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13

 

오랜 만에 재독.


 

‘피부 깊숙이’란 말은 화장품 광고마다 빠짐없이 나오는데 도대체 얼마만큼 깊숙이 화장품이 피부에 침투된다는 말일까? 책을 읽다 종이에 베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베인 것 같은데도 상처 틈으로 피가 송송 맺힌다. 피가 보인다면 진피까지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진피는 피부 표면으로부터 불과 0.2mm 깊이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장품은 진피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외부의 이물질이 피부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바로 표피의 역할이다. (...) 피부과에서는 필링이나 MTS를 이용하여 더 깊은 화장품의 침투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손으로 쓱쓱 문지르는 화장품이 진피층까지 바로 흡수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큰 환상이다. (...) 진피에 도달하는 그 순간부터 그 제품은 화장품이 아닌 ‘약품’으로 등록되어 관리되어야 한다. 피부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진피 내 혈액을 통해 신체 전체로 퍼져나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임산부가 사용할 경우, 태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당신이 가장 아끼는 주름개선용 레티놀 에센스를 임신기간 동안은 절대 손도 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화장품 중에서 ‘임산부와 수유기의 여성은 사용을 금합니다’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31~32p)

 

천연·식물 콘셉트를 내세우는 화장품 회사는 시슬리, 클라란스와 같은 고가 브랜드부터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과 같은 저가 브랜드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들 제품들을 구성하는 성분들을 보면 식물추출물 성분 이외에는 대부분 합성 성분과 보조 성분(점증제, 유화제, 방부제, pH 안정제) 등이다. 천연화장품회사들이 ‘화학 성분투성이의 브랜드’라고 매도하는 다른 회사(에스티로더, 랑콤, 디올)의 화장품 성분들과 비교해도 도토리 키재기일뿐,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지금이라도 당신의 화장대를 자랑스럽게 차지하는 식물성화장품의 성분 목록과 비식물성화장품의 성분 목록을 비교해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37~38p)

 

식물성화장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천연’이란 단어는 결코 제품의 우수성을 말하지 않는다. 천연, 즉 내추럴이라는 말은 제품의 성분이 식물 혹은 동물에서 추출됐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피부에서 더 우수한 혹은 더 순한 작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타민C를 예로 들자면 식물추출물이건 합성이건 피부에선 똑같이 비타민C로 인식할 뿐이다.(145~146p)

 

한때 콜라겐 붐이 일면서 콜라겐 음료, 콜라겐 서플리먼트 등이 휩쓸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콜라겐은 아무리 발라도, EH 아무리 먹어도 우리 피부와 몸에 필요한 콜라겐을 공급해주지 못한다. 콜라겐은 분자의 크기와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피부에 흡수조차 되지 않는다. 만약 침투를 한다 할지라도 피부 내에 손실된 부분을 찾아내어 마치 테트리스처럼 블록이 착착 채워질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167p)

 

식물성 성분이 많이 함유된 화장품일수록 부패의 위험은 더 높아진다. 곰곰이 따져보자. 실온에서 보관을 할 때 딸기와 딸기사탕 중 어떤 것이 더 오랫동안 원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정말 화장품이 방부제 없이 만들어진다면 그 제품은 냉장유통을 통해 판매해야 할 것이다. 유통기한이 짧아 해외수출은 어림도 없다. 화장품회사에서 주장하는 ‘무방부제’는 파라벤으로 대표되는 합성보존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모든 화장품에는 그 나름의 방부제를 사용하고 있다.(177p)

 

SPF 지수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강도를 말해준다. 아무리 높은 지수의 자외선차단제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2~3시간마다 덧바르지 않는다면 충분한 자외선차단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204p)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왜 피부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만든 화장품을 두고 시장에서 사온 출처 불명의 쌀가루와 곡물가루로 얼굴을 문지르려고 할까. 그 한방재료의 약초가루가 만들어지기 전 식물이 자란 토양상태는 어땠을까. 농약을 쓰진 않았을까. 분말화하기 전 깨끗이 씻기는 했을까. 그리고 경동시장에서 수북이 쌓인 채로 팔려나가는 사이에 오염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그 어떤 제조과정이나 추출상태에 대한 정보도 없이 ‘천연’이란 이름 하나만 믿고 얼굴을 내맡기는 맹목적인 신뢰란 거의 종교에 가까운 것 같다. 제품화된 화장품에서 납 기준치의 1/10만 납이 검출되어도 화장품이 중금속 덩어리인 양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천연화장품주의자들은, 1년에 한 번은 어김없이 터지는 ‘한방 약재 성분의 중금속 함유가 기준치의 200배가 넘는다’라는 뉴스엔 왜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275p)

 

 

 

ㅡ 이나경, <화장품에 대한 50가지 거짓말> 中,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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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4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재능과 행운과 친화력을 질투했고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품었다.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 물러나 있기를 자청한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패배자가 되기 두려웠던 것이다. 전략적이지 못했을 뿐 타협도 했다. 힘있는 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애썼고 명백한 오류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도하는 방향에 따랐다. 싸움이 벌어질 때는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중간자의 이득을 취했다. 경쟁이 될 만한 상대에게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예민했고, 그에 대한 험담이 나오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그 오해를 부추겼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었다. 불안해서 비겁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만하거나 초탈한 척했다. 수긍한 게 아니라 회피한 것이었다.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도 익혀갔다. 그 논리란 권위를 추종하고 인기를 탐내면서 아닌 척 자신을 기만하는 기술이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가 논문을 빨리 끝내지 못한 것 역시 완벽주의자여서라거나 학문 욕심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대 이하의 결과일까봐 두려웠고, 모자란 실력이 탄로나는 상상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렸다. 의미없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책들이, 그 무너짐이, 그가 허세에 찬 그 인생을 얼마나 위태로운 마음으로 지키려 애써왔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162~163p)

 

 

나쁜 뉴스를 보고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남의 행운 역시 부러워해서는 안된다.(168p)

 

 

 

ㅡ 은희경, <중국식 룰렛> 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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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3

 

 

생명의 출현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출현도 역시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인류의 출현 가능성이 거의 0이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생명으로 충만해 있지도 않았고, 생명계는 인간으로 충만해 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몬테-카를로의 도박장에서 우리의 번호가 우연히 운 좋게 뽑힌 것과 마찬가지다. 방금 10억을 따서 망연해 있는 사람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조건에 대해 낯설음을 느낀다 하더라도 뭐가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205p)

 

 

현대 사회에서 선택이 아직 작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가장 적합한 자의 존속’을 유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해서, ‘가장 적합한 자의 유전자가 그 자손들의 번창을 통해서 존속’하는 데 선택이 이롭게 작용하지 못한다. 지성, 야망, 용기, 상상력 등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성공의 요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개인적 성공의 요인은 될지언정, 유전적 성공의 요인은 아니다.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이 유전적 성공의 여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적 성공의 요인이 유전적 성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통계에 의하면 지능 지수(혹은 문화 수준)와 커플 사이의 평균자녀수는 서로 반비례한다. 또한 같은 통계 자료에서 지능 지수가 높은 사람들끼리 커플로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가장 뛰어난 유전적 잠재성이 그 번식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점차 집중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231p)

 

 

현대 사회는 과학이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와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과학이 주는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실상 거의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진리를 찾기 위한 새롭고 유일한 원천에 대한 규정, 윤리의 기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요구, 물활론적 전통과의 단적인 결별에의 요구, ‘옛날의 결속’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어떤 것으로 대신할 필요성의 제기 등등의 것을 말이다. 과학이 주는 모든 힘으로 무장하고 또한 그것이 주는 모든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바로 이러한 과학에 의해 이미 그 뿌리까지 괴멸된 가치 체계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242p)

 

 

과학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그 완전한 의미에서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은 마침내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자신의 오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완전한 고독을, 자기 존재의 근본적인 이상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마치 집시처럼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주는 그의 음악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그가 꿈꾸는 희망에도, 그가 겪는 고통이나 그가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무관심해 할 뿐이다.(245p)

 

 

ㅡ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中,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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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3

 

 

로알드 달이라는 영국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국내에서는 팀 버튼이 연출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최근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각 단편을 읽기 시작하면 해당 작품이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기승전결을 철저히 지키며 마지막에 트위스트가 있다. 한두 작품 읽어보면 대략이나마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 가능하고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은 능수능란하게 작품의 분위기를 장악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탁월한 트위스트로 마무리하는 작가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소설 말고도 주변 사람들에게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려줬을 것 같은데,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불러 놓고 기상천외한 결말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괴팍한 노인네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추리 소설이 인기를 끄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음 내용이 궁금하고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ㅡ 로알드 달, <맛> 中,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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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7

 

 

 

친구가 술을 마셨다는 것도, 운전이 서툴다는 것도, 날씨가 나쁜 것도, 길이 험하다는 것도 다 알면서 보냈다는 뜻이네. 일부러 커피까지 챙겨주면서. 그런 걸······. 무죄라고 하지는 않아.’(124p)

 

행동과 생각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야. 자기 행동이 최선이 아니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립되는 세상도 있어. 몰랐던 사실은 지적하면 개선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자각하고 있는 걸 누가 지적한들 바뀌는 건 없어. 오히려 망신을 샀다는 생각에, 상대를 완고하게 만들 뿐이야.”(222p)

 

 

 

미나토 가나에, <리버스>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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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3

 

 

많은 면에서 닭살 돋기도 하고, 그만 덮을까 싶다가도 몇몇 반짝이는 생각들과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서 다 읽었다. 요즘 읽는 책들을 떠올려보니 문장의 표현방식이 작가마다 상이하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다 나의 편협한 독서와 책이 달라지거나 같은 책을 1년이 지나 다시 읽는 경우에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는 변함없는 나 때문이다. 책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는 한갓된 생각은 버렸지만 남는 게 이렇게나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책을 읽고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관련된 단상이라도 기록해둬야겠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저처럼 많이 한 사람들은 승부에서 꽤나 뒤처진 셈이 되겠지요.(98~99p)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268p)

 

 

누가 그런다.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는 항상 달아나더라고. 난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세상이 문제일까, 당신이 문제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내가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사람들이 늘 내게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317p)

 

 

 

이석원, <보통의 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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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6

 

읽음.

희, 로, 애, 락이라는 4가지 큰 주제로 묶어놓은 글로 건축물을 사람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으로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각 건축물에 스며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 애 부분이 좋았다.



ㅡ 구본준,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中,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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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2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154p)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너는 괴물이다. 반성하라!”고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고, 괴물의 내면을 이야기라는 당의정으로 감싸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시각으로 괴물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라스콜니코프도, 토니 소프라노도, 험버트 험버트도, 「파리대왕」의 소년들도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믿은 바와 같이, 인간의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데, 우리는 아직 충분한 시련을 겪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언제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소설이 우리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유일한 가능성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임에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괴물을 만나기 위해 책장을 펼칩니다.(176~177p)

 

 

ㅡ 김영하, <읽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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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2

 


미용실을 찾아서 걷는 이 행위가, 과장된 표현이지만 인생 그 자체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네거리에 서서 자,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고 어쩐지 공장가를 헤매게 되어 미용실 같은 건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당한 거리를 와 버렸기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공장이 길게 이어진 길을 바보처럼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스로 동네다운 곳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저물고 게다가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돌아가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충동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녹초가 된 상태로 미용실 한 곳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귀가한 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거리에 와서 에잇, 이쪽이다, 하고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신흥 주택이 늘어선 곳이 나와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미용실을 발견하고 간단히 계약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꼭 인생이구나, 하며 묘하게 감탄하면서 저는 매일 계속해서 걸었습니다.(253~254p)

 

 

ㅡ 미야모토 테루, <금수> 中,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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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

 

재작년 ‘죄와 벌’을 읽고 검색을 해보다가 열린연단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여러 주제로 강연을 하고 그 강의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강의 목록이 썩 괜찮아 보였다. 사이트를 훑어보다가 ‘죄와 벌’ 강의를 들어봤다. 결과적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연자인 석영중 교수는 적확한 어휘와 막힘없는 언변으로 강의를 이끌었으며 성실한 강의였다.


이렇게 석영중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두고 최근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와중에 불현 듯 생각이 났고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석영중 교수의 강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컨텐츠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죄와 벌’을 포함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더 많은 작품들을 사례로 이용하여 평생 ‘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범상치 않은 인물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학술적인 느낌의 딱딱한 책이 아니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가라 칭송받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에 짓눌리지 않고 그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책이자 도스토예프스키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작품을 한 번쯤 읽어보고 싶게끔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ㅡ 석영중,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中,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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