.

(...)

살면서 몇 번은 이모에게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행한 적은 없었다. 시간을 이모를 한때 엄마의 삶에 머물렀다 스쳐간 사람으로 기록했고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120p)

 

 

한지도 한지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이로비에 살고 있는 삼백만 명의 사람들 중에 이백오십만 명이 빈민가에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지는 그런 극단적인 부조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랐다고 말했다. 교회에 가서 가족의 평안만을 비는 부모님을 보면서 한지는 그 교회에서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지는 아버지의 돈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이 누려왔던 삶은 부모님의 부로 인한 것이었고, 그 부가 누군가를 착취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건 결국 돈뿐이라고 고백했다.(144p)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164-165p)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내가 미진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 라고. 미진이 점점 더 러시아 말을 잘하게 될수록,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미진에게 화가 났습니다. 미진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날 견딜 수 없게 하더군요.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193p)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미카엘라는 언제나 든든한 딸이었다. 고생해서 제힘으로 서울에 뿌리를 내린 딸이 여자는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 학 번 보내지 못했고 비싼 메이커 교복 대신 시장 교복을 사다 입혔던 여자였다. 통장에 부어놓았던 돈으로 미카엘라의 대학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을 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첫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온 아이가 이제부터 학비는 제 손으로 벌어 낼 테니 몸을 그만 혹사시키라고 했다.

그런 딸 앞에서 여자는 언제나 면목이 없었다. 엄마로서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짐이라도 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다.

(...)

여자는 걸음을 옮겨서 지하철을 탔다. 딸이 사는 망원동으로 가서 숙소를 찾아볼 요량이었다. 어쩌면 미카엘라가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할지도 모르고,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카엘라에게 먼저 전화를 걸 용기는 나지 않았다. 광복절 날에도, 토요일에도 회사에서 일을 하는 아이가 아닌가. 바쁜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얼굴이라도 한번 보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것도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220-221p)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235p)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238-239p)

 

 

ㅡ 최은영, <쇼코의 미소>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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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4

 

오늘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폭력(그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을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많은 사건을 극화해서 보는 느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마음도 들었는데, 이런 사례에 한국에서 비장애인 남성으로 태어나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가장 쉬운 방법을 생각해볼까. 자신이 평균이상의 공감 능력, 도덕성, 지성 등을 겸비하고 있고, 책 속의 등장인물과 조금의 공통점도 없다고 믿으며 그에 대해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서 각 인물에 대해 이러저러한 점을 비판하고 지적하면 된다. 아울러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포와 폭력에 대해 나는 너희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정이입까지 하면 금상첨화겠다. 근데 그러할까.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한 기사 몇 줄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 몇 권 읽었다고 페미니스트라 설치는 게 우스운 것처럼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 겪는 문제에 깊이 통감한다며 고뇌하고 있는 꼴을 하고 앉아 있으면 여성이 보기에 얼마나 같잖을까.

 

 

 

세상에, 서운했다. 일부러 전화를 피했으면서 막상 벨소리가 끊기자 이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외로움이 거세게 밀려오며 속이 울렁거렸다. 내 마음은 이토록 뻔하고 지루하다.(12p)

 

 

다들 이렇게 스스로에게 계속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한 순간, 더 쉽게 와르르 무너질 테니.(19p)

 

 

병에 걸린다는 건, 내 행복을 남에게 맡겨놓는 것과 마찬가지야. 불안하고 끔찍하지.(85p)

 

 

이강현은 그와 비슷했다. 그녀가 선택하는 프로젝트, 발표 논문 주제, 학교의 인맥 모든 것이 실리적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그녀를 우습게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동기나 선배 들은, 일명 ‘학문에 영혼을 바치는 연구자’들은 이강현 같은 사람 때문에 진짜 실력자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공부보다 정치가 우선이고 학문의 순수성보다 이득이 남는 학교 사업에 힘을 쏟는 것이 무슨 꼴이냐고 말이다. 그들은 이강현 때문에 안진대학이 발전할 수 없는 거라고 분노했다. 동희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발해서 척지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 앞에서는 적당히 인상을 쓴 채 회의와 고뇌에 빠진 젊은 학자 코스프레를 했다. 하지만 동희가 진짜 경멸하는 이들은 바로 학문에 영혼을 바친 그들이었다. 학문, 열정, 대학의 본질? 그는 학문 자체가 좋아서 공부를 한다는 식의 말을 경멸했다. 인간의 언어란 정말 대단했다. 본질을 감추고 외피를 만드는 데 언어만큼 적당한 건 없었다. 진실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따라붙는 무수한 수식어는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학문이란 진실을 추구해야 하고, 이 세상이 남겨놓은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냉혹한 자기 검열을 해가며 학문이란 무엇인지 계속 탐구해야 한다고? 오직 성과만이 선이 된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학문은 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토로하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건 이강현의 자리였다. 그들이 이강현을 싫어하는 건, 그 자리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할 학문의 기사인 ‘내’가 아니라 그녀라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동희가 보기에 자신의 인정 욕구와 학문에 대한 사랑을 구분 못 하는 어설픈 학구파들보다 이강현이 훨씬 유능한 사람이었다.(105-106p)

 

 

현규는 절대 몰랐다. 그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고, 모두에게 대접받는 사람이니까. 그의 단점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어떤 일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 그는 자신이 나서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남자였다.(168p)

 

 

수진은 믿지 않았다. 사람들의 악의가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수진이 믿지 못하는 건 악의라기보다는 형체 없는 목소리들이었다. 오히려 악의는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악의는 분명한 의도와 형체를 갖고 있으니까. 팔현에서부터 들어온 그 목소리들. 무심한 목소리로 수진을 가리키던 말들. 춘자 딸, 날라리 딸, 불쌍한 년. 마을 사람들은 착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말을 했을 때 수진이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말하고 또 말했다. 바닥에 돌멩이가 있어! 수진은 엄마 닮아서 멍청할 거야. 와, 하늘에 비행기가 간다. 춘자는 아마 다른 게서 또 자식을 낳았을 거야. 겨울이다! 눈이 와! 세상에, 수진이가 대학에 가? 사람들은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남자는 수진을 강간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203p)

 

 

“괜찮아,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은 없었어. 그리고 남자들은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 정말 다정해. 나는 그게 좋아.”

수진은 마음이 답답했다. “원하는 걸 얻고 나면 너를 함부로 대하잖아.”

(...)

“다들 왜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언제든지 마음을 열 것 같아서 쉽게 다가서지만, 너의 깊은 외로움을 알고 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아마 그렇기 때문일 거라고 수진은 말하지 않았다.

(...)

그들은 이마를 맞대고 잠들었다. 그날 잠에 빠져들면서, 수진은 오랜만에 진아를 떠올렸다. 수진은 진아가 자신에게 멀어졌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230-231p)

 

 

“어린 남학생들이 아직 절제를 배우지 못해서 그래.”

개소리다. 이강현은 오빠를 믿었다는 여학생들의 울음소리 못지않게 남자는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는 걸 참는 게 힘들다는 말을 경멸한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259p)

 

 

김동희가 그렇고 그런 놈인지는 진작 알고 있었다. 본인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형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놈. 위로 올라갈 생각으로 가득한 놈. 야망이 크고 과한 노력을 하는 놈. 그런 놈의 특성은 매우 단순하다. 상명하복에 충실하다. 세상을 그 틀에 맞춰 본다. 김동희는 자신이 모실 사람과 무시할 사람을 철저하게 구별한다. 김동희는 매번 모든 자리에서 최우선으로 대접하는 인물들이 다르다. 어떤 자리를 가든지 순식간에 서열을 매기니까. 항상 자기가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김동희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김동희는 학교 신문에 여자들을 존경한다는 칼럼을 썼다. 어두운 폭력을 빛으로 바꾸는 존재라고. 여자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존재들을 경멸한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을지 모르니 늘 긴장을 한다고.

‘여자들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의 진짜 얼굴을 몰랐을 것이다. 여자들은 항상 나를 다른 사람으로 존재하게 해준다.’

이강현은 웃음이 나온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라는 칼럼에서조차 자신이 얼마나 평등주의자인지 보여주려고 애쓰는 꼴이라니. (...) 학교에서는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칭하고 싶어 한다. 좋아 보이는 게 뭔지는 알아서 냅다 챙겨두고 싶은 거지.

페미니즘을 논하는 남자 교수들은 여성 인권까지 신경 쓰는 진보주의자로 통하지만, 여자 교수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꼴페미가 될 뿐이다. 김동희가 영리하기는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동희에게 제법 속는다. 친절한 김동희, 성실한 김동희, 오, 뚝심 있는 김동희, 실력 있는 김동희. 그런 건 이강현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강현은 김동희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이강현은 남자를 믿지 않는다. 물론 여자도 안 믿는다. 다 귀찮다. 이강현은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다.(260-262p)

 

 

이강현은 혼자 깔깔 웃었다. 내가 뭐라고? 꼴페미가 아닌 진정한 페미니스트. 그렇지, 그렇지. 이강현은 자신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독립적인 여자.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할 용의가 있고, 남자들이 하는 일에 크게 나서지 않지만 돈을 공평하게 나누어 내고,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가까운 농담에 화내지 않고, 남자들이 2차에 갈 때 눈치껏 빠지며, 최근의 여성운동이 과하다고 지적할 줄 알며, 더 중요한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 그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을 수행하는 페미니스트!(265-266p)

 

 

내가 아쉬워하는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데, 정작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나를 아쉬워했다.(280p)

 

 

 

ㅡ 강화길, <다른 사람> 中,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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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6

 

 

근자에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좋았다. 기대를 많이 한 작품집이라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을 했으나 예상을 웃돌 정도로 좋았다. 실린 작품이 골고루 좋았지만 최은영의 매력은 단편보다는 중편정도의 분량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편은 또 어떨까?


 

 

오늘 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76p)

 

 

학위를 받았지만 윤희는 어느 때보다도 허전했다. 무언가를 이룬 게 아니라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조차 그 순간을 즐기지도, 자신을 격려하지도 못하는 자기 모습이 익숙하고 한심했다. 그렇다고 이런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윤희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85p)

 

 

언제나 주희였다. 싸우고 나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던 사람은. 쪽지로, 핸드폰 문자로, 지나가는 윤희의 팔을 붙잡고 멋쩍게 웃었던 사람은. 지금도 주희는 예전처럼 이 관계를 돌보려 하고 있었다. 하기 힘든 말을 애써서 겨우겨우 이어나가면서. 그런데도 윤희는 그 마음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94p)

 

 

얼마를 기다리든 결국 엄마는 왔다. “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왜 나와 있는 거야. 위험하게 이게 뭐하는 거야. 다시 이러면 진짜 혼낸다.” 다그치다가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딸들에게 볼을 비비대던 엄마,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99p)

 

 

내 눈에 모래는 의사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똑똑한 동생을 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의 가장 넓은 평수에 사는 온실 속 화초였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용돈을 받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래가 조금이라도 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애를 속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래는 자신의 환경을 조금도 과시하지 않았다. 지하상가에서 산 삼천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편의점에서 파는 로션을 발랐다. 그런데도 그애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났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118p)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126-127p)

 

 

“사람은 변할 수 있어. 그걸 믿지 못했다면 심리학을 공부할 생각은 못했을 거야.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남을 변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1학년 말, 전공 선택을 하면서 공무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궁금하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서. 타고난 부분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해석하고 반응하고 회복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나는 공무가 인간에게 품는 낙관이 신기했고, 때로는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의심했다. 네가 어떻게 커왔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 달라질 수 있어? 그 인간들이 변하고 달라진다고 해서 그들이 학대한 사람들의 상처가 없어져?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의 말에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싶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136p)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난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누군가 내 마음을 받아써줄 순 없겠지. 너도 공무도 이런 내가 답답했을 거야. 어쩌면 의뭉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재주가 없었어.(140p)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141p)

 

 

내가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말하지 않고도 오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빨리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157p)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162-163p)

 

 

그날 밤, 나는 내가 평생을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며 살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는 것도.(178p)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180-181p)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

미주는 그 사건으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진희가 자길 버린 게 아니라 자기가 진희를 버렸다는 사실을 미주는 그제야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후회로 울어 자기 마음을 위로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자신의 눈물이 미주는 역겨웠다.(202p)

 

 

아마 미주는 자신을 안타까이 보는 무당의 그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208p)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사람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222p)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 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 번으로 사라지듯이.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그저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223-224p)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225p)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235p)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투명하게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의 일이 얼마나 될까. 나는 눈을 감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그녀의 곁에 같이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민, 하민, 하고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부르다 침묵이 내게는, 그녀의 고통과 무관한 내게는 더 합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273-274p)

 

 

처음엔 친구들과 나눠 피우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는 방에서 혼자 피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을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먹으면서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비루한 현실은 그 나른한 피로 속에서 엷게 빛났고 폭발하는 웃음은 내게 위안을 줬다. 그러나 공허했다. 잠에서 깨어나 먹다 남은 음식들과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취한 눈에 빛나 보이던 것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색이 바랜 것처럼 느껴졌다.(277-278p)

 

 

그 말이 기억날 때면 엉망이 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이 사람한테는 이런 말투로 말하고, 저 사람한테는 저런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 하나가. 한없이 상냥하다가 누군가에게는 비정할 정도로 무심하고, 진심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말하고 웃다가도 돌아서면 웃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그렇게 하루를 살고 보면 자신의 진짜 말투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게 된 사람이. 길거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보고 웃는 것만 같았다. 자주 추웠다.(280p)

 

 

그때도 나는 하민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대학원에 들어갔는지 알았으니 라페스트에 찾아가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요르카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될 무렵 나는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때도 여전히 시간만 잡으면 아일랜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팔 년 동안, 나는 아일랜드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건 착각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아일랜드는 내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현실의 선택지 밖으로 떨어져나갔다.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삶은 전과는 다른 속도와 리듬을 얻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집에서 독립했고 대학에 재입학했으며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직장을 구했다.(299p)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 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눈물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날 선 경계가 여기에 있다.(318-319p)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324p)

 

 

 

ㅡ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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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인간이란 구르는 걸 멈추지 않는 한 조금씩 실이 풀려나갈 수밖에 없는 실타래 같은 게 아닐까, 그때 고모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했다. 병원 문을 열고 나가면 실타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갈 것이고, 실타래에서 풀려나간 실은 밟히고 쓸리고 상하면서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친밀했던 사람, 아끼던 사물, 익숙한 냄새를 잃게 될 것이고 세상도 그 속도로 고모를 잊어갈 터였다. 어느날은 거울 속 늙고 병든 여자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리라. 하나의 실존은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절연을 준비하는 것이다.(82-83p)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124-125p)

 

 

얼마 전 독일을 충격에 빠뜨린 이민자와 난민의 집단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난주 토요일엔 이 작은 도시에도 그들의 유입과 정착을 반대하는 거리행진이 있었습니다. 행진은 평화로웠지만 행진 뒤에 남은 극우단체 소속 회원들은 자동차의 유리를 깨거나 거리의 소화전을 부수었습니다.

(...)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공포와 잠재된 폭력을 분출할 수 있는 도화선이 간절한 사람들이 거리를 지배하던 날이었으니까요.(133-134p)

 

 

상처는 영혼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강박적인 성실함으로 영혼을 좀먹는다. 상처를 이겨내면서 성숙해졌다는 말은 균이 살아온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진저리나도록 아름다운 언어····· 아무것도 잊히지 않았다. 맞고 있을 땐 저만치서 가만히 서 있는 아이들을 죽도록 미워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맞는 아이와 무관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구경하는 무리에 숨어 있어야 했던 날들은 절대로 망각되지 않았다. 폭력은 차츰차츰 번져 아이들 사이에서도 빈번해졌다. 덜 맞고 더 먹기 위해 서로를 때리고 비방하고 추문을 만들어 퍼뜨렸다. 시기하고 배반하고 원망하고 괴롭혔다. 잊었을 텐데, 형기를 마쳤을 원장과 교사들, 시설 관리인과 급식을 담당했던 식당 직원들, 비정상적으로 비쩍 마른 아이가 절뚝이며 지나가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보육원 주변의 농가 주민들, 모두들 이미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을 텐데, 어째서 나는 높은 탑처럼 쌓인 기억의 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이토록 끈질긴 고통, 일생이 다 지나도 작은 균열 하나 나지 않을 견고한 결정체, 그리고······

그리고, 그들이 있었다.(239-240p)

 

 

ㅡ 조해진, <빛의 호위> 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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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8

 


공동주택에서 사는 부부들의 얘기라길래 이웃끼리 정답게 지내며 따뜻한 이웃의 정을 나누는 훈훈한 줄거리를 예상했는데ㅡ따라서 심드렁했다ㅡ,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인간사에 대한 냉소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글이 매우 마음에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의향 있음.





본인이 작정하고 악의를 품어서 뺀질거리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만 조효내의 무책임과 게으름은 자기도 모르게 밴 천연 습관이어서 혼자만 무구할 뿐 그것을 감당 및 조율해야하는 상대방 내지 제삼자를 지치게 만들었다.(23p)

 

 

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착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 데 있었다. 시간을 견디어서 흘려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그곳에 펼쳐진 백면에 어린이가 또다시 새로운 형태 모를 선을 긋고 예기치 못한 색을 칠하도록 독려하기. 그러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67p)

 

 

신재강이 건넨 내용물의 포장지에는 통밀이니 호밀이니 글루텐 프리, 버터 프리 슈가 프리 밀크 프리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이것저것에서 모두 자유로워져서 어쩔 작정인지, 보편의 형식이니 기준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난 빵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요진은 궁금했고 일단 건강과 관계있어 보였지만 최소한 자신이 그 맛을 쉽게 좋아하지는 못하리라는 예감만은 들었다.(79p)

 

 

웃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겠지. 표정에는 애매모호한 고까움 대신 세심한 구석까지 신경 써 준 홍단희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겨 있었겠지.(91p)

 

 

언제나 선을 넘어올 듯 말 듯한 자리에서 신재강의 말과 행동은 종료되었다. 물론 선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요진이 어느 순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싸늘하게 자르거나 거절해도 그만이었다. 요진이 불편하고 불쾌하면 곧 그것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진은 가능한 한 누가 봐도 이상하며 그럴듯하지 않은일에 반응하고 싶었다. 해석의 방식과 범위에 따라 불쾌지수가 널뛰는 일에 낱낱이 발끈함으로써 서로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피곤한 여자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예민한 이웃으로 간주되기 싫었다. 좋은 게 좋은 줄 알며, 사소한 농담에 호응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인이 되는 게 바람직했다. 호젓하고 의지가지없는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이사 와서만이 아니라, 약국에서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대하는 동안 요진은 세상 모두를 손님으로 인정하고 접객을 할 수도 있을 것처럼 일상의 근육이 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왜 먼저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하는지, 표정을 지어 보일 적절한 타이밍을 재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가 됐든 그가 어느 순간 멈춰 버린 빈 자리에 대고 항의하는 우스운 꼴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어떤 사람도 이런 소극적인 항의에 정직하게 의중을 밝혀 줄 리 없으며 그럴 경우 반드시 이쪽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가게 된다. 남의 집 여자가 소리 지르는 거 들어 보고 싶다니 무슨 소린가요? 그게 그런, 뜻으로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당신의 의도는 어떤지 몰라도 저는 듣기 거북합니다. 농담이더라도 앞으로 주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 당신 앞에서는 이후로 그 어떤 말도 못 하겠군요. 어떻게 그게 그런, 얘기가 됩니까? 소리 지르는 거 들어 보고 싶다는 말에서 대뜸 교성을 연상한다면 그게 미친거고 네 귀에 음란 마귀가 끼인 거 아니냐, 맘만 먹으면 누구라도 그리 웃어넘기며 손가락질할 상황이었다. 발화 당사자의 미묘한 제스처나 그 자리의 공기, 청자의 심리가 지워진다는 점이, 언어 자체가 지닌 약점이었다.(119-120p)

 

 

데면데면하다 그냥저냥, 정말 그런 걸까. 이 상황이 뭐 좋은 금붙이나 된다고 그렇게 묻고 지나가 버린 다음, 훗날 기회가 닿았을 때 다시 캐내어 더 큰 구멍을 만들고 그러려고 사는 거 맞나, 부부가. 요진은 그와 같은 식으로 은오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묻었던 일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해 온 형태를 깨기 싫어서, 시율이가 볼까 봐, 어른들이 편찮으셔서····· 해결하지 않거나 못하고 다만 안 보이게 덮어 두었던 날들의 날짜를 세었다. 무덤 속 유골보다 깊이 매장한 감정들. 그와 함께 부장품으로 한데 묻은 현실 인식들 모두 근근한 일상 앞에서 사치에 불과했던 순간들을 기억했다.(128p)

 

 

조효내의 사전에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같은 인간 사회 보편의 인사가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어린이가 태어난 이상은 어떻게든 형성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육아 네트워크에서 사양과 감사는 언제나 한 세트로 붙어 다니게 마련이며 시기적절한 미소는 그 세트를 포장한 리본과 같은 것이었는데, 조효내의 대답은 본질적인 타인에게 불필요한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방어막에 더 가까웠고, 그것이 철저한 자기 관리나 신념에서 비롯하기보다는, 한번 다림이를 부탁하면 다음번 유사시에 자신이 세아와 우빈이를 맡아야 할지 모른다는(그럴 일이 실제로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는 제쳐 두고) 계산에서 나온 것 같았다.(133p)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일상에서 가벼운 것부터 하나씩 둘씩 무리수를 두다 결국 수치라는 걸 모르게 되고 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148p)

 

 

그러나 따지고 보면 떠드는 내용의 대부분은 은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그는 가만히 들어 주고 웃어 주는 여자가 눈앞에 있어서 신이 난 것이었다.(171p)

 

 

어떤 효용이나 합리보다는 철저한 당위가 지배하는 장소. 기회가 닿으면 아이들이 탈 만한 정원용 그네 또는 미니 미끄럼틀 같은 것이나 좀 들여놓으면 될 터였다. 어차피 아이들이 많아질 곳이므로. 각 집에 아이가 둘씩만 있다고 쳐도 꼽아 보면 스물네 명에 이른다. 볕 좋은 날 각 집에서 버너라도 내놓고 바비큐 파티를 하면 좋겠다는 그림이 여자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른 스물네 명까지 합하면 도저히 다 둘러앉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눈앞의 식탁은 이 주택에서 제일 오래갈듯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향후 몇 가구가 들고 나든지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만 같은, 이웃 간의 따뜻한 나눔과 건전한 섭생의 결정체처럼. 여자는 왠지 몰라도 이 식탁을 오랫동안 아침저녁으로 보고 지낼 자신이 있었다.(191p)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 민음사

,

2018/9/4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뿐이거든. 나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식적이라고?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걸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니? 진짜는 머리를 조아리는 각도.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오는 것들 아니겠니? 너를 때리긴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같은 건 없단다. 호소력 같은 것이 다 무엇이겠니. 그것은 형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잘못을 했다면 더 오래 무릎을 꿇고 더 낮게 엎드리는 자세, 그게 가장 필요하단다. 일종의 의무이며 책임지는 자의 태도 같은 것이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사랑해서 아내를 때리고, 우리 가정을 파탄냈습니다, 같은 건 없어.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나도 맞고 자랐어요, 폭력 가정에서 나고 자라 그랬습니다, 하는 변명과 뭐가 다르겠니? 둘 중 어느 말이 더 진짜일까. 대답해보렴.(15-16p)

 

 

문제는 사과하는 쪽이 언제나 먼저 사과한다는 점이란다. 그게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모르지.(17p)

 

 

나를 비난하고 싶겠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고 욕하며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의로운 척 떠들어대고 싶은 거 아니니?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몰라.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 거지. 정치인을 혐오하고 가정폭력범과 강간범을 혐오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터넷에 올리고 퍼뜨리고 그걸로 무언가 바로잡는 줄 알아. 그러면서도 정작 그게 자기 모습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거든.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거나 고학력자라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겠니. 키보드 앞에 앉아서 뭐에 그리 화가 나 있는 거냐고. 그게 다 도덕이고 정의이고 올바른 세계라고 믿는 거거든.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다고. 더구나 적극적인 혐오를 통해 자기는 그런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하거든. 진짜를 말하자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는 거야.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그런 세계에 사는 자들의 전형이 있고 그것은 자기와 다르며 그러므로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여전히 어려워하는구나. 너라면 다를 줄 아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다른 게 아니란다. 다만 그런 상황이 너에게 없었을 뿐.(26p)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이 읽어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은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119p)

 

 

이경은 서서히 깨닫게 됐다. 수이가 자신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았던 건 수이의 그런 성향 때문이라고. 수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 이경만큼의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 수행할 뿐이었다. 반명 이경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려고 했고, 어떤 선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가 더 크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242-243p)

 

 

“수이 네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어.”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이경은 수이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다고 진심으로 믿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나니 그 말이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거짓처럼 느껴졌다.(252p)

 

 

 

ㅡ 임현 외,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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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6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고두’를 읽고 작가에 관심이 생겨서 찾아 읽었다.

 

 

그러나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대부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일 뿐, 알고 나면 뚜렷한 인과관계로 엮여 있다. 우연이란 아직 모르거나 그중 한 부분이 누락된 것일 뿐이고. 소설가의 역할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신비하고 모호한 부분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의 빈 곳을 채우는 것 아닌가. 자연사한 왕족의 이야기를 누가 읽고 싶어하겠나. 바람난 남편을 독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왕비의 비참한 최후를 그려내는 것. 그러므로 그럴듯한 원인을 찾아서 불분명한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일 아닌가.(69-70p)

 

 

어떤 책은 누군가의 삶을 완벽히 뒤바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 저자의 능력보다는 독자의 잠재력이 더 요구되는 것 아닙니까. 제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 한들 그걸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잠언」시집 한 구절에 새삼 감동을 받았을 때는, 그 책의 무게감 때문만이 아닙니다. 마침 그런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버지도 그랬던 게 아닐까. 아마 그런 말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81p)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자주 멀어지는 편이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점을 발견하고 결국엔 그걸 참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들과 내가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너무 닮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재와도 같은 이유로 멀어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너무 닮았던 게 아닐까. 그걸 알아보고 우재나 나나 결국 참지 못했던 게 아닐까.(96p)

 

 

그 사람이 나를 보더니 전공이 뭐냐고 묻는 거예요. 내 친구가 고졸이다, 상고 나왔다고 대신 대답했어요. 질문한 사람이 민망해하는데 나도 따라 민망하더라고요. 다른 누가 그게 뭐가 중요하냐, 술이나 마시자, 해서 그런 식으로 넘어갔는데 괜히 미안해지더군요. 나 때문에 그 자리가 어색해진 거 아닌가. 그런데 뭐랄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점점 기분이 나빠지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친구의 말에는 하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데 이후로 흘러가는 상황이나 분위기 같은 게 이상하게 불쾌한 거예요. 사람들이 무언가 조심스러워하는데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왜 나를 배려하나. 왜 나를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보살피려고 할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면서 왜 중요한 사람 대하듯 그 자리에 내가 이 대화를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고, 모를 만한 주제는 피하려 드는지, 나를 두고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너무 빤히 보여서 불쾌하더란 말입니다. 왜 함부로 나를 배려하려 드나.(103p)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음에도 그 남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그때의 기분 같은 것은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인데도 나중에는 물들고 착색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 남자가 진짜를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오해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확인할 수 없는 일이고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왜 그런 행동들이 그토록 나쁘다, 라고 느껴졌냐는 것이다. 관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137p)

 

 

미혼모라든가, 장애인 같은 말들이 나는 무서워요. 그런 것들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데 그게 내가 될까봐 무서운 거지. 그 여자가 거기서 그런 걸 먹는데 나는 또 그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여자는 남들 눈에 자기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언젠가 버스에서 기사와 다른 운전자가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기사에게 평생 버스나 운전해라, 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슬퍼서 이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화를 내고 싶었지만 못했어요. 그 버스 기사도 슬펐을 거야. 이제껏 버스를 모는 일이 불행한 일에 속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그랬을 거고. 어쩌면 정말 평생 버스 모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그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떡하겠어요. 얼마 전에는 고작 중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녀석이 그러더라고요. 주의가 산만하고 수업에 방해가 되길래 단순히 경고 차원에서, 자꾸 이러면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한다, 겁을 주려고 했던 건데, 그 녀석이 조금도 기죽지 않고 생글생글한 얼굴로, 선생님은 계약직이잖아요, 하는 거예요. 제법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적도 좋고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라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이 입에서 나온 선생님과 계약직이라는 단어가 나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거예요. 선생이라는 것이 생선처럼 비리고 값싼 말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제껏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생각하니 무섭더라고요. 정말 비참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160-161p)

 

 

연경은 종각역으로 통하는 지하도에서 신문지를 덮고 앉아 첫차를 기다렸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문지와 종이 박스를 구해 자리를 잡았는데 누구도 홈리스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돌아갈 곳이 있었고 진짜 홈리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다, 라고 연경은 나에게 말했다. 있었다면 진짜 홈리스처럼 홈리스들이랑 몸을 붙이고 누워 있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옆에 있는 사람은 진짜 홈리스도 아니고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쾌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고.(164p)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그러는 거예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요. 아니면 법조인이나 세무사처럼 남들이 보기에도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고. 대학에서 만난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다들 그렇잖아요. 무언가 대단한 미래가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상대 쪽에서는 트럭을 몰고 싶어 하더라고 했습니다. 트럭 뒤에는 선반을 달아 헌책을 사고팔기를 원했으며 그것으로 경비를 마련한 뒤에 여행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남편에게 되물었다고요. 또 복권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데 만약 산다고 하더라도 2등이면 좋겠다고도 했어요. 그쪽이 보다 현실적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서요. 그 순간 남편은 어딘가 부끄러워졌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바라는 것들은 남편이 한 번도 원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으나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자기와는 아주 다른 사람 같기도 한 반면에 그 친구가 꿈꾸는 미래는 소박했고 당시의 남편으로부터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모님 모두 공무원인 그 친구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처럼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너무 명확해 보였다고요. 그리고 나는 그때 남편이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215p)

 

 

“그런데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

“내가 지켜보고 있는 걸 그 사람도 봤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냥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거기에 사람이 죽어 있다고 어떻게 생각했겠어요?”(218-219p)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기운 없이 담담한 반응에 나는 도리어 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여자의 삶이 나와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불행하게 살아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았을 뿐인데 내가 된 거잖아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저 여자가 되지 않은 거잖아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연한 사고들이었어요. 무얼 특별히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다만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222p)

 

 

“그날 나는 그 애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버렸어요.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그 애 반을 찾아가서 미리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고 둘러댔는데 그 애는 나를 빤히 쳐다만 보더라구요. 괜찮다거나, 다음에 다시 오라거나 그런 말 없이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

“아마 그날, 나를 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빌라를 급하게 ᄈᆞ져나와 골목 밖으로 달려가던 나를 어딘가에서 보았을 거라고요. 그래서 그 애의 무언가를 건드려버렸구나····· 그 집에서 내가 보았던 빈하거나 누추한 사정을 정작 그 애는 모르고 살았던 건데, 이제까지 한 번도 부끄럽거나 숨겨야 될 일이 아니라고 여겼을 텐데, 나 때문에 그걸 알게 되었다고·····. 그걸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부끄러워지더라구요.”(247-248p)

 

문영은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말하고 싶어 했고 그게 무엇일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나는 그런 문영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너는 왜 그런 것들만 궁금해? 여름에 더운 집과 겨울에 추운 집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그런 건 묻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는 그냥 그런 건 몰라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왜 너는 남의 불행을 다 이해하는 사람처럼 구나, 왜 그게 네 것인 양 남의 걸 탐내나, 언젠가 내가 문영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온전히 전달되었을까.(248-249p)

 

 

“그리고 문 앞에서 내가 뭘 봤는 줄 알아? 그 냄새의 근원지 말이야. 거기에 행색이 초라한 중년 여자가 서 있는데 나로서는 무척 안심이 되는 장면이었어.”

(...)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여자가 말을 걸어왔을 때 소진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지금 이 냄새 때문에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나를 계속 보고 있는 거죠?”

소진은 아니라고,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해서 그런 것뿐이라며 급하게 변명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일은 자주 겪는 것도 아니고 나는 평소에는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오늘은 정말 예외적인 날이에요.”

그 말에 뭐라 대답해야 했을까. 소진은 민재에게 그 순간에 겪었던 난처함에 대해,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어딘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에 몹시 부끄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여자가 다시 물어왔다고도 했다.

“지금 몇 시쯤 됐냐고. 그렇게 묻더니 미안하대 고맙다 아니고 미안하다. 하루 종일 이 말이 떠나질 않는 거야. 시간도 모를 만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고 있던 걸까. 도망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냥 나쁜 일을 겪었던 것뿐인데 그런 사람을 내가 미안하게 만든 거잖아. 뭐랄까, 내가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들춰버려서 슬프게 만든 게 아닐까, 그 사람은 그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

(...)

“내가 그 여자였을 수도 있어. 그 일에 휘말린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었다고. 그때도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어?”(263-265p)

 

 

무슨 소리야, 당신은 지금 저 여자가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저 애를 처음부터 죽이려고 작정이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정말 그렇게 믿는 거냐고. 지금 제정신이야? 이건 그냥 사고일 뿐이잖아. 누구도 원하지 않고 의도라곤 전혀 없던 거라고. 알아? 그게 더 무서운 일이야. 우리는 어떠한 조짐이나 징조조차 발견할 수가 없어. 그래서 아무도 그걸 막을 수가 없는 거라고.(279p)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아주 오래전에, 민재는 소진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하여 결국엔 끝장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대다수의 경험적인 근거들이 그들의 연애가 단지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해본 적은 없었으나 소진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280-281p)

 

 

 

ㅡ 임현, <그 개와 같은 말> 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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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9

 

 

윤현은 눈을 들어 거실 쪽을 쳐다보았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다니다 말고 어디서 아비모를 아이를 임신해다가 둘이나 낳아놓은 여동생과, 게임 중독인 남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이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골목 밖으로 나서면, 온통 그런 이들 천지였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는, 그저 오늘 하루하루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한 이들.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이 마을 밖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책을 읽고.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골라내고 글을 쓰고. 그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어릴 때 보았던 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이 싫구나.”(80p)

 

 

상관없었다. 윤현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태어나서 자란 동네에서 보고 들은 모습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박식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먹고 자고 놀고 쉬는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세상에 접속할 권한을 원했다.(90p)

 


 

ㅡ 파출리 외,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中, 온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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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16

 

나머지 절반이 궁금합니다. 작가 양반.

 

 

 

나는 한번도 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정신이 박힌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나는 내가 정말 싫다.

 

물론 내가 늘 싫은 건 아니다. 언젠가 사귄 친구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로 태어날래,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나요,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약간 기겁했지만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는데 자기 자신으로 태어난다니 미친 나르시시스트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테일러 스위프트로 태어나서 톰 히들스턴을 사귀고 한달 만에 차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난 왜 팝스타 따위로 태어나고 싶을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의 후생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건 부러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역겹다면 그래도 겪어본 역겨움이 더 나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이었지 자기애나 자신감, 자존감(윽!) 따위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기애가 왜 전혀 없겠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경상도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고 애지중지 키워졌다. 그러니 나도 모르는 사이 삶에 대한 낙관적 인식이나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심어졌는지도 모른다.(1회)

 

게다가 앤디 워홀이라니. 워홀을 좋아하는 건 취향의 측면에서 사망신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학을 하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거나 영화를 하는데 우디 앨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속력으로 도망쳐야 해요,라고 말한 상민이 떠올랐다. 그는 말했다. 이 리스트는 끝이 없습니다. 마크 로스코, 무진기행, 이터널 선샤인, 에드워드 호퍼, 웨스 앤더슨, 테드 창, 김훈, 히가시노 게이고, 화양연화, 이우환, 쉼보르스카…… 도망쳐요! 나는 리스트의 공통점이 뭔지 알 수 없었고 대체 무슨 기준이냐고 상민에게 물었다. 이 리스트의 공통점은 이 리스트에 속한다는 거예요. 상민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짐작은 갔다. 90년대였다면 타르코프스키나 키에슬롭스키, 윤대녕이나 무라카미 류가 리스트에 포함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니엘은 상민의 리스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2회)

 

수연이 가끔 조카들의 사진을 찍어와 내게 자랑하면 나는 겨우 귀엽다는 말을 한마디 하고는 딴청을 피웠다. 나는 조카가 없고 앞으로 가질 일도 없고 애도 싫어서 조카를 보고 좋아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데다 그걸 남에게 자랑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데(자기 애도 아닌데!)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러고 난 뒤 조카가 생기면 자신이 비난했던 사람과 동일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과 닮은 조그마한 존재가 생긴다는 건 뭔가 다른 기분이긴 한가보군, 그래도 나한테 조카 사진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수연에게 조카 사진 좀 그만 보여줘,라고 얘기하고 말았고 나중에 사과를 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니까 꾹 참고 계속 조카 사진 볼게, 사실 귀여워, 따위의 말을 한 것 같은데 수연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3회)

 

나는 서른 전까지 한번도 외국에 가지 못했고 영화와 책으로 모든 걸 접했다. 여행을 혐오했는데 정확히는 여행=경험=자아발견 따위의 개념을 혐오했다. 사람은 어디에 있든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인간의 의식은 소통이 불가능한 자기생산적 체계다.” 외국에서 피부를 태우고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내는 이들은 사기꾼이야. 내가 말했다.

이런 생각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갈 여건이 안되는 처지에서 비롯된 자격지심에서 스스로를 지킬 개념적 방어막이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고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곽경택이 만든 영화가 <억수탕>이나 <친구>잖아, 홍상수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김기덕이 파리 거리에서 그림 그리고 돌아와서 만든 한남 영화를 봐, 정용진이나 정태영의 SNS를 보라고! 바스키아를 찬양하는 그들의 수준을! 그러니 유학 같은 건 다 의미 없는 거야.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고 몸 대신 정신을 다른 곳에 피신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곳은 벨에뽀끄와 러시아혁명, 누벨바그가 뒤섞인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인공 섬으로 상황주의자와 60년대 뉴욕 시인, 멕시코의 뜨로쯔끼주의자들이 역사의 종언에 대해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곳이었다. 당시 내 목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증발된 진리와 의미를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복원하는 거였는데, 이러한 목표가 상투적일 뿐 아니라 대동아전쟁 시기 교토학파가 근대의 초극을 들먹이며 지향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훗날 상민이 빌려준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이 나라에서 작가로 먹고 살려면 김진명이나 이외수가 되거나 <엄마를 부탁해>를 써야 한다고! 내 기준에서 잘 쓰는 작가가 책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룬 경우를 한번도 보지 못했고, 눈뜨고 볼 수 없는 작품들만 팔렸다. 그러나 뭐가 잘 쓴다는 거지? 과거에는 확신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는 형편없고 <딕테>나 <죽음의 한 연구>는 걸작이야. 그러나 지금 내 눈에는 모두 형편없다. <7년의 밤>도 형편없지만 <어떤 작위의 세계>도 형편없어. 어차피 다 형편없으면 돈이라도 되는 게 낫지 않아? 그러나 돈이 되는 걸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돈이 되는 거든 영원불멸의 고전이든 쓰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어떤 작품이 문학사, 예술사, 사상사로 편입되고 고전이 되는 과정들을 볼수록 그것이 아카데미즘이나 권위주의, 정치적 욕망, 예술적 사제주의, 남성지식인 연대의 엘리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의 십대와 이십대를 통째로 앗아간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예술에 대한 믿음과 열망이 구역질나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뭔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과정이나 감정이, 우리를 규정한다고 믿는 감정이나 취향이 얼마나 왜곡되고 우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수록 무엇을 좋아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없고 필요나 효과에 따라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 결국 돈이야! 따위의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는 형국이었다.(4회)

 

70년대의 건물들이 지금보다 낫고 그건 일본의 건물을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이야, 되지도 않는 고유의 스타일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라는 이야기를 상민이 했다고 나는 말했다. 그의 말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고유의 스타일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망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7회)

 

세상이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이 좁은 게 아니라 내가 속한 바닥이 좁은 거 같았다. 서울에는 많은 사람이 살지만 관심사, 직업, 소득수준 등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한 다리 건너면 다 마주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생각하는 게 다 고만고만해. 더구나 요즘은 비슷한 이들끼리 SNS로 의식 수준을 공유하니까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고(9회)

 

 

 

ㅡ 정지돈, <은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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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




요즘 너무 소설을 안 읽은 것 같아서 찜해 뒀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음. 




한 번도 과자 회사같은 곳에 진지하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었다. 과자라는 건 그냥, 슈퍼마켓에 가면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 혹은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포장해서, 진지하게 파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 십 년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24p)

 

 

지금도 기억나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새로 산 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비인지 눈인지 모르는 것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뭐랄까,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느낌? 그런 게 몰려오더라고요. 가족들과는 사이도 좋고 집도 여전히 안락한 곳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제가 가야 하는 세계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거긴 이렇게 앞도 잘 안 보이고 가족이 이해 못 하는 외로운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곳을 향해 걸어가겠다. 열일곱 살이 진지하니까 엄청 우습죠? 그곳이 어딘지, 어떤 곳인지는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이 시계와 함께.(62p)

 

 

그래도 엄마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수술하지 않고도 깨끗이 나을 수 있다니 기적 같아. 이제 열흘 후면 연수도 끝나니까 그때까지 더 건강해져야 해. 그럼,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하고 있지. 엄마, 아빠, 누나들이 있는 한 나는 무적함대야.”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만약에 저렇게 서로서로 열심히 쌓아 놓은 이야기 중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 나는 게 있다면비유하건대 방금 짓다 온 빈터의 그 집들처럼꼬마는 어떻게 될까. 저 귀여운 세계가 흔들린다면.(84p)

 

 

제 말은 단순한 구경꾼이었다는 뜻이에요. , 구경꾼도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가 구경꾼이라는 걸 모른 채로 평생 살 수 있다면. 하지만 자기가 구경꾼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엔 밖으로 뛰어나와야죠.(103p)

 

 

인간은 본래 자기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좋은 것은 덜 좋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상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안전해질 수 있다.(136p)

 

 

형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이마에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고개를 젓는다.)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거······. 나를 이해한다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228p)

 

 

 

박지리,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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