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4

 

막 재밌지는 않은데, 앞으로 쓰는 작품이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하긴 하다. 그건 그렇고 창비의 외국어 표기법은 언제까지 저 혼자 이렇게 표기할지 지켜보겠다.

 

 

베이루트의 성벽 앞에 현자라 알려진 노인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왜 그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벽을 따라 날고 있는 나방이 보이시오? 저 나방은 벽을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만약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저것은 나방이 아니라 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나방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당신은 나방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겠소? 나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겠느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나방에게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손바닥으로 나방을 탁 쳐서 죽였다.

“보시오. 이제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의사를 알게 되었소.”(10-11p)

 

 

그때쯤 되니 다들 취해 있었다. (...) 그러면서 보르헤스가 어떻다느니 옥따비오빠스가 어떻다느니 하더니 이어서 제삼세계의 향취가 나는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는데(알베르또 푸겟이니 오라시오 끼로가니······ 기억도 잘 안 난다) 평소 대화를 나눠본 바로 나는 그놈이 그들의 작품보다는 그저 발음하기 어렵고 어딘지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들을 들먹이는 걸 좋아할 뿐이라는 데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38p)

 

 

세상에서 소문이 가장 빠른 곳이 있다면 바로 학교일 것이다.(47p)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맥주를 많이 마시고는 신나게 떠들어댔다. 주이에게 이 모임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바르샤바 낭독회의 정식 멤버가 되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낭독에 참여할 거라고 거창하게 선언까지 했다. 그런데 그렇게 떠들고 나서 심야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웬일인지 갑자기 우울해졌다. 불현듯 회의가 밀어닥쳤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들이 모두 헛소리처럼 느껴졌다. 외로운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사회적 활동이랍시고 음침한 지하 방에 모여서 희곡이나 읽는 게 아마추어 예술가들끼리 하는 부흥회랑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뒤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다시는 그런 머저리 같은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에도 그 모임에 나가고 말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갔다.(68p)

 

 

우리는 뜻하지 않은 삶의 위기에는 전혀 대비를 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흔한 실비보험 하나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닥치면 그걸로 끝인 위태로운 것이었다.(116p)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 발견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유별나게 운이 좋거나 남의 곡을 그럴듯하게 베낄 재능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뭐라도 발견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알고 있는 삶의 비밀 같은 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무언가 하나는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체념하는 방법 같은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가 음악에서 즐거움이라도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곡을 쓰거나 공연을 할 때 언젠가 한번쯤 그런 것의 파편 정도는 발견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어렴풋한 희열의 순간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염병하게도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제는 다 잊어버렸다. 그 파편을 잡고 늘어졌다면 혹시 아나? 3단계를 넘어섰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끝내 발견한 것은 전립선암의 위험성뿐이었다.(122-123p)

 

 

그러니까 처음에는 우연한 계기로 대학원에 들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번역작업을 하다가 중간에는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는데 평생을 살아보니 지금은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150p)

 

 

신부님은 삶이 지루하지 않나요? 매일 엄숙한 목소리로 설교를 늘어놓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죄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뭔가를 털어놓는 것을 듣고, 그렇게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나요? 저는 이제 스무살에 불과한데도 삶이 너무 지루합니다.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지루해요. 시간은 개같이 느리게 흐르고요. 이걸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도 제 할아버지는 죄를 지은 건가요? 단지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요?(153-154p)

 

 

우리는 일년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다. 이별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취향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가다가 나중에는 점차 서로의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뿐이다. 나는 어느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야 모든 연인이 그런 이유로 만나고 또 그런 이유로 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83-184p)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자식이 우리의 말을 따르는 건, 까놓고 말해 우리가 그 아이의 팔을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야.” 경제적 독립이란 아버지나 어머니가 더 이상 내 팔을 부러뜨릴 수 없다는 말과 같다.(190p)

 

 

ㅡ 정영수, <애호가들> 中, 창비

,

2019/4/2

 

 

마지막에 한 방 먹었다. '한정희와 나'가 가장 인상적이다. 그러면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다시 읽어볼 생각을 했는데, 그 책을 다시 곱씹어가며 읽는다고해서 내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까. 나는 자신이 없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33p)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죄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과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는가·····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자신이 다 거짓말 같은데·····(265-266p)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좀처럼 글을 잘 쓸 수가 없었다.(271p)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313-314p)

 

 

ㅡ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中, 문학동네

,

2019/3/27

 

 

다큐멘터리 속의 그녀는 자기 자신과 동생이 장애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자랐다고 고백한다. 한 여판사는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으며,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이 있고, 그건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190p)

 

 

 

문유석, <미스 함무라비> , 범우사

,

2019/3/12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을 때, 스물한번째 여자의 남편은 빈정거렸다.

“그렇게 매사 우울해서 어떻게 사니? 차라리 약을 먹어라, 응?”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내 우울은 지성의 부산물이야. 너는 이해 못해.”(23p)

 

 

남자가 잠결에 실수로 여자를 때렸다. 팔꿈치로 눈두덩을 힘껏 친 것이다. 여자는 멍이 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좀비 꿈을 꿨어.”

남자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면서도 즐겨 보는 편이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여자는 화가 났다. 3일쯤 화가 풀리지 않았다. 4일째가 되어서야 여자는 깨달았다. 여자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이었다.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남자가 머리를 다치거나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성격이 변해서 때리고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최악의 상상들이 연이었다.(26p)

 

 

 

ㅡ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中, 창비

,

2019/2/1

 

그냥 평범했다.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35p)

 

 

여름밤 사람들이 집어들고 나가는 아이스크림도 술을 마신 뒤에는 늘 달고 차가운 것을 사 먹던 산주의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경애는 산주가 그것을 차가워서 먹는 건지 달콤해서 먹는 건지 궁금했다. 언젠가 산주는 단지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난 뒤에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그런다고.(60p)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143p)

 

 

한 개인에 대해 이렇게 폭풍처럼 많은 것들을 알아버리는 건 기이한 경험이었다.

(...)

그때는 페이스북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다른 회원에게 그랬듯이 자신이 상대방보다 낫고 더 많이 알고 강인하며 깨어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경애가 더이상 익명의 페이스북 회원이 아니게 되면서 상수의 그런 우쭐함은 사라져버렸다. 경애를 돕는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상수는 경애가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다며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평소처럼 정신 차리라든가, 그거 정말 똥 밟는 일이에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럽니다, 성욕을 채우려면 어떤 사탕발림도 마다하지를 않아요, 아주 시를 쓰지요, 릴케가 따로 없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상수는 그렇게 양말 하나 벗지 않고 앉아 있던 산주 앞에서 경애가 느꼈을 모욕감을 떠올리며 조용히 분노했을 뿐이었다. 아마 경애가 그랬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 마음이 오므라들었다. 기가 죽고 축소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207-208p)

 

 

경애씨, 내가 영업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야.”

뭔가요?”

여기서는 절대 금방 떠날 사람처럼 굴면 안돼. 떠나는 사람들한테 사이공은 지쳤거든. 일주일 있더라도 이십년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기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버티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데요?”

내가 한 이삼일 내로라도 짐 싸서 한국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218p)

 

 

나는 지금 네가 얼마나 외로울지 짐작이 간다.

얼마나 외로운데?

내가 12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새해의 첫날로 넘어가는 딱 그 자정에 물류센터에서 지금처럼 야근하고 있었거든.

넌 특근비 나온다고 늘 그때 야근하니까.

그래, 그러다보면 나도 카운트다운을 한단 말이야. , , , , , ····· , 하는데 상품이 뚝 떨어져내리는 거야. 바로 배송하는 상품은 이미 포장까지 다 돼서 창고에 있다가 전산으로 주문하면 컨베이어 타고 오니까. 보니까 100개들이 지퍼백이야. 내가 그거 바코드 찍어서 옮기면서 야너도 여간 외로운 인간이 아니구나 했지. 새해가 되자마자 한 일이 지퍼백 주문이라니. 사람 다 외롭다, 100개들이 지퍼백처럼 다들 외로워.(226p)

 

 

에일린은 푸미흥에 올 때마다 이곳의 클린함에 큰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전봇대도 노점상도 오토바이도 없다면서. 신도시를 만들면서 전기시설을 모두 지하에 매립했기 때문에 호찌민의 좁고 어지러운 거리에 마치 새둥지처럼 전선과 케이블이 마구 엉켜 있는 전봇대들이 여기에는 없었다. 푸미흥에 살면서도 이 동네가 호찌민의 풍경과 유독 다른 이유를 깨닫지 못했던 경애에게는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발견의 눈을 갖지 못한다면 삶이 다르게 보일 가능성은 제로가 되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경애는 궁금했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되는지. 이를테면 주말 내내 틀어박혀 어떤 감정기복을 이기며 있다가 갑자기 문밖에 못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272p)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285p)

 

 

김금희, <경애의 마음> , 창비

,

2019/1/22

 

이상우의 소설은 어떨까?

 

 

유리와 나는 너무 달랐다. 날이 지날수록 말이 통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W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금세 떨어지고 말았다. 유리가 어떤 책에 대해 말하면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식이었다. W가 말없이 자신을 따르는 미란다를 왜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리도 내 심경을 눈치챘는지 예전처럼 모질게 굴진 않았다. 아니, 표독스러운 말버릇은 여전했지만 유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우리는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눈 채 각자가 고른 책에 빠져들었다.(26-27p)

 

 

책들은 W의 아버지처럼 때리지 않는다. 브룩스 일당처럼 괴롭히거나 같이 할래?”라는 달콤한 말로 기만하지도 않는다. 책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처럼 우리에게 속삭인다. 파라솔 그늘 밑에서도 넌 혼자가 아니라고.(31p)

 

 

미란다의 장례를 치든 뒤 상심에 잠겨 있던 W는 돌연 인스부르크로 떠났다. 고향만은 언제든지 자신을 받아줄 거라고 확신해왔던 터였다.

(...)

얀코가 어떻게 하고 마을을 떠난 줄 알아요? 우리에게 사기를 쳤어요. 농토와 가축이 전부 팔려나갔지. 빈털터리가 돼 자살한 사람도 있었어요. 우리가 W를 내쫓은 건 당연했지요. 당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더 이상 그 집안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요.” 아가타 부인은 액땜이라도 하듯 땅에 침을 뱉고 다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대한 W의 환상은 착각이었다.(34-35p)

 

 

포르노 소설을 쓴다고 우리가 방탕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아는 포르노 작가들은 하나같이 비실비실한 샌님이었다.

(...)

그러나 포르노 소설을 쓰기 위해선 연애를 멀리할수록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불가능의 영역을 모르니까.(50-51p)

 

 

사장 아저씨 말로는 이 동네는 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좀도둑과 사기꾼이 들끓어서 자신이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라나. 옆집 아저씨도, 앞집 아줌마도 똑같이 말한다. 좀도둑과 사기꾼만 아니었으면 자신은 진작 이곳에서 벗어나 부자가 됐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도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어지는 아저씨의 말이 무엇일지 짐작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이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구체적으로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듯 머뭇거렸다.(216p)

 

 

돈을 벌지 않으면 영감이 몰아닥치거나 직장이 없으면 글 쓸 시간이 솟아날 것 같았지만 겪고 보니 둘 다 아니었다. 삶은 의미 있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거라곤 이게 유일했다.(278p)

 

 

르네 도말은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주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309p)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현실의 시간을 쫓아오지 못한 인간이고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한기 소설의 동시대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조언.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동시대인을 참으로 자신의 시대에 속하는 자란 자신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자, 하지만 그 간극과 시대착오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그의 시대를 지각하고 포착할 수 있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정지돈이 말했다. 아감벤에 따르면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은 동시대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대인은 시대의 빛이 아니라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서로 다른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323p)

 

 

오한기, <의인법> , 현대문학

,

2019/1/17

 

다음은 의인법.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1980년대에 태어났고 2010년대를 살아가며 2020년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내가 빈곤에 대한 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각은 곧 바뀌었다. 빈곤은 예나 지금이나 시의적절한 화두였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기아나 아사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정관념만 벗어나면 빈곤은 세련된 소재였다. 이제 빈곤은 무형의 형상을 갖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이미지든지 가질 수 있었다. 빈곤은 다채로운 형상으로 삶을 다방면에서 조여오고 있었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어서 예전만큼 티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근면과 성실이 아니라 로또와 부동산 투기가 빈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살인과 강도가 죄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흙수저가 죄였다. 진보정당을 찍어도 보수정당을 찍어도 중도정당을 찍어도 해결될 거라는 기대가 되지 않았다. 빈곤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표어도 진부해졌다. 창의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책은 공정거래, 4차 산업혁명, 정의, 욜로처럼 공허한 단어였다. 우리는 가난한 데다가 공허하기까지 했다. 확신하는데 빈곤은 100년 뒤에도 모든 글의 소재거리가 될 것이었다. 빈곤은 현재를 넘어 과거를 돌아보게 했고, 미래를 예견하게 했다. 빈곤만큼 고전적이고 동시대적이며 SF적인 건 없었다.(18-19p)

 

 

표정을 보아하니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서 칭찬을 받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군요. 어릴 때 부모님이 칭찬에 인색했죠? 아니면 스킨십이 부족했었나요? 맞벌이에 외동아들 맞죠?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외동아들. 작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 작자들이죠. 예전에 몇몇 작가하고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그 작가들도 다르지 않았어요. 그들은 예외 없이 꽁하고 뚱하죠.(43p)

 

 

행복+행복=행복. 행복에 행복을 더하면 두 배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의 행복이다. 행복은 점점 둔감해지니까.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행복한 걸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넌 나에 비해 행복한 거야.

절망을 계산하는 방법도 유사하다. 절망+절망=절망. 절망에 절망을 더하면 두 배의 절망이 아니라 하나의 절망이다. 각각의 절망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하나의 거대한 절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절망적인 걸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넌 나에 비해 행복한 거야.(55p)

 

 

제가 겪은 가을 중 남한의 경주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보문호수 곁에 있는 콩코드호텔에 묵으며 불국사를 다녀온 게 기억에 남습니다.(145p)

 

 

잃을 게 없어서 무서울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잃을 게 없는 사람에게 더욱 가혹한 게 법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잃을 게 있는 사람은 그걸 잃으면 되지만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미래를 잃어야 했다.(288p)

 

 

내 생각은 변함없다. 언제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슬프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득하다.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지친다. 셋 중 제일 어려운 건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치는 게 죽음과 가장 밀접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근황에 대해 묻는다.(355p)

 

 

 

오한기, <나는 자급자족한다> , 현대문학

,

2019/1/9

 


아 이 유머코드 어쩔거야 ㅋㅋ

 



당신, 요즘 이상하다. 애인이라도 생겼나 봐?”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쓸데없이 발끈한 것은 나였다. ‘내가 지금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매일매일 칼퇴근해서 아이들 씻기고 함께 방귀대장 뿡뿡이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럼 내 애인이 뿡뿡이란 말이냐나는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22-23p)

 

 

말하자면 반년이 훌쩍 지나 그 30만 원의 행방이 도착한 것이었다. 편지는 아내가 나에겐 말하지 않고 벌써 꽤 오랫동안 후원해온 우간다에 사는 카와토라는 아홉 살짜리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카와토는 지난 성탄절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첫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겐 뜻밖의 선물이었고, 보내준 30만 원으론 암소 한 마리와 염소 두 마리를 샀으며, 자신의 운동복과 동생들의 옷을 샀다고, 띄엄띄엄 편지에 적었다. 카와토가 암소 한 마리와 염소 두 마리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다.

카와토는 편지 말미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뜻밖의 성탄 선물 때문에 우리 가족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제 동생들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내는 아마도 내 이름으로 카와토에게 특별 후원금을 보낸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아파트 대출 이자 때문에 오랫동안 가계부를 들여다보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값비싼 유모차 앞을 서성이다가 돌아선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염소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저 먼 나라 친구를 생각했다. 염소 한 마리에 4만 원. 나는 어쩌면 내가 평생 꼰대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다 아내 덕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73-74p)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모른다.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아들의 여자 친구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93p)

 

 

다시 돌아온 두 번째 토요일 아침, 아내는 두툼한 장편소설 한 권을 들고 외출했다. 학교 다닐 때처럼 하루 내내 카페에 앉아 책 한 권 읽어보는 것, 그것 또한 아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아내는 현관을 나서기 직전, 예의 또 괜찮겠어?” 라고 물어왔지만, 그래서 나는 씨익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속으론 좀 얇은 책이면 안 되겠니, 시집도 좋은 게 많은데생각한 것도 사실이었다.(111p)

 

 

작은아빠, 동생들이 내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죠?”

나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지 않다고 동생들은 누나를 좋아한다고 동생들이 삐치는 게 더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조카딸의 입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요, 우리 오빠 때문에 말이 많아졌거든요. 우리 오빠가 많이 아프잖아요. 제가 말을 많이 해야 우리 오빠가 다치지 않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나는 조카딸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말을 많이 하거라, 아이야. 말을 많이 하거라, 아이야. 온 세상이 너와 네 오빠를 도와줄 거란다. 나는 기어이 눈물까지 툭 흘리고야 말았다.(157-158p)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니까.”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부모로서 성장한 것이 아닌, ‘부모로서 착각한 것들이 더 많이 쌓여왔다는 것을, 그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241p)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 마음산책

,

2019/1/7

 

검색을 통해 이기호 작가의 다른 책을 확인하고 빌리러 갔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빌려가서 대신 집어왔다. 이기호 작가가 쓴 것 같은 책이다. 시종 경쾌한 문체로 유쾌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묘한 울림을 주는, 그런 책.

 

 

 

그거 알아요? 애들은요, 아빠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구요, 문제가 생긴 다음부터 아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구요. 그게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르시죠?(68p)

 

 

내가 최근직을 그렇게 죽음에서 구한 것 같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최근직은 손순녀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살려고 했던 사람이니라. 네가 그것을 알더냐? 가족을 다 잃어도 제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니라. 슬픈 것은 슬픈 것이요,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 최근직은 자기 의지로 산 사람이니라.(154-155p)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현대문학

,

2018/12/1

 

 

쇼코는 할아버지에게 늘 밝은 내용의 편지를 적어 보내는 것 같았다. 달리기경주에서 일등을 했다. 고모와 맛있는 카레집을 찾아갔다, 휴일에 친구들과 보트놀이를 했다. 북해도를 여행했다.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쇼코의 이야기는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내가 받은 편지에는 어두운 이야기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돈을 훔쳤지만 할아버지는 모른 척했다. 그 돈을 하수구에 버려버렸다. 가끔씩 할아버지의 음식에 독을 타고 싶다, 아빠가 보내는 양육비를 고모가 허비해버리는 걸 알고 고모의 속옷을 하나둘씩 찢어서 거리에 내던졌다, 가끔씩 소독한 칼로 자신의 골반 근처를 찌른다.

당시에는 쇼코의 모순된 말들에 혼란을 느꼈다.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게 하는 말이 진짜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두 종류의 편지가 모두 진실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모든 세부사항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모두 진실된 이야기였을 거라는 걸. 아니, 모든 이야기가 허구였더라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고, 내 편지에 썼듯이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겠지.(16-17p)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24p)

 

 

그래. 나는 겁쟁이야. 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27p)

 

 

나는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잃어갔다.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도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34-35p)

 

 

가끔씩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건성으로 받곤 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당연히, 원래 그렇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자리를 잡아서 떳떳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에 대해서 가타부타하지 않았고, 되려 나이가 드니 감기도 잘 안 걸린다고 말했었다.(43p)

 

 

“난 정말이지 괜찮을 줄 알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턱도 벌릴 수가 없었다. 턱을 벌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아서였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말라가고, 피부가 누렇게 변해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단지 그 노화가 조금 빠르게 진행된다고만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는 그리도 예민했으면서 할아버지의 상황에는 왜 그토록 무뎠었는지.

할아버지는 베레모를 벗어서 무릎에 올려놨다. 숱이 적은 흰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남자처럼 변명했다.

“정말이다. 이렇게 심해질 걸 알았으면 너에게 진작 말했을 거다. 자주 얼굴이나 보자고.”

할아버지는 안간힘을 써서 웃고 있었다.

“내가 말했으면 나 자주 보러 왔을까.”

나는 대답 대신 할아버지의 머리를 꼭 안았다. 정수리에서 머릿기름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예순다섯 밤을 더 보내고 영면하셨다.(45-46p)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89-90p)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었다. 그리웠을 것이다. 말로는 그때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준 응웬 아줌마를 엄마는 오래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91-92p)

 

 

이모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엄마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104p)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105p)

 

 

이모와 엄마는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모는 최종 재판에 참석했었다고 말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주제를 돌려야 하는데 그 생각에 부딪히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럴 때면 엄마는 어색하게나마 엄마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결혼생활의 한심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친정 친구들과 절연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처음에는 한 달에 두 번 이모를 찾아가다가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계절에 한 번 안양에 찾아갔다. 가끔씩 통화를 하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서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이모는 엄마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엄마 또한 그랬다. 엄마는 살얼음판을 딛듯이 이모의 상처가 달지 않은 마음들만을 디디려 했고 이모는 엄마가 이모를 조금이라도 가여워할까봐 애써 아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심지어 이모가 안양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조차 몰랐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113-114p)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되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115-116p)

 

 

할머니의 바람대로 엄마는 이모와 관계없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가끔 엄마는 이모를 떠올렸다.

(...)

살면서 몇 번은 이모에게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행한 적은 없었다. 시간을 이모를 한때 엄마의 삶에 머물렀다 스쳐간 사람으로 기록했고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120p)

 

 

한지도 한지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이로비에 살고 있는 삼백만 명의 사람들 중에 이백오십만 명이 빈민가에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지는 그런 극단적인 부조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랐다고 말했다. 교회에 가서 가족의 평안만을 비는 부모님을 보면서 한지는 그 교회에서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지는 아버지의 돈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이 누려왔던 삶은 부모님의 부로 인한 것이었고, 그 부가 누군가를 착취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건 결국 돈뿐이라고 고백했다.(144p)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164-165p)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내가 미진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 라고. 미진이 점점 더 러시아 말을 잘하게 될수록,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미진에게 화가 났습니다. 미진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날 견딜 수 없게 하더군요.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193p)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미카엘라는 언제나 든든한 딸이었다. 고생해서 제힘으로 서울에 뿌리를 내린 딸이 여자는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 학 번 보내지 못했고 비싼 메이커 교복 대신 시장 교복을 사다 입혔던 여자였다. 통장에 부어놓았던 돈으로 미카엘라의 대학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을 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첫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온 아이가 이제부터 학비는 제 손으로 벌어 낼 테니 몸을 그만 혹사시키라고 했다.

그런 딸 앞에서 여자는 언제나 면목이 없었다. 엄마로서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짐이라도 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다.

(...)

여자는 걸음을 옮겨서 지하철을 탔다. 딸이 사는 망원동으로 가서 숙소를 찾아볼 요량이었다. 어쩌면 미카엘라가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할지도 모르고,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카엘라에게 먼저 전화를 걸 용기는 나지 않았다. 광복절 날에도, 토요일에도 회사에서 일을 하는 아이가 아닌가. 바쁜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얼굴이라도 한번 보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것도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220-221p)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235p)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238-239p)

 

 

ㅡ 최은영, <쇼코의 미소> 中, 문학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